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6. 내 사람들 (1)
그날 저녁.
광화문 뒷길의 국밥집.
안순익은 간판을 올려다보며 긴 날숨을 뱉었다. 마치 윗사람을 만나듯, 그도 아니면 긴장감을 억지로 풀어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안순익이 국밥집 안으로 걸음을 디뎠다.
2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던 윤수혁이 시선을 들었다.
“오셨습니까?”
안순익은 말 대신 고개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이내 다시 윤수혁을 쳐다봤는데, 안순익은 이틀 전부터 어쩌지 못한 고민을 속으로 씹었다.
‘이 놈은 귀신도 아니고…….’
안순익은 그러면서 윤수혁을 차례차례 뜯어 봤다.
호텔에서처럼 대충 쳐다보고 만 게 아니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모습에 물수건을 쥐고 있던 윤수혁이 피식 웃었다.
“제가 유령 같습니까?”
“…….”
안순익이 채 대꾸를 못하자, 손을 마저 닦으면서 윤수혁이 비꼬듯 물었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 모습이었다.
“오늘까지 전화 많이 돌리셨을 텐데, 원하시는 건 찾으셨어요?”
그 말에 안순익의 동공이 커졌다. 눈가에 깊게 패여 있던 주름들이 벌어졌다.
“……그럼 있다는 소린가? 주인이 누군가?”
주름에 밀리고 세월에 내려온 입이 바쁘게 물었다.
그것은 체신이나 경계 이전에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호기심이었다. 이틀 동안 온갖 곳에 전화를 돌리고 찾아봤지만, 알지 못한 ‘윤수혁‘이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표.
평생 정치질을 했음에도 감조차 잡지 못하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가?
손을 닦던 윤수혁은 행동을 멈추고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서늘한 눈빛을 마주한 안순익이 멈칫했다. 이내 테이블 쪽으로 상체를 기울인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내가 개요? 주인을 찾게?”
윤수혁은 죽을 때 장 의원에게 들었던 말이 저절로 떠올라 안순익을 노려봤다.
한 번도 아니고, 연속해서 들을 만한 말이 아니었다.
“…….”
주인이 없느냐는 속말을 하려던 안순익이 침을 삼켰다.
가만히 있었지만 윤수혁은 당장이라도 몸을 움켜 쥘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윤수혁은 이 식당 한복판에서 그럴 수도 있었다.
안순익이 마주한 윤수혁의 눈빛은 싸늘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차가워져 있었다.
다시금 손을 마저 닦은 윤수혁이 한 쪽으로 물수건을 치웠다.
“험한 말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찾았는데 없으면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순익이 굳은 낯빛을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간 쌓아 온 연륜으로 속을 가다듬고, 여전히 한기가 남은 윤수혁의 눈을 마주했다.
“그럼 다시 묻겠네, 자네는 누군가?”
너에서 공천 받을 만한 놈, 그리고 빠꼼이로 부르던 호칭이 자네로 바뀌었다.
윤수혁이 입을 열었다.
“저 혼자 이랬다면, 믿기 힘들긴 하겠죠. 거기까진 이해합니다.”
안순익이 대답을 기다리며 차분하게 윤수혁을 응시했다.
“그런데 정 못 믿겠다면…… 다 없던 일로 하고 돌아가십시오. 의심에 장단 맞춰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할 생각 없습니다.”
저게 과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할 말인가?
안순익은 말의 내용과 더불어 어조에서 느껴진 묵직함, 그리고 차디 찬 시선에 감히 대꾸하질 못했다
‘내가 꼬랑지를 마는 꼴이구나…….’
안순익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다.
한 때 정치판 한복판에서 호통을 치긴 했지만, 지금의 안순익은 임플란트 개수가 남은 치아 개수하고 비슷한 노약자였다. 스스로 강건하다고 여기며 일에 몰두했을 뿐, 전성기는 이미 수십 년 전의 과거였고.
더구나 잘 벼려진, 정치판 실세와도 견줄만한 윤수혁의 모습을 무시할 순 없었다.
자신이 찾던 윤수혁이란 존재 자체를 알지도 못했고, 있다고 여겼던 뒷배조차 찾지 못했었다.
결국 안순익은 입을 닫고 가만히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갈 수도 없던 것이었다.
윤수혁이 제안한 정치는 그가 평생해 온 일이었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것도 국회를 비롯한 중앙 정계로 나가는 일이라면 더더욱.
물론 윤수혁이 약속했던 권력도, 돈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리고 윤수혁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가게 주인이 쟁반을 내왔다.
“여기 국밥이요.”
가게 주인이 말하곤 안순익과 윤수혁 앞에 뚝배기를 하나씩 놓았다.
윤수혁이 태연하게 숟가락을 쥐면서 물었다.
“드실 겁니까?”
“먹겠네.”
안순익의 더딘 대답에 윤수혁이 엷게 웃었다.
“그럼 일 얘기 하시죠.”
어느새 어제 호텔에서 봤던 어투였다.
조금은 능청스럽고 편안한 말에 안순익도 숟가락을 쥐면서 대답했다.
“그러지, 아…… 말은 편히 해도 되겠지?”
조금 조심스러워진 어감이었다.
“그게 남들 보기에도 나을 겁니다. 공천 나가는데 어른 존대 들으면 그날로 신문에 갑질이라고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럼 원하는 걸 말하게, 자네가 해 준다는 건 알고 있으니.”
그 말에 윤수혁이 미리 계산을 마쳤다는 듯 대답했다.
“우선 제가 공천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돼야 하겠죠. 연구회, 봉사단체, 사모임…… 공익적인 것도 반드시 포함시켜서 준비해 주십시오. 정당이랑 엮일 필요는 없습니다, 청년대책위 맡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업체도 하나 있어야 합니다.”
국밥을 한 숟가락 떠먹은 안순익이 눈을 껌뻑였다.
“사업체라니? 사장 직함 같은 걸 바라는 건가?”
“당연히 사장 직함도 필요하지만, 정상적인 회사도 필요합니다. 제가 운영할 수 있는 회사, 운용 가능한 인력이 있고 법적으로 정직한 회사요. 공천 나가려면 그 정도 명예와 권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장은 아니고 4, 5개월 뒤에 컨설팅이나 투자 쪽으로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윤수혁의 대답에 잠깐을 생각한 안순익의 눈이 커졌다.
‘가만, 청와대에 끈이라도 있나? 아니면 큰손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안순익을 가만히 바라보던 윤수혁이 말을 이었다. 마치 안순익의 속내를 봤다는 듯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 아닐세.”
안순익이 정신 차리면서 대답하자, 윤수혁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돈 벌 일을 앞으로 10년 어치는 꿰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말을 드러내진 않고, 다시금 덤덤하게 대꾸했다.
“쓸 만한 사람들까지 채워야 합니다. 아, 돈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그러겠네.”
“그리고 소주는 시키진 마세요, 건강하게 사셔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안순익은 속을 들킨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윤수혁은 그런 안순익을 보다가 빈 물컵에 얼음물을 따랐다.
이윽고 안순익의 앞에 물컵을 놓고, 능청스런 얼굴을 해 보였다.
“창업 멤버 되셨는데, 건배 어떻습니까?”
“그러세.”
안순익이 물컵을 들었고, 윤수혁도 컵을 들었다.
“총선을, 위하여.”
* * *
6월이 끝났다.
언론과 정계에서 떠들던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고, 제 291회 임시회가 막을 내렸다.
이제 본회의도, 문방위 회의도 열리지 않을 7월의 시작이었다.
그래도 보좌진의 일이 줄어들진 않을 것이었다. 나만해도 이 의원의 외부 행사를 맡거나 박 보좌관의 지시로 문체부 공무원과 상임위 소관부처의 간부들을 만나고 다녀야 했다.
두 달 뒤인 9월에 정기회가 시작되고, 예결산 문제와 국정감사를 다룰 것이기 때문이었다. 평소 일하듯 준비해야 했다. 특히나 재선을 바라는 이 의원 때문에 국감에서 눈에 띄는 아이템을 건져야 했다.
당장 7월만 해도 전당대회와 7.28 재보궐선거가 열릴 예정이기도 했고.
그래도 박 보좌관이 가장 바빴지, 시킨 일을 맡은 나야 전과 다름없이 여유가 됐다. 그게 출퇴근시간이 넉넉하고, 주말에 쉰다는 의미는 아니긴 했지만, 쉬는 시간을 쪼갤 만했다.
그리고 지금, 퇴근길에 통신사 대리점을 들렀다.
“더 최근에 나온 건 없어요?”
“네, 고객님. 갤럭시S가 6월 말에 나온 거라 가장 최근 제품이고요. 지금 제일 핫하게 팔리는 물건이에요. 어제까지 만해도 물량 부족해서 손님들이 대기하셨는데, 오늘 오신 고객님은 정말 운이…….”
나는 떠드는 대리점 직원을 놔두고 유리 진열대 위에 놓인 갤럭시S를 집어 들었다.
조악해 보여도, 폴더폰보다는 낫겠지.
“이 제품은 자체 발광 슈퍼 아몰레드라서 다른 스마트폰보다…….”
“이거 주세요.”
“네, 고객님!”
직원은 떠들다말고 대답하더니, 구매 약정과 관련된 서류를 들고 진열대에서 상담 테이블로 이동했다. 나까지 자리를 옮기자, 직원이 요금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해서 고개를 저었다.
“5G, 통화, 문자 전부 무제한으로 해 주세요.”
“5G요?”
아…… 별생각 없이 말한다는 게 아직 오지도 않은 기술을 언급했다. 말을 정정했다.
다행히 직원은 갤럭시S를 파는데만 관심이 있는지,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3G요.”
“네, 고객님. 전부 무제한으로 하실 경우에는 요금제가…….”
직원이 무제한 요금제를 고지했고, 나는 서류에 내 신상과 서명을 기록했다.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개통해 준 직원이 연락처 따위도 옮겨 주고, 내 손에 사은품까지 들려주었다.
“폰 케이스 망가지면 언제라도 오십쇼, 공짜로 바꿔드릴게요!”
나는 가볍게 고개 인사를 하고 통신사 대리점을 나왔다. 이제 폴더폰 화면을 터치하는 실수는 없겠구나, 나는 갤럭시S를 다루면서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국회에 나가자 간만에 의원실이 가득 차 있었다.
출장 중이던 비서관들도 들어왔고, 동대문 사무실에 상주하는 4급 양 보좌관과 6급 현 비서까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중 최고참인 박 보좌관이 공문 몇 장을 흔들면서 말했다.
“전당대회 운동 때문에 불렀으니까 잘들 들어요. 우리 두 팀으로 찢어져야 돼, 일단은…….”
“아직 운동기간 아니잖아요?”
현 비서의 말에 양 보좌관이 눈을 흘겼다.
“야, 의원님 행사 나갈 때마다 신 의원 홍보해야 돼. 기간 같은 소리 하고 있어, 저번에도 한 번 했다면서 헛소리 할래?”
“…….”
양 보좌관의 신경질에 박 보좌관이 헛기침을 하면서 대강의 요지를 설명해 줬다.
사전 선거운동에 걸리지 않게 홍보물이나 인쇄물을 조심하고, 이 의원이 지지하는 신 의원의 정책이나 연고지 따위를 숙지하라는 말이었다.
당헌당규에 따라 진행되는 전당대회이니 만큼 주의해야 했지만, 꼼수는 있는 법이었다. 애초에 총선이며 대선에서도 벌어지는 부정행위를 고려하면 며칠 일찍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내 박 보좌관이 설명을 매듭짓고는 짧게 박수를 쳤다.
“자! 공문 인쇄해놨으니까 인턴들이 나눠 주고. 잘들 합시다.”
갈수록 쉬는 시간 내기가 힘들어질 것처럼 보였다. 눈치껏 퇴근하고, 빠져 있을 순 있겠지만 이제부터 국감과 예결산 문제로 바빠질 것이었다.
나는 전당대회 협조 공문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죽기 전에는 전화 한 통화면 달려올 아랫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막내나 다름없으니 뭐 어쩌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국회 바닥 생활을 하느라 웬만한 보좌진을 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 중 에이스와 고문관도 구분하게 되었고, 쓸 만한 이름들도 꽤 기억해뒀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의원 생활 하면 필요할 인재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챙겨야 할 내 사람들이기도 했고.
내후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