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6화 (16/191)

# 16

6. 내 사람들 (4)

7월 14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90년대 배우였던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앵커 출신의 당 대변인이 전당대회를 진행했다.

커다란 전광판에선 두 사람의 모습이나 선거 영상이 큼직한 픽셀로 나타났고, 마이크를 통한 소리가 웅웅거리며 체육관 끝까지 퍼져 나갔다.

어수선했고, 시끄러웠다.

투표를 위해 모인 대의원만 7000명이 넘었다. 그들이 저마다 지지하는 의원을 외칠 때마다, 가슴 한편이 같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 명이 넘는 후보들의 기조연설과 온갖 식순 끝에 투표가 진행되었다.

실내체육관 한가운데 놓인 수십 개의 투표소로 대의원들이 입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줄을 선 지지자들은 저들끼리 누가 승자고, 패자인지 언성을 높여가며 따졌고,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온 기자들이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 대의원을 찾아 인터뷰를 따갔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금세 대변인이 고지했던 투표 시간을 넘어갔고, 오후 다섯 시 반이 되었을 무렵.

기존에 예고된 종료 시간을 30분이나 넘긴 뒤에야 결과가 나왔다.

이내 선거관리위원장의 목소리가 어수선한 체육관 내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방송사 카메라가 라인에 맞춰 서서 중계를 했고, 투표 인원, 개표 결과를 후보 번호대로 읊던 선관위원장이 이내 단상에서 눈을 떼고 정면을 응시했다.

이미 여론조사 결과와 대의원 투표수가 나온 뒤여서, 당선된 후보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선관위원장의 말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규정에 의거하여, 새한국당 대표로 기호 1번 신경배 의원이 선출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선고 끝에 환호가 체육관을 울렸다.

“우와아아아아아!”

예상대로였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로써 정보의 불확실성이라는 불안함까지 사라졌으니, 사업체도 내 손에 들어왔다. 오 위원 정도 되는 인간이 이런 정보를 못 알아보면 쓸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사기꾼 같은 낌새조차 보여 준 적도 없었으니, 의심할 여지는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었다.

직원들은 그저 회사 일을 열심히 해서 내 돈을 불려 주고, 회사 명예를 키워 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한 마디로 그저 직원처럼, 회사 일만 잘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돈 버는 소스는 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그러는 사이 스마트폰이 진동했고, 화면에는 안순익 고문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여보세요.”

- 전당대회 결과 봤네, 무당도 아니고 그런 걸 다 맞히나? 대단하네, 대단해.

“청와대에도 빨대가 있으니까요, 식사 자리에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실은 청와대에서 근무한 기억이지만, 안 고문이 내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 맞네, 맞아. 그런데 말이야, 자네 정보 출처를 모르니 내 묻는 말인데…… 어디 새어 나갈 길은 없겠지?

정보가 새고, 다른 이가 알게 될 것을 걱정하는 말이었다.

생각보다 정보가 대단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하긴 후보자 두엇을 제외하고 불확실하고 예상 불가능한 최고위원까지 맞혔기 때문일 터.

나는 씰룩이는 입꼬리를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그럼 저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 같으십니까?”

스마트폰 너머에서 안 고문의 옅은 고민이 느껴졌다.

이건 안 고문뿐만 아니라, 정치질 2회 차인 사람이 또 있을지, 예전에 나에게 했던 물음이기도 했다. 기억을 가진 한 달 반 동안 나 스스로에게 몇 번 정도 했던 질문이기도 했고.

고민이 적잖기는 했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하나였다.

“없을 겁니다.”

있다면 죽었던 나를 살릴 이유가 없었다.

내가 가진 건 경력과 경험이 전부 아니던가?

여러 사람 살려 놓으면 젊은 몸뚱이만 갖고 뭘 하라는 말인가? 지난번 삶을 반복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안 고문도 느릿하게 대꾸했다.

- 그래,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없겠지.

듣기 좋은 대답이었다.

비로소 안 고문이 내게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배 분들과 통화는 하셨습니까?”

- 아직 안 했네, TV보다가 자네한테 전화 건 게 첫 번 째지. 오 위원은 금방 전화할 걸세. 그래도 내가 밀어 주고 당겨 주고 키운 놈이야, 지가 알아서 잘 하겠지.

이것도 썩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안 고문이 나를 꽤 믿는다는 게 말에서 느껴졌다.

“조만간 다시 뵙도록 하죠.”

- 그러세.

뚝,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스마트폰이 바쁘게 진동했다.

내 통화 내용을 듣기라도 한 듯, 오 위원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 * *

윤수혁과의 짧은 통화를 마친 오준범은 후배들에게 문자를 적어 넣었다.

[사직서 낼 준비들 해.]

그러고는 연락처에서 이름 하나를 찾아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 몇 번 만에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 네, 이모부님.

“무슨 말 할지 알지?”

- …….

“정재운, 대답 안 할래?”

오준범이 물음을 던져 놓곤 한숨을 뱉었다.

능력 부족인 자신의 조카사위이자, 7급 공무원에 불과한 사회 초년생이 바로 정재운이었다. 안순익에게 제안 받았을 때,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준범은 정재운을 인재풀 명단에 넣었고, 그게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이내 오준범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찌그러진 철밥통 껴안고 굶어 죽을래?”

- 이모부님…….

“대답 제대로 해.”

- ……사직서 내겠습니다.

“머뭇대는 거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부터 대답 늦게 하면 얄짤 없어. 알았어? 사표 수리 빨리 될 거니까 제대로 준비나 해놔.”

- 네, 이모부님.

전화를 끊은 오준범은 아쉬운 정재운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정재운에게 편안한 보직을 내주고, 귀찮은 민원을 막아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오준범은 이내 닫힌 폴더폰을 보면서 혀까지 찼다. 딸처럼 아꼈던 조카의 남자 보는 안목이 좋지 못함을 자책한 것이었다.

자신의 아들들은 각각 군대에 말뚝 박고,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때문에 생각조차 나지도 않았고.

그러나 곧 윤수혁과의 통화를 상기한 오준범이 쌉싸래한 미소를 지었다.

- 첫 번째로 준비 잘 해 주시고, 두 번째는 일만 잘 해 주시면 됩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공천에 나갈 사람입니다, 딴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윤수혁의 여유 가득한 말씨였다.

그것은 능력과 정보 이전에 20대 중반이 보여 주기 힘든 카리스마였다.

자신이 그 나이 때는 뭘 했을지, 안순익과 비슷한 상상에 잠겼던 오준범은 폴더폰의 진동에 화면을 확인했다.

막 도착한 문자 메시지가 액정에 떠 있었다.

[알겠습니다, 위원님.]

[예, 선배님.]

그나마 정재운과 다른 명확한 대답에 굳어 있던 눈가가 풀어졌다.

“……이제 자금이나 땡겨 놔야겠네.”

오준범의 마우스를 쥔 손이 화면을 몇 번이고 클릭했다. 매도하고 매수한 주식의 리스트와 그래프가 화면에 떠올랐다.

그중 수익률을 본 오준범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윤수혁이 언급했던 당 대표와 최고위원의 테마주를 일부 매입한 것으로 수익이 적잖았다. 잃어도 만회 가능한 수백만 원을 투자한 것이었고, 매입한 주식의 대부분이 상승을 뜻하는 빨간 세모로 표시되어 있었다.

오준범은 화면을 천천히 살피면서 중얼거렸다.

“말년에 인생이 필 모양이다.”

* * *

전당대회가 끝나고 원내 분위기가 바뀌었다.

언론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7.14 전당대회에 대해서 떠들었고, 나는 전보다 수척해진 이 의원을 보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 의원이 조 의원에게 기대를 꽤 걸었던 모양이었다. 신 의원은 이미 추종자가 많아서 딱히 혜택을 받기 어려운 판국이었다.

아마도 물질적으로나 비물질적인 형태로 조 의원과 모종의 거래도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뭐, 내가 알 필요도 없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오늘은 간만에 오후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택시의 에어컨 바람에 몸을 좀 식히던 중이었는데, 품에서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오 위원의 전화였고, 용건은 전에 일식집에서 지시했던 일을 착수했다는 보고였다. 별 특이점이 없었는데, 다만 오 위원이 이쪽에선 날고 기던 사람이긴 한 모양이었다.

내게 사업체 설립 요건을 요약해서 설명하고, 당장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명확하게 보고하는데 노련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벌써 상급자를 대하는 듯했고, 끝이 명료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오 위원에게 느긋하게 물었다.

“늦어도 4개월 뒤에는 나갈 겁니다. 빨라질 수도 있고요. 기간 충분하시겠어요?”

- 충분합니다.

나는 앞으로 3, 4개월 뒤에 비서를 그만둘 것이었다.

그 정도면 비서질을 한 지 5, 6개월 정도 되는 기간이었다. 말단 보좌진치고 성공적으로 버틴 시간이기도 했다. 한 달을 채 못 버티거나, 3개월 치 월급만 받아서 나가는 이들이 허다했다.

여기서 6개월을 넘기면 그때부터 일종의 장기복무가 시작되는 셈이었다. 그것도 1년의 고비를 통과해야 허락되는 것이긴 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이 초반에 떨어져나갔다.

그렇게 보면 내 5, 6개월의 취업은 괜찮은 시간이었다.

보좌진들이 이해할 만한 타이밍이었다. 예결산 문제로 좀 바쁘겠지만, 국회가 한가한 날이 별로 없으니 내가 못할 짓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 위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그런데 직원을 추가로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몇 개월 뒤겠지만, 전문직이 한둘 필요한 상황입니다. 직접 고르시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 알겠습니다.

군소리 없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일 하나는 잘 하는 사람이었고, 그만한 눈치도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통화하면서 펼친 수첩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람 하나 알아 봐주세요, 오 위원님이면 금방 아실 것 같아서요. 이름이 부영규고…….”

자금 세탁, 기획 투자 등을 맡았던 19년도의 업계 인사.

부영규는 청와대와 중앙당에 있을 때 종종 마주쳤던 사람으로 여러 사람의 사적인 일 처리를 맡았던 인물이었다.

내가 쓸 수 있는 많은 카드 중에 하나기도 했고, 지금 즈음 써먹어야 하는 도구기도 했다.

사업체를 차리기 전에 개인 주식과 부동산에 손을 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음지 말고 양지에서 쓸 돈도 꽤 많이 필요했으니까.

내 설명 끝에 오 위원이 대답했다.

-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서 오랫동안 나를 보필한 것 같은 느낌이 풍겼다.

나이가 예순여덟이나 되었기에 사회적 자존심과 고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왜 안순익이 그를 추천했고, 데려왔는지 알 것만 같았다.

“예, 수고하세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오 위원과 다시 통화한 것은 그날 저녁, 퇴근 무렵이었다.

* * *

저녁 무렵, 서울시 서초구의 주택.

부영규의 이력서와 일부 개인정보가 지워진 인사고과표를 보던 오준범이 긴 숨을 뱉었다.

‘용도는 뻔하다, 사적으로 일을 맡기려는 것인데…….’

이내 책상 위의 폴더폰을 잡았다가, 오준범은 금방 손을 놨다. 이어서 주먹을 쥐었다, 펼치면서 긴장을 풀려는 듯 행동했다.

“옘병!”

그러던 오준범이 욕을 뱉었다.

홀로 안고 있던 고민을 여태 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윤수혁이 내준 사람을 찾는 일에서 시작된 고민이었다.

정확히는 사람 찾는 일 자체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오준범에게 사람 찾는 일은 일도 아니었다.

서울대, 기재부, 향우회 등의 오준범이 속한 인맥을 통하면 같은 계열에 있던 사람 찾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더구나 윤수혁이 말했던 부영규라는 이름은 업계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이름이었다.

유명하진 않아도, 부영규는 아는 사람은 아는 실력자였다.

일종의 자산관리 전문가인 부영규는 위법의 증거 없이 편법을 잘 다루는 사람으로 호평을 꽤 듣는 인사였다. 아직까지 정계에 발을 담그진 않았지만, 추세로 보면 몇 년 안에 정계 인사들까지 고객으로 다룰만한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몇 시간도 채 안 되어 오준범은 부영규의 입사 이력서와 일부가 삭제 처리된 과거의 인사고과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준범의 고민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내가 이 일을 맡으면……?’

다름 아닌 윤수혁의 사적인 일이었다.

그가 가져온 정보가 어떤 것일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기대감이 절로 그의 뒷골을 찌르르 찔렀다.

보통 일이 아닐 것이었다.

전당대회 결과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춘 사람이 윤수혁이었다.

설령 대통령이라고 한들, 이렇게까지 맞출 수 있을까? 마치 과거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확신을 할 순 없을 것이었다.

결단을 내린 오준범이 책상 위의 폴더폰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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