소설리스트

금뱃지-40화 (40/191)

# 40

12. 개원 (2)

국회의원이라고 다 같은 국회의원은 아니었다.

뭣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초선에서 그치는 게 다수였고, 정치를 이해하고 재선하는 사람은 일부였다.

그 중에서도 실세가 되고, 권력을 쥐는 건 극소수였고.

이중에 오늘 서울시장을 만나기 위해 모인 사람은 다수에 속하는 인원이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서울시에 연고가 있고, 서울시장과 인사를 하지 못한 초선의원들이 온 것이었다.

일명 초선 의원과의 만찬.

새한국당 뿐만 아니라, 무소속을 포함한 야당 의원까지 초대된 자리였다.

서울 중심가의 호텔에 들어서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내게 고개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윤수혁 의원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름과 얼굴을 암기한 듯, 직원이 앞장서서 행사장으로 안내했다.

뷔페식의 저녁 식사자리였다.

연회장 가장자리에서 요리사들이 갖가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나를 안내해 준 직원이 물러가고, 내부를 바라보는데 아는 얼굴이 다가왔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성해균.

“윤수혁 의원님이시죠?”

그가 아는 체를 하며 다가왔다.

성 부시장은 서울시의 2인자이자, 현 서울시장인 박창일 시장의 오른팔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2019년에는 청와대에서 경제수석으로 근무했던 사람이었다.

몇 번이나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전부였다.

그의 권력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측근이기에 가질 수 있는, 대통령으로부터 파생된 권력.

그게 성 수석에게 있었다. 그 말고도 대통령 주위에는 언제나 그런 권력자가 있었다.

그래서 쉽게 다가가거나 말 걸기가 힘들었다.

그는 대통령과 직접 통하는 수석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 성 수석은 장관직을 단 노인들을 상대했었다. 차관급 이상의 기관장들도 상대했었고.

나 같은 일개 중앙당 실장은 눈치껏 빠져 있어야 했었다.

그런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해 왔다.

“안녕하세요. 성해균 정무부시장님.”

“하하, 알아 봐주시네요.”

“서울시 실세신데 못 알아볼 수가 없죠. 설마 누가 못 알아봤습니까?”

“실세라니요? 제가요.”

그나 웃는 낯으로 나를 바라봤는데, 시선이 묘했다.

성 부시장은 실력이나 눈치가 빠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나를 바라보는 것도 뭔가를 떠보려는 것처럼 보였다.

“부시장님 일하시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게 국회까지 소문이 났나요?”

“국회까지 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성 부시장이 나를 잠깐 바라보다가,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시장님 오셨네요. 저 가보겠습니다.”

“예, 수고하십시오.”

그렇게 성 부시장이 여운을 남기고 떠난 뒤, 나는 뷔페장을 돌아다니면서 국회의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2, 30여명 정도 되는 숫자였다.

아무리 어려도 30대였고, 보통 4, 50대였다.

안 고문이 약을 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 중 몇이 내게 친근한 척을 했다.

돈 때문인지.

그 사이 행사장 중앙에선 박 시장이 감사 인사를 시작했다.

곁에는 성 부시장을 비롯한 서울시의 실세 몇이 의원들이 있었는데, 박 시장과 눈이 마주쳤다.

뭔가 싶어서 빤히 보는데, 박 시장이 웃는 낯으로 말을 매듭지었다.

“……마지막으로, 같이 잘 해 보십시다!”

그러고 보니 성 부시장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었는데, 뒤늦게 박 시장과 악수 할 때 알았다.

“당에서 괴롭힘이라도 받으면 시청으로 오세요, 신민주당에서 좋아할 겁니다.”

무소속에서 신민주당으로 입당한 박 시장의 말이었다.

스카우트라고?

내가 만만해 보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나는 호기심을 감추고 담담하게 되물었다.

“제가 괴롭힘을 받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윤수혁 의원님 기사를 좀 봤지요. 인터뷰를 참 많이 하셨더라고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제일 자료가 많았던 것 같았는데, 아무튼…….”

그 말에 웃음이 났다.

역시 서울시장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었다.

초선 의원과의 만찬을 준비하면서부터, 이미 빠릿빠릿하게 준비하고 있던 것이었다.

스카우트도 그가 가진 선택지 중에 하나였으리라.

“경제 정책이나 복지 관념이 저희 쪽에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아마도 새한국당에서 좋아할 것 같진 않더군요.”

대중이 좋아할 말을 골라 썼었다.

예를 들어서, 부자 증세나 기업 살리기 같은 말들.

그 안에는 신민주당이 좋아하는 것도, 새한국당이 좋아하는 것도 있었다.

박 시장이 편안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인터뷰가 다는 아닐 수도 있어서 여쭤보는 거지요, 어떤가요?”

남이 보기에는 스카우트가 아니라 안부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나도 별 차이 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그 인터뷰도 보셨습니까?”

“네?”

뜬금없는 질문에 박 시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답변이요, 그걸로 시장님 말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답이…… 될 것 같네요. 하하.”

박 시장이 눈웃음을 짓고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긍정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그거면 됐다.

박 시장과의 접점을 만들어 두기만 해도 이득이었다.

그는 재선에 이어서 헌정사상 최초의 3선이나 해먹을 서울 시장이었다.

그것도 미래가 바뀌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박 시장은 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행정력이든, 인맥이든, 대중을 감화하는 친화력이든 간에.

무엇보다도 지금 서울시장이 아닌가?

* * *

7월 중순, 여의도.

한 빌딩의 사무실에서 인터폰 벨소리가 울렸다.

조컨설팅의 대표 조양준이 빨간 LED가 점멸하는 것을 쳐다보다가 버튼을 눌렀다.

“네, 조양준입니다.”

- 대표님, 새한국당의 윤수혁 국회의원님이 방문하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대표님을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여름 특강 리스트로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조양준이 움찔했다.

“누구요?”

- 새한국당 비례대표 출신 윤수혁 의원입니다.

“그 사람이 왜, 아니…… 일단 사장실로 모셔오세요. 정중하게.”

윤수혁은 국회의원이었다.

고객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또한 고객을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정중하게 대해야 했고,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인터폰 너머에서도 깍듯하게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대표님.

조양준이 벌떡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어서 책상을 정리했고, 응대용 소파와 테이블을 확인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하계 정장 상의까지 걸친 조양준이 다시 사무책상 앞에 앉았다.

그다음에야 표정을 굳히고, 사무실에 깔린 널찍한 타일 바닥을 바라봤다.

‘윤수혁 의원이 왜 나를……?’

조양준이 대표로 있는 조컨설팅은 정치 컨설팅 사업체였다.

여론조사 대행과 현수막 제작, 여론조사 응답자 분석이나 후보자 이미지 구축, 공약 구성과 법무적인 부분까지 통합적으로 맡는 업체.

한마디로 선거 캠프 출장소였다.

그러나 이미 선거철은 끝난 뒤였다.

더욱이 조컨설팅은 주로 진보 정당과 연줄이 닿는, 야권 성향의 컨설팅 업체였다.

물론 보수 정당에서 고객이 아예 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윤수혁이 찾아오기에는 시기도 적절치 못했다.

윤수혁이 재선하려면 4년이나 남은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12월의 재보선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는 건 미리 입후보할 사람에 대해 언질을 주려고 왔을까?

윤수혁에 대해 확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이, 노크 소리에 조양준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세요.”

이내 여직원이 문을 열고, 안으로 윤수혁을 들여보냈다.

“반갑습니다, 윤수혁입니다.”

“조양준입니다, 의원님.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조양준이 사무책상을 돌아 나와서 윤수혁과 악수를 나눴다. 나이가 반은 어린 데도 조양준은 깍듯하게 행동했다.

이내 조양준이 손을 놓으며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지나가다가 정치 컨설팅 좀 받을까 해서 왔습니다.”

윤수혁이 담담하게 대꾸하는 순간, 순간 조양준의 머릿속에 몇 개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지역구 운영? 아니면 차기 입후보자 상담?’

조양준이 속으로 생각을 내려 두고, 자연스레 응대용 소파로 안내했다.

이내 조양준도 마주 보고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론 동향 파악과 이미지 홍보, SNS 관리 등등.

업무와 다름없는 설명과 대화가 이어지자, 조양준이 묵묵히 듣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여담으로 하기에는 대화가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회성 상담이지만 이것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의원님.”

국회의원들뿐만 아니라, 권세가 있는, 그리고 어디서 한 가닥 한다는 이들은 이런 상담에 푼돈조차 내는 걸 꺼려 했다.

낼 수 있어도 자신의 권위가 망가지는 것 같아서 버티는 것이었다.

자신 같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베풀지 않으면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비하했고.

그러나 윤수혁의 대답은 태연했다.

“비용은 걱정하지 마시고 청구하십시오. 저 돈 많습니다.”

조양준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 풀어졌다.

“하하, 성격이 아주 좋으시네요. 그럼 말씀하신 컨설팅 부분은 누가 받게 될 겁니까? 12월 재보선에 출마하실 분이신가요?”

“아뇨, 접니다.”

“의원님이요?”

조양준이 멈칫했다.

재선은 4년 뒤에나 있지 않은가? 그게 아니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재보선에 출마한다는 말인가?

조양준이 그 생각에 다시 입을 열려는데, 윤수혁이 먼저 말을 이었다.

“참고로 재보선에 나가는 게 아닙니다. 4년 뒤에 있을 재선 계획을 세워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조양준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윤수혁이 말을 이었다.

“아까 저 돈 많다고 말씀드렸죠. 그 돈으로 전문가들에게 일을 배분할 생각입니다. 그 전문가들이 법안 쓰고, 홍보도 하고, 지역구도 관리하게 할 겁니다. 제가 할 일은 방향을 지시하고 책임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틀렸습니까?”

“아, 아닙니다. 맞습니다.”

방향을 지시하고, 책임을 지는 것.

그게 리더의 일이었다.

또한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컨설팅 해 주시는 겁니까?”

“가능합니다만, 굳이 저를…….”

“전직 대통령을 기적적으로 당선 시켰을 때는 실무진으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대표 직함으로 컨설팅을 하셨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조 대표님이 국내 최고입니다.”

조양준이 놀란 정신을 붙잡고, 윤수혁을 똑바로 쳐다봤다.

지나가다가 컨설팅을 받으러 왔다던 전의 말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윤수혁은 이미 결심하고 조컨설팅을 목표로 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니 특강 시간이나 외부 업무 시간도 피해서 회사에 있을 시간에 맞춰 방문한 것이리라.

조양준이 생각을 정리할 무렵, 윤수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까 상담한 컨설팅 그대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다만 그 전에 앞서서, 하나 해 주셔야 하는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좀 불편하실 수도 있겠으나, 의원님께선 학력이 부족하십니다. 야간대학이나 경영전문대학원에 진학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조 대표님께서 처리해 주시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아, 일단 계약서부터 쓰시죠.”

조양준은 침을 꼴깍 삼켰다.

조컨설팅을 방문한 사람 중 천 억대 자산가는 처음이었다.

전직 대통령도 고작 수 억의 재산으로 빚을 내서 대선을 치렀었고, 웬만한 사람들도 수십 억 자산으로 총선이나 지방선거에 도전했었다.

천 억대라면 얼마까지 비용으로 낼 수 있을까?

보니까 돈에 연연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속내는 알지 못했다.

조양준이 윤수혁의 씀씀이를 가늠하며 계약서와 회사 소개서 따위를 준비하는 사이, 윤수혁이 나직하게 말했다.

마치 속을 다 안다는 듯.

“비용은 원하시는 만큼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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