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23화 (23/191)

# 23

8. 첫 끗발 (2)

내 말에 사위가 고요해졌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던 직원 중 하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게 의문을 제기한 김 차장이었다.

“저, 실장님. 정보 출처가 어떻게 되는지…….”

오 사장이 나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태도였다. 하긴, 방금 내가 뱉은 말은 최고급 찌라시나 업계 관계자 입에서도 나올 정보가 아니었다.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 문제였고.

“하나금융에서 외환은행 인수를 이달이나 다음 달 중으로 발표할 겁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우리금융 민영화는 우선 실패로, 차후 2차전이 진행될 겁니다.”

“2차요?”

“예, 2차전은 차후에 진행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아직 1차전도 채 진행하지 않은 우리금융 민영화의 2차전을 예고했다.

사실 우리금융은 3차, 4차 인수 공모 끝에 결국에 우리은행에 흡수합병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다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우리금융 지주의 소멸은 14년도의 얘기였고, 하나씩 풀면서 써먹을 예정이었다.

정보를 한 번에 왕창 풀 순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그리고 원할 때마다 떼어 줄 것이었다.

그래야 내게 더 조련될 테니까.

그 사이, 오 사장이 입을 열었다.

“하나 금융의 인수 발표는 기한 초과하면 쓸 수 없으니, 이번 달로 가정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오 사장은 먹은 짬밥에 어울리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하긴 내 개인 투자를 취급하는데 이 정도로 넋이 나가면 안 될 일이었다. 내가 여태 짚어 준 것들만 해도 예상 불가의 정보들이었으니까.

나는 아직도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몇몇 직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꼭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내 직원들의 시선이 내게 돌아왔다.

“아이템을 찾고, 보고 하십시오. 업계 동향도 좋고, 뭐든 좋습니다. 보고 기한도 없고, 정해진 날짜도 필요 없으니까 평소 업무와 겸하시면 됩니다.”

아이템을 찾는다는 것.

말하기는 쉽지만 정작 하려면 어렵고 난해한 것이었다. 거기에 평소 업무와 겸하라는 건, 일을 곱빼기로 하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해야 했다.

미래의 일을 많이 알고 있다고는 해도, 전부 알진 못했다. 모르는 것은 여전히 많았고, 잊고 있던 것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만약, 내 기억에 보탬이 될 만한 소스를 얻는다면?

게임 머니라는 말에 떠오른 비트코인처럼, 한 마디의 소스는 써먹을 수 있는 정보가 될 터였다. 기재부와 금융가에서 한창 일했던 3, 40대가 그런 아이템을 가져 온다면, 그건 곧 미래가 될 것이었다.

이내 직원들의 표정에 난감함이 번질 무렵,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얼결에 채찍을 때렸으니, 당근을 줘야 했다.

“그게 제대로 된 아이템이라면, 사장님과 협의해서 성과급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성과급도 업계 최고 수준일 겁니다. 자세한 보고 형식 같은 건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내 말이 끝나자, 비로소 직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돋았다.

아직 당황스런 감정은 여운처럼 남은 듯 보였지만, 괜찮을 것이었다. 어쨌든 계약서에는 연봉도 정상적으로 적혀 있고, 성과급도 최고 수준으로 준다고 했으니까.

이내 오 사장이 조간 회의를 이끌기 시작했다.

조간 회의는 내 지시를 구체화환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증권 경력자인 두 차장과 과장의 첨언이 더해지면서 점점 길어졌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돼서야 회의가 끝났다.

근처의 고급 식당으로 앞서 가는 직원들을 보니 사기가 충전된 것처럼 보였다.

이제 웬만한 건 준비가 다 됐다.

마늘밭의 돈도 안 고문이 회수하러 갈 것이고, 회사도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는 언론사와 방송사에 얼굴을 비춰야 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알려지고 인지도를 높이는 게 최고였다.

유능한 투자자문회사의 오너도 좋지만, 아직 성과가 나기에는 너무 이르니까.

2010년 11월 22일.

오늘로 휴가 3일차에 접어들었다.

차량 한 대를 렌트하고, 근사한 DSLR카메라를 구입해서 떠난 휴가였다. 이미 서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고, 많은 사진을 찍고 호텔에서 쉬면서 시간을 꽤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인천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호흡에 힘이 들어갔고, 맥박이 귓가에서 어른거렸다. 배에 승선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분위기도 특이할 게 없었지만 긴장이 가라앉질 않았다.

나는 단순히 휴가를 즐기고 사진을 찍으러 온 게 아니었다.

여행복은 관광객처럼 보이게 만든 위장용이고, 얼마 전에 산 DSLR카메라는 방송사와 언론사에 제공할 기록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느새 여객선 승선 관리인이 입구에서 목소리를 냈다.

“티켓 미리 꺼내 주세요, 승선할 때 표 검사 할 겁니다.”

승선이 시작되었고, 나 역시도 표 검사 후에 배에 올랐다.

연평도행의 여객선이었다.

이틀 뒤에 벌어질 포격사건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방법 중 하나였다.

연평도 포격은 6.25 전쟁 이후 지속되어 온 수천 번의 도발과는 차원이 다른 사건이었다. 정전 협정 이후 최초로 북한이 영토를 직접 타격했고, 이는 대한민국과 전 세계에 퍼져 나갈 충격적인 사건이 될 것이었다.

나는 그 현장의 산 증인이 될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포격 상황을 제법 잘 알았다. 전에 국회에 있을 때 상임위 아이템으로 다루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조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에 나는 주요 피해 지역, 포격 과정, 사후 처리 따위를 꼼꼼히도 확인했었다. 이 의원의 상임위가 마침 문방위였고, 문방위의 풀네임에는 ‘관광‘도 포함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에 연평도를 드나드는 여객선 현황까지 내 눈으로 확인했었다.

나 말고도 국회의 웬만한 보좌진들은 연평도 포격사건을 직접 다룰 정도였으니, 말은 다 한 셈이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의지를 입 밖으로 꺼내기라도 해야 좀 나을 것 같았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피해자처럼 그저 사진이나 찍고 기록물을 남겨 인터뷰나 하면 사는 건 장담하겠지만, 나는 그 정도로 그칠 생각이 없었다.

피해자들을 구할 것이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한,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실제로도 선거에 나온 많은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이력이 있었다.

특히 20대 시절, 가장 연약했던 그때.

그들은 대학생에 불과한 어린 나이에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군부정권에 대항했었다. 최루액을 맞았으며 악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었다. 이는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보수정당도 마찬가지였다.

각 대학의 학생회장, 무슨 대표, 연합의 간부들처럼 나도 희생해야 했다.

맨손으로 그럴 생각은 아니고, 나름대로 계획을 준비하긴 했지만 그게 통하리라는 장담까지 할 순 없었다.

그러던 중 여객선이 출발했다.

이제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나는 기억을 되새김질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 * *

이틀 뒤 2010년 11월 23일, 대화투자자문 사무실.

매립형 천장 에어컨에서 따듯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의자마다 정장 상의를 걸친 직원들은 마우스를 딸깍거리고, 키보드를 타이핑하며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그중 차장 김배환이 미간을 구겼다.

“어어?”

그 소리에 근처에 있던 직원들이 고개를 들었고, 이내 김배환이 사장 오준범을 쳐다봤다.

“북한 속보 났습니다!”

“속보?”

“서해에서 교전…… 아니, 포탄 수십 발이나 쐈답니다.”

김배환의 목소리에 직원들이 움찔했다.

북한은 투자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변칙적인 존재였다. 그것도 대부분이 부정적인 영향이었다.

“이런 시팔!”

오준범이 욕설과 함께 급하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아직 장이 마감되기 전이었다. 심지어 외환시장은 24시간 가동되는 현장이었다.

놀란 투자운용사들도 개인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고, 다른 직원들도 저마다 갖고 있던 주식이나 관심주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우스며 키보드가 급하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 문가에 있던 대리 정재운은 오준범에게로 향했다.

“사장님.”

이내 나직하게 말하자, 오준범이 힐끗 쳐다보고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윤수혁 실장님한테 전화 할까요?”

정재운이 나름대로 눈치껏 움직인 것이었다.

처외삼촌인 오준범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고, 회사의 오너이자 특별한 존재인 윤수혁에게도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7급 공무원일 때와 다르게 몇 배나 많은 월급을 받는 상황이었으니, 저절로 잔머리가 돌아가는 것이었다.

오준범은 싱겁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됐다, 실장님은 그런…….”

그러나 대답하던 오준범의 입이 멈췄다.

어느새 시선도 모니터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가만…….’

오준범의 머릿속에 의문이 번졌다.

윤수혁과 북한의 도발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었다. 우스운 소리였고, 뜬구름 잡는 말과 다름없었지만, 대상이 다름 아닌 윤수혁이었다.

예상할 수도 없고, 감히 예상하고 싶지도 않은 특별한 존재.

마침 윤수혁은 휴가를 나가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곧장 윤수혁의 휴가와 관련된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리다가, 오준범은 기억의 토막을 어렴풋하게 재생시켰다.

“드라이브나 하려고요. 서해안 같은 데나…….”

윤수혁은 뒷말을 이어 갔었지만, 오준범은 그걸로 생각을 마쳤다.

‘서해안‘이라는 세 글자 때문이었다.

북한의 포격이 이뤄진 곳도 서해였다. 오준범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포격 지점인 연평도를 확인했다. 이내 옆에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정재운을 쫓아냈다.

“가서 네 하던 일 봐, 실장님한테는 내가 연락한다.”

“네, 사장님.”

잔뜩 굳은 오준범의 표정을 보고 정재운이 급하게 허릴 숙였다. 안 그래도 밉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욕이라도 먹을까 후다닥 움직인 것이었다.

오준범은 그 사이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간첩은…… 시팔, 차라리 타임머신이 낫겠네.’

그럼에도 오준범은 여전히 상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긴 했으나, 간첩이라는 의심이 아예 쓰지 못할 생각은 아니었다.

다름 아닌 북한의 포격과 연관된 정보였다. 그 어디서도 예측하지 못한,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흔한 도발과는 상황이 다른, 직접적인 영토 유린이었다.

지금도 전투기가 출격한다느니, 미군이 움직인다느니, 하는 추측 기사들이 연쇄적으로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북 군사 핫라인이라고 이 정보를 알았을까?

오준범은 감조차 잡지 못해서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이내 책상 위의 폴더폰을 바라본 오준범은 한 차례 침을 삼켰다.

일단 물어나 보자, 오준범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폴더폰을 쥐었다. 이내 키판을 더듬으며 숫자를 누르고, 통화 버튼에 엄지를 댔다.

간첩이라는 두 글자가 아직 그의 머릿속에 어른 거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