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리치왕…?”
“누구지.”
음산한 목소리였다.
마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녹이 슬어버린 톱니바퀴를 억지로 돌려서 내는 소리 같았다.
삐걱이고 있으며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기괴했다.
소름끼치는 목소리에도 신경쓰지않고 카이엔은 한 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프라우디에가, 그 아이가 당신에게 가보라고 했어.”
“…쓸데없구나.”
“바깥에, 당신과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알고있다.”
‘쓸모없구나’
그는, 그녀는, 리치왕은 작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그녀가 말했다.
“나는, 죽으려고 했건만.”
“결국엔 죽지 못했고 또다시 몸을 얻고 말았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건지는 아무도 모를테지.”
녹슨 목소리는 말을 거듭해나갈수록 그 녹이 벗겨졌다.
그러나 여전히 날카롭고 매정했다.
날선 칼로 유리를 긁고 깨부수는 것만 같았다.
그저 목소리만 들렸지만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을 압도하는데에는 충분했다.
천 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녹슬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리치왕이 말했다.
“돌아가라. 나는 영원히 잠들테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카이엔의 말에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난 스스로 내 삶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와서 부활이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물론 그녀의 목소리엔 웃음기 따위는 실려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독한 권태와 체념이 서려있었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해결하라.”
“이런 말 하는건 저도 싫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주범이 당신과 연관되어있어서 그런거예요.”
비셰가 한 마디 보탰다.
허나 리치왕은 무덤덤했다.
프라우디에는 리치왕을 찾아가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들이 아는 이가 아니었다.
이따금씩 튀어나와서 프라우디에에게 도움을 줬던 ‘리치왕’과는 전혀 달랐다.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해야했기에 카이엔과 비셰는 열심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상황이 굉장히 위험합니다. 천 년 전 당신이 쓰던 힘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간 흑마력을 쓰고있어요. 당신을 만나겠다는 일념하나로요.”
“제발 같이 가주세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리치왕, 우린 당신에 대해 아는게 없습니다. 왜 거부하는건지 이유라도 알려줘요.”
“맞아요. 프라우디에도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왜…”
“시끄럽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붙이는게 귀찮았던건지 리치왕이 손을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불면서 카이엔과 비셰를 넘어뜨렸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간 끝에, 그들은 다시 프라우디에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자신의 발치에 엎드려 쓰러진 두 사람을 보고 프라우디에가 물었다.
“어… 뭐하고 계세요?”
“끄응-”
“쫓겨났어…”
“아…”
프라우디에는 자신의 설명이 모자랐음을 깨닫고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드렸어야했는데…”
“아냐. 그런데 우리가 만나게 진짜 리치왕인가? 그럼 그때 티아마티스 님 때문에 나타났던건 누구지?”
“차차 알게 되실거예요. 음… 왜 그 사람이 밖으로 나오려하지 않는지 알려드릴게요.”
카이엔과 비셰가 몸을 일으키자 프라우디에도 바닥에 쪼그려앉았다.
“저도 이렇게 되고 나서야 알게된거지만요.”
“반응이 좀 이상하긴 하더라.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했던 악의 축이라면 부활을 쌍수 들고 환영했을텐데…”
“절대로 자기가 나타나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저는 일부라서 자세한 사정까지 알려줄 수는 없지만…”
프라우디에가 손을 젓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커다란 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 문을 가리키며 프라우디에가 말했다.
“저 안에 들어가면 알 수 있을거예요. 어째서 리치왕의 라이프 베슬을 심어 만들어진 호문쿨루스인 제가 이런 성격을 가진건지, 갈라진 인격이 존재하는지 모두요.”
“문…”
“알았어. 가자, 비셰. 얼른 확인하러가자.”
“네!”
의식 세계의 안에서는, 그들 역시 힘없는 존재임에 불과했지만 카이엔과 비셰는 진실을 알기위해 한 걸음 내딛었다.
무거워보이는 문은 그들이 손을 대자 스르르 열렸다.
어둠 속에서 빛이 쏟아졌고 두 사람이 들어가자 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
문 너머로 들어간 그들의 눈에 맨 처음으로 들어온건 한적한 마을의 광경이었다.
천 년 전도, 지금과 별다를게 없어보였다.
크고 작은 통나무집들이 모여 이룬 작은 마을에는 어린아이들도 부모님을 도와 밭일을 하고 있었다.
카이엔과 비셰는 영체 형태로 둥둥 떠다니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작은 마을답게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들은 곧 은발의 소녀를 발견했다.
은빛 머리카락에 두건을 둘러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게 한 아이는 7-8살 정도로 보였다.
손과 얼굴이 흙투성이가 되어서는 밭에서 채소를 캐기도 하고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 소녀가 리치왕의 유년 시절임을,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아무래도 그녀의 기억 속인 모양이었다.
“…어렸을 적 모습은, 프라우디에랑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게요.”
일이 힘들지도 않은지 소녀는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일에 열중했다.
앙 다문 입이 상당히 고집스러워보이는 아이였다.
그 뒤로 평범한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녀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이웃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다.
이 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그녀가 훗날 세계를 멸망 가까이 밀어넣었던 존재라는걸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평범하고 평화로운 나날은, 어느 날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엉망이 된 마을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언데드들이 마을을 휩쓸었고 사람들을 죽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지만 어른도 어린아이들도 구속당했다.
특히 어른들은 저항하지 못하게 사지가 한 군데씩 꺾이거나 잘려나갔다.
무서워서 엉엉 우는 아이들 사이에는 훗날 리치왕으로 불리는 소녀 또한 끼어있었다.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해 떨리는 눈으로 주변의 참사를 보고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흑마법사의 연구실로 끌려갔다.
기억이 흘러가면서 두 사람을 둘러싼 배경도 바뀌었다.
“이건…”
“헉…”
어두운 감옥.
사방에서 들리던 울음소리는 점점 가느다랗게 변했다. 대신, 비명소리는 끊어질 듯 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곳에는 같은 마을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잡혀온 것 같은 아이들도 있었다.
며칠동안 감옥에 갇혀있던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다른 감옥으로 옮겨졌다. 아니, 그것은 감옥이라기보단 우리에 가까웠다.
그들은 흑마법사의 입장에선 실험용 동물일뿐이었다.
그리고 잡혀간 그들은, 다른 이들이 눈 앞에서 산채로 끌려가 실험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버둥거리는 몸을 수술대에 고정시키고 산 채로 배를 갈라 장기를 빼내거나 머리를 쪼갰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심장에 대고 흑마법사가 무어라 주문을 외우자 심장이 검게 물들고 쪼그라들더니 그 안에서 기이한 괴물이 나타나 심장을 파먹으면서 몸체를 불렸다.
기괴하고 끔찍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에 다들 정신이 나간 것처럼 울부짖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라고 해서 다를건 없었다.
그저,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눈도 감지 못하고.
텅 빈 눈에 그 광경을 모조리 새길 뿐이었다.
피 냄새 때문에.
비명 소리 때문에.
울음 소리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억눌렀다. 저절로 표정이 사라졌다.
그러자 흑마법사가 하는 연구며 실험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저렇까지 하는건지는 몰라도 어떻게 하는건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은 감옥에 갇혀있는 아이들의 수가 하나 둘 줄어들었다.
코에서 흘러내린 피를 닦아내, 그녀는 마법진을 흉내낸 낙서를 바닥에 그렸다.
흑마법사가 아이의 몸에 악령을 빙의시킬 때 했던 행동을 따라했다.
철창 밖으로 손을 뻗어 가까이 있던 책을 끌어와 종이 한 장을 찢었다.
잘 움직이지않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접어 만든 엉성한 새를 마법진에 올려놓았다.
올려놓은 것만으로는 마법이 발동되지 않지만 그녀가 만든 마법진에, 피에, 마력에 반응해서 소환이 성공했다.
그녀가 만든 종이 새에 악령이 깃들어 움직였다.
자신의 연구실 안에서 흐른, 자신의 것이 아닌 마력을 눈치챈 흑마법사가 감옥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끔찍할 정도로 입꼬리를 올리고 웃던 흑마법사는 그녀의 족쇄를 풀어주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흑마법사의 조수가 되었다.
원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해서 흑마법사의 책장에 꽂혀있는 책의 저자들의 앞 이름을 따서 그녀의 이름은 ‘루레이스’가 되었다.
흑마법사의 크고 작은 심부름을 하면서 그녀는 연구실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주로 실험에 쓸 약초나 독초를 채집해오거나 덫을 살펴서 거기 걸린 동물들에게 마취약을 먹여서, 골렘을 이용해 데리고 오는 등의 일이었다.
간혹 덫에 사람이 걸릴 때도 있었지만 이미 망가진 마음은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녀가 덫에 걸린 사람을 데리고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흑마법사는 뭐가 그리 좋은건지 기뻐하면서 그녀를 칭찬했다.
물가에 핀 꽃을 가져왔다. 아무 이유 없었다.
약초도 독초도 아닌 쓸모없는 꽃이었다.
한 손에는 실험 재료가 든 가죽 주머니를 든 채, 다른 한 손에 푸른색 꽃을 들고 온 그녀를 보고 흑마법사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성을 지어주지 않았군. 미오소티로 하도록 하지.’
그녀의 이름은 ‘루레이스 미오소티’가 되었다.
표정을 잃었다.
감정도 잃었다.
기억도 잃었다.
더이상은 잃고싶지 않았기에.
흑마법사를 죽였다.
같이 잡혀왔던 사람들은 죄다 죽거나 미치거나 언데드가 되었다. 남은 이는 없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던 그녀를 알던 이들은, 그녀가 아는 이들은 이미 이곳에 없었다.
감옥에는 또다른 ‘실험체’들이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할지는, 알고있었다.
리치왕의, 루레이스 미오소티의 기억 속에서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본 카이엔과 비셰에게 그녀의 속마음이 흘러들어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끔찍한 일을 겪은 어린 아이는 자기가 보고 들은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과거 흑마법은… 지금의 저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네요.”
흑마법사는 물론 끔찍한 실험도 자행했지만 학문적으로 파고든 부분도 있었다. 루레이스는 그쪽으로 꽤나 재능이 있었다.
‘실험체’들을 모조리 처리하고 나서 그녀는 밖으로 나섰다.
죽여달라며 다리를 붙잡는 이들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녀처럼 끌려왔던 이들은 모두 연구실에서 살아서 나가지 못했다.
이미 죽은 자, 죽진 않았지만 미쳐버린 자, 숨은 붙어있지만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자.
루레이스는 그 모든 이들의 숨을 끊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을 모두 챙기고 나온 루레이스는 연구실을 파괴했다.
그 누구도 이 장소를 발견하지 못하게 안에 불을 지르고 입구를 막았다.
가라앉은 눈으로 그 모든 것을 지켜본 뒤, 바깥으로 나오는 연기가 눈에 띄지 않는 것마저 확인하고 루레이스는 몸을 돌렸다.
지금까지 제 발로 바깥으로 나간 적 없던 그녀는, 스스로 지옥을 부수고 그곳에서 탈출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스무살도 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