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그리델라와 라스, 글러티나, 엔베인과 바이스가 붙여준 정보원들은 통곡의 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방향은 달랐다.
그리델라와 라스는 정령의 숲을 탐색해야 했기에 도중에 일행과 헤어졌다.
정령들이 인간을 경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해 정보원들은 글러티나, 엔베인과 함께 세르포그 성을 조사하기로 했다.
“나는 괜찮은 거야?”
“마녀야 자연의 힘을 사용하고 라스 넌 늑대 인간이니 인간보단 자연에 가깝지.”
“그런가?”
알듯 말듯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라스는 그리델라를 따라갔다.
정령의 숲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열심히 정령을 찾기로 했다.
정확한 장소를 찾는다고 해도 환상과 정령의 힘으로 가려져 있어서 못 보고 지나칠 확률이 높았지만.
숲을 걸으면서 그리델라가 입을 열었다.
“라스, 혹시 정령 사냥이라고 들어봤어?”
“그런 것도 있었어?”
“몇 세대 전의 이야기긴 한데… 뭐, 연구하는 사람 중엔 정신 나간 자들도 많잖아.”
그래서 그런 거라며 그리델라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 때문에 정령들 경계가 더 심해졌을걸? 끄응, 너무 오래된 이야기는 모르는데. 리치왕은 너무 멀어… 천년이라니, 상상도 못 하겠어. 그 시간이면 드래곤도 죽을 수 있는 거 아냐?”
“하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분이 있잖아.”
“아.”
티아마티스가 살아있었지 참.
바보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서 그리델라는 바쁘게 앞서서 걸어갔다.
부끄러워서 그런 것임을 알고 라스는 조용히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숲을 걷는 그들은 길을 잃고 헤매지 않기 위해 표식을 남기되 자연을 파괴하지 않았다.
괜히 정령들에게 밉보일 필요는 없다며 그리델라가 주머니에서 수십 개의 천 조각을 꺼냈다.
그것을 나무에 묶거나 가는 길에 돌을 쌓아놓는 식으로 그들은 표식을 남겼다.
나침반과 지도에 의지하면서 그들은 조사를 이어나갔다.
단단히 준비를 해왔기에 노숙은 별 문제없었지만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정령과 접촉해야만 했다.
‘정령들도 모르면 어쩌지…’
그럼 정말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텐데.
만약 정령들과 닿을 수 있다면, 정령왕을 만날 수 있다면. 천 년 전의 먼 과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이번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밤이 되자 두 사람은 노숙할 준비를 했다.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작은 모닥불을 만들고 두 사람은 담요를 덮었다.
“…프라우디에를 꼭 찾고 싶어. 소중한 친구니깐.”
“별일 없으면 좋으련만… 정령의 숲까진 얼마나 더 걸릴까?”
“제국 남부에 있긴 하지만 이 숲이 통째로 정령의 숲인 건 아니야. 이 넓은 곳의 일부에 정령들이 살고 있을 뿐이거든. 인간의 눈을 피해서 자기들끼리 살아갈 땅을 만든 거야. 에휴, 질문 하나만 하고 돌아갈 건데 나타나 주면 좋겠다.”
한숨을 푹 쉬며 그리델라는 고개를 숙였다.
“찾을 수 있을 거야. 오늘은 내가 먼저 불침번을 설 테니까 먼저 자.”
“고마워.”
라스가 먼저 불침번을 서기로 하고 그리델라는 침낭 안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다음날도 그들은 숲을 탐색했다.
어찌나 넓은지 중간중간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향했는지 표식을 남겨야 했다.
그러던 도중 라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응? 왜 그래?”
“저거.”
“돌? 우리가 아까 쌓아놓은 거잖아.”
“아닌 것 같아.”
“엥?”
라스는 조심스럽게 3개의 돌을 올려서 만든 표식을 확인했다.
맨 위의 돌을 집어 들어 뒤집어보고 그가 말했다.
“이거, 내가 만든 게 아냐.”
“진짜?”
“손톱으로 긁어놓은 자국을 만들어놨었거든. 이건 매끈하네.”
“어…”
마치 그들이 돌을 쌓아둔 것처럼 착각하게 하려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라스는 돌을 내려놓았고 그리델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서, 설마 정령들이 우리를 빙빙 돌게 만들려고 그런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 이쪽은 안 가본 것 같으니까 이쪽으로 가보자.”
“응.”
마음을 가다듬고 두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여전히 길을 찾을 수는 없었고 그렇게 걸어가다 보니 나침반도 어느새 고장 나서 이상한 방향을 가리켰다.
어떤 힘이 이곳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고, 라스는 가만히 공기의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
“으으, 어쩌지? 뭐라도 하나 알아 와야 하는데.”
“좀 더 들어가 보자.”
둘 다 시무룩해졌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침반을 쓸 수가 없어서 걷다가 멈춰서서 바닥에 떨어진 돌이며 나뭇가지 등을 모아서 표식을 만들었다. 손톱으로 돌멩이에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방해 공작이 있는 걸 봐선 이곳에 정령의 숲이 있는 게 확실하다면서 그리델라가 양팔을 번쩍 들더니 외쳤다.
“정령들아! 여기 있으면 이야기 좀 하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단 말이야!! 되게 중요하다구!!”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면 그녀와 라스가 쉴 때마다 하는 이야기도 엿들었을 테니 그들이 나쁜 목적이 있어서 정령들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힘껏 크게 소리를 지른 다음 그리델라가 힘차게 팔을 뻗었다.
“가자, 라스!”
“으응.”
“내가 꼭 찾고 만다!!”
의지를 불태우며 앞서가는 그리델라를 놓치지 않기 위해 라스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
한편, 그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작은 정령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 어쩌지?
- 몰라.
- 누군가가 여기까지 찾아온 건 오랜만이네. 게다가 인간도 아니야.
- 마녀랑… 늑대 인간?
- 왜 정령을 찾는 거지?
혹시라도 그들에게 해를 끼칠까 봐, 같은 장소를 빙빙 돌게했는데 그것까지 눈치채고 말았다.
정령들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까이 갔다가는 들킬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거리를 두고 보고 있었는데 숲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정령의 기운을 느끼는 데에 둔감한 모양인지 꽤 가까이 가도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모습을 감추고 있긴 하지만 감이 좋으면 알아차릴 만도 한데, 아무래도 정령과의 교감력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그 덕분에 정령들은 두 사람의 뒤를 바짝 붙어서 쫓아다녔다.
같은 자리를 빙빙 돌게 된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공포에 질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는데 이 두 사람은 오히려 더욱 깊은 곳까지 들어오려고 하고 있었다.
- 음.
- 뭘 찾는 걸까?
- 천 년 전? 너무 멀지 않아?
라스와 그리델라가 나누는 대화를 들은 정령들은 그들이 엿들은 이야기를 다른 정령에게도 전달했다.
천 년.
까마득한 과거의 정보를 찾기 위해 저 두 사람은 정령의 숲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정령들에게도 천 년은 아주 멀고 아득한 시간이었기에 작은 정령들은 그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왜 두 사람이 천 년 전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건지 호기심이 생겨서, 정령들은 다른 이를 찾아갔다.
“그래서, 나한테 물어보는구나.”
흐릿한, 인간의 형상이 입을 열었다.
작은 아이들이 열심히 부르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바람의 정령왕은 가만히 숲을 살폈다.
본래 정령계에 거주하던 그였지만 그의 아이들이 숲에 들어온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그 역시 조금은 궁금해졌다.
마녀와 늑대 인간. 두 사람은 열심히 숲속을 걷고 있었다.
마녀 쪽은 그에게도 조금 친숙한 느낌이 드는 거로 봐선 아마 자연계 속성을 지닌 마녀인 듯했다.
숲을 걸으면서도 자연을 파괴하지 않게 조심하면서도,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면서도 제 머리를 쥐어뜯을 뿐 애먼 데에 화풀이하지 않는 두 사람을 한참 동안 관찰한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길을 열어주어라. 얼굴을 보고 싶구나.”
- 네에?!
그의 말에 우왕좌왕하면서도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명령은 즉시 하달되었다.
며칠째 같은 장소를 돌고 돈 탓에 기운이 쭉 빠져서 흐느적거리면서 걷던 그리델라와 라스의 앞에서 갑자기 땅이 불쑥 솟아올랐다.
두더지라도 나오는 건가, 싶어서 그리델라는 깜짝 놀랐고 라스는 몬스터일지도 모른다면서 경계를 했다.
그런데 솟아오른 땅의 모양이 조금 이상했다. 가만히 있던 땅이 슬슬 움직이며 화살표 모양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란 건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가볼까?”
그렇게 정령들의 안내를 받으며 두 사람은 이동했다.
움직이면서 힐끔힐끔 주변을 확인하니, 배경이 바뀌고 있었다.
나뭇잎의 색이 좀 더 연해지고 빛이 밝아졌다. 공기의 냄새조차 달라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꾹 참고 그들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지라 풀을 헤치고 덤불을 넘어가면서 걸어간 끝에, 그들은 작은 계곡에 도착했다.
그곳의 커다란 바위 위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존재감을 흐릿하게 만든 모양인데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막대한 자연의 기운이, 그가 인간이 아니란 것을 증명해주었다.
조심스럽게 그리델라가 물었다.
“혹시… 정령왕, 님이세요…?”
“그렇지.”
“와…와아아! 진짜 있었다니!”
“확신하고 찾으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오래 산 정령이라도 찾으면 물어보려고 했던 거지! 왕이면 훨씬 오래 살았을 거 아냐!”
천 년 전의 리치왕에 대해 무언가 하나라도 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기뻐하는 그리델라를 보고 라스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델라가 ‘정령을 찾으러 정령의 숲으로 가자!’라고 당당히 말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무 정령이나 만나면 천 년 전의 과거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던 그였지만 힐끗 ‘정령왕’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 귀찮았을 텐데 직접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 바른 아이군.”
“뭐… 왕이면 바쁠 거 아닙니까.”
가까운 곳에 있는 카이엔만 해도 하는 일이 어찌나 많은지 바이스가 들들 볶던데.
물론 카이엔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일해야 하는 에빌은 더 들볶였다.
게다가 정령왕이라니, 그런 존재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 싶어서 저절로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들이 실수라도 했다간 카이엔에게 폐가 될 테니까.
그 모습에 정령왕은 웃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는 정령을 찾아 숲으로 들어온 이들이 건방진 녀석이 아니라 마음에 들었다.
그새 마음을 진정시킨 그리델라가 정령왕에게 물었다.
“혹시! 천 년 전에 살았던 리치왕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신가요!!”
“천 년? 너무 먼데.”
이미 작은 정령들에게 들었지만 그는 짐짓 모르는 척을 했다.
그러더니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선대에게 들은 것뿐이지만 그걸로도 괜찮다면야.”
“당연히 괜찮죠!”
고생 끝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그리델라는 환호했다.
그 모습에 정령왕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정령 사냥보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지. 그땐, 땅이 너무나도 오염되어서 정령들이 살 수 있었던 곳은 손바닥만 한 땅뿐이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거할 수 있었던 곳이 이곳이었다.”
“그, 그런 역사적인 사실이…!”
“너희는 왜 그 먼 과거의 일을 알려고 하는 거지?”
“그때와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도 있으니까요.”
“흠.”
“왕이시라면,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언데드를 부리는 흑마법사가 대군을 이끌고 인간의 땅을 공격했으니까요.”
“그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곤 하지.”
정령왕은 가만히 말했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항상 반복될 뿐이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도. 항상 바뀌는 국경선이며 나라도. 쉴 새 없이 변하는 강산조차도.
그 감상을 그가 입에 올렸다.
“흔한 일이도다.”
“아니… 이번에는 조금 다를지도 몰라요. 그 무시무시한 리치왕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녀석이 있어서-”
“힘들걸?”
“네?”
단호한 대답에 라스와 그리델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정령왕이 말했다.
“완전히 눈을 뜰 리가 없지. 그토록 처참하게 망가져 버렸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과거. 리치왕의 군대는 막강했다. 인간 연합군에는 정령사도 끼어있었고 그들은 흑마법의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선까지 그들을 도와줬지. 하나 무슨 영문에서인지, 그는 연합군의 총공격에 힘없이 허물어졌다. 마력이 떨어져서인지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 그랬던 건지.”
그의 눈동자가 조금, 가라앉았다.
“일부는, 죽음을 미루고 미뤄서 생명을 연장해온 현자가 자신이 모르는 세계인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 일부러 받아들였다고 했기도 했고…”
“그런…”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라면 진작에 죽음을 뒤집고 부활했겠지.”
정령왕은 자신의 생각또한 이야기해주었다.
선대의 일이 그가 생존해있는 시기에 반복되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해, 그 자신도 조금 알아본 게 있다면서.
“리치왕은 자신의 의지로 부활한 건가?”
“아뇨.”
“그럼 그 자겠군. 정령 사냥을 벌였던 자인가?”
“네?”
“그, 그런겁니까?”
“정령 사냥의 시기는 그리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우리는 형체가 없고 흑마법에 약하니, 후엔 기껏해야 연금술사들이나 흥미를 가졌었지. 짐작 가는 자가 있군.”
바람의 정령왕인 그가 땅을 향해 손을 뻗자 바람이 땅을 긁으면서 그림을 하나 만들어냈다.
땅바닥에 날카롭게 선을 그어서 만들어진 누군가의 초상화에 라스가 깜짝 놀라 외쳤다.
“이, 이 얼굴은…!”
“맞나보군.”
정령왕이 한숨을 푹 쉬었다.
“리치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내다. 하지만 힘은 없었어. 리치왕이 왜 데리고 다니는지도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지.”
“하지만, 이 자는 지금 흑마법사인 데다가 아직까지 살아있습니다.”
“정령 사냥을 맨 처음 시작한 자였으며, 실험에 성과가 없으니 바로 놓아줬던 자다. 다른 군단들은 리치왕이 몰락하면서 함께 사라졌지만 이 자만은 그곳에서 빠져나왔지.”
정말로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구나.
솔직히 반신반의했기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아무 힘도 없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지만… 석연치 않구나.”
정령왕은 가만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불행한 자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온 이유 또한 있을 터. 더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지?”
“혹시 이 사람의 지금 위치를 알고 계십니까?”
“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럼… 알려주실 수는 있으세요?”
그리델라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낸 바가 있다면 정령을 통해 알려준다고 하니 두 사람의 표정이 환해졌다.
어찌 됐든 목적을 달성했으니 라스는 정령왕에게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그리델라는 정령왕을 빤히 쳐다보더니만 이렇게 물었다.
“저희 왕자님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가요?”
“왕자?”
“네! 몬스터의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아, 들은 적이 있다.”
“유명한가요?”
“여러 군데에서 유명하긴 하더군.”
“아하하.”
정령왕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
“조심하거라. 마신의 사제라는 건, 이용당하기 쉬울 테니.”
“네?”
“인간들도 조심하고.”
많이 들었던 걱정이라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의 숲을 찾아온 목적을 달성했기에 그리델라와 라스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정령왕의 배웅을 받으면서 그들은 정령의 안내를 받아 숲을 빠져나갔다.
숲에 대한 비밀을 지키라는 말에는 꼭 그렇게 하겠다며 단단히 약속까지 한 뒤였다.
두 사람이 돌아가자 정령왕은 가만히 숲을 둘러보았다.
그의 손이 닿는 아이들에게, 추적을 맡길 생각이었다.
‘몬스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데다가 마신의 사제인 인간 왕자라…’
조금 흥미가 가긴 했지만 지금도 그 주변에 별의별 존재가 다 있으니 정령까지 붙일 필요는 없었다.
지금 옆에 붙어있는 사람들만 해도 벅찰거다. 굳이 정령까지 끼워 넣으면 굉장히 복잡해질 테니 지금은 얌전히 있는게 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