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7. 이제는 그만둘 때 (5)
2010년 10월 25일.
국감이 끝났다. 아직 국정감사 회의가 두어 개 남아 있었으나, 야당이 집중공세를 퍼부은 4대강과 민간인 감찰 사건이 끝나서 사실상 종료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국감은 그저 그랬다.
밑에서 치열하게 준비한 보좌관들의 시간에 비하면 결실이 부족했다.
귀를 기울이던 언론도, 여론도 혀를 찼다.
다만 여당인 새한국당은 별 타격 없이 지나간 국정감사를 만족해 했다. 행정부의 실수는 여당의 책임으로 곧잘 둔갑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별로 치명적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있긴 했어도 어영부영 넘어가기도 했었고.
그렇게 새한국당은 청와대의 오더로 민간감찰을 했다는 의혹도 흐지부지 지워 냈고, 4대강에 대한 공격도 감사 전문가들을 꾸려 준수하게 방어했다.
“정책위의장으로서 누구를 딱히 꼬집을 생각은 없고, 여야 모두가 훌륭한 감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국감까지 저희는 국민의 삶을 위해 전진하겠습니다.”
새한국당의 정책위의장이 4대 일간지 기자들에게 즐거운 듯 인터뷰했고, 오후에 정치부 라디오에서도 비슷하게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시각, 나는 이 의원의 개인 사무실에 들어갔다.
내 옆에는 먼저 들어온 박 보좌관이 서 있었고, 나를 호출한 이 의원은 근엄한 척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내 담배를 꺼내 물던 이 의원이 목소리를 깔면서 나를 불렀다.
“윤 비서.”
내가 이 의원을 쳐다보자, 양 광대에 못마땅한 듯 주름이 잡혔다.
“그만두겠다고?”
“예.”
“쯧쯔쯔, 의원실 바쁜 거 빤히 아는 놈이 말이야, 싸가지 없이 이런 식으로 그만둬? 잘한다, 잘한다 해 줬더니 은혜를 어찌 이런 식으로 갚어?”
“…….”
내가 대답하지 않자, 눈치를 보고 있던 박 보좌관이 슬그머니 나섰다.
“의원님, 이 친구는…….”
“어허, 감히 어딜 나서? 자네는 나가봐.”
“의원님.”
박 보좌관이 나를 끝까지 감싸려는 듯 이 의원을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보좌관 따위가 자신을 막으려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이 의원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쓰읍, 나가래도?!”
재차 이 의원이 지시하자, 박 보좌관은 결국 내게 미안하다는 시선을 남기고 의원실을 나갔다.
혼자 두고 나가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게 편했고, 나를 위한 박 보좌관의 시선은 고맙기까지 했다.
그만두는 마당에 이 의원한테 곱게 접어줄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일대 일로 독대하는 상황이야말로 내게 제일 좋은 것이었다.
나는 이 의원의 면상을 빤히 쳐다봤다.
저급하게 쌍욕을 해 줄 수는 없고, 이 꼰대한테 뭐라고 해야 할까?
어느새 담배 몇 모금을 빤 이 의원은 치솟던 화가 좀 가라앉은 것인지, 다시금 무게 잡으면서 말을 꺼냈다.
“윤 비서, 사람들이 다 제 뜻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어?”
꼴에 분위기 잡고 훈계하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마뜩잖은 기분을 이렇게나마 풀려는 것일까?
나는 이 의원의 말을 듣는 듯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이 저급한 놈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처음부터 이 의원은 내 상대가 아니어서 손 쓸 방법을 따로 생각해 둔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러는 이유는 내 생각보다 기분이 언짢아서 그런 것이었다. 7급 비서짓을 하고보니, 껄끄러운 감정이 예전처럼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10년의 경험 때문인지, 그 경험으로 바뀐 성격 탓인지.
“……포기하면서 사는 거야,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야. 저기 박 보좌관은 좋아서 저러고 있을 것 같아? 여자끼고 술 먹고 싶겠지만, 다 참고 사는 거야.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알아듣겠나?”
그 사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제야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의원한테 딱 맞는 매가 하나 있었다.
지금 이 의원이 윗사람 자격으로 나를 가르치는 것처럼, 여의도 정가의 규율에 따라 선수(選數) 높은 선배 의원이 오면 될 일이었다.
“……저, 저 멍한 눈 보게, 똘똘한 줄 알았더니 허깨비네. 내가 네 나이 때는 말이야…….”
이 의원이 말을 지루하게 이어 가고 있길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어서 연락처를 뒤져서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데, 이 의원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전화 좀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이이…… 미친 새끼가!”
왠지 이 의원이 일어날 것 같아서 옆에 있던 자개명패를 들었다.
체육계 출신인 이 의원은 일어서면 조인트를 까던지, 뺨을 휘갈길 인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휘두를 듯 겨누자, 이 의원은 움찔거리더니 일어서진 않았다.
대신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품고 있던 화가 치솟은 모양이었다.
아마도 내가 등 돌리고 개인 사무실을 나가는 순간 주먹을 날릴 것이었다. 그게 아니면 바로 국회 경위를 호출하거나.
나는 두 상황 다 원하지 않았기에, 한 손에 자개명패를 든 채로 전화를 기다렸다.
“통화 좀 하겠습니다, 의원님.”
이윽고 안 고문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넘어왔다.
- 그래, 부위원장.
“고문님, 말 잘 듣는 새한국당 의원 좀 아십니까? 출판회장에 뱃지달고 오신 분들도 꽤 있었던 걸로 압니다만.”
- 의원? 부탁 들어 줄 아우님은 있는데, 무슨 일인가?
“의원회관 410호로 한 명만 보내 주시겠습니까? 이왕이면 선수가 좀 되시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이 의원을 바라보면서 말했는데, 스마트폰 너머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짜고짜 요구한 것만으로 무슨 상황인지 짐작한 모양이었다.
안 고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흐흐, 내 바로 전화 넣겠네. 뭘 하면 되겠는가?
“지도편달 좀 부탁드린다고 전해 주십시오.”
- 호되게 가르치라는 말이지?
“예, 고문님.”
뚝, 전화를 끊고 다시 사무책상 위에 곱게 자개명패를 내려놨다.
내 전화 통화를 들었는지, 이 의원은 눈동자만 굴려 가며 감히 움직이질 않았다. 대신에 뻐금거리던 입은 열렸다.
“너 그거 협박이야? 국회의원한테 그딴 위협이 가당키나 할 것 같아?”
벌떡 일어서지는 않았지만, 화는 여전했다.
내 통화 내용이 심상찮음을 짐작한 것인지, 이 의원이 나를 떠보기 위한 이런저런 말들을 뱉어댔다. 정확히는 속을 긁어 대는 말들이었다.
그것도 잠깐 뿐이었다.
고작 몇 분 만에 개인사무실 문이 벌컥 열린 것이었다.
“야! 이계진!”
와아…….
선수 높은 분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7선의 원로가 등장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7선 의원은 올해 일흔이 넘어서 이번 임기만 채우고 얌전하게 은퇴할 뒷방 늙은이었다.
원내에 70대의 의원이야 여럿 있지만, 그는 주류에서 비주류로 밀리고 밀려서 세력을 잃은 퇴물이었다. 물론 초선의원 정도는 쉽게 누를 연륜은 있는 사람이었고.
“의원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이 의원이 당황한 눈초리로 중얼대듯 말하자, 7선 의원이 삿대질을 하면서 다가왔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인사도 안하고, 한다는 말이 왜 왔느냐고?!”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어느새 이 의원이 벌떡 일어섰는데, 7선 의원의 고함은 멈추질 않았다.
“네가 죄송한 게 뭐야!”
“저, 저…… 그게…….”
이 의원이 말하면서 나를 힐끗 쳐다봤으나, 7선 의원의 호통에 금방 시선이 돌아갔다.
지금의 7선 의원은 상당히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안 고문이 무슨 험한 말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통화가 끝난 지 고작 몇 분 만에 노구를 끌고 이곳까지 도착했으니.
“이 개새끼가, 네 까짓 게 의원이라고 함부로 떠들어?!”
“아니, 그게 무슨 말쓰미…… 으억!”
이 의원이 놀라서 나까지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7선 의원이 손찌검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팔을 젖히고 있었다.
때리는 것까지는 생각지 않았는데?
“이걸 칠 수도 없고…… 김영삼 때면 너 나한테 뒤지게 맞았어. 알어?”
“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뭐가 죄송하냐고?!”
이 의원의 사과에 7선 의원의 되물음이 반복 되었다.
왠지 십수 년 전에 군생활 하던 때가 떠올라서 헛웃음이 나려고 할 때였다.
“윤수혁!”
박 보좌관이 나를 불렀다.
아, 맞다.
박 보좌관이 보기에 나는 얼마나 눈치 없어 보였을까? 모시는 의원님이 갈리고 있는데 옆에서 그걸 구경하다니?
얼른 열린 문으로 나가자, 박 보좌관이 조용히 문을 닫고는 나를 돌아봤다. 안에서는 욕설과 함께 사무집기가 아작나는 소리가 들렸다. 뭘 걷어 찬 것인지, 던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내 문에서 몇 걸음 떨어져 나온 박 보좌관이 속삭이듯 말했다.
“이거 못 본 걸로 해라, 오늘 아무 일도 없던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근데 왜 저 영감은 여기까지 와서 저런데? 너 무슨 말 들었어?”
“아뇨, 그냥 와서 갈구던데요.”
“하…… 수혁아, 저쪽 방에 전화해서 이유라도 알아 봐. 그리고 다들 함구하는 거 알지?”
어느새 박 보좌관이 의원실을 둘러보면서 말했고, 모두가 침묵으로 긍정했다.
나는 그 와중에 7선 의원의 의원실에 전화를 걸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보좌진의 대꾸만 들었다.
- 갑자기 저희 의원님은 왜요?
당연한 반응이었다. 안 고문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을 테니까.
“아닙니다, 수고하십쇼.”
전화를 끊고 박 보좌관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내 신호를 받은 박 보좌관은 한숨과 함께 직접 전화기를 들었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복도의 발소리와 함께 의원실 문이 다급하게 열렸다.
7선 의원의 보좌진들이 죄다 달려온 것이었다.
“의, 의원님.”
“의원님 고정하십시오.”
개인 사무실로 달려간 경력 있는 보좌관과 비서관들이 쌍욕을 남발하는 7선 의원을 말렸다. 내후년에 은퇴할 영감이 남의 의원실에서 생난리를 쳤으니 오죽했을까.
이윽고 체력이 달린 것인지, 7선 의원이 보좌진들에게 이끌려서 개인 사무실을 나왔다.
물론 아직도 화가 남았는지 목덜미는 불그스레했다.
그 사이, 박 보좌관은 허겁지겁 의원실로 들어갔고, 비서관과 비서들도 그 뒤를 따라 조심스레 개인사무실로 향했다. 나도 눈치껏 개인 사무실로 향했고, 난장판인 사무실 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의원은 맞지만 않았지, 맞은 것과 다름없었다.
소파와 사무 의자를 놔두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 의원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하긴 이 의원도 나이 육십에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이렇게까지 갈리는 건 오랜만이겠지.
어느새 박 보좌관이 먼저 이 의원의 한쪽 팔을 부축했다.
나도 그를 따라 하듯, 이 의원의 반대쪽 팔을 거들면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
정신없는 듯 풀어져 있던 이 의원의 시선이 움찔했다.
이제야 좀 아는 모양이었다. 사실 안다기보다는, 그저 7선 의원이 내 뒤에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애초에 이 의원이 뭐라고 떠들어도 믿을 사람이 있을까? 일개 비서의 전화 한 통화에 7선 의원이 달려온다는 말을?
우스운 소리였고,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이 의원의 어깨를 부축하며 정중하게 말했다. 바닥에 깨진 화분이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경고로 들은 것인지 그의 어깨가 움찔했다.
이제 남아 있는 며칠의 비서 생활이 편해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