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8화 (18/191)

# 18

7. 이제는 그만둘 때 (2)

8월 중순, 국회의사당.

“이게 사노비가 아니고 뭡니까! 세상이 어느 땐데 이런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단 말입니까?!”

서류 전달로 들렸던 문방위 회의장이 시끄러웠다.

문체부 장관의 청문회가 한창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더 시끄러워질 예정이었다.

국회의원이 지역구를 넘어서 전국구로 주목받기 좋은 자리가 청문였다. 사노비를 능가할 자극적인 표현과 고함이나 다름없는 질의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세면 셀수록 기사화되고 인지도를 올리기에 쉬웠으니까.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기다렸다는 듯 터졌다.

문체부 장관이 물 마시는 장면을 찍는 것이었다. 지면과 인터넷에 실릴 기사 제목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목 타는 문체부 장관 후보자]

[속이 타서 물만 벌컥]

대강 이런 것이겠지, 뻔할 뻔자였다.

다만 플래시 소리가 크지 않았고, 소리처럼 기자들도 회의장에 많지는 않았다. 이미 청문회가 진행된 지 한 시간이 넘긴 했지만, 국무총리와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 중인 탓이었다.

그것도 문체부 장관도 한수 접을 만한,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같은 거물도 포함된 청문회였다.

박 보좌관에게 추가 자료를 가져다주는데, 마침 이 의원이 입을 열었다.

마이크를 잡고 위원장 눈치를 살피는 꼴에 한숨이 나올 뻔했다.

“에…… 현실적으로 현재 유인촌 장관이 경질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후보자님께서 장관직을 수행하셔야 하는 게 마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방금 신민주당 위원님의 사노비라는 표현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개인적인 부탁 정도로 순화하시는 게…….”

이후로도 조악한 수준의 제 식구 감싸는 소리가 나돌았다.

듣기만 해도 이게 웬 개소린가 싶겠지만, 보통의 국회의원이면 비슷한 말을 한 번씩은 다 했을 터였다. 당장 스마트폰으로 청문회 녹화 영상이나 회의록, 하다못해 인터넷 뉴스만 봐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게 현실이었다.

“본인 아들을 그렇게 부려 먹어도 되겠어요?! 그게 국민의 대표가 할 말입니까?”

신민주당 측에서 고성이 나오자 위원장이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 점잖게 타일렀다. 아직 남아 있던 카메라는 삿대질하는 신민주당 위원을 향해서 플래시를 터뜨렸다.

어느새 박 보좌관이 자료 체크를 마치고는 내게 말을 붙였다.

“청문회는 처음이지, 어때? 할 만해?”

“예, 좋습니다.”

“흐흐, 자식. 참, 제보 들어온 건 없지? 무슨 낌새 같은 것도 아예 없어?”

박 보좌관의 말은 청문회에서 후보자를 공격할 만한 건수를 말하는 것이었다.

후보자의 지인이나 후보자의 행위를 목격한 시민, 일적으로 관련된 사람이 흘리는 말 한 마디 같은 것들.

예를 들어서 ‘직원한테 반말을 막 해요.’ 혹은 ‘인사 과정에 개입한 것 같습니다.’ 같은 한 줄의 문장이 바로 그런 소스였다.

당연히 루머나 거짓말, 장난도 있긴 했지만, 그 소스를 조사하다 보면 한 줌의 의혹정도는 나오기 마련이었다. 홧김에 내지른 분노 같은 것, 그걸 물고 늘어질 수 있었다. 인간성과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별 건 없었습니다.”

제보뿐만이 아니라, 이 청문회 자체에 의미가 없었다.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같은 거물을 앉혀 둔 청문회가 동시에 열려서가 아니었다.

청문회 중인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낙마할 것이고, 새로운 문체부 장관 내정자는 등장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경질됐다는 유인촌 장관은 군정 이후 최장기간의 문체부 장관이 될 예정이었다.

“그래, 가서 일 보고 김 비 좀 오라고해.”

“예, 보좌관님.”

나는 김 비서관을 올려 보내고, 의원회관 복도에 섰다.

국회의사당에 비해 굉장히 고요했다. 원래도 시끄럽진 않지만, 더 적막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의원실이 꽤 비어 있을 터였다.

여러 개의 청문회가 동시에 열려서 국회의원들은 질의하느라 바쁘고, 보좌진은 그들을 보좌하고 기자를 상대하며, 제보자를 만나느라 바쁠 테니까.

한마디로 도둑질하기에 제일 쉬운 때였다.

정권과 여당에서 쉬운 청문회 통과를 위해 마련한 바로 오늘이, 내게는 최적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너무 환한 오전보다는 밤이 나았고, 의원실 출입문에 미리 작업을 해놔야 했다. 퇴근 직전에 가서 문이 잠기지 않게, 잠금 장치에 마개를 끼워 놓을 생각이었다.

이 의원 책상으로 서랍 따는 연습도 마지막으로 해 보고.

* * *

그날 밤, 의원회관 712호 의원실.

“아, 깜짝이야.”

문을 열고 나오던 9급 여비서가 움찔했다. 윤수혁이 그녀의 코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틀에 손을 얹고 있던 윤수혁이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

윤수혁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마개가 문틀 잠금 장치에 정확하게 들어간 상태였다. 문틀을 슬쩍 확인한 윤수혁은 여비서에게 대충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퇴근하는 길이세요?”

“그런데요?”

여비서가 윤수혁을 쳐다보면서 되물었다.

어느새 당황스러움을 지워 내고 턱을 살짝 치켜든 그녀는 당당하게 윤수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관심이라도 있는 거야?’

같은 당이어서 직원들이 협조하고 대면하긴 하지만, 윤수혁이 퇴근 시간에 맞춰 이렇게 찾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비서가 짐작하면서 윤수혁을 빤히 쳐다봤고, 윤수혁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 뭐 자료 좀 요청하려고 했는데…… 그냥 내일 말씀드릴게요.”

“……?”

여비서가 눈을 껌뻑거리자, 지금 듣고 있는 말을 확인시켜 주듯 윤수혁이 또박또박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여비서는 애써 태연한 척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이내 여비서는 문고리의 잠금장치를 꾹 누르고, 의원실 문을 닫았다.

윤수혁과 고개 인사를 나누고 복도를 걷던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의원회관을 나갔다. 발걸음이 퉁명스러웠다.

그사이, 윤수혁은 문을 슬쩍 밀어서 열었다. 문의 잠금 뭉치가 문틀 마개에 걸리지 않아서 그냥 열린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윤수혁은 곧장 스마트폰 라이트를 켠 뒤, 의원 개인 사무실로 직진했다.

덜컥, 문고리를 돌리자 어둑한 내부가 드러났다.

접대용 소파와 테이블, 개인 사무책상과 옷걸이, 작은 서랍장 따위가 놓인 공간이었다. 벽의 좌우로는 액자와 화분 따위가 줄줄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여튼 이 인간 취향 하고는…….”

잠깐 중얼거린 윤수혁이 금세 개인 사무책상 앞으로 갔다.

고동색의 나무 책상으로 우측에 서랍 4개가 달린 컴퓨터용 책상이었다. 그중 가장 위에 달린 서랍에 라이트를 비춘 윤수혁은 자연스럽게 열쇠를 꺼냈다.

열쇠 제조사에서 만능이라고 만들어 준 열쇠 꾸러미였다.

윤수혁이 연습했던 이 의원의 책상도 열었던 것이었고, 지금도 몇 번 달그락 거리다가 금세 서랍을 열었다. 이미 경험한 듯 익숙한 행동이엇다.

안에는 윤수혁이 예상했던 것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현금 다발 몇 개와 서류들, 그리고 새까만 가죽 커버로 묶인 장부 하나.

그중 장부만 꺼낸 윤수혁은 안의 내용을 재빠르게 확인하고는 가져온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흔들림을 확인하며 촬영을 마치고는 순식간에 원래대로 서랍을 닫고 잠갔다.

이윽고 몸을 돌려 나오려던 윤수혁이 책상 위의 자개 명패를 바라봤다.

라이트를 받은 자개 명패의 한자가 반짝거렸다.

‘장 의원…….’

712호는 윤수혁을 죽였던 장세룡의 사무실이었다.

또한 윤수혁이 신축 의원회관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장소이기도 했다.

윤수혁은 12년 초, 처음 왔던 이 사무실을 떠올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장소였다.

‘그때면 신축 건물에서 의원 노릇 하겠지.’

* * *

내가 장 의원의 장부를 갖고 퇴근한 건 그날 밤 10시였다.

청문회 일정에 녹다운된 이 의원을 강남 룸살롱에 내려다주고 직원에게 발레파킹을 맡겼다.

나는 택시 안에서 장부를 펼쳤다.

내가 짐작하고 있던, 그리고 알고 있던 비리들이 나타났다. 전부 약어였고, 숫자로 적혀 있었지만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의 밑에서 보좌하면서 배운 것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로비, 뇌물 수수, 상납 등등…….

장 의원이 저지른 범죄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봤자 수위가 낮은 것들이었고, 정관계 인사들의 흔한 유착관계에 불과한 자료였다.

이걸로 사법부에서 형량을 때리면 최대 집행유예가 나오리라.

아니면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도 쉽게 나올 수 있었다. 증거의 증빙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대고, 사실 관계가 불명확하다는 판사의 말 한마디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건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장 의원을 보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다른 의원들을 협박하기 위한 일종의 물증이었다. 협박할 일이 굳이 필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마는, 국회에서는 내 편도 많이 필요하고 총알받이나 공격수로 쓸 병사도 필요한 법이었다.

특히나 비리로 의원직을 상실할 십수 명의 의원들과 찔린 구석이 있는 의원들은 내가 부려 먹기 좋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일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장부였다.

내 머릿속에서 비리 정보를 꺼내도 좋겠지만, 장부 같은 물증이야말로 최고였다. 루머와 음모가 판치는 정계에서 의심 많은 이들이 믿을 건 바로 이런 실재의 사물이었다.

거기에 내 기억에서 나온 구체적인 얘기를 더한다면?

제대로 된 쇼가 만들어질 것이었다.

대충 그렇게 장부를 파악하는 무렵,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최영석]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평소에도 가끔 안부 카톡을 주고받는 상황이었다. 내가 대학 등록금을 내주고, 푼돈 정도 되는 생활비를 지원해 준 뒤로 영석이는 자주 카톡을 했었다.

마치 나는 돈 떼먹지 않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어, 영석아.”

- 형,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부쩍 예의 발라진 어투에 웃음이 났다.

“그래, 말 해.”

- 제가 방금 알바비를 받았거든요. 얼마 안 되지만…… 이거라도 일단 형한테 보내려고 하는데, 계좌 번호가 몇 번이에요?

“착하고 고맙네.”

- 당연히 갚아야 되는데요, 뭘.

“됐어, 그냥 너 갖고 있어.”

- 네? 조금이라도 갚아야…….

영석이의 당황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조금이나마 갚아서 심적인 부담을 덜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웬만하면 빚진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런 관계를 유지해야 영석이의 충성을 사기도 쉬웠으니까.

나는 그럴싸한 이유를 하나 댔다.

“너 돈 필요할 때 다른 사람한테 빌리려고? 몸살감기 걸려서 응급실 한 번 가면 돈 수십만 원씩 깨진다. 그럴 때 생각해서 그냥 갖고 있어, 돈은 천천히 갚아. 무이자니까.”

- ……네, 고맙습니다.

말귀를 한 번에 알아듣는 게 기특했다.

그렇게 대화를 좀 이어 가던 무렵, 영석이의 말에 멈칫했다.

“너 요새 뭐한다고?”

- 그냥 알바하고…….

“아니, 아까 게임 뭐라고 하지 않았어?”

- 아, 게임 머니 팔아서 5만원 번 거 말씀하신 거예요? 그거 어릴 때하다가 접은 건데…….

“게임 머니……?!”

내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생각지 않았던 게 떠오른 것이었다. 여태 정치판과 그 안에 있는 것들만 생각하느라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 큰 걸 빼먹다니!

수 배, 수십 배로 뛰는 주식과 땅보다도 값비싸질, 그리고 진짜 돈과 다름없는 것이 있었다.

…… 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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