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8. 첫 끗발 (3)
진동이 느껴졌다.
쿠우우우-
포탄이 한 발씩 낙하할 때마다 내 발부터 머리끝까지 떨렸다.
굉음은 이미 귀에 이명을 만든 지 오래였고, 매캐한 냄새로 콧속도 꽉 막힌 듯했다.
폭음이 연달아 들렸다.
북한은 지금 타격 지점을 놓고 포를 갈겨 대고 있었다. 군부대, 탄약고, 통신 및 보건 시설 등등.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포탄 중 절반 이상은 앞바다에 빠졌다는 점이었다.
실사격도 별로 못하고, 수준이 떨어지니 선 공격을 했음에도 맞히지 못한 것이었다. 이후 포각을 조절해서 내륙에 절반 이하의 포탄을 떨어트린 것일 뿐.
내가 있는 이곳도 포격 지점 인근이었다.
이 근처에서 휴가 복귀할 병장이 사망하고, 휴가자 인솔을 하던 중사는 큰 부상을 입게 될 것이었다.
둘이 타고 오던 차량은 06년식 검정 로체였는데…….
그 차가 지금 외길 포장도로를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뛰어내려가고 있던 방향이었다.
끼이익!
거친 브레이크 소리와 동시에 운전석 문이 벌컥 열렸다. 이어서 운전자인 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타세요!”
나는 로체가 달릴 거친 포장도로를 한 차례 확인했다.
앞으로 저 도로로 포탄이 떨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달리던 로체 근처에 착탄할 테고.
“이봐요! 빨리! 방공호로 갈 겁니다!”
해병대 중사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서 발을 뗐고, 로체 뒷좌석으로 뛰어갔다. 쿵, 뒷좌석 문을 닫자마자 중사가 급하게 액셀을 밟았다.
“안전벨트 매고 고개 숙이세요.”
그의 말을 따라서 안전벨트를 끼우는데 버클 구멍이 잘 맞지 않았다. 아니, 내 손이 떨려서 제대로 들어가질 않는 것이었다.
각오도 계획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전에는 부족했다.
온몸의 혈관이 팽팽해진 것 같았고, 흥분한 촉각은 제대로 반응하질 못했으며 내 판단은 반 박자 정도가 늦었다.
굉음과 충격음, 화염…… 두렵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게 내 신경을 뒤흔들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안전벨트 버클을 끼우고 머리를 숙였다.
이제 당장이라도 포탄이 터지면서 파편이 튈 것이었다. 전면 유리부터 차체까지 포탄 파편에 뚫리고 찢길 예정이었다.
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무렵이었다.
콰아앙!
“으윽.”
“억!”
신음 두 개가 연달아 터졌다.
다행히도 차는 어디에 처박히거나, 충격에 뒤집히지 않았다. 나도 큰 상처를 입진 않았다.
감싸고 있던 팔과 어깨, 목덜미가 좀 긁혔을 뿐.
고개를 들어 재빠르게 둘을 확인했다.
중사는 작살난 전면 유리창을 보면서 힘겹게 핸들을 붙잡은 모습이었고, 조수석의 병사는 옅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내가 몇 초의 시간을 지체한 효과가 있던 것일까?
즉사했을 장소에서 병사는 살아 있었다.
중사 또한 파편이 박혔을 텐데, 의식을 붙잡은 채 액셀을 밟고, 핸들을 조작하고 있었다.
“내가 운전할게요.”
아직 300여 미터 남아 있는 거리였다.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중사가 고개를 젖히면서 핸들을 놨다.
나는 얼른 앞좌석으로 넘어가 핸들을 붙잡았다. 거구의 중사를 깔고 앉게 되어서 자세가 이상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방공호가 있을 부대로 차를 몰아갔다.
일단 김 병장을 살려야 했고, 2차 포격 때 방공호 밖에서 죽을 이등병도 구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1차 포격 때 사망했을 민간인은 이미 구한 상태였다.
지붕 수리를 하던 기술자와 용역 인부.
그들이 묵던 여관에 들어가서 다른 일을 부탁했었다.
옮길 게 있으니 2시 30분에 항구에서 보자고, 선금 10만원을 줬었다. 그 덕에 둘은 곧장 부대 간부에게 전화해서 하루만 미루자며 핑계를 댔다.
아마도 지금 즈음이면 항구에서 애타게 배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 둘은 구해진 사실조차 모르겠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사망자가 없어야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기적 같은 상황, 그런 건 언론매체가 불을 켜고 달려들 소재였다.
그사이 덜덜거리던 로체가 부대에 다다랐고, 나는 완전 군장한 해병대 병사를 볼 수 있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었다.
1차 포격이 멎어서 나온 모양이었다.
***
부대 내의 방공호 안.
“의사이신지……?”
소위가 말끝을 흐리며 윤수혁에게 물었다.
윤수혁이 파편을 맞은 중사와 병장에게 붕대법을 자연스럽게 시행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배낭에서 꺼낸 응급키트에는 소독 거즈와 지혈대, 압박 붕대 따위가 적잖게 있었다.
윤수혁은 매듭을 마무리하면서 대꾸했다.
“그냥 예비군입니다.”
그 말에 소위가 눈을 껌뻑이는데, 둘에게 응급처치를 마친 윤수혁이 고개를 들었다.
“군의관은 어디 있습니까?”
“아, 지금 다른 방공호에 있습니다. 거기에 부상자가 좀 있어서…….”
윤수혁이 대답을 들으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북한의 2차 포격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여기 병장이 가장 급합니다. 헬기나 배 도착하면 꼭 이 친구먼저 태우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밖에 있는 병사들은 들어오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소위가 몸을 일으키면서 대꾸했다.
“화재도 발생했고, 상황 확인 중입니다. 안 그래도 행정관이 병력 통제 중이고…….”
윤수혁의 눈빛이 바뀌었다.
‘화재 진압에 행보관 통솔이라…….’
그냥 말로만 불러들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거짓말이나 새로운 연출을 해야 했다. 윤수혁이 그토록 연습한 연기의 일부.
윤수혁은 이어지고 있던 소위의 말을 잘랐다.
“지금 이 소리 안 들리십니까?”
이는 연평도에 들어오기 전에 세운 두 번째 계획이었다. 이후 세 번 째까지 있었지만, 윤수혁은 여기서 잘 해결되길 바라면서 소위를 쳐다봤다.
“무슨 소리를 말씀하시는……?”
“포탄 떨어지는 것 같은데? 어, 이거 진동 안 느껴져요?”
그 말에 소위가 감각에 집중하는 듯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서 방탄모를 쓴 소위의 머리통이 기울어졌다.
“음, 안 들리는 거 같은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수혁의 표정이 험악하게 바뀌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
갑작스레 변한 윤수혁의 태도에 소위의 눈이 동그래졌다. 윤수혁의 시선에서 서늘한 기운마저 뿜어져 나왔다.
“지금 바깥에 있는 병사들이 포탄 맞고, 사망자라도 발생하면 당신이 책임 질 겁니까? 내가 이거 언론에 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민간인이 2차 포격을 먼저 느끼고 경고했는데도, 해병대 소위는 가만히 있었다고.”
“…….”
소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자대 배치 받은 지 몇 개월 밖에 안 된 24살의 신임 소위였다.
군 생활 13년차인 행정보급관처럼 노련하지도 못했으며, 응사(應射)중일 K9 사수들보다도 미숙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소위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할 정도로 영민했다. 부사관과 장교간의 알력을 파악하고, 기수의식이 강한 병사들을 통솔하기 위한 눈치가 있었다.
그랬기에 윤수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소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도 파편을 맞은 중사를 대신해서 차량을 운전하고, 신속한 붕대법으로 응급처치까지 선보인 윤수혁이었다.
이 사람이 미디어에서 파장을 일으킨다면, 일개 소위인 자신은 물론이고 포대장과 연대장까지 털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쩌면 해병대사령관이나 국방부 장관까지 문책을 당할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소위는 대답과 동시에 차고 있던 P96K의 송신 버튼을 눌렀다.
“행정관, 저 인사과장입니다.”
- 치익, 행정관입니다.
“병력 인솔해서 방공호로 복귀하기 바랍니다. 2차 포격 예상됩니다.”
- 지금 화재가 진압해야 되는데 무슨…….
“제가 책임집니다, 전 병력 방공호로 복귀해야 합니다.”
대위인 포대장도, 중위인 전포대장도 모두 포상으로 달려간 상태였다. 그 탓에 방공호의 최고 상급자는 계급상 상관인 소위였다.
물론 연배나 경력 상 고참뻘인 행정보급관도 있고 인사행정관도 있긴 했으나, 어쨌든 장교가 윗선이었다.
이내 떨떠름한 행정보급관의 목소리가 P96K를 넘어왔다.
- 일단 복귀시키겠습니다.
대답을 듣는 윤수혁은 시계를 쳐다봤다.
‘2차 포격이 3시 넘어서였는데…… 제발.’
* * *
방공호로 들어오는 병사들을 일일이 살폈다.
연평도 포격 사건에 사망한 이등병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운 좋게도 그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내 시선이 저절로 해병대 특유의 빨간 명찰로 움직였다.
“……우경호.”
순직 이후 1계급 특진하여 일등병이 된 우경호.
그의 이름을 보자, 가슴속에서 안도감이 밀려나왔다. 긴장감에 굳어 있던 손끝이 떨렸고, 무겁던 다리가 가벼워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
우경호 이병은 나를 위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할 얼굴이었다.
그거면 됐다, 오늘 연평도에서는 단 한 명도 죽어서는 안 됐다.
여기서 발생하는 죽음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이 될 것이었다. 그것도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몸 바친 청춘의 삶이 끝난다는 건…….
내가 돋보일 여지가 없었다.
그럼 스포트라이트는 물론이고, 내 의로운 행동은 주목 받기 힘들어질 것이었다.
아무리 용감한 행동을 했다 한들, 죽음과 비교할 순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다행히, 지금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붕대를 감고 창백한 안색의 김 병장만 건강하게 살아나면 될 일이었다. 중사도 앓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농담까지 뱉는 걸 보면 심한 중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내 마지막 병사까지 들어오고, 방공호의 문을 닫는 순간.
쿠우웅!
쿠웅!
굉음과 동시에 콘크리트 바닥과 천장이 흔들렸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뭔가가 떨어졌다.
일순 행보관과 소위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이제 개머리 포진지에서 2차 포격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초기의 1차 포격보다 짧은, 10여분 내외의 포격으로 끝날 것이었다.
주저앉아서 남은 긴장을 몰아내고, 내가 할 일을 떠올릴 때였다.
“진짜 이걸 미리 느끼신 겁니까?”
어느새 다가온 소위가 내게 묻기에 고개만 대충 끄덕거렸다.
별로 뭘 말할 기력도 없었다.
이건 생각이나 각오보다도 힘든 일이었다. 무섭기도 했으며, 힘들기도 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안 사실인데, 팔뚝이며 어깨에 자잘한 것들이 박혀 있었다. 얇은 패딩 점퍼도 언제 흠집이 난건지 이리저리 상처가 나 있었고, 얼굴과 손바닥에도 핏방울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그 와중에 행보관이 다가왔다.
포상과 다른 방공호에 무전 지시를 내린 그는 슬쩍 허리를 굽히며 나를 내려다봤다.
“저…… 신분 확인을 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올려다보자, 행보관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여기가 민간인 출입 제한 구역이고, 선생님이 섬 주민도 아닌 것 같아서 확인 차 요청 드리는 겁니다. 나중에 이게 문책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요.”
지갑을 통째로 건네주자, 행보관이 이것저것 확인했다.
뒤늦게라도 내 신분을 확인하는 걸 보니 역시 행보관 짬이 보통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경위서에 들어갈 잘못과 실수를 덜어 내겠다는 듯, 과장되게 내 얼굴과 신분증을 대조했다.
그러고는 명함 하나를 빼 들었다.
“아, 윤수혁 실장님?”
“예.”
“명함 하나 갖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부대 측에서 따로 전화를 드릴 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방송사에 내가 촬영한 영상과 오늘의 일을 쫙 돌릴 생각이었다. 누가 더 후하게 인터뷰를 해 줄지, 그 중에 하나 고를 예정이었다.
그 전에 누워 있는 김 병장이 안전하게 수도통합병원으로 가야 되겠지만.
왠지 잘 풀릴 것 같았다.
김 병장이 눈을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