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9. 셀럽 (2)
“실장님, 괜찮으십니까?”
“TV 나오신 거 봤습니다, 실장님.”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직원들이 인사 대신에 놀란 말을 던져댔다. 그때 내 눈치를 보고 있던 것인지 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우리까지 호들갑 떨면 안 되지. 하던 일들 해.”
충성하겠다는 말이 가시적인 효과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내가 자리로 가서 정장 상의를 벗자, 오 사장이 내 책상 위에 조심스레 결재판을 올려놨다.
자리에 앉으며 바라보자, 어느새 결재판을 펼친 오 사장이 입을 열었다.
“취재 요청 온 것 정리해 놨습니다. 인터넷 신문사와 지방 일간지가 대부분이지만 지상파 교양 프로그램과 4대 일간지인 신문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재판에는 기자와 PD, 방송작가들의 명함이 서류와 함께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대강의 내용을 확인했고, 지시를 기다리는 오 사장을 쳐다봤다.
“직접 온 분들은 그냥 돌려보내셨어요?”
“커피와 차 대접하고, 오프 더 레코드를 조건으로 얕은 얘기만 나누었습니다. 실장님 신상에 무리가 갈 일은 없을 겁니다.”
내가 정치권에 입문하려는 걸 아는 사람답게 일 처리를 잘 했다.
“잘 하셨습니다, 방송 스케줄은 여유 있게 잡아 주세요. 영양가 없는 거는 정중하게 거절하시고요.”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오 사장에게 결재판을 건네고,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업무를 보고 있던 직원들의 눈이 내게 향했다. 직감적으로 회의 시작을 느낀 모양이었다.
“오늘은 조간회의 일찍 시작합시다.”
말이 끝나자마자, 직원들이 얼른 일어서더니 노트와 서류를 챙기고 회의 테이블로 모였다. 나는 오늘 읊을 정보를 되새김질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저번에 김 차장님이었던가요, 종합편성채널 예상 사업자 리스트 정리해서 보고하셨죠.”
“맞습니다.”
김 차장이 얼른 대답하더니, 자신의 서류를 뒤적거렸다.
“잘 하셨습니다, 사장님께서 성과급 챙겨 주실 겁니다. 그 리스트에서 관리해야 하는 기업을 몇 군데 짚자면…….”
말하면서 직원들을 바라보는데, 불꽃이 쏘아지는 줄 알았다.
회사 개업한지 3주 만에, 그것도 반신반의하던 시선이 불이라도 붙은 듯 강렬해져 있었다.
이 자리에서 언급한 아이템은 100이면 100, 전부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3주 동안 회사 자금은 4배 가까이 불었고, 내 기억에 도움이 된 직원들의 첫 달 성과급은 300퍼센트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직원들을 보면서 아직 종편채널 사업자 신청도 안 한 기업들을 언급했다.
“중앙일간, 제일일보, 내일경제가 종편 사업자로, 연합보도가 보도전문채널에 붙을 겁니다.”
방통위에서 종편채널 사업자 선정 일정조차 발표하지 않았으나, 직원들은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담담한 모습까지 보였다.
물론 내 얘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직원들의 놀랄 얼굴을 그리면서 입을 열었다.
“곧 12월이니, 새해에 앞서서 중요한 아이템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세 달아오른 직원들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왠지 즐기게 된 직원들의 시선에 나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부실 저축은행 퇴출이 시작될 겁니다.”
이게 2011년에 금융가를 강타할 이슈였다.
내년 1월부터 업계 순위권이었던 대형 저축은행을 포함해서 10개가 넘는 저축은행의 셔터가 내려갈 예정이었다. 서민금융이 아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따위로 부실을 키우고, 대주주의 사금고 역할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제2금융권이요?”
“예, 내년에 십여 곳은 문 닫게 될 겁니다. 1월부터 시작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말을 근사하게 마칠 때.
똑, 똑.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원래 이렇게 말하고 일어서서 나갈 생각이었는데…….
곧 막내인 정 대리가 내 눈치를 받고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
“여기 윤수혁 씨 있어요? 연평도 의인으로 TV 나오신 분?”
웬 중년 여성의 목소리에 반 즈음 몸을 일으켰는데, 오 사장이 내게 나직하게 말했다.
“사무실 임대인입니다.”
임대인이 왜 왔나 했는데, 한 손에 과일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TV 잘봤어요, 윤수혁 씨.”
“아, 예. 고맙습니다.”
“나는 그 이름을 어디서 봤었나 했는데, 우리 사무실 계약하신 분 이름이더라고. 내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서 왔어요. 대단하신 일을 해서 기운 좀 받아가려구.”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아. 셀럽이라고 보면 되나?
그 생각대로 나는 셀럽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KBC 교양 프로그램 촬영과 제일일보 취재, 이후 경제잡지 인터뷰 등등을 겪으면서 나는 전파와 활자로 소개되었다.
포커스는 조금씩 달랐다.
연평도 의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으나, 그 안에서는 내 사적인 얘기가 다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미 연평도에서의 내 행적은 고스란히 드러났고, 연평도 출입통제도 끝나서 기삿거리가 많았으니까.
데스크의 시선과는 조금 달라야 했다.
더 구체적이거나, 아니면 다른 얘깃거리이거나.
케이블 인터뷰 프로그램에서는 아나운서가 해병대사령관의 방문 사진을 꺼냈다. 빗물 자국이 적나라한 주공아파트를 배경으로 현관입구의 오래된 계단에 선 모습이었다.
“여기 사진에 나오는 곳이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댁인가요?”
“예, 거기서 고등학생 때부터 형하고 부모님하고 같이 살았습니다.”
내 말에 아나운서가 능숙하게 진행카드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딱 보기에도 상당히 오래된 아파트인데요, 자료에 의하면 96년도에 준공한 곳이고 면적은 78제곱미터, 그러니까 한 23평 정도 된다는 소린데요. 맞나요?”
“예, 맞아요.”
“3억 씩 기부하실 정도면 더 좋은 곳으로 가셔도 될 것 같은데요?”
접이식 의자에 앉은 수십 명의 방청객들이 한 차례 웃었다. 나는 앞에서 사인을 주는 PD를 보며 대답했었다.
“더 비싸고 좋은 집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좀 불편하게 돼서…… 어쩔 수 없이 이사하게 됐습니다.”
“어떤 점이 불편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집에 너무 많은 분이 찾아오셔서요. 정말 감사하긴 하지만, 밤중이나 새벽에도 술 드시고 초인종을 누르시는 분이 계시고…….”
그렇게 말끝을 흐리자, 방청객이 안타까움의 ‘아아’하는 소리를 냈다.
늦은 저녁에나 찾아온 방문객이 전부였음에도 그렇게 말했다.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살을 덧붙이고 있었다.
어차피 있을 법한 얘기였고, 확인해 보면 바탕도 거짓이 아니었다. 논란 없이 손쉽게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은 바로 이런 살붙이기였다.
그렇게 방송과 인터뷰, 사진 촬영으로 며칠이 쏜살같이 지나갔고, 몇 주가 금방 흘렀다.
한파와 함께 12월의 시간이 몰아쳤고, 송별회와 종무식 따위도 시작되었다.
마침내 당도한 12월 31일.
나는 보신각에 올랐다.
신년을 맞이하는 제야의 종 행사에 시민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한 것이었다.
조명이 낮처럼 주위를 밝혔고, 전국의 방송사에서 카메라를 보내 촬영 전부터 영상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장이 줄을 선 열한 명의 시민 대표들과 악수를 나눴다. 영화배우, 첼리스트, 탈북여성, 소녀가장 등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이내 시장이 가장 끝에 있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연평도의 의인이군요, 자리해 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답과 함께 손을 맞잡았다.
* * *
새해가 밝았으나, 신문의 지면은 썩 밝지 못했다.
2011년 1월 6일, 서울시의회 의장이 서울시장의 반대를 꺾고, 무상급식 조례안을 의장 직권으로 공표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대법원에 조례안의 무효 확인소송을 냈고, 시민사회단체는 1월 21일부터 무상급식반대 서명 행사를 시작했다. 서울시가 분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삼호 주얼리호 구조를 위한 해군의 아덴만 여명 작전이 실시되었다.
그 과정에서 언론사 두 곳이 국방부의 엠바고 요청을 파기했고 석해균 선장이 관통상이라는 중상을 입게 되었으나, 선박과 선원 21명은 전원 구출되었다.
이후 2월까지 청해부대의 고난과 석해균 선장의 감동 스토리가 이어질 무렵이었다.
“실장님, 혹시 청년대책위 부위원장이 맞으시냐고…….”
대화투자자문의 대리 정재운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윤수혁이 시선을 들었다.
“누가 전화했어요?”
“전화 건 사람은 젊은 여자였는데, 소속은 선거사무실이라고 했습니다.”
정재운 대리가 대답하면서도 바쁘게 갈겨 적은 포스트잇을 살폈다.
“주세요, 그거.”
“워낙 악필이어서…….”
“그냥 주세요.”
윤수혁이 손을 내밀자, 정재운이 얼른 포스트잇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방금 걸려온 전화의 내용이 단 세 줄로 적혀 있었다.
걸려온 전화 번호 그리고 새한국당 강원지사 예비후보 선거사무실과 청년대책위 부위원장이라는 글자.
꼴랑 단어만 있는 꼴이었으나, 윤수혁은 그 세 줄의 의미를 알았다.
두 달 뒤에 4.27 재보궐 선거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과 기초의원 등 30여 개 선거구를 대상으로 선거가 시작되며, 그 중에는 강원지사도 있었다. 그리고 새한국당의 예비후보라면 이미 공천이 확실시 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윤수혁이 손쉽게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김형문.’
현 새한국당의 당원이자, 전 MBS 사장으로 간판 앵커까지 했던 유명인이었다.
그가 4.27 재보선을 위해서 온갖 방법을 강구했을 테고, 그 중에 연평도 의인이라는 자신과의 접점을 찾아냈을 것이었다. 아직 아덴만 여명작전의 분위기가 남아 있고, 비슷한 느낌의 연평도 의인은 써먹기 좋으니 전화 했으리라.
윤수혁은 정재운이 갈겨 쓴 포스트잇을 책상 한편에 밀어 두었다.
“일 보세요. 비슷한 전화 오면 지금처럼 저한테 보고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답변은 어떻게 할까요?”
“그냥 두세요.”
정재운이 그 말에 허리를 숙이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내 윤수혁이 보고서 검토를 이어 갈 때, 사무책상에 올려 둔 업무용 스마트폰이 급하게 진동했다.
화면을 화인한 윤수혁의 입이 작다랗게 벌어졌다.
“하…….”
경기도당 간부였다.
‘이 타이밍에?’
두 번 밖에 통화를 나눈 적이 없는 사이였다.
최초에 당직을 소개 받고, 7.14 전당대회 업무를 피하기 위해서 연락했던 게 전부였다. 한마디로 이렇게 통화할 일은 없었어야 했다.
그러나 정재운이 준 포스트잇이 있었다.
“여보세요.”
- 아, 이거 청년대책위 부위원장 윤수혁 씨 번호 맞는지요?
“예, 접니다.”
- 아이고, 오랜 만이네요. 내가 안부 전화 한다는 게 바빠서 워낙…….
번호를 확인할 정도로 오래된 연락이었다. 윤수혁이 경기도당 간부의 말을 잘랐다.
“괜찮습니다.”
- 연평도 의인이시던데, 요새 많이 바쁘지요?
입가를 말아 올린 채 윤수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어질 말이 경기도당 간부의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 다름이 아니고…… 이번에 강원지사 재보선 출마하실 후보님이 한 번 뵙고 싶다고 하셔서 전화 했어요. 전에 MBS에 출연해서 인터뷰했잖아요? 그 MBS 사장님도 하셨던 분이거든요, 앵커도 오래하셔서 아마 얼굴을 알 법도 한데…….
“김형문 후보님이요.”
- 어, 그렇지! 잘 아시네. 그러면 시간 좀 뺄 수 있겠죠?
윤수혁은 그 말에 앞에 놓인 보고서를 봤다가, 이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들을 바라봤다. 연평도 의인으로 화재가 된 뒤부터는 개인 고객과 기관 투자가 이어져서 일이 상당히 늘어난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많이 바쁩니다.”
- 아…… 그래도 강원지사 후보님 만나서 나쁠 게 없어요. 득이 되면 한참은 될 겁니다. 아마 도와주실 것도 많을 거고.
“저도 새한국당 당직자고, MBS 출연했던 사람이니까 잘 압니다.”
- 그러면…….
“그래도 너무 바빠서 안 됩니다.”
윤수혁이 단호하게 자르자, 경기도당 간부는 움찔하고 말았다. 칼같이 거절하는 건 그의 예상에 없던 것이었다.
MBS 전 사장이었고, 현 강원지사 후보를 무시한다는 건 그의 기준에서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도당 간부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면 윤수혁은 당직으로 먹고 사는 당직자가 아닌, 투자자문회사의 오너였다. 당은 나가면 그만이고, 윤수혁은 돈도 명예도 다 있어서 꿀릴 게 없기 때문이었다.
선거사무실의 청탁을 받았던 당 간부는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럼 끊겠습니다.”
윤수혁이 종지부를 찍었다.
강원지사 후보자인 김형문은 불법선거운동의 주모자로 소문이 날 사람이었다. 그 결과 선거운동원 중 상급자 둘이 구속되고, 이십여 명은 불구속입건 처리되어 벌금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2020년이 될 때까지도 김형문은 변변한 자리하나 못 가질 터였다.
한마디로 언론의 잉크나 좀 먹었을 뿐, 능력으로 따지면 김형문은 이계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MBS 사장직도 정수장학회와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입맛에 맞아서 준 것이리라.
윤수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통화를 종료했다.
그 사이에 기관과 통화를 마친 오준범이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유명해지시니 이제 정치권에서도 콜이 오는군요.”
“콜도 콜 나름이죠.”
윤수혁은 그렇게 짤막한 농담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김형문이 직접 찾아오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