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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82화 (183/219)

-182화

부족해, 너무 부족해.

아라스크는 미친 듯이 같은 말만 반복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란 재료를 싹 긁어모았지만 여전히 모자랐다.

좀 더 많은 마력이, 영혼이, 동력원이 필요했다.

어째서 깨어나지 않는 걸까.

호문쿨루스의 육체에서도 눈을 떴는데 어째서 생전과 유사하게 만들어낸 몸에서는 눈을 뜨지 않는 건가.

그는 목놓아 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왕은 눈을 뜨지 않았다.

여전히 미동도 없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옅은 숨을 쉬고 있는 인형을 바라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아.”

“이제 됐어.”

그 말과 함께 그는 몸을 일으켰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옷소매로 대충 닦으면서 그는 비틀거리며 리치왕을 뉘어 놓은 관으로 다가갔다.

“당신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조금만, 조금만 더 해볼래요. 그렇게 해도 당신을 만나지 못한다면…”

“나도, 죽을래.”

어떻게 해야만 그녀가 눈을 뜰 수 있을까. 그는 많은 것을 고민했다.

리치왕은 진리의 뒤를 쫓았다.

그녀가 그 끝에 도달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 그녀가 걸어간 자리에 남은 것은 없었다.

오직 고통과 절규, 괴로움만이 길게 그림자처럼 이어졌다.

수백 수천의 영혼을 잡아먹고 그것을 이용하던 사람.

그녀의 걸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지만 그녀의 곁을 맴돌던 이들 중 그 누구도 그녀의 본심을 알지 못했다.

“…모두, 없애버리면 되는 걸까요.”

이대로 조용히 있어봤자 추적자는 있을 테니까.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마력을 그녀에게 주고 싶으니까.

아라스크는 움직이기로 했다.

그 전에 실험체의 절반을 꺼내 들고 나갔다가 하나도 다시 데려오지 못했다.

대륙을 집어삼키기엔 무리였기에 그는 급한 대로 다시 언데드를 모으기로 했다.

망령의 여왕은 아직 그의 수중에 있었고 그녀를 따르는 악령 군단의 경우엔 여왕을 푼다면 금세 증식할 터였다.

그 외엔…

‘흑마법사들.’

‘드디어 써먹을 수 있을지도.’

그가 먼저 움직인다면 자투리라도 주워 먹기 위해 구더기 같은 놈들도 움직일 것이다.

일부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마왕 대리전에 끼어들어서 죽었지만 다수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안그래도 빌붙으려고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이참에 전부 정리해버리자.

리치왕은, 루레이스는 자신도 흑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흑마법사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들 두 사람 이외에는 흑마법사가 없게끔 정리해버리자.

아라스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둘렀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녀를 만나고 싶으니까.

하지만 무턱대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계획이 필요했다.

인간들이 서로 반목하면서 맞서 싸울만한 일이 필요한데 요샌 죄다 조용하니 이용할만한 게 없었다.

좀 싹수 있는 놈들은 마왕 대리전에 엮여서 줄줄이 죽어 나갔으니.

어떤 식으로 갈등을 일으켜야 할까 그는 고민에 빠졌다.

루레이스는, 그녀는 어떻게 움직였더라.

“…….”

그땐 그녀가 나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원래부터 세상이 혼란스러웠다.

사이비가 판을 치며 원래 있던 종교와 갈등을 일으켰고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거나 몬스터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으으음…’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사방에서 이상한 놈들이 튀어나오니 루레이스가 활동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도 적었다.

그리고 그녀가 유명해질수록 따르겠다는 이들이 늘었으니 저절로 세력이 견고해졌다.

엇비슷한 시기에 봉인된 다른 이들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쓸데없이 허비할 시간은 없었다.

호문쿨루스의 곁에 있던 자들이 그의 거처를 찾아내기 전에 그가 먼저 선수를 쳐야 했다.

과거, 혼자 힘만으로도 제국을 불태우고 멸망시켰던 위대한 흑마법사.

그녀를 떠올리며 아라스크는 몸을 일으켰다.

***

“하아…”

이노스의 편지를 받고 사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바보 같은 오라버니가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언데드를 조심하란 편지를 보낸 탓이었다.

가르간트가 난데없는 언데드 군단의 습격으로 난리도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왕실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어찌 됐든 이겨냈으니 가르간트란 나라가 멀쩡히 있을 터였다.

과거 사령 기사의 등장으로 쑥대밭이 된 겔로스와는 다르게.

그때, 그녀는 뱀파이어에게 물렸지만 다른 뱀파이어 군주인 글러티나의 도움으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언데드는… 솔직히 말하면 아는 바가 없었다.

하나 이미 그들은 왕위 쟁탈전을 위한 모의 전쟁에서 언데드를 겪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 형제자매를 살린 건 작은 체구의 단 한 명의 흑마법사였다.

그 일 이후로 언니와 오라버니가 손 닿는 대로 흑마법사를 조사하고 있는 모양이니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며 사샤는 의자에서 일어날까.

“황녀님, 어디로 가실까요?”

“베르나르 오라버니한테 가자.”

“네.”

그런 그녀의 뒤를 세 명의 시녀가 따라갔다.

1황자인 베르나르는 막내 여동생인 사샤의 방문을 막지 않았다.

반갑다는 듯 그가 말했다.

“네가 나를 먼저 찾아오다니. 별일이 다 있구나. 아, 혹시 이노스 때문이야?”

“잘 아시네요. 여기요.”

“편지? 흠…”

사샤가 건넨 편지를 보고 베르나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긴, 언데드가 가르간트 쪽으로만 진군할 리가 없으니.”

애초에 그놈들이 나타난 것도 제국과 가르간트의 국경 부근이라 그들도 꽤 긴장했었다.

일제히 가르간트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안도하는 것도 잠시, 세를 불려 돌아올지도 몰라 군대를 국경에 배치해놓고 혹시라도 언데드가 방향을 돌리거나 가르간트 왕실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알아서 잘 이겨낸 것 같긴 했지만.

“이노스 녀석은 잘 있는 건지 모르겠네. 황위를 포기하고 나갔어도 일단은 황족이고 내 동생이고… 어디 가서든지 잘 살 녀석이지만 한 번쯤은 걱정이 된다니깐.”

“저도 그래요. 혹시 베르나르 오라버니는 흑마법사에 대해 조사한 게 있으신가요?”

“있긴 하지.”

베르나르는 순순히 대답하면서 제 책상 서랍을 뒤적이더니 한 뭉치의 서류를 내밀었다.

“그때 일 이후로, 몰래 추적해본 결과다.”

그는 선뜻 사샤에게 기밀 서류를 건넸다.

사샤는 그것을 받은 즉시 읽어보았다.

그것은, 현 제국 내에 존재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무덤과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이면서 동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종사건과 무덤이 파헤쳐지는 괴기한 사건에 대한 조사 목록이었다.

그저 괴담으로 치부될 일들도 있는 것에 사샤가 베르나르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이것들도 관련이 있을 거라고 보신 건가요? 굉장히 수상쩍은 사건이며 소문이긴 하지만…”

“그래. 아, 마지막 서류는 사이비 종교. 모의 전쟁의 그 들판에서 언데드가 솟아 나왔어. 병사들의 입단속을 시키긴 했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해서 알음알음 퍼진 모양인지, 한쪽에선 이상한 놈들이 나타나서… 감시는 잘 하고 있으니 괜찮을 것 같지만 조만간 없애야 하지 않을까 싶어.”

물론 황제의 허락이 떨어져야겠지만, 이라며 그가 푸념했다.

“명줄도 기시지.”

“오라버니.”

“알아.”

베르나르는 투덜거렸다.

“어휴, 저야 오라버니든 언니든 둘 중 누가 후계자가 되셔도 상관없지만요. 그런데 오라버니는 이걸 저한테 다 주면 뭘 읽으실 거예요?”

“어차피 사본이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

“아, 그래요?”

“그래. 그걸 가지고 네가 따로 조사를 해봐도 되고. 혹시 뭐 알아낸 거 있다면 나한테도 알려줘.”

“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잘 가라.”

베르나르에게 이노스의 편지를 다시 건네받은 뒤, 사샤는 궁으로 돌아갔다. 베르나르가 준 서류는 뒤따라오는 시녀 중 한 명이 소중히 품에 들고 왔다.

궁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거침 없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그때, 뱀파이어의 타겟이 되었다.

가장 어린 황녀라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 경비가 느슨하다는 이유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뱀파이어에게 물렸고 그 사실을 아는 건 극히 일부였다.

그런 그녀를 돕기 위해 이노스가 데려온 일행 중에 이종족이 섞여있었다는 걸 아는 자는 더더욱 적었다.

그때, 그녀는 비셰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몽마라고 듣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허술했고 그녀를 경호해야 해서 항상 같이 있다 보니 다른 이들에게 견제도 받았지만 괜찮다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게 웃던 사람이었다.

그녀에 대해 묻다가 ‘아르젠 실루이타’라는 가게 이름을 듣게 되었다.

그 후 그곳이 원인 불명의 화재에 휩싸였다는 소문 또한 들을 수 있었고 그곳을 주시하던 도중 뒷수습을 하고 다니는 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그 만남을 계기로, 그 사건을 계기로.

현재 그녀를 돌봐주는 시녀의 일부는 몽마였다.

그녀가 직접 고용한 그들은 시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첩보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꿈과 환상을 조종하고 작은 마법을 부리는 그들은 상당히 유능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사샤가 말했다.

“베르나르 오라버니를 만나고 왔는데, 너희도 확인 좀 해줘.”

“물론이죠.”

아름다운 시녀 한 명이 나와서 서류를 확인했다.

알고 있는 내용에는 추가로 설명까지 해주면서 그녀가 말했다.

“거짓말은 없어요. 더욱 자세한 조사가 필요한 사건엔 사역마를 보내거나 직접 나서는 게 낫겠네요.”

“좋아. 그럼 그렇게 해줘.”

“네.”

“열심히 일하시네요, 황녀님.”

“이노스 오라버니가 여기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사샤는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조금은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무슨 일 있으면 그 사람에게 시집가게 될지도 모르고.”

“어머.”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셨어요?”

“일단은 그 사람도 왕족이잖아. 여자관계도 복잡해 보이지 않고.”

“하긴-”

“이야기 들어보면 그럴 것 같긴 해요.”

몽마인 시녀들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로 돌아가지 않고 인간계에 남은 그들은 현재 사샤의 보살핌 아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고용주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건 사회생활의 기본 중 기본이었다.

하나 그들은 속으로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 비셰 어쩌지?’

‘걔, 아스모데우스한테 찍혔다잖아.’

‘그럼 안 되겠네… 불쌍하다.’

라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비셰가 말하는 왕자님이 누군지 알고 있기에 그들은 비셰를 동정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기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사샤가 내린 조사 명령을 수행했다.

그러나, 조사를 이어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황궁 바로 앞에 있는 중앙 광장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범인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자였는데 모두 죽음을 넘어서 영원토록 생을 영위해나가기 위해서는 그분을 믿어야 한다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다가 잡혀갔다고 한다.

상당수의 사상자와 부상자가 나왔고 그로 인해 황제는 제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테러범과 사이비 종교에 강경히 맞서겠다고 연설했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그 누가 죽음을 바라겠는가.

그 누가 고통을 원하겠는가.

그들이 유일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존재가 하나 있었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빛의 신만을 모셔왔다.

어느 날, 어둠의 신이 등장했다.

다들 어렴풋이 존재할 것이라곤 짐작하고 있었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마신은 인간들에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 한 명뿐인 인간 사제도 너무나도 당연한 것만을 입에 담았다. 그 교리는 천신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마신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이비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둠의 신이, 마신이 실존한다는 것에 기뻐하며 그 신을 자신의 종교에 끼워 맞추기 바빴다.

“흠.”

바이스는 발밑에 깔린 자의 손을 천천히, 꾹 눌러 밟았다.

다 죽어가는 신음을 흘리는 이는 밟힌 손보다는 다른 곳이 아파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발밑을 확인하며 바이스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요즘 살기 편한가 봅니다. 아무리 변경백령이 말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 여기까지 저렇게 떼거리로 들어오면 못 볼 리가.”

“헉…허억….”

“어디 사는 사이비인지는 모르겠지만 얌전히 땅의 거름이나 되십시오.”

“시, 신께서, 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

“보고 계시긴 하겠죠. 다만, 위험할 때 우리 왕자님을 지킬 수 있는 건 신이 아니라 접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자의 숨통을 끊어버린 뒤, 바이스가 손짓을 보내자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나타나 시체를 수습했다.

시신은 한 구가 아니었다.

이십 구 정도 되는 시신이 모조리 포댓자루에 담겼다.

태우는 건 너무 눈에 띄고 그렇다고 아무 데나 묻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이 근방에 언데드에게 먹힌 시체를 묻으려고 파놓은 구덩이가 있으니 저것들은 모두 그 구덩이 신세가 될 것이다.

‘나 참. 저택은 괜찮으려나.’

성녀 메르실라도 사이비와 이단을 걱정했지만 카이엔은 문제없다는 답장만 매일 보냈다.

그 답장을 받은 메르실라는 그럴 리 없다면서 정말 괜찮은 거 맞냐고, 혹시 도움이 필요하진 않냐며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일단 성서로 머리부터 찍어버리거나 신성력부터 날려보라는 과격한 방법까지 편지에 적어서 보내주었다.

하지만 카이엔에겐 아무 일도 없는 게 맞았다.

수상한 사람이 근처에 오려는 낌새만 보여도 바이스가 처리했기 때문이다.

‘빨리 돌아가는 게 낫겠어.’

현재 바이스는 카이엔에게 요청해 일주일 정도 휴가를 받아 외출한 상태였다.

아직 통곡의 원으로 향한 이들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수상한 놈들이 세자르로 오고 있는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아서 어쩔 수 없었다.

옆에 다른 이들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가 직접 카이엔의 곁을 지키는 게 마음이 편했기에 그는 복면을 써서 얼굴을 가렸다.

인간은 마음이 약해지면 신을 찾는다.

신을 믿지 않아도 위험한 순간이 오면 신을 찾는다.

약자들을 집어삼키면서 거대해진 잘못된 신념은 좀 더 강한 정신력을 가진 자들조차 집어삼킬 수 있게 된다.

카이엔의 측근 중에 그따위 사이비에 휘둘릴 자는 없지만 그 아랫사람들은 혹시 모른다.

광신자는, 너무나도 선량한 얼굴을 하고 다가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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