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8. 첫 끗발 (4)
포격이 전부 끝났다.
상황 파악과 화재 진압을 위한 병력이 방공호를 나갔다. 이번에는 소위가 역으로 소리가 나느냐고 물어 왔다.
“안 들립니다.”
“혹시 담배는 피시는지?”
“…….”
“아니면 방공호 밖에서 안부 전화라도 하시죠.”
긴장이 풀려서 담배를 태우고 싶은 모양인지, 소위가 내게 조심스레 물어 왔다. 나도 그러자고 대답했다.
전화도 해야 했고, 나가서 바람을 쐬고 싶었다.
포격 때마다 몸을 울리던 진동이 여전히 피부 위를 흐르는 것 같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한숨을 뱉고 방공호 바깥으로 터벅터벅 걷던 중, 소위가 다시 말을 붙였다. 내심 걱정된 말투였다.
“저 그런고 언론하고 접촉은 아직…… 부대 내에 계시니까 그건 좀 피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국방부에서 따로 통제가 내려올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내 할 일을 하자고 생각하면서, 연평도에 온 이유를 떠올리면서 홈 버튼을 눌렀을 때였다.
[부재중 전화 3통]
발신자에 뜬 ‘어머니‘라는 글자를 보자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렇다고 울컥 눈물이 솟은 건 아니지만, 나는 한동안 그 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첫날, 자다가 깨어나서 마주한 어머니와는 또 달랐다.
화약과 불 냄새, 혹은 쓰라린 팔 때문인지, 아니면 06년식 로체 뒷자리에서 두려움을 삼켰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중에서야 대학 후배인 영석이한테 한 통이 걸려왔고, 포격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오 사장에게 한 통이 걸려 왔다는 걸 알았다.
소위는 그 새 한 개비를 다 피고, 두 개비째를 꺼내 물고 있었다.
담배를 잡은 소위의 왼손이 움찔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그도 나하고 비슷한 모양이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뱉고, 다시금 내 할 일을 떠올렸다.
어머니한테는 전화해서 좋을 게 없으리라, 괜히 말문이 막히거나 연평도에 있다는 말을 했다가는 난리가 나도 날 것이었다. TV에 나오기 전에나 조심스럽게 말해야지, 아니면 일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을 터였다.
일단은 안 고문한테 전화해야 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연결음을 기다린 뒤였다. 안 고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우리 윤 실장이 웬일인가?
“고문님.”
순간 어머니한테 전화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술술 털어놔야 하는데, 반 박자 늦었던 반응이 아직 회복되지 못한 듯 입이 주저하고 있었다.
“저, 일이 좀 생겼습니다.”
- 일이라니?
어느새 안 고문의 놀란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다. 여태 내가 해 본 적 없던 말이었으니 당황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연평도입니다.”
나도 모르게 말끝이 떨렸고, 조금 늦은 대꾸가 들려왔다.
- ……뭐? 자네가 거길?
어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의구심이나 놀란 감정 같은 것도 옅게나마 느껴졌다. 그의 속내야 전부 알진 못하겠지만, 내가 마음 추스르는 게 늦었던 것처럼 그도 놀라긴 했을 것이었다.
나는 내 계획에 집중하면서, 속을 가다듬으면서 대답했다.
“휴가 나와서 배타고 관광이나 돌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지금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 도대체…… 그래, 몸은 성한가?
“좀 긁히긴 했는데…… 그나저나 TV에서는 뭐라고 나옵니까? 제가 방금 전까지 방공호에 있다 보니…….”
내 말에 안 고문이 찾아보는 듯 천천히 대답했다.
- 북한군하고 수십 발씩 주고받았다고 나오고…… 보니까 사진에는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연기가 새까맣네만. 인천항에서 찍은 영상인데, 그게 전분 것 같네.
최초에 내가 기다렸던 말이었다.
“저 그러면…….”
잠깐 속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제가 그때 당시를 카메라로 좀 찍었습니다만…….”
- 카메라? 그 장면을 찍었단 말인가? 흐음…….
안 고문이 생각하는 듯 침음을 흘렸다.
어차피 인천항으로 내보내진 기자들은 까만 연기만 찍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섬 내부는 당일이 아니라 이튿날까지 출입이 통제될 예정이었다. 기자들은 꽃게잡이 배를 얻어 타거나 소방선에 몰래 올라탔다가 걸려서 쫓겨나기도 할 것이고.
자연스레 내가 촬영한 영상물은 값나가는 거래품이 될 터였다. 이내 이어진 말을 들어 보니, 안 고문도 그걸 이해한 모양이었다.
- 그 사진 말일세, 방송사에 가져가면 좋아라 할 텐데. 자네 이렇게 된 김에 인터뷰는 어떤가? 국회에 나가려면 얼굴 정도는 알려야지.
“상관은 없습니다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조금 뜸을 들이며 말하자, 안 고문의 밭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 또 뭔가?
“어떻게 하다 보니까 제가 해병대 간부하고 병사를 구하게 됐습니다. 붕대도 직접 감아줬고…… 지금도 해병대 부대 안에 있습니다.”
- 해병대를…… 자네가 구해 줬다고?
“예, 포탄이 떨어져서…….”
- 허, 그거 지금 자네 죽을 뻔했다는 소리 아닌가?
“어쩌면…… 예.”
내가 짧게 대답하고 말자, 안 고문이 숨고르기라도 하는 듯 가만히 있었다. 속으로 한참이나 생각한 듯 이내 다시금 말이 이어졌다.
- 세상 참…… 이거 보통 얘깃거리가 아니야. 자네 얼굴 전 국민이 알게 되겠어, 인터뷰는 충분히 할 만하지?
“괜찮습니다, 그럼 고문님께서 처리 좀 해 주십시오.”
- 당연하지, 이 사람아. 내 준비되면 전화 줌세.
전화를 끊자, 급하게 담배를 핀 소위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전화 끝나셨으면 이제 들어가 계시는 게…….”
나는 어머니의 부재중 통화 기록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부터 집에서 나와 원룸 생활을 하던 차여서 더욱 걱정하고 있을 터였다. 이따 저녁에나 다시 전화하는 게 나을 것이었다.
나는 소위와 함께 다시 방공호로 들어갔다.
* * *
잠시 뒤, 해질 무렵.
윤수혁은 1호차라 불리는 연평부대의 레토나에 올랐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중령 계급장의 대대장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강명준 중사하고 김푸름 병장이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여 주신 용기는 대한민국 군인들에게 귀감이 될 겁니다. 대대장으로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윤수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곤 지쳤다는 듯 유리창 대신 있는 투명비닐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언제 나갈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대대장이 다시 감사하다는 말을 담으면서 조심스레 대답했다.
“아, 예. 저희 부대장님께서 감사의 말씀을 전한 다음에…… 아마, 금방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아직 북한군의 도발 위험도 있고 해서…….”
대대장이 눈치껏 어휘를 골라가면서 대꾸하다가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저 혹시 방공호에 계시는 동안 불편하거나 힘든 점이 있으셨는지…… 아니면 옆에 있던 인사과장이 귀찮게 하진 않았습니까?”
그 말에 윤수혁이 대각선 방향에 있는 대대장을 슬쩍 바라봤다.
대대장은 뒤를 돌아보는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입가에도 엷게 미소가 걸려 있었고, 손은 가지런히 허벅지에 놓여 있었다.
“대대장님.”
“예, 선생님.”
윤수혁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대대장은 깍듯하게 대답했다.
혹여나 이미지가 나쁘게 잡히면, 상관이나 언론매체로부터 비난을 얻어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방공호에 숨어 있던 민간인도 아니고, 망가진 차를 끌고와 해병대 부사관과 병사를 살린 윤수혁이었다.
어찌 일반 민원인처럼 대하겠는가?
그리고 앞으로 10분 뒤면, 윤수혁은 해병대사령부과 국방부에서 온 고위 인사와 만나게 될 예정이었다. 형식적인 감사 인사를 나누고, 언론 접촉에 관해 협의하며, 훈장 수여 따위에 대해 논할 만남.
거기서 안 좋은 말 한 마디만 하면, 대대장은 진급은커녕 당장 예편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랬기에 좋은 대답을 유도해야 했고, 혹여나 잘못된 게 있다면 사과해야 했다.
마흔 중반의 대대장이 그런 눈치를 보고 있는 사이, 윤수혁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다 괜찮았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가시죠.”
“아 아닙……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대대장이 과도하게 고개를 숙이자, 윤수혁은 한 차례 끄덕이고 바깥을 바라봤다.
울창한 나무들이 보였고, 그 위로는 새까만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노을이 져야 하는 하늘은 연기로 지저분해졌다.
‘이런 짓은 오늘로 끝내야 되겠다…… 기분 참 개 같네.’
군의관에게 붕대로 팔 부분을 치료 받은 윤수혁은 긴장이 풀린 포격 이후를 떠올렸다.
신음 소리, 피 냄새, 불에 타는 텁텁한 연기 냄새 등등.
그건 앉아서 볼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절로 아파오고, 눈이 찡그려지는 것들이었다.
이에 불편하게 등을 기대고 있던 윤수혁은 마른 한숨을 뱉었다. 기억상실도 아니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니어서 그런 장면들이 쉽게 잊혀 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슴 한편에 감정을 쌓아갈 무렵, 차가 임시 막사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령 계급장의 연평부대장이 인사를 건넸다.
이어서 해병대사령부의 정훈공보실장과 국방부 감사관이 윤수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썩 좋지 않은 표정의 윤수혁이 고개인사로 대답하고,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전투복에 단독군장을 착용한 연평부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선생님의 고귀한 희생과 수고에…….”
말이 이어지는 중에 윤수혁이 손을 들었다.
“죄송하지만 빨리 면담 마치고 나가고 싶습니다. 많이 지쳐서요.”
무덤덤하지만 강단이 있는 말씨에 연평부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정장 차림의 감사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이거?’
감사관이 예상하고 판단한 윤수혁이 아니었다.
연평도에 오기 전에 파악한 윤수혁은 어르고 달랠만한 청년이었다. 병역 자료와 신상 명세, 최근 수행한 국회 비서직까지 꿰고 있는 상태여서 가능한 판단이었다.
이에 감사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먼저 부대장님이 말씀드리려던 건 감사하다는 뜻이었고요. 제가 드리고자하는 말씀은 훈장 수여에 관한 겁니다. 국방부의 협의를 거쳐 훈장을 드릴 예정이고요, 이르면 이번 달 안에 시행될 겁니다.”
“그리고요?”
윤수혁이 감사관을 빤히 쳐다보며 묻자, 말을 이어 가려던 감사관이 움찔했다.
마치 다 안다는 듯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담담한 물음에는 여유까지 깃들어 있었다.
국방부에서 훈장을 준다는데 이렇게도 태연할까?
감사관이 입을 다문 사이, 이번에는 정훈공보실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언론하고 접촉하셨습니까? 기자나 방송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윤수혁의 영웅담을 확인하는 물음이 쇄도하고 있었다.
국방부 출입 기자들이 거의 난리를 치다시피 했고, 중소 인터넷 신문사에서는 제대로 된 사실 확인도 없이 기사까지 쓴 상태였다.
어쩌면 지상파에서도 일단 터뜨리고 볼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정훈공보실장과 감사관이 포격 당일에 급하게 오게 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자리의 주목적도 감사 인사나 훈장 수여가 아닌, 언론 응대에 관한 협의였다.
그사이, 고민하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던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아는 분께 전화 드렸었는데, 그 분이 하신 것 같네요. 그거 논의하러 오신 거면…… 제가 연락처 드릴 테니까 그 분하고 논의해 주십시오. 저는 좀 쉬고 싶네요.”
정훈공보실장과 감사관이 눈을 마주쳤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지금 연평도에서 나가실 수 있게 조치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