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11. 국회로 (3)
2012년 1월.
새해가 밝았고, 정치권의 공천 이슈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새한국당과 신민주당의 심리적이고 실질적인 싸움의 파생물이었다.
중견 탤런트의 새한국당 공천 후보 접수 사진이 인터넷을 장식하면, 이튿날 신민주당에서는 유명 여성 운동가를 비례대표 후보로 검토 중이라는 기사를 냈다.
온갖 저명인사들이 공천 준비 과정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나도 있었고, 관련한 내용이 지면에 실리기도 했다.
전에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했던 내용과는 다른, 새한국당 입장의 기사가 난 것이었다.
[새한국당, 연평도 의인 공천 고려 중]
[연평도 의인 윤수혁, 새한국당에서 러브콜 보내]
[새한국당 중앙청년위원회 부위원장에 연평도 의인 윤수혁 임명]
전부 좋은 소식들이었다.
국회 입성이 더욱 쉬워질 만한 기삿거리였다.
소문도 없이 공천을 받게 되면, 누군가 의심이나 의혹을 가질 수도 있었다. 재수 없으면 언론에서 소설로 다룰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의혹만으로도 도덕성에 타격을 입는 게 바로 정치인이었으니까.
이제 국회 입성을 앞두고 마무리해야 할 게 있었다. 안 고문에게 시켰던 일을 확인해야 했고, 오랜만에 박 보좌관에게 연락도 해야 했다.
국회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기름칠도 해 주고, 의원실 세팅도 준비해야 했다.
나는 사무실을 나와서 곧장 안 고문을 여의도로 호출했고, 박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두 달에 한 번 씩은 통화하곤 했는데, 일이 바빠지니 요새는 그것도 좀 소홀해져서 3개월 만의 통화였다.
잠깐의 통화연결음이 흐른 뒤.
- 어, 수혁아! 오랜 만이다, 잘 지냈어?
“예, 저야 잘 지내죠.”
- 맞다, 대표님인데 어련히 잘 지내겠지. 흐흐흐. 그래, 일은 잘 되고?
“잘 됩니다. 보좌관님은 어떠세요?”
- 뭘 알면서 묻고 그래, 여전히 힘들지.
그의 너스레에 피식 웃는데, 박 보좌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너 만한 비서가 없잖아. 그래서 원래 너 사업 망하면 불러 오려고 했거든? 근데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다, 흐흐흐.
“하하하, 저 국회로 다시 들어갔으면 하세요?”
- 이참에 배지달고 들어오게?
“어? 아세요?”
- 너 공천 검토 대상이라고 신문 난 거 봤어. 인터뷰한 것도 봤고. 내가 그런 걸 빼먹겠냐. 너 설마 그거 자랑하려고 전화했어? 아니지?
“에이, 아니죠. 혹시 시간 괜찮은 날 있으세요? 제가 밥 한 번 살게요.”
- 회사 대표님이면…… 얼마짜리 사주려고? 기대해도 돼?
“국회 앞에 콩나물국밥 먹으려고 했는데.”
- 거기 맛있긴 한데 그걸로 퉁치게?
“흐흐, 농담이고 한우 살게요. 한 번 봬요.”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더 하다가 전화를 끊고 난 뒤였다.
안 고문을 기다리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 싶어서 화면을 확인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익숙한 번호였다.
새한국당 중앙당 총무국.
총무국은 내가 중앙당에 있을 때 거쳐 간 부서로, 서른다섯 즈음에 부국장을 지냈었다.
거리낌 없이 흙탕물에 한 몸 던져 가면서 얻은 자리였고, 이후 전략기획실 실장까지 달게 됐었다.
뭐, 결국 죽었지만.
나는 그때를 떠올리다가 통화 버튼을 꾸욱 눌렀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윤수혁 씨 본인 되십니까?
“네, 접니다.”
- 새한국당 중앙당 총무국입니다. 윤수혁 씨 중앙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임명장 수여식 일정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국회의원님하고 국장님, 선배 당직자분들이 자리하실 예정이니까 반드시 참석해 주셔야 하고요. 날짜와 시간은…….
당직자가 얘기를 이어 가는 와중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설명을 듣자 하니, 수여자는 나 혼자였고 수여식도 사진 촬영을 위한 약식 행사가 전부였다.
국회의원이 올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핵심 당직자나 큰 행사의 경우에는 올 수도 있겠지만, 고작 나 하나를 위한 행사였다.
그것도 아직 공천 대상도 아니고, 중앙청년위 부위원장에 불과한 나였다.
당직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른 물었다.
“국회의원은 누가 옵니까?”
- 장세룡 의원님 방에서 일정을 잡긴 했는데, 의원님께선 워낙 바쁘셔서 불참하실 수도 있어요. 보좌관님이 대신 올 수도 있고요.
“장세룡 의원?”
뜬금없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직 장 의원이 나를 찾아올 때가 아니었다. 굳이 나를 찾아온다면, 어중간한 이유 몇 개를 열거 할 수 있겠지만, 그걸로는 모자랐다.
내가 모르는 뭔가를 장 의원이 눈치챘다고 봐야 했다.
어쩌면 김추완 의원과 내 커넥션이 드러났을 수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당직자와의 통화를 끝내고 고민하는 무렵.
안 고문이 도착했다.
간만에 불러서 그런지 들뜬 듯한 안 고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 대표! 그래, 무슨 일인가?”
“김정환 비대위원장, 그 얘기 하려고 합니다. 안으로 가시죠.”
그를 데리고 카페로 가는데, 안 고문의 입꼬리의 아래쪽으로 기울었다.
“김 위원장 말이지, 내가 알아본 게 있긴 한데 시간이 좀 걸릴 듯하네. 총알도 그렇고, 사람도 가려 가면서 해야 하니, 앞으로 몇 개월 정도는 더…….”
안 고문이 걸음을 옮기면서 말을 꺼냈는데, 결론적으로는 좀 더 기다려 달란 말이었다.
그리고 그게 맞는 말이었다.
아직 대선은 한참이나 남았고, 나도 국회에 들어가서 따로 알아볼 생각이었다. 금뱃지를 달면 뭘 해도 영향력이 늘어서 쉬운 법이었으니까.
다만 걸리는 게 한 가지가 있었다.
장 의원이 나를 보러 온다는 사실.
어쩌면 안 올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가 내 임명장 수여식에 이름을 올려놨다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감이 안 잡혀서, 카페로 들어서면서 안 고문에게 다시 말을 붙였다.
“고문님.”
“어?”
“총알 더 쓰십시오. 최대한 빨리 하는 게 낫겠습니다.”
“갑자기 왜? 이게 급하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압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안 고문의 안색이 굳었다.
“왜? 무슨 일이 있는가?”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듯한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직은 아닙니다.”
* * *
[당직자 임명장 수여식]
빨간색 플래카드가 단상 위에 기다랗게 걸려 있었다.
강당에 깔린 십여 개의 접이식 의자에 사람들이 채워졌다. 중앙당 출입 기자와 고위 당직자 같은 이들.
이내 사회자 단상에 있던 당직자가 약식으로 수여식을 진행했다.
앞자리에서 준비 중이던 윤수혁이 일어나 앞으로 나서자, 플래시가 몇 방 터졌다.
중앙당 고위 간부도 마찬가지로 카메라 셔터 소리를 의식하면서 일어났고, 곧 하급 당직자의 보조로 임명장 수여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장내를 쳐다보던 당직자가 움찔했다.
장세룡이 들어오고 있던 것이었다. 앞서서 문을 열고 길을 안내한 사내가 바쁘게 수신호를 보냈다.
말하라는 손짓이었다.
당직자가 얼른 마이크에 입을 댔다.
“아아! 아, 지금…… 장세룡 국회의원님께서 바쁜 와중에 강당을 찾아주셨습니다.”
그러자 얼마 없던 장내에 박수소리가 일었고, 카메라를 내려놓던 기자들이 얼른 움직였다.
배정된 빈 의자 앞에서 장세룡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미안합니다, 내가 바빠서 좀 늦었어요. 마저 진행하세요.”
“네, 그러면 마침 사진 촬영 순서인데 장세룡 의원님께서도 같이 사진 촬영을 하시면 어떻겠는지…….”
“좋지요.”
장세룡이 일어서선 앞으로 나갔고, 기자들이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윤수혁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장세룡과 당 간부가 서서 몇 번의 카메라 플래시를 맞았다. 이윽고 셔터소리가 멎자, 장세룡이 윤수혁의 손을 맞잡았다.
“축하합니다, 부위원장.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수혁의 나직한 대꾸에 장세룡의 눈빛이 바뀌었다. 휘어져 있던 눈매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고, 시선은 더없이 예리하고 서늘해졌다.
윤수혁이 그 눈을 가만히 바라보는 사이, 장세룡의 입이 열렸다.
“김추완 의원이 칭찬 많이 하던데, 비결이 뭡니까?”
“…….”
윤수혁이 대꾸하지 않자, 장세룡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미소를 띠었다.
‘김추완하고 뭐가 있었구나.’
짐작하고 있던 바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장세룡은 여전히 굳은 낯빚의 윤수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제야 눈매를 바꿨다.
‘다 티가 난다, 꼬마야.’
다시금 푸근하게 웃는 인상으로, 장세룡이 잡고 있던 손을 부드럽게 놓았다.
“조만간 또 봅시다.”
곧 장세룡이 강당 내의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고, 사회자의 감사 인사와 함께 퇴장했다.
윤수혁은 돌아나가는 장세룡을 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장세룡의 말과 반응, 눈빛 따위가 뜻하는 바를 짐작하는 것이었다.
‘김 의원하고 커넥션은 눈치 깐 모양이고…….’
곧 아까의 상황을 되새겨보던 윤수혁이 어렵지 않게 생각을 매듭지었다.
‘그게 끝이네. 감 잡은 게 전부야?’
어느새 윤수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장세룡을 수년간 옆에서 보필했던 시간이 눈치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것도 가장 최측근에서 수족처럼, 개처럼 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기에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사람을 은근히 떠보는 듯한 말투나 차가운 시선.
오늘은 김추완과의 커넥션을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리라.
이내 윤수혁이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새한국당 로고를 등지고, 카메라 앞에 섰다.
긴장했던 것에 비해 별 게 없던 자리였다.
윤수혁이 기자들의 요구에 따라 임명장을 들고 미소 지었다.
같은 시각, 중앙당사 앞.
대기하고 있던 수행비서가 다가오자, 장세룡이 손을 들었다.
“차에 있어.”
“알겠습니다.”
수행비서가 얼른 에쿠스 운전석에 올라서 탁, 하고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장세룡이 안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꺼냈다.
금세 연락처에서 이름 하나를 누른 장세룡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뻐꾸기가 울고 산새가 지저귀는 기본 컬러링이 잠시 흐른 뒤, 장세룡이 입을 열었다.
“금 사장, 심부름 하나 합시다.”
- 하명하십쇼.
“중앙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윤수혁, 압니까?”
- 연평도 의인이오?
“잘 아시네. 그 친구 어디서 호박씨 깐 거 없나 좀 찾아 봐야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요 근래에 당 사람들하고 만난 게 있는지…….”
장세룡이 말하면서 비릿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직접 본 윤수혁은 너무나도 어렸고, 만만해 보였다.
김추완이라는 이름 석 자를 꺼낸 것만으로도 얼굴이 굳었고, 악수하는 손은 겁먹은 듯 힘이 없었다.
‘저 모양이면 최소 수십 억은 태웠겠는데…….
수백억 대의 회사 대표이자 손꼽는 자산가라는 타이틀이면 수십 억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을 확률이 컸다.
더구나 상대는 김추완이었다.
당권을 노리고, 차기 대권까지 꿈꾸는 늙은이.
안면을 익히는 데만 수천만 원이나 수억을 사용해야만 했을 테고, 공천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십수 억은 꺼내야만 했을 터였다.
장세룡이 내부자 정리를 위한 자료를 모으는 데만 억 단위의 돈을 쓴 상태였다.
시간도 하루 이틀이 아닌,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렸고.
이내 장세룡이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이거 수십 억짜립니다.”
-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