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84화 (185/219)

-184화

글러티나, 엔베인, 그리고 바이스가 부리는 정보 조직원들은 통곡의 원으로 진입했다.

마주치는 몬스터들을 베어버리면서 이동하니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여행은 순탄했다.

전리품으로 쓸만한 건 챙기고 나머지는 두고 가야 했는데 피 냄새에 다른 몬스터들이 몰려올 것을 염려해 글러티나는 죽인 몬스터의 피를 모조리 말려버렸다.

“꽤나 유용한 힘이군요.”

“동족에겐 더욱 잘 통하는 힘이지.”

엔베인의 말에 글러티나는 쓰게 웃었다.

통곡의 원.

그녀 역시 자주 와본 적은 없지만 이 일행의 대장이 자신이었기에 앞장서서 숲을 헤쳐나갔다.

통곡의 원의 몬스터는 검은 숲의 몬스터와는 전혀 달랐다.

이쪽은 털 달린 짐승이나 식물계 몬스터가 많았다.

겉보기엔 무해한 작은 동물처럼 보였던 것이 털을 부풀리면서 거대한 입을 쩍 벌리질 않나, 식인식물이 덩굴을 휘두르질 않나 밤이 되면 박쥐며 올빼미 같은 야행성 동물의 모습을 한 몬스터들이 쏟아지질 않나.

막 위험 구역에 진입했을 땐 쉴 새 없이 덤벼드는 몬스터 때문에 지겨울 정도였지만 어느 정도 정리된 지금, 겁 없이 그들에게 달려드는 몬스터의 수는 팍 줄어들었다.

세르포그 성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지만 동행한 이들도 보통 인간은 아니었기에 뒤처지지 않았다.

열흘가량 움직인 끝에 그들은 세르포그의 성에 도착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곳은 엉망이었다.

시신은 없고 군데군데 핏자국만이 남아있었다.

오랜 세월을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고성은 군데군데 말라붙은 핏자국만이 남아서 더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이베리카가 떠난 뒤 그대로 방치된 성의 대문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일단 나는 당주의 방으로 가겠다. 이베리카는 뱀파이어를 죽이기만 하고 다른 데에는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으니까. 그럴 정신이 있었다면 진작 이 성에 불을 질렀을 테니.”

“그럼 저희도 각자 흩어지겠습니다.”

“조심해.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기본적으로 2인 1조를 추천할게.”

“아, 저는 함정 같은 건 피할 수 있으니 지하로 가겠습니다.”

“위험할 텐데 괜찮겠어?”

“네.”

“그럼 흩어지자. 두 시간 정도 찾아보고 다시 이쪽으로 모이는 걸로.”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글러티나는 당주의 방으로 향했다.

높은 성의 거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먼지가 가득 쌓인 방에서 그녀는 서랍이며 책장을 뒤졌다.

연금술사나 다른 인간들과 거래한 기록이 있는지 찾으려는 것이다. 금고나 감춰진 공간 같은 게 있나 열심히 찾아봤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잠시 고민한 끝에 그녀는 책상 서랍을 부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비밀 공간을 찾기 위함이었다.

비밀 공간을 찾을 수 있긴 했다.

하나, 그곳에 들어 있는 건 어떤 여인의 초상화뿐이었다.

“…….”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짙은 암녹색 머리카락의 여인을 보고 글러티나는 조용히 초상화를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괜한 것을 엿본 것 같았다.

당주의 서재며 집무실, 방을 뒤져보았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기에 글러티나는 밖으로 나왔다.

방에 없다면, 말로만 전해 들었던 세르포그의 실험실에 단서가 있을 터였다.

지하로 간 엔베인은 여러 가지 함정을 뛰어넘으면서 무사히 감옥에 도착했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제일 먼저 그를 맞이해주었다.

감옥 안은 텅 비어있었다. 이따금 백골이 보이기도 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그는 수상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버려진 지 오래인 감옥에선,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긴 감옥의 복도를 지나 그 끝으로 가니 실험실이 나왔다.

다른 계단이 있는 걸 봐선 아마, 그가 들어온 입구 말고 다른 통로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철을 덧씌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드넓은 실험실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 쌓인 실험도구며 일지, 책이 빼곡히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과거 활발히 실험체를 썰고 가르고 끓이던 곳은 오랜 시간 멈춰있던 탓에, 모든 것이 까만 먼지로 덮여있었다.

먼지가 호흡기에 들어간다고 해서 재채기가 나오는 신체가 아니기에 엔베인은 거침없이 먼지를 털어내며 조사를 했다.

실험대를 둘러보던 그는 순간 몸을 떨었다.

커다란 플라스크 안에, 둥글게 몸을 만 무언가가 있었다.

연금술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프라우디에의 옆에서 본 것이 많았으므로, 그는 그것이 호문쿨루스라는걸 알아차렸다.

“…….”

관리해주던 사람이 없어서 죽은 모양이었다.

투명한 액체 안에 둥둥 떠 있는 그것은, 생명 활동을 멈춰 겉에서부터 부식되고 있었다. 저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도 호문쿨루스 실험을 하고 있었다니…’

대체 뱀파이어가 무슨 목적으로 호문쿨루스를 만들려고 한 건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근처에 놓여있던 종이 뭉치를 대충 털어서 먼지를 제거한 다음, 그는 표지부터 읽어보았다.

빼곡히 쌓인 연구 기록 중에 뭐가 정답인지 알 수 없었기에 죄다 빼내서 확인해야만 했다.

세르포그는 다른 가문들만큼이나 폐쇄적이었고 일족을 늘리는 데에 민감했다.

인간을 재료로 만든 호문쿨루스는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재료로 만든 호문쿨루스는 뱀파이어일까?

그런 의문에서 연구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들어간 재료며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있었지만 엔베인은 연금술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가만히 그것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세자르로 가져가서, 나중에 다시 만날 프라우디에나 악마에게 보여준다면 뭔가 알아낼지도 몰랐다.

실험실의 창고에는 아직 쓰다 만 물건들이 가득했다.

금속이나 물약, 말린 식물들, 방부처리 해 보관해놓은 인간이며 몬스터의 장기 등등.

가져갈 만한 건 없다며 엔베인은 창고 문을 닫았다.

여기서 조사할만한 건 연구 기록과 보고서, 관련 서적뿐인지라 엔베인은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글러티나가 연구실 안에 들어왔기에 두 사람은 함께 조사를 이어나갔고 한참 허탕을 친 끝에 어떤 기록을 발견했다.

책으로 위장된 그것은 도중부터 다른 문서가 끼어있었다. 그 안에 있었던 것은…

“불사자…?”

불사에 대한 연구였다.

뱀파이어는 기본적으로 불로불사, 라고 여겨진다. 다만 영원토록 살진 않는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서서히 힘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곧 죽을 것이란 걸 직감하게 된다.

연구기록은 이러했다.

몇백 년이나 살아온 인간에 대한 연구.

서로 의견이 일치한 부분이 있었기에 서로에 대해 실험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끔찍한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록되어있었다.

[청년은 늙지 않았다.

다친 상처 또한 쉽게 치유할 수 있었다. (자체적으로 재생이 가능했다!)

흑마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불사의 이유가 흑마법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혈액을 채취해서 조사해봤지만 인간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보통 인간보다 많은 양의 마나가 몸에 흐르고 있었지만 그것이 대마법사나 현자에 비할 정도는 못 되었다.]

[정신이 불안정해 보였기에 최면 치료를 해보았다. 치료를 시도한 자가 죽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굉장히 불쾌해했기에 정신적인 부분은 건드리지 않기로 상호 동의하였다.]

[그가 뱀파이어에게 요구한 것은 인간의 신체 일부와 뱀파이어의 혈액. 그 양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뭐에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키메라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호문쿨루스의 연구를 진행하였다.

인간이면서도, 뱀파이어조차 꺼림칙하게 여길법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연구의 내용을 정리하면 대충 이러했다.

연구 일지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지만 마지막 부분을 확인하니 서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해 미련 없이 헤어졌다고 적혀있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불사를 연구하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든 잡아놓을 줄 알았는데.”

“꺼림칙해서였을까요?”

“그러려나… 그 세르포그가…”

의아해하면서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댄 글러티나는 입술에 닿은 먼지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털었다.

일단 그 연구 일지를 챙기기로 하고 다른 자료 중에서도 쓸만한 걸 골라냈다.

약속한 두 시간이 지나가 두 사람은 즉시 모이기로 한 저택 앞으로 향했다.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뒤엔 중앙홀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도 핏자국이 만연했지만 바닥에 흐른 피는 쓰러진 시신과 함께 흡수되었던 건지 벽에만 불규칙한 혈흔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당주의 방과 집무실, 서재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엔베인과는 지하 연구실에서 만나서 몇 가지 챙기긴 했지만 좀 모자란 것 같고.”

“네. 연구실은 좀 더 조사가 필요합니다.”

“저희는 성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의 숙소로 추정되는 곳을 조사했습니다. 수확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구간과 주방, 세탁실 등 사용인들이 일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맡았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문실과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이쪽도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무덤이 파헤쳐지진 않았나?”

“아뇨. 멀쩡했습니다.”

“저희는 침실을 조사했는데 이런 것이 나왔습니다.”

한 조사원이 글러티나에게 두꺼운 일기를 하나 내밀었다.

일기의 표지를 넘겨, 그 안에 써진 글자를 보고 글러티나는 입술을 깨물며 일기를 가방 안에 넣었다.

“이건… 내가 나중에 확인해보기로 하지. 핏자국은 계속 보이던가?”

“네.”

“웬만한 곳에는 다 있더군요.”

“그렇군… 일단 여기서 며칠 머무르면서 조사하고 돌아가도록 하지.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하나 가져가야하니까. 조사를 덜 마친 곳이 있다면 계속 수색을 하도록 하지. 교대로 휴식을 취하여도 된다.”

“네!”

대장인 그녀의 말에 다들 우렁찬 목소리로 화답했다.

인간인 조사원들은 교대로 휴식을 취하게 두고 글러티나는 세르포그 성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세르포그의 특성상 비밀 통로를 만들어놨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기에 샅샅이 살펴봐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럴듯한 장소를 발견하긴 했지만 귀족이나 왕족의 성에 흔히 존재하는, 밖으로 빠져나가는 비밀 통로 따위인지라 그녀는 적잖이 실망했다.

숲의 해는 금세 저물었다.

날이 저물자 그들은 먼지 쌓인 방 중 넓은 곳을 하나 골라서 짐을 풀었다.

인간인 일행은 불침번을 서면서 수면을 취하게 했고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엔베인은 밖을 순찰하거나 밤에만 나타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니 성을 둘러보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글러티나는, 무덤을 찾아갔다.

아까 전 일행이 말해준 대로 무덤은 파헤쳐진 흔적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만, 풀이 많이 자라 있어서 안 그래도 어두운 밤중에 더욱 음산한 기운을 풍겨댔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해가면서 글러티나는 이베리카의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냈다.

가만히, 가방에 손을 짚어 그 안에 들어 있는 일기장을 확인한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말없이 기도를 올렸다.

짧은 기도를 올린 후, 그녀는 다시 성으로 들어갔다.

다음날에도 탐색은 계속 이어졌다.

그럴듯한 금붙이며 보물을 발견했지만 다 가져갈 수가 없어서 쓸만한 것 몇 개만 챙겼다.

세르포그 일족이 이베리카의 손에 절멸한 이후 이곳을 찾아온 이가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숨겨진 장소나 다른 잡다한 방을 본격적으로 시간을 들여서 조사했지만 실험실 이외에는 제대로 된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연금술이나 흑마법 연구에 대한 자료는 폐기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프라우디에에게 보여준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한곳에 모아두었다.

내내 허탕을 치고 다니 외부를 조사하던 인원도 소수만 밖에서 경비를 서게 하고 나머지도 연구실의 서재를 뒤지게 했다.

다 같이 서적이며 일기, 보고서 등을 뒤지던 도중에 그들은 이상한 자료를 발견했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지금은 사라진 민간 신앙 같은걸 적어놓은 책은 일종의 역사서였다.

인신 공양이나 특이한 돌, 제물 등을 바치는 제단이며 신.

상당히 기괴한 모습의 삽화와 함께 읽기 힘든 언어로 되어있는 주문이 씌여있었다.

글러티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이건 뭐지?”

뭘까.

흑마법사보단 악마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쾌했다.

일단 챙겨가기로 하고 글러티나는 그 책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외에도 기괴하고 불쾌한 느낌이 나는 책들을 일단 한군데로 모아보았다.

그것만으론 모자라서, 그 책들을 상자에 담고 그 안에 카이엔이 챙겨준 성수병을 집어넣었다.

성수가 든 병이 깨져서 책이 망가진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 외에는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글러티나는 수사 종료를 입에 담았다. 이제, 세자르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