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39화 (39/191)

# 39

12. 개원 (1)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국회의원에게 돈은 정말 간절한 것이었다.

정말 많아야 했다.

이미지가 국회의원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월 식대에만 수백만 원이 쓰였고, 경조사와 품위유지, 잡비에도 수백만 원이 쓰였다. 지역구 사무실 운영과 의정보고서 제작에는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돈이 들어갔다.

월 일천만 원을 웃도는 세비로 온전하게 감당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후원금도 모자라긴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한도가 차도록 후원금을 모금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나 맞은편에서 말을 건네는 고일준 의원이 그랬다.

내가 돈 얘기를 흘리자마자,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럼…… 윤 의원은 후원금 걱정이 없겠네. 아니, 돈 걱정이 아예 없겠어.”

“그래도 어디에 써야 하는지, 그게 걱정되긴 합니다.”

“아…… 으하하. 그렇겠네, 재산이 얼마라고? 천 억?”

“비슷합니다.”

앞에 숫자 하나가 빠졌지만, 무슨 숫자가 들어가든 어쨌든 정계 공개 자산 2위였다.

고 의원이 과장되게 웃음을 흘렸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기뻐하는 애 같기도 했다.

이유야 뻔했다.

내 돈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가 안 고문에게 불려 나온 이유도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후원금을 좀 받았다는 소리였다.

안면이야 있었겠지만, 존대와 하대가 명확할 정도면 수백에서 수천만 원 정도가 오고갔을 게 뻔했다.

이렇듯 고 의원이 돈을 바라는 이유도 잘 알았다.

당연히 없어서 바라는 것이겠지마는, 고 의원에게 돈은 치부(致富)나 매표(買票)를 위한 게 아니었다. 어쩌면 조금 포함됐을 수도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고 의원에게 돈은 정치의 수단이었다.

길게 쓰자면 입법 전문조사원을 고용하고, 의정 보고서를 제작하고 배포하며, 지역구 사무실을 부족함 없이 운영하기 위해서 돈을 받아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돈을 마다하지 않았었다.

그 과정이 편법을 넘어 비법(非法)의 수준에 다다랐으나, 고 의원은 상관치 않았다.

어쨌든 정치에는 돈이 필요했으니까.

나중에 불법정치자금 의혹에 연루됐을 때, 고 의원이 비공개 의총에서 한 말이 있었다.

‘내가 돈 받아서 차를 샀어요, 집을 샀어요? 일하는데 필요해서 받은 거 갖고 이렇게까지 하셔야 되겠습니까?’

그 말에 다들 헛기침만 할 뿐, 별 말을 하지 못했다.

고 의원이 깨끗한 축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은 개인적인 소비와 허영, 지역구 관리를 목적으로 연고지의 사업가나 소관부처의 대기업 대관팀이 내미는 자금 지원에 많이도 넘어갔었다.

국회의 일부는 그런 방식으로 안 고문과 안면을 텄을 확률이 컸다.

이내 고 의원과 국회의원의 세비 지출에 관해 대화할 무렵.

눈치를 보던 안 고문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렇게 힘들면, 여기 윤 대표가 도와주면 될 것 같은데? 안 그런가?”

“으하하, 그러면 저야 좋죠.”

고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나도 그의 말이 멎길 기다렸다가 곧장 물었다.

“제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 왜 안 되겠어? 내가 그거 받아서 장판 밑에 깔아 두겠어? 나랏일에 필요하니까 받고 쓰는 거지.”

역시나 그때나 지금이나 마인드는 한결같았다.

“윤 의원도 필요한 거 있을 거 아냐?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힘 써줄게.”

고 의원이 이내 기다리고 있던 말을 했다.

비록 고 의원은 비주류에 속해서 영향력이 큰 편은 아니었나, 경기안성시에서만 3선을 한 사람이었다. 지역구에서 만큼은 시장이나 도지사도 한 수 접는 왕이었고, 그 힘으로 앞으로도 4선까지 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아직 모르지만, 이번에 외통위 위원장도 겸하게 될 예정이었고.

그 정도라면 충분히 내가 원하는 걸 도와줄 수 있었다.

“말씀 고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 드려야 합니까?”

“그냥 현금으로 줘도 돼. 선후배 의원끼리 사적으로 현금 융통하는 거잖아, 누구 눈치 볼 이유가 없어. 윤 의원이 나한테 공천을 바랄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내가 공천 줄 짬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하, 맞습니다.”

공천 대신에 보좌진 몇 명 뽑아달라는 게 내 부탁의 전부였다. 의원실 배정도 의원회관 구관보다 새로 신축한 신관에서 근무하게 해 달라는 것 정도.

이건 크게 힘이 드는 일이 아닌, 쉬운 것이었다.

그리고 시작이기도 했다.

나는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 내줘서, 고 의원이 내 돈에 맛들이게 만들 것이었다.

더구나 지역 유지나 사업가들의 스폰보다도 나은 게 내 돈이었다.

툭 하면 비리라고 일컫는 유착 관계나 대가성 금품보다 어떻게 봐도 내 돈이 나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고작 스물여덟 밖에 안 된 애라는 사실이었다.

고 의원이 쉽고, 편하게 여길만한 나이.

* * *

2012년 7월 2일, 19대 국회가 개원했다.

법정 개원일보다 한 달이나 늦은 지각 개원이었으나 달라질 건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오히려 법정 개원일을 만든 이후에 국회는 단 한 번도 정상 개원을 한 적이 없었다.

언론은 비판의 기사를 썼고,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당 내 주요 인사에게 항의 투서를 보냈다.

그 와중에 2,000여억 원을 들여서 새로 지은 의원회관 신관은 마무리 되지도 않았다.

안내판은 비어 있었고, 의원실마다 사무집기가 모자랐다.

선수에 따라서 사무실 정비가 완료되다 보니, 초선인 데다가 비례대표인 윤수혁의 의원실은 컴퓨터조차 없었다.

그러나 4급 선임보좌관 자리에 앉은 박민표는 조금의 불만도 없었다.

‘대단하다, 진짜.’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자신이 원하던, 윤수혁에게 언급했던 보좌진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첩에 갈겨 적은 세 글자의 이름만 보고, 어떻게 고대로 데려왔을까?

박민표는 그 생각을 하다가 앞에 놓인 신형 노트북을 바라봤다.

‘개원 기념 선물입니다.’

윤수혁이 보좌진 인원 전부에게 준 것이었다.

그것 말고도 태블릿 PC나 온갖 사무용품이 보좌진 책상마다 놓여 있었다.

자신을 포함한 보좌진 전체가 얼마나 벙쪘던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주는 건 차비나 밥값, 그 정도였다.

간혹 보좌진이 뇌물을 대리수수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잦은 경우도 아니었고 박민표도 받은 적이 없었다.

‘돈 많고 젊은 영감님 모시니까 좋네.’

박민표가 속으로 사담을 삼키는 사이.

똑똑.

노크 이후에 문이 열렸고, 30대 중반의 사내가 슬그머니 들어섰다.

“어제 전화 드렸습니다. 저 국방부 정책기획과 김진욱이라고 하는데…….”

“아, 네. 들어오세요, 통화했던 박민푭니다.”

박민표가 일어나서 인사하고, 들어서는 사내와 악수를 나눴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3, 40대의 사내들이 밖에서 뒤따라 우르르 들어왔다.

국방부의 과장급 실무진들이었다.

윤수혁의 소속 위원회가 국방위원회였기에, 미리 보좌진과 안면을 터두고 업무 협조를 구하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이는 국회의원들의 상임위가 정해질 때마다 반복되는 연례 행사였다.

국회 상임위가 감사기관이나 다름없으니, 피감기관 입장인 공무원들은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명함을 돌리고, 악수를 나눈 뒤.

어느새 음료까지 마신 공무원들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조만간 국장님과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공무원들이 빠져나가려 할 때.

개인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벌컥.

“벌써 가십니까? 안에 정리하느라 늦게 나왔네요.”

“……?!”

“비례대표 출신 윤수혁입니다, 반갑습니다.”

과장급 실무진들이 얼어붙은 채로 눈만 껌뻑거렸다.

그러다 정신 차린 사내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숙어지는 각도가 90도를 넘었다.

막냇동생이나 조카뻘이라고 해도, 비례 출신이고 운이 좋았다고 한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이었다.

1인 감사기관이자, 입법기관.

국방부에서 발의한 정책을 브리핑 들으며 훈계하고, 퇴짜 놓는 상급자.

그리고 국방부 장관과 비슷한 수준의 예우를 받으며, 카메라 앞이 아닌 이상 실무진이 보기 힘든 사람이기도 했다.

3, 40대의 사내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국장급은 되어야 얼굴을 맞댈 수 있었다.

그래서 과장급이 와서 미리 안면을 트고, 다음에 국장급이 와서 국회의원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윤수혁은 상관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국방부에서 나오셨죠?”

“아아, 네. 저는 정책기획과…….”

그 뒤로 사내들이 줄줄이 다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또 명함을 꺼냈고, 악수를 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업무 협조에 관한 덕담을 나누고 윤수혁이 의원실 문까지 열어 주며 배웅했다.

과장급 공무원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러났다.

이후로도 국방위원회의 위원이 된 윤수혁의 의원실에 소관부처 공무원들이 줄줄이 찾아왔다.

상임위 공무원인 2급 이상의 전문위원들과 방위사업청의 출연기관 등등.

그야말로 원님 부임하자 찾아와서 고개 조아리는 꼴이었다.

물론 윤수혁은 아랫사람 부리듯 거만 떨지 않았다. 국방부 공무원들이 왔을 때처럼, 짧게 담소를 나눴고 배웅까지 해 줬다.

찾아온 이들은 당황해 했으나, 더욱 감사해 했다.

그저 얼굴 맞대고 말 몇 마디 해 줬는데, 빚진 것처럼 고개 숙이고 의원실을 나갔다.

오히려 박민표가 윤수혁을 말렸었다.

“의원님, 국장급이나 기관장이 또 방문할 겁니다. 오늘은 보시던 업무 보셔도…….”

“시간이 되니까 뵙는 건데요, 뭐.”

그 말에 보좌진이 윤수혁을 돌연변이 보듯 쳐다봤다.

엄청난 재산과 젊음, 국회의원이라는 직함을 다 가진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특히나 새한국당은 보수 정당 답게 더 권위적이었고, 수직적이었다.

그러나 윤수혁은 별거 아니라는 듯 짧게 웃었다.

‘첫 이미지를 이렇게 잡았으니.’

우스운 생각에 윤수혁이 피식 웃었으나, 보좌진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당 대표가 국회의원으로서의 권위를 추락시키지 말라는 묘한 말을 하는 마당이었다.

* * *

잡지사로부터 내 얼굴이 실린 잡지를 받았다.

“사진이 영화배우처럼 나왔습니다.”

“음, 그래? 내가 봤을 때는 약간 유아ㅇ……?”

“의원님, 약속 장소로 모시겠습니다.”

“안 닮았어?”

“……죄송합니다, 모시고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흐흐흐.”

퇴근길에 영석이와 농담을 하면서 잡지를 펼쳤다.

이미 지역 신문사를 시작으로 정치나 경제 관련 프로그램에서 몇 번이고 인터뷰를 한 뒤여서,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이는 특별하다고 느낄만한 게 제법 있었다.

나는 다른 의원보다 돋보일 게 많은 사람이었다.

김영삼 전직 대통령과 같은 나이인 만 25세에 정치권에 데뷔했고, 재산은 2,000억이 넘었으며, 재작년 연평도 포격 사건의 한 가운데 있었다.

그런 얘기들이 줄줄이 적혀 있고, 국회의원이 된 이유도 말미에 조금 적혀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다른 분께 도움이 되고,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생각입니다.]

전에 했던 오글거리는 말이었다.

그사이, 차 속도가 줄었다.

“의원님, 약속 장소에 다 왔습니다. 서울시장도 곧 도착한 답니다.”

나는 잡지 표지를 덮었다.

영석이의 대답이 내가 국회의원이 된 이유였다.

국회의원이 되면 권력자들과 비슷한 선상에 설 수 있었다.

대통령 바로 아랫줄이라고 평가되는 서울시장과 동등하진 않겠지만, 준하는 수준은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민원을 해결해 주고,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이건 시장뿐만 아니라, 항상 반목하는 것처럼 보이는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는 견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서로 상생하는 관계였다.

그 안에서 나뉜 여야와 계파도 마찬가지로, 견제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그렇게 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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