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6화 (6/191)

# 6

3. 강 부장 (3)

6월 중순, 동대문구.

그리스전 결과는 91만원.

적은 액수였지만, 내가 합법적으로 번 출처 증빙이 가능한 돈이었다.

남들 몰래 수거해서 벌어들인 억 단위의 돈과 비할 규모는 아니지만, 기분이 썩 괜찮았다.

기분 전환으로 한 놀이여서 그런지 입꼬리까지 올라갔다.

나는 그길로 곧장 토토용지를 한 장 더 샀다.

아르헨티나 전을 마킹할 생각이었다.

금세 4:1의 결과와 전후반 성적을 마킹하고 편의점 여성 알바생에게 토토용지를 건넸다.

어제 스포츠 채널을 보니 이건 배당률이 꽤 될 것 같았다. 무슨 1:0이니, 2:1이니 하는 낙관적인 소리 나 해 대고 있었다. 물론 그게 억대가 되진 않겠지만.

그런데 영수증을 뽑아주는 알바생의 시선이 묘했다.

편의점 앞에 10년식의 제네시스를 세우고, 복권을 10만원 어치나 긁었기 때문일까? 알바생이 내 번호를 물어 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수행비서예요. 저 차, 제 거 아닙니다.”

“아, 네.”

알바생이 실수했다는 듯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정말 예뻤다면 번호 정도는 줬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업무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할 일이 많았다. 어제는 몰래 갔던 장소가 전부 비어 있어서 돈도 수거하지 못했었다.

나는 숙취 음료와 물 따위를 챙겨서 제네시스 운전석에 올랐다.

제네시스는 동대문구에 이 의원의 외부 행사가 있어서 몰고 온 것이었다, 지금도 근처에서 향우회 총무를 비롯한 간부 선출식이 진행 중이었다.

얼른 차를 몰아가자, 입구에서부터 행사 소음이 들려왔다.

조그만 동네 축구장이었는데, 하얀색 천막부터 접이식 플라스틱 테이블과 음향 장비까지 세팅된 모습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당연히 막걸리와 맥주, 소주 따위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 의원은 그 와중에 전투모를 가져와 쓰곤 노인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라 주고 있었다. 면제까지 받은 걸로 아는데, 틈틈이 경례 흉내를 내고 해병대 박수까지 쳤다.

상근예비역 출신인 양 보좌관도 시끌벅적하게 이 의원을 보좌했고.

나는 국회 스티커가 붙은 콤팩트 카메라를 꺼내서 그 장면을 몇 장 찍었다. 이 의원 개인 블로그에 올라갈 사진이었다.

그때 품에서 진동이 울렸다.

[형, 오늘 시간 되세요? 저녁 여덟시요.]

문자였다.

송신자에 경제학과13 김민석이라고 적혀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학생 때 몇 번 어울리긴 했어도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폴더폰을 닫을까 했는데, 문자가 연이었다.

[영석이가 말출 나왔다고 형도 좀 불러 달래요.]

영석이.

동기들보다 더 친한 후배였다.

편모 가정에 벅찬 생활을 하던 영석이는 성실했고, 똘똘한 후배였다. 그리고 선배 비위도 잘 맞췄고, 나를 잘 따라서 가장 친한 후배이기도 했었다.

물론 그것도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장 의원 밑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연락도 끊겼었다.

할 일이 너무 많은 데다 바빴고, 영석이도 먹고 살기가 힘든 탓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건 어디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한다는 얘기가 다였다.

그래도 한 때는 의형제를 맺자고 술을 마셨었는데, 그런 건 어린 날의 일기장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 일기장을 펼친 기분이었고.

나는 문자를 잠깐 바라보다가 답장을 적었다.

[어딘데?]

가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맥주 한 잔과 안주 한 점이면 유익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요 근래에 누가 주지도 않은 일을 하느라 별로 쉴 틈이 없었으니, 가서 좀 쉴 생각이었다. 아꼈던 후배 얼굴도 오랜만에 보고.

[신촌인데 맨날 가던 데라고 하면 알 거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학생 때 자주 가던 술집이 있긴 했는데,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했다. 어느새 구두를 덮은 햇볕에 한 걸음 비켜서면서 나는 머리를 굴렸다.

강 부장도 생각나는 판에 그 술집 이름이 안 떠오르다니.

그러던 중 시간이 다 되어서 양 보좌관에게 다가갔다.

“보좌관님, 5분 뒤에 이동하셔야 됩니다.”

“어? 어, 차에 에어컨 좀 틀어놔. 더워 죽겠다.”

말하는데 양 보좌관 입에서도 구취와 함께 술 냄새가 진득하게 났다.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뱃지라도 달았으면 모르겠는데, 막내 신분에 이런 걸 견디려니 기분이 별로였다.

분명 그때는 좋다고 했을 일인데.

하긴 10년 전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애였지만, 지금은 공천을 요구했다가 맞아 죽은 서른여섯의 나였다. 국회 비서 업무나 운전하는 것도 그냥 일이라는 마인드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술집보다 더 기억이 잘 나는 강 부장이었다.

“예, 부장님.”

- 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일전에 말씀하신 거 경기도당에 부위원장 공고 났습니다.

“조건은 잘 맞습니까?”

물었는데 스피커가 조용했다. 강 부장이 잠깐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주저하듯 들려왔다.

- 그렇긴 합니다, 근데.

“말씀하세요.”

- 월급이 없는…….

강 부장의 말꼬리가 줄어들었다.

월급 없는 당직, 옛날에는 흔해 빠진 것이었고 지금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강 부장은 이런 자리를 1,500만원이나 받고 소개시켜 준다는 게 내심 찔린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내가 잔금을 깍진 않을까 걱정된 것이겠지.

나는 그의 걱정을 덜어 줄 겸 담담하게 대꾸했다.

“상관없어요. 부서는요?”

- 청년대책위원회입니다.

청년대책위원회, 듣기엔 그럴싸했지만 허울만 있는 부서였다.

젊은 세대의 표심을 얻겠다는 명분 때문에 생긴 것이어서, 여야를 떠나서 운영 자체가 지지부진한 곳이었다. 대개 청년 관련된 부서가 그러했고, 이슈나 여론 때문에 생겼다가 사라져 가는 숱한 부서들이 그랬다.

그러나 강 부장은 이미 흐려진 도덕성 때문인지 부서와 관련한 설명을 달진 않았다.

어차피 나도 부서의 미래나 월급을 바란 게 아니었다.

카페에서 말했듯이 간판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말 그대로 허울만 있는, 청년대책위원회 같은 자리가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 그러면 그걸로 진행하겠습니다, 제가 그 전에 경기도당 친구 연락처 하나 보내드릴게요.

“예, 수고 많으셨습니다.

- 그러면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십니까? 자세히 얘기 나누고, 일전에 말씀하셨던 연락처도 같이 드리겠습니다.

“예.”

- 알겠습니다, 그럼 저번에 뵀던 곳으로 가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었다.

청년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 정도면 괜찮았다.

관객들이 보기에 그럴 듯 해 보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여야만 했다.

나는 계속해서 괜찮아 보이고, 좋아 보이고,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알맹이는 내가 알아서 챙길 문제였고, 속이 겉보기만큼 좋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상하고 부패해 뭉그러지지 않고, 걸친 옷만 잘 유지하면 될 일이었다.

이제 곧 정치라는 무대에 올라야 했다.

나는 배역의 과거사, 대사, 의상 등등 모든 것을 가급적 챙길 예정이었고, 청년대책위원회는 그중 하나의 옷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흐, 사무실로 가자.”

박 보좌관이었다.

어느새 차에 두 사람이 올랐는데, 꼴이 가관이었다.

이 의원은 웬 메달을 목에 건 상태였고, 양 보좌관은 누구한테 받은 건지 팔각모를 쓰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둘 다 할 군대 얘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 의원은 내가 사다 놓은 숙취해소 음료를 들이켜고, 양 보좌관은 물을 벌컥거리며 마셔댈 뿐 말은 없었다.

나는 두 전우를 태운 채로 동대문 사무실로 차를 몰아갔다.

* * *

카페에서 윤수혁을 만난 강석배는 들뜬 마음을 웃는 얼굴로 나타냈다.

청년대책위원회 부위원장 명함 200매와 은퇴한 원로 연락처를 건네고, 드디어 잔금을 수령했기 때문이었다.

윤수혁은 그 외에 별로 할 말이 없는 듯 금방 자리를 떴다.

청년대책위원회 설명도, 연락처에 관한 주의사항도 생략한 채였다. 그래도 강석배는 윤수혁이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굳이 돈이 아니더라도 뒷배가 있던, 정보가 있던, 윤수혁은 뭔가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두둑한 봉투를 품에 넣은 강석배는 윤수혁에 대한 생각을 지워 버렸다.

현찰 1,000만원을 품에 넣고 다니려면 다른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인사 청탁을 몇 번이나 받은 인사부장이라고 해도.

강석배가 그렇게 카페를 나가고, 먼저 나갔던 윤수혁은 근처에서 택시를 잡았다.

“신촌이요.”

기사가 운전을 시작하자, 윤수혁은 강석배에게 받았던 종이를 펼쳤다.

인쇄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함인지, 내용이 전부 수기로 기록되어 있었다. 거의 서른 명에 가까운 이름과 주소, 연락처 따위가 기재되어 있었다.

윤수혁은 그중 몇 명의 연락처를 핸드폰에 저장하고, 싸구려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명함 몇 장을 꺼내 지갑에 넣었다.

이윽고 택시가 신촌역에 도착하자, 윤수혁은 인도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오랜만이네.’

대학시절에는 번화가를 찾아 종종 온 곳이었지만,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발길을 끊은 곳이 신촌 거리였다.

술집, 고깃집 홍보용 전단지와 온갖 명함들이 길바닥에 널려 있는, 애들이나 놀법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윤수혁은 속칭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고위인사를 데리고 강남을 돌았었다.

이내 둘러보기를 그만둔 윤수혁은 종일 떠올린 술집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입구가 낯익은 가게를 확인한 윤수혁이 안으로 들어갔다.

“어? 형 왔어요?”

중산대학교 경제학과 후배인 최영석이었다.

그 외에도 윤수혁에게 문자를 보냈던 김민석 등, 같이 어울렸던 후배들이 술에 취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윤수혁은 최영석의 곁에 앉으면서 쌉싸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다.”

“아 형,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일이 좀 있어서. 너 이번 휴가 말출이라고? 군생활 얼마나 남았어?”

“28일요, 흐흐. 드디어 전역합니다.”

최영석이 불그스레한 얼굴로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을 대견하다는 듯 바라본 윤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 많았다, 나라 지키느라.”

“형, 갑자기 아저씨처럼 왜 그래요. 형도 작년에 전역 했잖아요.”

그 말에 윤수혁이 가볍게 웃었다.

“내가 이렇게 보여도 속은 서른여섯 정도 됐어.”

“아니에요, 형. 겉보기에도 부족하지 않아요, 완전 충분합니다.”

말을 마치고 둘이 낄낄거렸다. 그러면서 잡다한 대화를 나눴고, 유리컵에 몇 번이고 맥주가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맥주를 들이켜던 윤수혁이 가볍게 물었다.

“이제 전역하면 복학하겠네?”

“아뇨, 한 한기 휴학하려고요. 아니면 1년 휴학할 수도 있고요.”

“왜?”

“그냥…… 알바하고 이것저것 경험도 쌓고 그러려고요.”

최영석이 멋쩍은 미소로 대꾸했지만, 윤수혁은 그 속내를 알았다.

편모 가정에 부유한 친척도 없는, 흔한 서민층이 최영석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일반적인 이들처럼 살고 있으리라.

분위기를 전환하겠다는 듯 최영석이 밝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참, 형은 취업했다면서요?”

윤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영석이 윤수혁의 눈을 쳐다봤다. 전역을 앞둔 병장의 사회걱정이 드러난 시선이었다.

“어딘데요? 형, 혹시 거기 알바 같은 거 필요 없으세요?”

“알바하게?”

“네, 휴가 나오자마자 알바 알아보는데 최저도 안 맞춰 줘요. 이왕 할 거면 형이랑 하는 게 낫잖아요.”

시선을 옮기며 잠깐을 생각하던 윤수혁이 최영석을 바라봤다.

‘얘 정도면…… 괜찮지.’

생각해 보면 스펙을 제외하고 최영석만큼 괜찮은 사람도 없었다. 성실했고, 똘똘했으며 말도 잘 들었다.

물론 윤수혁의 기억 속에 그러한 사람이 숱하게 많긴 했지만, 그중에 최영석과 같은 연고로 맺어진 사람은 없었다. 업무, 혹은 줄타기에서 발생한 수직적인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어느새 윤수혁은 단어 하나를 떠올렸다.

충성.

연고주의로 묶인 충성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도 끈끈한 관계였다.

그동안 군부정권이 기울고, 여러 정권을 지나오면서 맹목적인 충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매수된 동료는 딴소리를 했고, 치명적인 내부 고발자가 더욱 늘어났다.

만약 충성을 만들 수 있다면?

윤수혁은 최영석의 눈을 마주하면서 대답했다.

“내가 한 번 알아 봐줄게.”

“진짜요? 아, 형 무슨 일 한다고 했죠? 공기관이었나? 그쵸?”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써달라고 뱉은 말에 윤수혁은 가볍게 웃었다. 잘만 가르치면 머리가 크기 전에 완전히 복종하겠구나, 생각하면서.

이내 윤수혁이 가볍게 대답했다.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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