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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99화 (200/219)

-199화

메르실라는 카이엔이 신성력을 쓰는 걸 봐주다가 며칠 뒤 다시 에밀로 돌아갔다.

성녀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떠나면서, 다음에는 이런 일 말고 정말 평범하게 만나러 오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에밀은 사리반의 중심까지 거의 도달했다. 하나 그들이 그자를 막을 수 있을 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카이엔은 바이스에게 사트로누스를 방으로 데려와달라고 했다.

말은 통하지 않겠지만 사트로누스는 영리하니까 바이스가 손짓하면 알아서 따라올 것이다.

“그릉.”

- 뭐냐.

불만스러운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트로누스가 도착했다.

요즘 덩치가 더 커진 게 살이 찐 건지 성장한 건지 털이 찐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카이엔은 사트로누스에게 손짓했다.

“할 말이 있어서.”

“으르릉.”

- 평소에는 알아서 오더만.

“내 방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밖에서 하면 다른 사람이 들을 수도 있잖아. 바이스 너는…”

“제 할 일 하고 있겠습니다.”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하라며 바이스는 가버렸고 사트로누스는 얌전히 카이엔에게 다가갔다.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그의 바로 앞까지 가서 자리 잡고 앉았다.

카이엔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트로누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르르-”

- 갈 거냐?

“응? 아… 눈치챘어?”

“킁.”

- 네가 할 말이야 뻔하지.

그런 건가?

민망해져서 카이엔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방에서 이야기하면 그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사람은 바이스뿐이었다. ‘사람’으로 한정지으면 바이스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에는 몬스터도 있지 않았나.

분명히 서랍장 위의 제집에 있었을 소금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그의 바지를 잡고 등반을 하더니만 그의 무릎 위까지 올라왔다.

“찍! 찌익-!!”

- 너! 또 어디 가냐!

“헉.”

소금이는 열심히 찍찍댔다.

“찍! 찍찍, 찌익!!”

- 맨날 혼자 어딜 가는 거냐! 나도 같이 가!

“위험해서 안 돼.”

“찍!”

- 아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위험하대?

“하긴 넌 모르겠구나…”

- 말해줘야 알지.

그 말에 카이엔은 멈칫했다.

작은 햄스터 몬스터인 소금이는 그런 그를 쳐다보았다.

작고 까만 눈이 카이엔을 응시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소금이가 말했다.

- 나는 너하고 밖에 말이 안 통한다. 페이리가 어떻게든 나랑 대화해보려고 하는데 기껏해야 호불호나 산책하는데 같이 갈 건지에 대한 것뿐이야.

“…미안.”

- 알면 됐고.

소금이는 삐진 척하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홱 돌렸다, 라고 해도 햄스터라서 어디가 목인지 잘 구분이 되진 않았지만 일단 옆을 돌아보았으니 고개를 돌린 셈이다.

카이엔은 손가락으로 소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는 말이었다.

몬스터와 말이 통하는 그만이 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다들 지루했을 거다. 영문을 몰랐을 거다.

왜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카이엔은 천천히 입을 열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간략하게 사트로누스와 소금이에게 설명해주었다.

긴 이야기였지만 둘 다 잠자코 그가 하는 말을 들어주었다.

- 고생하네.

- 힘내라.

“어…”

이야기를 다 해주고 나니 두 몬스터에게서 심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 둘한테 응원을 받으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솔직히 사트로누스라면 모를까, 소금이는 그가 한 이야기 중에서 얼마나 이해했을까?

조그마한 햄스터도 생각할 줄 알고 꿈도 꿀 수 있었지만 그가 한 이야기는 소금이가 이해하긴 너무 어려웠을 거다.

역시나 소금이는 이렇게 물었다.

- 넌 왜 이렇게 바쁘냐? 옛날엔 안 그랬는데.

“그러게.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또 가게 되면 언제 올지 모르구나.

카이엔은 멍하니 소금이를 쓰다듬어주다가 소금이가 그의 손가락에서 벗어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야 해.”

사트로누스와 소금이를 데리고 그는 밖으로 나갔다.

정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플루토는 그가 오는 걸 눈치채고 헥헥거리면서 달려들었다.

오랜만의 몸통 박치기에 휘청거리면서 카이엔은 플루토를 잡았다.

“기, 기운 넘치네…”

“멍!”

“멍멍!”

“왈!”

- 안녕!

플루토를 바닥에 내려놓으니 열심히 짖으면서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놀아주라고 바짓가랑이를 물어뜯는 플루토를 조심스럽게 떼어놓으며 카이엔은 작은 목소리로 사트로누스와 소금이에게 해줬던 이야기를, 플루토에게도 해주었다.

아직 덜 자란 케르베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린 몬스터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세 개의 머리를 차례대로 쓰다듬어준 뒤 카이엔은 릴리시아에게 갔다.

여전히 말미잘을 닮아있는. 그 이상 진화하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알라우네의 몸통을 톡톡 두드렸다.

“릴리시아.”

- 응?

촉수 하나가 내밀어졌다.

그것과 악수를 하며 카이엔이 입을 열었다.

“나, 조만간 또 멀리 나갔다 올 거야.”

그 순간 다른 촉수들이 더 튀어나와서 카이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카이엔은 피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절대 못 간다고 말하는 것처럼 촉수로 그를 붙잡아서 제 몸통에 찰싹 붙여버리자 카이엔은 침음을 흘렸다.

쓰다듬어주면서 말하고 싶은데 릴리시아가 꽉 붙잡고 있어서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대신 그는 평소보다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그렇게 됐어.”

- 왜?

가까이 붙어서일까. 목소리를 내는 릴리시아의 몸통이 사르르 떨렸다.

“음, 해결 못 하면 다 죽을지도 몰라서. 내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남이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고.”

- 같이 가자.

“넌 못 가. 몸체가 너무 크잖아.”

- 나도 가고 싶어.

릴리시아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카이엔을 보고 싶어도, 그가 와줘야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에 또 오랜만에 릴리시아가 불평했다.

- 치사해.

“미안.”

- 나도,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

“예전엔 뿌리가 깊지 않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네 뿌리도 더 두꺼워지고 땅에 깊숙이 박혔을 거야. 옮겨주고 싶어도 옮길 수가 없네.”

- 움직이고 싶어.

칭얼거리는 릴리시아를 달래며 카이엔은 한참 동안 붙잡혀있어야 했다.

촉수 때문에 릴리시아의 몸통이 꽁꽁 묶여있는 그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만 이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바이스에게 보고하러 가는 것이었다.

물론 바이스가 와도 별다른 대책은 없었다.

릴리시아한테 잡혀있는 카이엔을 보더니 잘 놀아주고 있냐며 웃곤 바로 가버렸다.

겨우겨우 릴리시아에게서 풀려난 카이엔은 구겨진 옷을 대충 털어서 펴고 이번엔 다락방으로 향했다.

노크를 했는데 답이 없었다. 의아하게 여기며 문손잡이를 돌리자 바로 문이 열렸다.

확장 공사를 한 다락방은 널찍했다.

사방에 있는 책이며 벽의 지도가 마치 학자의 방 같았다.

페이리는 침대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카이엔이 들어온 지도 모르고 책에 열중해있는 그녀의 얼굴에 있는 안경을 보고 카이엔이 놀라서 물었다.

“페이리? 시력이 떨어졌어?”

“네? 어, 아, 그, 그건 아니고…”

카이엔의 목소리에 페이리는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렸다. 반사적으로 책을 덮어버리고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멋있어 보여서요…”

부끄러운 듯 웃으면서 페이리는 몸을 일으켰다. 많이 놀란 모양인지 양 뺨이 발그스레해졌다.

“무슨 일이세요?”

“조만간, 또 멀리까지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서. 모두에게 말해주고 있어. 그, 내가 매번 말도 없이 나갔잖아. 다른 녀석들한테는 말해도 사트로누스도 플루토, 릴리시아한테는 말을 안 해줬으니까.”

“그렇긴 하죠. 저야 다른 분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을 수 있지만 다른 애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내가 제대로 설명해줬어야 했는데. 후회하고 있어.”

“지금이라도 아셨으면 됐죠. 집을 잘 지키고 있어야겠네요.”

페이리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자 카이엔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 떠날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다들 그가 떠난다고 해도 이전처럼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적은 지금까지 만난 그 누구보다도 강대한 상대였지만, 그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처럼.

그는 분명히 돌아올 테고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힘들었다고 투덜거리면서 하소연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

프라우디에는 정령과 소통하면서 땅의 기운을 읽었다.

흑마법을 잃어서 텅 빈 속을 다른 힘으로 서서히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워낙 그릇이 넓은 탓에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령들은 자신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라우디에를 힘껏 도왔다.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깨부수며 유린하는 적.

신에 필적할만한 힘을 가지고 신을 노리는 존재.

지금까지 조용하던 이가 다시 눈을 뜬 이유는 무엇일까. 활동하는 이유가, 비단 세계와 소통하는 그를 발견해서일까?

원한다면 리치왕의 라이프 베슬 따위는 이미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설마…’

신전에서 있었던 일은 그도 들었다.

오직 마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그 성역에, 그 불길한 것이 침입해 카이엔을 위협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전에도 이따금 자신이 보고 있다는 신호를 주었던 마신은 언제부턴가 신호가 끊겼다.

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악마들이, 적어도 앙그라 마이뉴만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 마신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진 않았으리라.

그런데 그자는 왜 카이엔을 노렸던 것일까?

카이엔은…

‘원래대로라면, 악마의 눈으로 봤을 때도 이미 오래전에 죽었어야 했던 사람.’

다만 악마가 그를 발견해 약간의 조작을 가했다.

몬스터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

그로 인해 적의 술수로 만티코어에게 찢겨 죽었어야 할 어린 왕자는 살아났고 그 이후로도 그의 곁에는 인간이 아닌 이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그런 존재이기에.

악마의 개입으로 운명이 바뀌어버렸기에, 카이엔이 하는 일들이 모조리 그자의 예상에서 벗어나고 있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인가?’

생각을 정리하며 프라우디에는 정보를 확인하고 분류하는 데 집중했다.

정령들의 도움으로 사리반의 중심지와 적의 약점을 알아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자의 기운이 강한 곳일수록 정령들이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런 식으로 위치를 알아내려고 해도 함정 구역이 꽤 많이 분포되어있어서 잘 가려낼 수 없었다.

물론 예상가는 구역이 있긴 했다.

이전, 사령 기사로 인해 복구되고 있는 겔로스의 중심부라고 그는 추측했다.

불안한 지역일수록 괴이한 종교가 판을 치기 좋으니까.

‘끝을 내는 건.’

나인가 카이엔인가.

무슨 수로 놈의 목숨을 끊어야 하는가.

리치왕조차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걱정이 프라우디에의 마음속에 싹텄다.

리치왕은. 루레이스는 그에게 건 모양이지만 프라우디에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 역시 정신세계에서 루레이스가 어떤 이들과 싸웠는지 볼 수 있었다.

가늠할 수 없는 힘을 지닌 그 자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 천 년 전보다 더욱 이 세계에 적응해 장악력을 늘려나갔는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없다고 해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를 믿어주고 곁에 있어 준 카이엔과 모두에게 보답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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