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26화 (26/191)

# 26

8. 첫 끗발 (5)

늦은 밤, 인천대학병원.

연평도에 보급 차 기항 중이던 병원선을 타고 나와, 국방부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아서 병원까지 왔다.

이후 응급처치를 했던 붕대를 갈고, 1인실에 짐을 풀자 국방부 직원이 정중하게 인사하고 돌아갔다.

나는 그가 문을 닫는 걸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사이에 안 고문에게 전화가 2통이나 걸려와 있었다. 국방부 직원이 동반해서 받지 못한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안 고문이 전화를 받았다.

- 윤 실장, 무슨 일 있었나?

“아닙니다. 국방부 직원하고 동행해서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

- 아, 그랬구만. 지금은 어떤가? 컨디션은 괜찮나?

“예, 인천에 오니까 한결 낫네요.”

- 잘 됐네, 내일 자네 인터뷰하기로 했어. 데스크에서 10분은 더 할 거고, 오늘 입은 옷하고 사진 같은 것들 다 가져오면 돼.

현장 취재도 아니고 데스크라니? 그것도 10분이나?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스케일이 커진 것 같았는데, 안 고문의 말이 설명처럼 이어졌다.

- 참, 국방부에서 훈장도 줄 걸세. 내일 오전에 발표한다는데, 수여보다는 검토한다, 이런 논조로 진행 될 것 같네. 아무래도 기자들이 난리를 쳐 대니까, 급하게 발표하는 게지.

그 말 대로면 데스크에서 인터뷰하는 것도 납득할 만했다.

어디 기업에서 주는 의인상이나 군부대에서 주는 용감한 시민상 같은 것보다 더 효과 있는 게 바로 훈장이었다.

비록 칼럼 같은 곳에 훈장 남발이라는 말이 올라오긴 했지만.

어쨌든 수여자는 장관급 이상의 거물이 될 터였고, 공식적으로 내 수고를 인정받게 될 터였다.

이로써 첫 고비를 무사히 넘기게 되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수고는 무슨, 국방부랑 쇼부 본 것도 자잘한 거고…… 자네 몸 관리나 잘 해. 세상에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나? 방송사에서 줄을 서다니 말이야. 내일 내 아침에 가겠네.

“예, 그럼 내일 뵙죠.”

- 알겠네, 일찍 주무시게. 카메라빨 잘 받야지 않겠나? 흐흐흐.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답장하지 못한 부재중 통화를 찾았다.

어머니한테는 대충 거짓말로 둘러 댔고, 영석이한테는 바빠서 나중에 연락을 준다고만 답장했었다.

남은 사람은 오 사장이었다.

포격 시점에 전화가 걸려 왔었고, 방공호를 거쳐 병원에 가느라 굳이 전화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건, 오 사장이 내게 전화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회사일의 대부분은 오 사장의 재량으로 진행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내가 지목한 아이템만 결재가 필요할 뿐이었고.

간첩이라는 의심이라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개인투자까지 병행하는 사람이 이래선 좋을 게 없었다.

뭔가 꼬였다면 얽힌 것을 풀어 주던가, 힘으로 당겨서 끊어 버리던가, 해결을 봐야 했다.

나는 오 사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한 거 이제 확인했습니다, 지금 인천대학병원입니다.]

* * *

서울에서 급하게 차를 몰아 온 오준범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인실로 직행했다.

윤수혁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바로 온 것이었다.

연평도 포격에 휘말려 다쳤고, 병원에 있다는 말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윤수혁의 말은 변명이나 거짓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것이었다. 간첩 중에서는 윤수혁과 비슷한 경우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티끌만한 의구심을 어쩌지 못했다. 제 눈으로 확인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걸음을 디디던 오준범이 움찔했다. 환자복에 링거, 왼팔과 어깨를 감은 붕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윤수혁이었다.

“시, 실장님!”

심지어 옷걸이에 걸린 옷가지는 찢기거나 탄 흔적이 있었고, 밑에 놓인 배낭에도 상처가 가득했다.

“오 사장님, 굳이 안 오셔도 되는데…….”

윤수혁이 허둥지둥오는 오준범을 말리면서 쓰게 웃었다.

“이게 정말 어떻게 되신 겁니까?”

“전화로 말씀드린 게 답니다, 저도 당황스럽고, 힘들고 그랬는데, 지금은 좀 낫습니다.”

윤수혁의 대답에 오준범이 절절하게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다른 데는 괜찮으십니까?”

“걱정해 주신 덕분에 멀쩡합니다.”

그 말에 오준범은 뜨끔했으나 다른 티를 내진 않았다.

간첩이라고 의심했던 윤수혁이 포격에 휘말리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국방부에선 윤수혁에게 훈장 수여 계획을 발표한다고 했었고.

‘내가 뭐에 홀렸었지…….’

오준범은 그렇게만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선 더 이상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수 없었다.

포격에 휘말린 일 때문만이 아니었다.

북한과 연계된 일인 만큼, 국방부에서도 확인하고 훈장 수여를 결정했을 터였다.

비록 포격 발생한 지 8시간 밖에 안 됐으나, 민간인 한 명을 터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간첩이라면 윤수혁은 지금 즈음 국정원 조사실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실장님, 간병인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팔 한 쪽인데요, 뭐. 괜찮아요.”

그리고 내일이면 인터뷰를 위해 병원을 떠나야 했다.

윤수혁이 바라보자, 오준범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듯 더욱 정중하게 물었다.

“아, 네. 그럼…… 어떤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말에 윤수혁이 붕대가 감긴 팔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있긴 합니다.”

“어떤……?”

오준범이 양손을 모으며 눈을 껌뻑거리자, 윤수혁이 멋쩍은 듯 입을 열었다.

“적당히 기부금 좀 내주세요. 저도 거기서 겪은 게 있다 보니 신경이 좀 쓰여서…… 아. 당연히 제가 하는 겁니다. 회사나 다른 데는 엮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또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오준범이 정중히 대꾸하며 물었고, 윤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끝입니다, 나머지 일은 사장님께서는 하시던 대로 진행 해 주세요.”

덤덤한 말이었다.

그러나 인사하려던 오준범은 주춤하고 말았다.

말이 내용과는 전혀 딴판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허튼 생각은 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잘 하라는 협박.

그도 아니면 경고나 훈계.

마치 속내를 들킨 것 같은 기분에 오준범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충성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갑작스레 오준범의 태도가 변했으나, 윤수혁은 가볍게 고개를 젓기만 했다. 혹시나 한 예상이 맞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이 나를 간첩으로 오해하고 있는지, 짤막하게 했던 그런 생각.

윤수혁은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준범의 정수리를 향해 말했다.

“너무 과합니다, 사장님. 이만 들어가 보세요.”

“네, 주무십시오.”

과하다는 말조차 따갑게 받아들인 오준범이 조심스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병실을 막 나서는 순간이었다.

그의 등 뒤로 윤수혁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번 충성이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 * *

이튿날 아침.

TV리모컨의 채널 버튼을 눌렀다.

연평도 포격 도발에 관한 국방부 대변인의 브리핑이 진행 중이었고, 그 끝에 내 이름이 불렸다.

적절한 브리핑이었다.

아니, 국방부 입장에서도, 내 입장에서도 만족할 만한 순서였다.

대한민국의 호국훈련과 연평도의 정기 사격 훈련, 그리고 북한의 기습 포격, 주요 거점의 파괴와 민가 피해, 산불, 부상자, 마지막에 등장한 윤수혁.

지상파 3사를 비롯해, 보도 전문채널에서도 동시에 송출 중인 영상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이 순간, 웬만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내 이름을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거의 스포라이트네.”

더구나 여론을 내게 집중시키려는 듯, 국방부는 정성을 들여서 브리핑하고 있었다.

내가 포격에 부상당한 해병대원을 대신해서 방공호로 차를 몰았고, 도착해선 신속한 응급처치로 생명까지 살렸다는 내용이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처럼 낭독되고 있었다.

개인의 투철한 국가 안보 의식, 숭고한 희생정신 그리고 실천.

그것들이 섞이면서 정신교육시간에 교육할 만한 훌륭한 사례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당장 내년 예비군 교육 때 내 이름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 ……이에 상훈법에 의거하여 윤수혁 씨에게 인헌무공훈장을 수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드디어 약속된 훈장 얘기까지 나왔다.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지듯 터졌고, 대변인은 꿋꿋하게 발표를 이어 갔다. 흡족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무렵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이어서 문이 열렸다.

“나 왔네, 윤 실장!”

여느 때보다도 쾌활한 안 고문의 목소리였다. 그는 데스크에서 입을 정장과 음료 박스를 손에 들고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일찍 오셨네요.”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자 일단 이걸로 갈아입게. 가서 국장하고 커피 한 잔 하고, 리허설도 해야지. 아니면 여기로 기자들 쳐들어올 걸세.”

어느새 안 고문이 내게 커버에 싸인 정장 한 벌을 안겨 주었다.

“비싸 보이는데요?”

“자네 데뷰 선물이야.”

“데뷔요?”

“그래, TV에 데뷰하잖나. 그래서 내 돈 좀 썼어, 투자회사 주인이고 재산도 많은데 싸구려를 입을 수 있나? 요즘 없는 척해서 좋을 거 없어, 있으면 있는 티 내야지. 이걸로 얼른 갈아입게.”

안 고문이 마치 제 일처럼 나서서 나를 재촉했다.

주섬주섬 정장을 갈아입자마자, 안 고문이 나를 떠밀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금방 지하주차장의 그랜저에 탔고, 안 고문이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

금세 도로에 접어든 안 고문이 들뜬 음색으로 말했다.

“자네 이제 스타 되겠어.”

“스타라…….”

“두 말하면 입 아퍼, 내 평생에 자네 같은 사람 처음 봤는데, 이런 상황도 처음이야. 꿈 같은 일일세, 정말로.”

진심으로 감탄한 듯 안 고문이 말을 늘어놓았다.

오 사장과 다르게 다른 정보를 별로 접하지 못한 덕분인지, 안 고문은 의심도 없이 가는 내내 이런저런 얘기를 꺼냈다. 물론 그 안에는 연평도에서 벌어진 내 일화도 있었다.

그렇게 가다 보니 금세 서울에 다다랐고, 국회와 대화투자자문이 있는 여의도에 도착했다.

곧 차의 속도가 줄었다.

MBS 여의도 본사 건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내 그랜저가 지하주차장으로 매끄럽게 들어갔고, 안 고문과 함께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젊은 사람 한 명이 다가왔다.

사원증을 매단 MBS 직원이었다.

“안순익 선생님, 그리고 윤수혁 선생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내 대답에 직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선생님. 보도국장님께서 모시라고 보내셨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인터뷰이(interviewee)에게 의전이 좀 과했다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일을 맡은 사람이 안 고문이었다.

방송사들끼리 경쟁을 붙이고, 빛바랜 과거 이력을 들먹이거나 거친 말로 쏘아 댔을 가능성도 있었다

내게만 부드러웠지, 안 고문은 본래 아주 까칠한 사람이었다.

거기다 전 장관이라는 경력이 어디 보통인가?

약소하지만 의전을 할 만 했다.

그렇게 보도국장과도 담소를 나누고, 대본 수정과 질의응답을 추가한 끝에 리허설까지 마쳤다.

어느새 데스크 앞으로 스태프들이 오가고, 앵커가 자리에 앉았다.

나도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얼굴의 유분기를 지우고, 마지막으로 대본을 확인했다.

“윤수혁 씨?”

스태프가 나를 불렀다. 옆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던 안 고문도 벌떡 고개를 들었다.

“지금 이동 하실게요.”

…… 드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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