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루레이스는 그곳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기에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고향.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는 정처 없이 떠돌았다.
흑마법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인간의 정신과 심리에 작용하는 힘에 대해 공부하는 것.
생명을 가진 것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어떻게든 그것을 피하려고 하고 그것의 무섭지 않은 부분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알 수 없는 신비한 저 너머의 세계를 힐끗거리면서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하는 거다.
이들은 자연적인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사후세계에 대해 논의하며 영혼과 소통한다.
두 번째가 흔히 흑마법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인 시체와 영혼을 조종하는 것이다.
루레이스는 두 가지 모두 능했지만 죽음 자체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녀는 정처 없이 헤매면서 여러 가지 죽음을 목격했다.
아사당하거나
맞아 죽거나
칼에 찔려 죽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늙어 죽거나
사고를 당해 죽거나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했다.
사랑했던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안부 인사를 할 수 있게
자신을 죽인 자에게 복수에 찬 외침을 할 수 있게
위험으로부터 경고를 하기 위해
수많은 죽음이 있었고 수많은 유언이 있었다.
수십 수백 수천 가지의 소원이 있었고 원망이 있었다.
그녀는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떠들어대서 귀찮을 땐 그중 가장 성가신 녀석을 붙잡아 먹어버리면 조용해졌다.
그렇게 인간들과 엮이게 되었다. 물론 길진 않았다.
더 많은 죽음을, 세상을 보기 위해 그녀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마녀니 뭐니 하는 꼬리표가 붙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를 해치려고 하는 자들은 스스로의 두려움에 파묻혀서 제 목을 조르며 죽어갔다.
그녀는 무덤덤해도 악령들이 더욱 난리를 치는 것이다.
움직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녀와 같은 흑마법사를 만나기도 했다.
죽음에 대해 연구하고 있던 자들과의 대화는 식견을 한층 높여주었다.
언데드를 가지고 놀던 자들과의 싸움은 그녀의 실력을 향상해주었다. 죽이지 않고 살려놓으니 스승으로 모시겠다며 엎드리는 놈도 있었다. 악령들이 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교단과도 만난 적이 있었다.
무턱대고 싸우려는 놈들도 있었지만 대화를 시도하는 자도 있었다. 대화를 하게 되면 어째선지 다들 그녀를 동정했다.
흑마법사의 연구실에 잡혀 와서, 좀 재능이 보인다며 키워졌고 과거의 기억 따윈 없다는 것이 동정의 이유가 되는 건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녀에겐 가치가 없었기에.
이상한 집단을 만나게 되었다.
죽음의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기에 쫓아가다가 오래전부터 그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는 집단과 마주쳐서 동행했다.
어둑한 신전의 안까지 들어갔고, 그것을 보았다.
검은 것 같으면서도 푸른색을 띄고 있던 불꽃이 있었고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자들은 그 불꽃을 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이미 미친놈들을 많이 봤었고 이질적인 기운의 불꽃이 원인이란 걸 알게 돼서, 그녀는 불꽃을 제거하려고 했다.
동행했던 자 중 몇 명이 발광했다.
어떻게든 영혼을 살피려고 했지만 깨진 거울처럼 쩍쩍 금이 가서 붙일 수가 없었다.
그녀가, 모처럼 당황했을 때.
천둥소리와도 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하하하하하하흐하으흐흐흐
- 찾았다찾았다찾았다내가제일먼저찾았어
- 이/런/곳/에/있/었/구/나
머릿속에 직접 날아와 박히는 것만 같은 음성.
이교도들은 불꽃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었다.
바닥에 드리워진 불꽃의 그림자만이 쑥 커졌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모습의 그림자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이제 됐다. 이곳도 끝이다. 성공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 너를 찾고 있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지 않는 너를!
루레이스는 미친놈 보듯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자는 그녀의 발밑까지 몸을 늘렸다.
- 나의 매개체가 되어라. 함께, 이곳을 집어삼키자꾸나.
“정신 나간 놈이었군.”
루레이스가 손을 휘젓자 불꽃이 크게 일렁이지만 꺼지지 않았다.
인상을 쓰고 루레이스는 불꽃을 없애버리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헛수고라고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귀에서 피가 흐르고 루레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함께 온 이들은 이미 쓰러진 지 오래였다.
- 아이야 아이야 어찌하여 그런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밖에 들리지 않는 거냐. 분별력 없는 영혼들에게 가려져서 세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냐. 네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 네가 세계이고 세계가 너이거늘. 그자가 너를 선택했건만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가. 나에게는 잘된 일이지만.
- 너를 버린 자들을 너 역시 버리거라. 내 손을 잡고, 함께 가자꾸나. 내게는 네가 필요하다.
짐짓 상냥한 척 꾸며대는 목소리가 가증스러웠다.
어떻게든 움직이지 않는 발을 떼어내고 도망쳤다.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미 너를 한번 봤으니까,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다는 외침이었다.
이미 망가진 마음이라고 생각했건만.
더이상 닳을 것도 없다고 여겼건만.
그녀는 그때, 두려움을 느꼈다.
달리고 달려서 신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거대한 동굴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니 눈이 멀 것만 같은 햇빛이 그녀를 향해 내리쬐었다.
너무나도 어둡고 어두웠던 저 안과는 달리 바깥은 너무나 밝았다.
잠시 눈을 찡그리고 앞을 바라보니 무언가가 그녀의 앞에 있었다.
…이전부터 언뜻언뜻 보였었던, 검은빛 덩어리였다.
그것은 그녀의 주변을 포르르 날아다니다가 모습을 감추었다. 아니, 그녀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곁에 있는 걸지도 몰랐다.
“괜한 것을 보았군.”
그 목소리에 카이엔과 비셰는 깜짝 놀랐다.
루레이스 미오소티.
이제서야 이름을 알게 된 리치왕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힐끗 쳐다보곤 입을 열었다.
“기억이라, 영향은 없는 듯하지만…”
“저것은 무엇입니까?”
“모른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저것을 알려고 했지만 알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죽기로 했다.
“네??”
“보면, 알게 되겠지.”
그녀는 체념한 듯 고개를 돌렸다.
기억은 계속 이어졌다.
다시 정처 없이 떠돌던 중, 그녀는 누군가와 만났다.
눈에 별을 박아넣은 듯한 청년에게 그녀는 딱히 뭘 해주진 않았다.
그저 청년을 괴롭히는 자가 길을 막고 방해를 하고 있었기에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입을 놀리는 게 시끄러워서 닥치라고 했다.
입이 난폭하고 하는 행동이 경박하니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거리에서 봤었던. 괴롭힘을 당하던 청년이 그녀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허둥거리면서 어제 그를 괴롭히던 자가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완전히 망가져 붕대로 꽁꽁 싸매게 되었다고 전했다.
“꼴 좋군.”
“그,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에요! 당신한테 보복하겠답시고 몰려오고 있을 텐데…!”
“너도 그러려고 온 건가?”
“저, 전 그냥 감사 인사를 하러…”
“감사?”
“…어제,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청년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루레이스는 아무런 감흥 없이 그 인사를 받았다.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런 인사 정도는 많이 받아봤다.
그저, 그녀를 쫓아오는 녀석들이 있다는 모양이니 괜한 사람 더 잡기 전에 가야겠다며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청년은 우물쭈물하다가 그녀를 따라왔다.
“어디로 갈 거예요?”
“다른 곳으로 가야지. 마주치면 귀찮은 일이 생길 테니.”
그러나 마을을 나서기 전에 그들은 발각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무기를 든 장정들이 그들을, 정확히는 루레이스만을 둘러쌌다.
청년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인지 남자들은 손에 든 무기를 들이밀며 위협 조로 말했다.
그 사이에는 어제 다리를 다쳤다는 이도 끼어있었다.
“대체 무슨 저주를 쓴 거지? 도대체 뭐 하는 년이냐!”
“마녀임이 틀림없어. 저 얼굴이며 비쩍 마른 꼴을 보라지!”
“마녀! 마녀라면 가만히 둘 수 없지.”
“저주가 아니라 네놈의 그간 행실이 잘못 돼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뭐야?”
“전부, 말이다.”
“무슨 헛소리를…!”
“죄 없는 동물을 걷어차고 굶기고 죽였다. 처음부터 기분이 나빴던 주제에 길 가다가 부딪쳤다면서 행인을 무차별 폭행. 결혼사기. 웃는 얼굴이 기분 나쁘다면서 시비, 폭행. 폭행 사주, 명령을 받아서 실행. 살인 역시 있고. 바람을 피운 주제에 들통나는 게 겁나서 상대 여자가 임신하자 살해. 간통.”
한 명 한 명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루레이스는 그들이 저지른 죄를 읊어나갔다.
그녀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아서 아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붙은 원혼들이 알려주는 대로 입에 담을 뿐이었다.
그녀를 포위하고 위협하던 이들은 어느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뒷걸음질 쳤다.
“아, 악마가 쓰였다! 그런 게 분명해!”
“어디서 그딴 말을 함부로 해대는 거야? 네년이 뭘 안다고!”
“마녀다! 죽여!”
그녀만 없앤다면 제 죄가 드러날 일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들은 일제히 루레이스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녀에게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발밑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몸을 타고 기어 올라와 장정들을 옭아맸다. 그 안에서 악령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억울한 죽음을 외치면서, 너도 똑같이 당해보라며 귀기 어린 목소리로 외치며 저주에 찬 말을 토해냈다.
“어…”
청년은 눈을 깜빡였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비명을 지르더니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쓰러지는 걸 보고 그는 눈이 동그래졌다.
거품을 무는 녀석도 있고 엎드려서 잘못했다고 비는 놈도 있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는 루레이스의 얼굴에 표정 변화는 없었다. 조금 더 쓰레기를 보는 것 같은 눈을 하고 있긴 했지만.
청년이 물었다.
“어, 어떻게 한 거예요?”
“죄책감을 느끼는 자는 그것으로 옭아맨다. 죄책감이 없는 자는 보다 더한 무력으로, 공포로 찍어누른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 루레이스는 손끝으로 청년을 가리켰다.
“너는.”
“너 자신을 죽이려 하지 말지어다.”
그 말을 끝으로 루레이스는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이제 할 일은 다 끝났다.
그녀의 힘을 빌려 제 원한을 갚을 수 있게 된 악령들은 복수를 마치고 제 발로 명계로 돌아가거나 피 맛을 잊지 못하고 더한 악령이 되어 그녀의 그림자에 매달리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쓰레기들의 목숨은 그녀가 알 바가 아니었다.
악령들이 실컷 가지고 놀다가 살리든지 죽이든지 할 터. 물론 죽어도 악령들에게서 벗어나진 못할 테지만.
그런 그녀의 뒤를 청년이 따라왔다.
“같이 가요! 어디로 가시는 건진 모르겠지만… 저도 같이 갈래요!”
루레이스는 그를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급하게 그를 따라오는 청년은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도 굴하지 않고 그는 그녀를 쫓아왔다. 몇 번이고, 그는 넘어졌다.
“저, 저 이제 그곳으로는 가지 않을 거예요! 부탁이에요, 따라가게 해주세요!”
“이미 따라오고 있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건…”
루레이스는 제 갈 길을 갔고 그런 그녀의 뒤를 청년이 계속 쫓아왔다.
옆에 서지 못하고 뒤만 쫄래쫄래 따라오는 식이었다.
“잠시만요, 잠깐만… 악!”
그러나 계속 넘어지고 부딪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결국 앞서가던 루레이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넘어진 청년을 부축해 일으키고 어깨와 다리를 털어냈다. 먼지라도 묻은 것처럼 팍팍 털어냈다.
아마, 그녀가 귀찮아할 것을 알고 악령들이 방해해댄 모양이었다.
몇 번이고 넘어져서 옷도 찢어지고 팔다리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그 얼굴은, 가히 사람들이 ‘아름답다’라고 칭송할만한 조각상 같은 미모였지만 루레이스에겐 아무 감흥도 없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그녀가 말했다.
“악몽이 두렵지 않다면.”
“영혼이 무섭지 않다면.”
“죽음이 너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는 것에 미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따라와라.”
그 말을 끝으로 루레이스는 다시 뒤돌아서서 제 갈 길을 갔다.
청년은 절뚝거리면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이름…”
그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름이라.
이름이라면.
그 흑마법사가 지어준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루레이스. 미오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