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2. 눈이 뜨였다 (2)
“아, 그 친구?”
국회의원 이계진이 알았다는 듯 제스처를 취하더니 내게 가볍게 손짓을 했다.
“나하고 잠깐 얘기나 하지.”
나는 고개 숙여 대답하고 이 의원의 개인사무실로 들어갔다. 파티션이 놓인 보좌진의 공간과는 다른, 각재와 석고보드로 벽을 만든 공간이었다.
이 의원은 들어서자마자 입에 담배를 물었다. 이미 실내에는 담배 연기가 배어 있었다.
“이름이 뭐라고?”
“윤수혁입니다.”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 이 의원이 응대용 소파에 눕듯 앉았다. 이내 정장단추까지 풀자, 뱃살이 불룩한 와이셔츠 위로 넥타이가 굴곡지게 누웠다.
“보니까…… 여기 사무처 직원이 삼촌이라면서?”
“맞습니다, 의원님.”
“한 20년 했으면, 삼촌 부하 직원들이 꽤 되겠어.”
“예, 의원님.”
“그래, 자네 그거 때문에 뽑았어. 서울대 인재들이 줄을 섰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가서 잘 말씀드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하고만 말았다.
애초에 이력서도 국회 사무처 직원인 외삼촌이 내준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기껏해야 20대 중반의 대학 졸업생이 무슨 재주가 있다고 재깍 취업을 하겠는가?
부모나 친척 같은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뭐든 편한 때였다.
같은 중소기업이라도 연줄이 있는 곳에 가는 게 뭐라도 나은 법이었고, 나는 취업을 위해 외삼촌을 통했을 뿐이었다. 그게 내 10년의 행로와 죽음까지 결정할 줄은 몰랐지만.
어느새 담뱃재를 턴 이 의원이 눈짓을 했다.
“나가봐, 박 보좌관한테 일 배우고.”
“예, 의원님.”
나는 처음처럼 꾸벅 허리를 숙이고 의원실을 나왔다.
문을 나오자마자 4급 보좌관 박민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게 손짓했다.
“수혁 씨, 좀 와 봐.”
박 보좌관은 내 자리에 서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박 보좌관이 실실 웃듯 말을 꺼냈다.
“오기 전에 외삼촌한테 뭐 배웠어?”
“……그렇긴 합니다.”
손아랫사람에게 격의 없이 대하는 말과 태도였지만 별로 반갑지는 못했다.
동년배에 불과한 박 보좌관의 반말이 생각보다도 낯설고 마뜩잖을 뿐이었다. 처음 입장했을 때부터 그랬다.
박 보좌관은 죽기 전의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30대 중반으로 나는 같은 연배에게 반말을 들은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웬만한 청와대 국장급도 아는 얼굴이 아니면 내게 반말을 하진 않았었다. 보수의 중앙당 간부라는 허울이 있었고, 그 전에는 청와대에서도 급수(級數)는 낮았지만 국장소리를 들었다.
나이 많은 당의 의원들, 고위 간부들이나 말을 놨었지.
10년 전인, 그러니까 전생의 나도 같은 기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기분이 썩 좋지 못하다는 게 다였다. 그렇다고 해코지할 생각도 없었다.
박 보좌관은 대신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성격도 특별히 모난 데가 없었고, 실용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랬으니 서울대 출신의 지원자를 재끼고 나를 뽑았겠지.
어느새 박 보좌관이 말을 이었다.
“역시 너 같은 애들이 대학 번지르르한 애들보다 낫다. 내가 학벌 믿다가 헤매는 애들 숱하게 봤거든.”
중앙대학교 출신의 박 보좌관이 하는 말이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서울대 졸업생들이 국회 인턴하려고 이력서를 보내는 판국이었다. 이력서에 한 줄 남기려는 것인지, 정치계에 발이라도 담가 보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박 보좌관은 마우스를 쥐면서 화면 스크롤을 움직였다.
“알아서 홈페이지까지 다 들어갔고…….”
중얼거리듯 말하던 박 보좌관이 이내 사무책상 위를 쳐다봤다.
“영감님 스케줄도 인쇄했어? 그것도 이면지로? 이야, 에이쓰네, 에이쓰.”
박 보좌관의 손이 내 어깨로 왔다.
툭툭 몇 번 치더니 박 보좌관이 생각난 게 있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참, 운전은 얼마나 했다고 했지? 운전병 출신이지? 아니, 해군인가?”
“포병 전역했습니다. 운전은 10…… 1년 했습니다.”
“……11년?”
박 보좌관의 눈이 어리벙벙하게 변해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햇수를 들었으니 저런 표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얼른 정정했다.
“1년입니다.”
원래는 10년 넘게 운전했었다. 당연히 죽기 전의 나였고, 지금 가진 운전 경력이라고는 아버지 차나 가끔 몰아본 게 다였다.
다시금 박 보좌관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뭐 1년이면 웬만큼은 할 줄 알겠네. 어떻게 보면 네 주업무가 운전일수도 있어, 영감님 재선 때문에 동대문에 사무실도 만들어 놨거든. 거기랑 국회랑 왔다갔다 하실건데, 아! 영감님이 동대문 사무실로 가자고 하면 거기로 가. 이게 주소야.”
박 보좌관의 말과 동시에 손가락이 모니터에 닿았다.
그러면서 얼마 안 되는 인수인계가 이루어졌다. 홈페이지 사용 방법과 문방위 소관 부처와 관련한 사항, 당 내 주의 사항과 현재 국회 내 현안 따위들.
그 중에는 국회의 속사정도 있었다.
아직 국회선진화법이 논의되기도 전이었다.
국회를 좀 점잖게 만드는 국회선진화법은 2010년 말이 되어서야 나올 법안이었고, 지금은 법안 날치기와 몸싸움이 어렵지 않게 일어나는 때였다.
회의장 점거나 욕설, 고성방가도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이었고.
그랬기에 박 보좌관이 신경 써서 짧은 시간 내에 제법 많은 것들을 말해 줬다.
다 아는 것이긴 했지만.
간단한 인수인계가 끝나고, 수첩을 펼쳤다.
나는 앞으로도 아리아리한 기억을 바로잡고, 정리할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에 조금은 남아 있어야 했다. 299명, 항소까지 끝나고 의원직 상실한 인간들도 있으니 국회의원 290여명의 동향도 대충은 알아 봐야 했다.
지금 일들은 기억이 뚜렷하지 못했다.
애초에 정확하게 아는 것도 많지 못했다.
18대 국회야 발만 담근 상태고, 19대 국회부터 뭘 좀 꿰고 있을 뿐이었다.
내 주 무대는 몇 년 후의 청와대와 20대 국회였다. 그때 내 힘이 가장 셌으니까.
그래도 개족보와 다름없는 이해관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고, 굵직한 사건들은 웬만하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그런 건 함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럼 이제 대사(大事)도 계획할 때였다.
국회 동향 파악이나 감 잡는 게 내 일의 전부가 아니었다. 새한국당에 남고, 미래에 있을 위험부담을 감수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일 처리를 해야만 했다.
첫 번째로 자금 조달.
내게는 음과 양으로 쓸 실탄이 필요했다.
애초에 정치에는 많은 돈이 들어갔다.
국회의원 선거만 해도 공탁금 1,500만원의 열 배가 넘게 들어가는 게 기본이었다.
기본적으로 선거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홍보비, 각종 임대료 따위에 돈이 들어가겠지만, 아랫사람들에게로 뿌려지는 수고비나 상급자를 향한 대가성의 뇌물도 적지 않았다.
굳이 선거가 아니더라도 정치에서 꼭 필요한 게 이런 총알이었다.
김영란법인 부정청탁금지법이 언급되기도 전이었다.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게 금품수수였다.
그랬기에 우선 벌기 쉬운 검은 돈을 좀 주워 올 생각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뇌물 상납 장소가 몇 곳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 인근이었고, 조만간 한 바퀴 정도 돌 요량이었다.
당연히 거기서 원래 주인이 찾아가기 전에 돈을 꺼내올 생각이었다.
대개 손에서 손으로, 차에서 차로 옮겨지는 것이 보통이긴 했지만, 이런 돈도 꽤 있었다.
17년도에 성균관대 사물함에서 나올 2억 원이 그런 돈이었고, 간혹 뉴스에 나오는 소유주 불명의 현금 뭉치들이 그런 돈이었다.
다 찾아오면 아마도 십수 억은 넘지 않을까 싶었지만, 허탕을 치면 얼마나 회수할지 확정지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뭐 일단은 가봐야겠지.
그거 말고도 내게는 110억이라는, 땅 속에 묻혀 있는 돈도 있었다.
전북 김제시의 마늘밭에 매장된 5만원권 뭉치들.
한 포크레인 기사의 신고로 경찰에 발각되고, 결국에 모조리 회수 당하게 될 돈이었다. 뉴스에 나오는 게 2011년 4월경이니 최소한 10개월 정도의 유효기간은 있는 셈이었다.
그때 마늘밭에 관광객 수천, 수만 명이 몰려가서 기도하고, 셀카 찍고, 땅 파고 별 짓들을 다 했었지.
나는 자금 수거 외에도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했다. 계획이 틀어져서 써먹을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의 준비는 해 놔야 했다.
그럼 일단 수금 먼저 하러 가 볼까.
* * *
늦은 밤, 강남 한정식집.
VIP 홀 출입구를 지키던 도어맨이 다가오는 윤수혁을 쳐다봤다.
20대 중반의 외모에 정장 차림과 까만 선글라스, 구두, 넥타이, 손에 들린 종이백까지.
도어맨은 몇 발자국 앞까지 다가온 윤수혁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약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윤수혁은 대꾸하지 않고 도어맨을 바라봤다.
도어맨은 윤수혁의 짙은 선글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질문에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경멸의 분위기였다.
도어맨든 다시금 조심스레 윤수혁을 살폈다.
목에 걸린 신분증 끄트머리에서 글자가 보였다.
‘국회.’
손에 들린 종이백 안에도 비싸 보이는 와인 박스의 윗부분이 설핏 드러났다.
옷차림과 태도로 봤을 때, 윤수혁은 분명하게 이 안에 드나드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예약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예약자가 부른 사람일 것이었다.
판단이 선 도어맨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실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예약 리스트를 들고 있는 도어맨이 하는 일은 오직 하나였다.
문을 여는 것.
이내 도어맨은 버튼을 눌러 격자문을 열었다.
격자문을 드나드는 부류는 호랑이거나 호랑이의 권세를 빌린 여우였다. 물리고 싶지 않다면 그냥 여는 게 수순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면서 욕설을 하거나 상급자를 부르는 이들도 허다했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어느새 윤수혁이 들어가고 격자문을 닫은 도어맨은 얼른 예약 리스트를 살폈다. 시간대가 정해진 고객이었는지, 비서나 수행기사가 오기로 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최 올 사람은 없었다.
‘그냥 심부름인가…….’
도어맨은 예약 리스트를 두어 차례 뒤지다가 말았다. 예약 없이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안에서 전화해서 아랫사람을 부르는 경우였다.
이내 도어맨은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자세를 정돈했다.
그사이, 윤수혁은 홀에서 길게 뻗은 복도로 들어섰다.
시냇가에 나온 듯 물소리가 거문고 소리와 함께 자잘하게 깔렸고, 묵직한 색감의 원목 나무가 내부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방마다 비치된 격자문과 신발장은 설치된 등으로 은은하게 빛이 났다.
윤수혁은 그중 오직 신발장만을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움직였다.
이내 오래지 않아서 윤수혁은 대나무로 만든 신발장 앞에서 멈춰 섰고,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마침 신발장 옆의 격자문 안쪽은 어두컴컴했다.
잠금 장치가 없는 신발장 문을 연 윤수혁이 안을 확인했다.
돌돌 말린 쇼핑백 하나.
손으로 집어든 윤수혁은 태연하게 와인 종이백 안에 잘 말린 쇼핑백을 넣었다.
‘5천쯤.’
손으로 전해져오는 무게감에 윤수혁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환한 웃음을 짓거나 주먹을 꽉 쥐진 않았다. 오히려 미소에도 자조가 섞여 있었다.
‘확률이 반 밖에 안 되네.’
한정식집이 네 번째였다.
윤수혁은 대형마트의 캐비닛, 지하철역의 사물함, 공원 주차장의 트렁크를 지나왔고 그중 한 곳에서 3천만 원 정도를 수거했었다.
윤수혁은 처음 돈을 회수했을 때는 얕은 기쁨을 만끽했었다. 5만원권의 색깔을 보고, 지폐의 질감을 느끼면서 현찰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허름한 공중화장실에서 본 잠깐의 볼일일 뿐이었다.
돈을 확인하기까지 윤수혁이 감당해야 하는 긴장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관제센터에서 확인 가능한 카메라가 있는지, 주변 차량의 백미러에는 블랙박스가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증인이 되거나 물증이 될 만한 것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현찰 거래 장소가 대부분 증거가 남지 않는 곳이었지만, 윤수혁은 거래 대상이 아닌 도둑이었다.
잡혀서도, 발각되어도 안 되는 존재였다.
이내 윤수혁이 태연하게 몸을 돌리고, 들어왔던 격자문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앞을 바라보던 윤수혁의 시선이 선글라스 안에서 떨렸다.
알아볼 수밖에 없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