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9화 (19/191)

# 19

7. 이제는 그만둘 때 (3)

비트코인.

이용자들끼리 거래하는 근본 없던 전자화폐.

그 실체도 없는 숫자들이 몇 년 뒤면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금덩이가 될 것이었다.

처음에 비트코인은 기사로만 접했었다. 나중에 대충 알아보기라도 했을 때는 1BTC가 백만 원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딴 게 돈이 되는구나 싶어서 기사를 좀 찾아봤던 것이었다.

당연히 비트코인에 돈을 쓴 적은 없었다.

그저 내 일을 하기에도 벅찼고, 투자나 재테크에 관해서는 감이 없었기에 남 일처럼 바라만 봤었다.

한국은행에서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가치가 없다고 했고, 국회에서도 상용화 계획을 무산시켰었다. 물론 죽기 전 즈음에 새로운 법안이 생기고, 전자화폐의 지위를 인정받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었고, 투자를 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비트코인이 수백만 원이 되고, 그것과 관련된 기사가 나갈 즈음에는 감탄하긴 했었다.

작년에 백만 원만 투자해도 얼마야, 하는 우스운 소리를 하면서.

아마 장 의원도 그런 소리를 했었지?

나는 바로 스마트폰으로 비트코인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네이버에서는 제대로 된 기사도 없었고, 구글에서나 영문으로 된 국제 거래소가 몇 개 나타났다.

그렇게 사이트에 접속해서 나온 시세는…….

1TBC당 0.08달러.

“미친…….”

하나에 90원 정도라고?

못해도 몇만원은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90원이라니.

그럼 앞으로 수만 배가 뛴다는…….

심장이 펌프질을 바쁘게 하는지, 온몸에 피가 왈칵 도는 듯했다.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 뱉다가,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내 재산도 아니고, 당장 수만 배가 뛰는 것도 아니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물론 국회 최고의 갑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헐떡이는 맥박까지 차분해지진 않았다.

그래도 잠깐의 인내 끝에 들뜨던 생각을 가라앉히자, 저절로 입꼬리가 씰룩였다. 이러면 국회의원 공개 재산 1위인 정몽준 의원보다 한참 앞서는 꼴이었다.

그저 2등 정도만 해도 정치하는데 불편하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압도적인 1등이라니.

단순 공개 재산으로만 1등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게 집에 오는 길에 오 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돈을 다 쓰고 싶었지만, 나도 당장 융통할 돈이 필요했고 벌어들일 기초자금이 필요했다.

나는 곧장 오 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사용 가능한 자금이 얼마나 됩니까?”

은행과 통장마다 사용 용도가 달랐기에, 당장 사용 가능한 현금만 물은 것이었다. 오 위원은 계산하는 듯 잠깐 가만히 있다가 대답했다.

- 2억 조금 넘습니다만, 추후 사용할 금액까지 포함된 총액입니다. 부동산과 현재 갖고 계신 주식까지 파악하면 더 있긴 합니다만, 따로 지시할 일이 있으십니까?

역시 척하면 척이었지만, 이 일을 지시할 생각이 없었다.

비트코인 거래는 증권사에 들러서 서류 작성하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었고, 이런 중요한 일을 아직 오 위원과 공유할 마음은 없었다.

“현금만 절반 정도 정리해서 통장에 모아주세요, 그 통장은 제가 따로 사용하겠습니다.”

사실 더 투자하고 싶었지만, 비트코인은 당장에 수만 배로 뛰는 돈이 아니었다. 그저 적금이었고, 당장에 벌 자금이 또 있어야 했다.

- 알겠습니다. 통장 개설을 새로 해야 돼서, 내일 오전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오 위원의 믿음직한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계산해 보니 1억 정도로 비트코인을 매수하면 내가 갖는 게 1,100,000BTC가 좀 넘겠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사기는 힘들 터였다.

매수할수록 값이 뛰어 1TBC의 값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실질적으로 1억을 다 소비할지도 의문이었으나, 일단은 가능한만큼 매수하고 볼일이었다.

그래도 몇 년 뒤면 한국 역사상 공개 재산이 제일 많은 정치인이 되겠네, 다시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오늘 운수가 굉장히 좋았다. 장부 자료까지 빼왔는데 돈까지 얻다니.

아, 이게 영석이 덕분인가? 나중에 뭐라도 하나 챙겨줘야 되겠네, 흐흐흐.

* * *

8월의 청문회가 한낮의 불볕더위처럼 지나갔다.

뜨겁고도 질긴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신민주당의 비대위원장은 쾌활한 어조로 정치부 라디오에서 전화 인터뷰를 나누었다.

“검증되지 못한 인사를 낙마시킨 것은 야당의 공격이 아니라, 국민의 뜻입니다. 이번 청문회 기간 동안 저희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만 했습니다. 이건 야당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승리입니다!”

승리라는 말처럼, 청문회에서 신민주당은 많은 활약을 선보였다. 날 선 의혹 제기와 고함이 동반한 비판으로 청문회 후보자 셋을 낙마시켰다.

그 중에는 40대의 젊은 국무총리도 있었고, 문체부 장관도 있었다.

그리고 윤수혁의 예상대로 호남 출신의 국무총리가 새로 내정되었고, 문체부에서는 새 내정자 없이 잠잠했다.

한 쪽에서 노트북을 하고 있던 오준범은 TV를 흘깃 보고는 몸을 풀듯 목을 돌렸다.

“진짜 개인적으로 쓰려고 가져갔을까?”

홀로 중얼거렸던 오준범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계획 없이 1억을 가져가?’

의자에 늘어지듯 기댄 오준범은 다시금 노트북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안에 단서가 있을 수도 있었다.

정치, 경제 부문의 최고급 찌라시.

새롭게 올만한 장관 후보자에 관한 자료부터 축소되거나 계류되고 사라질 법안 따위에 대한 내용까지 실려 있었다. 대기업에서 새어 나온 경제 전망에 관한 자료 일부도 기재된 상태였다.

그러나 오준범이 기대할 만한 것은 없었다.

1억의 돈을 따로 유용할 만한, 확실하고도 매력적인 건수는 없었다. 평소 윤수혁이 내주는 종목이나 종목의 유형으로만 이미 수십 퍼센트의 수익률을 내고 있었다.

“하긴 말을 해야 내가 알지, 언제는 이런 걸로 소스 찾았나.”

오준범은 그렇게 자조 섞인 어조를 내뱉고는 노트북 뚜껑을 닫았다.

그래도 평생을 정치와 경제의 싸움터에서 살았던 사람답게, 오준범은 속에서 피어오르는 상상을 어쩌진 못했다. 금융권의 후배에게 연락이나 해 볼까, 하는 작은 생각.

계좌 정보 한 줄 듣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돈이 나갔는지, 얼마가 어떻게 쓰였는지 정도는 10초면 설명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준범은 비죽 웃기만 하고 말았다.

뒷감당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늙은 혀가 말실수를 하거나, 윤수혁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물리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었다.

윤수혁은 예측 범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가끔은 귀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하고도 묘한 사람이었고.

오준범은 자신의 말년을 상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피던 팔자, 도로 말아 먹을 순 없지.”

* * *

9월 초.

“윤 비서, 좋은 일 있나?”

뒷좌석에서 이 의원이 말을 붙여 왔다.

“의원님 얼굴이 밝아 보여서 저도 좋습니다.”

“허허, 윤 비서 넉살도 좋아.”

이 의원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히죽거리듯 웃었다. 오늘은 웬일인지 담배도 피지 않고, 은단을 씹어서 담배 냄새가 나질 않았다. 간만에 향긋한 운행이었다.

물론 비트코인을 어느 정도 매수해서 기분이 더 좋긴 했지만.

어쨌든 차는 오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 치바 호텔.

5성급의 호텔 중 하나로 일본계 기업의 꽤 오래된 건물로 정치인들이 자주 오는 곳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만남부터 공적인 행사를 포함해서.

이 의원도 나름대로 동분서주하며 거물들을 만나고 제 살 길을 궁리하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이 의원이 뒷문을 열면서 말했다.

“차 대놓고 홀에서 잠깐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나는 이 의원이 내린 모습을 확인하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뒷문을 닫은 호텔 직원이 뛰어 와서 내 손에 들려 있던 차키를 받았다.

발레파킹이 되는 동안 나는 호텔 로비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시켰다.

간만에 쉬는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청문회로 바빴고, 이제 294회 정기회가 열려 더 바빠질 것이었다. 국감 준비를 마쳐야 하고, 10월부터는 국감에 들어가야 했다. 뭐 내가 할 일이야 뻔했고, 매번 하던 것이어서 그냥 그랬지만.

그렇게 한 30분 됐을까.

[차 빼]

이 의원에게 딱 두 글자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는 그런 문자였다.

기분이 별로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것에 기분이 바뀌는 게 우습기도 한 웃음이었다.

내가 일어서자, 눈치 빠른 데스크 직원이 곧장 데스크의 전화기를 들고는 내게 고갯짓을 해 보였다. 언질을 준적도 없는데, 내가 운전한 제네시스를 호텔 정문으로 대놓는 것이었다.

고위 인사들이 많이들 찾아오니 알아서 빠릿빠릿하게 행동하는 것이겠지.

‘눈치 하나 기가 막히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슬 움직였다.

10년식 제네시스가 호텔 정문으로 올라왔고, 발레파킹한 직원에게 키를 건네받았다.

나는 운전석에 미리 타서 에어컨을 켜 놨다.

이제 국회에서 할 일이 더 있는지, 수첩을 펼쳐서 한 차례 확인하고는 긴 숨을 내쉬었다.

내 기억력이 천재가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이만하면 더 이상 할 일은 없었다. 웬만한 보좌진과는 안면을 터놨고, 필요한 정보와 기억도 다 챙겼고, 장부까지 사진으로 찍어 파일과 인쇄본으로 남겼다.

더 이상 국회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나가고 싶다고 당장 나갈 순 없으니, 이제 내 상급자에게 언질을 줘야 했다. 그것도 진심어린, 청년의 감동으로.

나는 박 보좌관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좌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 한 번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문자를 보낸 지 몇 초 만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우우우웅.

지극히 공손해서 그런 것인지, 그만둔다는 낌새를 챈 것 같았다 국회 밥 오래 먹어서 그런지 눈치가 보통이 아닌 사람이었으니 이 정도 추측은 쉬웠을 터였다.

내가 그만둘 이유가 어디 한 두 가지겠는가?

체육계 출신의 재선에 목맨 이 의원을 수행하고, 말단 비서로 온갖 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원래 쪼인트까고 모욕적인 욕설을 참 잘하는 인간이었다.

지금은 알아서 움직이니 한 번도 당한 적은 없다만, 전에는 몇 번이고 까이고 욕 먹었다.

나는 박 보좌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호텔 정문에서 이 의원이 느긋한 걸음으로 나오고 있었고, 호텔 직원이 자연스럽게 뒷문 손잡이까지 잡고 있었다. 어느새 이 의원이 거만을 떨며 뒷좌석에 올랐다.

의전을 참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양반이었다.

그리고 나로서는 더 이상 모시고 싶지 않은 인간이기도 했다. 청와대며 중앙당에서 힘깨나 썼던 기억 때문인지 막내 노릇도 많이 버거워지고 있었다.

“가자.”

이 의원의 목소리에 짧게 한숨을 뱉고 차를 몰았다.

이제 비서짓도 그만둘 때가 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