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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81화 (182/219)

-181화

회의 끝에 카이엔은 언데드의 공격을 받아 망가진 땅을 확인하러 가기로 했다.

물자를 실은 마차를 여러 대 이끌고 피해 지역으로 가니 언데드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멀쩡한 곳 찾기가 어려웠다.

생명이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언데드가 마을을 지나고 나면 그곳에 남은 것은 말라붙은 핏자국과 언데드 조차 되지 못한 신체의 일부분, 망가진 건물뿐이었다.

무덤조차 파헤쳐있었고 주인을 알 수가 없는 팔다리는 이미 썩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남은 것이 없구나.

참담한 얼굴로 카이엔은 기사들에게 남은 시체의 조각이라도 수습할 것을 명령했다.

무덤을 만들어주기엔, 남은 것조차 없어서 파헤쳐진 곳에 다시 흙을 메울 뿐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네요. 쥐새끼 한 마리조차 없습니다.”

“언데드 무리가 지나간 자리는 다 이렇다는 건가…”

그렇다면 가장 먼저 공격받은 변경백령은?

거기 좀 위험하지 않나?

국경 수비도 문제일뿐더러 몬스터도 있을 텐데.

“빨리 마무리 짓고 이동하자.”

“알겠습니다.”

마을을 지키던 기사들이 없었지만 언데드 때문에 죽은 땅이 되었기 때문일까. 지나가는 길목에 몬스터를 만나긴 했지만 마을을 서성이는 몬스터는 없었다.

그러나, 변경백령에 다다르자 그들은 대형 몬스터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디서 온 건진 모르겠지만 시체와 죽은 자의 냄새를 맡고 온 건지 거대한 짐승 형태의 몬스터들이 건물을 헤집으며 땅을 뒤엎고 있었다.

“말이 통하려나…”

안될 것 같긴 했지만 카이엔은 몬스터들을 불러보았다. 하나 대답은 없었다.

들었으면서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대화를 할 정도로 지능이 높진 않은 건지 이성이 없는 건지.

몇 번을 불러봐도 대답이 없자 카이엔은 한숨을 쉬었다.

“…처리하자.”

“알겠습니다.”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피해지역을 확인하는 걸 우선한지라 지금 그의 곁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물러나 있던 이들이 움직였다.

대형 몬스터 따위는, 검은 숲을 토벌하면서 얼마든지 상대해본 적이 있기에 처리하는 건 굉장히 수월했다.

길을 막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군대는 나트폰트라 변경백령을 향해 이동했다.

“많이 무너졌네.”

휑하니 뚫려있는 벽을 보며 카이엔이 한마디 했다.

예상하긴 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속이 쓰렸다.

전부, 그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참담한 얼굴인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바이스가 말했다.

“왕자님 잘못이 아닙니다. 애초에 변경백령에 쓸만한 사제 하나 없었다는 게 문제죠.”

“아니 그건 좀…”

“왕자님 때문이 아닙니다.”

“알았으니까 주변 상황 좀 파악해줄래? 생존자는… 없으려나.”

“안전부터 확보하고 보수 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무너진 장벽을 다시 쌓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그동안 그들이 이곳을 지킬 수는 없었다.

기사들을 보내 장벽의 파괴 정도와 땅의 오염 정도를 확인한 카이엔은 즉시 보고서를 써서 왕실로 보냈다.

그가 한번 둘러보고 보고서까지 써서 보냈으니 그 이후의 지원과 복구는 왕실에서 해줘야 마땅했다. 본래 그쪽에서 해야 할 일을 그가 먼저 나서서 해준 격이니까.

언데드가 휩쓸고 지나간 땅.

그 위험한 소문이 이미 전역에 퍼졌을 테니 민심 안정을 위해서라도 왕족 혹은 그에 준하는 귀족이 직접 걸음 해 확인하는 게 마땅했다.

그는 비록 폐세자지만 왕족은 왕족. 아직 어린 쌍둥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겸사겸사 앞장선 셈이었다.

“남은 언데드는 없네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그러게.”

함께 온 별채의 식구들도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했다.

근방의 몬스터를 깡그리 처치하고 온 그들은 왕실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이곳에 남을 카이엔의 안전을 염려했다.

동시에, 여기까지 온 이상 왕실 몰래 국경을 넘어 타국으로 조사를 하러 가길 원했다.

카이엔이 걱정되긴 했지만 바이스가 개인행동을 허락하는 건 카이엔이 다시 세자르로 돌아간 뒤라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게 조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카이엔. 우리끼리 이야기해본 게 있는데, 통곡의 원으로 조사하러 가고 싶다.”

“응? 어… 하긴, 여기까지 왔으니까. 통곡의 원이라. 거기가 가장 수상한 거야?”

“일단 세르포그의 성이 있다.”

글러티나의 말에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가도 되겠어?”

“엔베인이 동행하겠다고 했어.”

“그 외에는?”

“실력 있는 사람을 붙여주면 좋지.”

“따로 별동대를 꾸려주도록 하죠. 제가 쓰고 있는 정보원이 몇 명 있는데 붙여드리겠습니다.”

“응? 그런 것도 있었어?”

“네.”

“나한텐 왜 말 안 한 건데…”

“그야 걱정하실 테니까요.”

“정보원이라면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절대로 말 안 해줄 것 같은 모습에 카이엔은 고개를 저었다.

글러티나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 뒤이어 그리델라도 입을 열었다.

“왕자님, 나도 정령 탐색을 하러 정령의 숲으로 가고 싶어.”

“정령? 정령은 왜?”

“그야, 정령이면 오래 살잖아. 리치왕에 대해 아는 게 있지 않을까?”

“으으음… 괜찮으려나.”

“나 혼자 가는 거 아냐. 라스가 같이 가주기로 했어.”

“네 분이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왕자님이 위험해질 것 같진 않군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서 말한 거야. 최대한 빨리 조사하고 돌아올게.”

이미 마음을 정한 얼굴들을 한 번씩 확인하고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치지 마라.”

“당연하지.”

“한꺼번에 사라지면 이상하니까, 두 명씩 하루 정도 시간을 두고 가면 좋겠는데.”

“응!”

호위와 조사 명목으로 따라온 네 사람이었다.

카이엔은 그런 네 명이 모두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남은 이들을 데리고 카이엔은 무너진 장벽을 다시 쌓는 데 집중했다.

주변을 탐색하면서 혹시라도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었지만 발견된 이는 없었다.

무너진 변경백령을 비워둘 수 없기에 카이엔이 기사들과 함께 그 땅에 머문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왕궁에서 보낸 귀족이 도착했다.

임시 관리자로 임명된 귀족은 부랴부랴 군대와 함께 나타났고 카이엔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 임시로 나트폰트라 변경백령을 맡으러온 필로스 세르바라고 합니다. 왕자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왕자 아닌데… 뭐, 상관없나.”

현 왕이 백작위를 내려준 것이 무색할 정도로 다들 그를 왕자라고 불러댔다.

이젠 해탈한 듯 헛웃음을 흘리면서 카이엔은 뒤처리를 해야 할 필로스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정리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봤다. 뒷일은 맡기마.”

“열심히 하겠습니다!!”

즉시 인수인계가 이루어졌다.

카이엔이 필로스 세르바 백작에게 쑥대밭이 된 변경백령을 보여주고 설명을 하는 것처럼 바이스도 백작의 보좌관을 붙잡고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바이스야 알아서 잘할 테니 내버려 두기로 하고 카이엔은 가장 오염이 심했던 땅을 가리켰다.

“일단 성수를 뒀지만 저쪽은 나중에 따로 사제를 부르던가 자연적으로 정화될 때까지 두는 게 나을 거다. 사람들이 못 지나가게 하고.”

“헉… 알겠습니다!”

정화할 수 있는 곳은 그의 신성력으로도 어떻게든 됐지만 심하게 오염된 곳은 그의 힘으로도 조금 벅찼다.

모든 일을 내려놓고 정화에만 힘쓴다면 되돌릴 수 있겠지만 그의 체력과 정신력을 깎아 먹는 일이라 바이스가 말렸다. 왕성에서 돈을 쓰면 될 테니 그가 나설 필요 없다면서.

그 말엔 그도 동감했으므로 카이엔은 자잘한 오염 지역만 정화했다.

빠르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그들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

통곡의 원을 조사하기 위해 떠난 이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리치왕은 재앙이었다.

그런 존재가 눈을 뜬다면, 신이 계시를 내리던지 티아마티스가 알아차리던지 할 텐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었다.

이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프라우디에는 괜찮은 걸까.

적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니 일단 정보를 수집하러 떠난 이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언데드 군단을 무사히 막아낸 건 그들, 세자르 영지뿐이었다.

그래서 그 군사력이며 마신의 사제인 카이엔 역시 주목받게 되었다.

왕실에서 그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많은 재물을 보내줬지만 카이엔은 그것들을 망가진 땅을 복구하는 데에 쓰라며 돌려보냈다.

원래 모두 보내려고 했지만 바이스가 그들이 쓴 물건값은 보충하는 게 낫다고 속삭여서 일부는 창고며 금고로 들어갔고 마신전을 장식하는데에도 조금 썼다.

언데드가 한 차례 지나갔음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큰 문제점이 하나 생겼다.

다른 땅들이 모두 오염되고 공격받아 피해가 컸던 만큼 세자르는 안전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주를 원하는 자가 늘어난 탓이었다.

물론 이주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하나둘 제가 살던 곳을 빠져나오는 이들이나 언데드의 위협을 피해 일찍 피난을 갔던 지역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자르로 걸음을 돌렸다.

그 사람들을 무작정 다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카이엔은 타 영지에서 거주하던 이들이 세자르나 혹은 그 주변의 영토로 이주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왕자님, 괜찮으세요?”

차를 건네며 페이리가 물었다.

걱정스러운 얼굴에 카이엔은 고개를 저었다.

“음… 신경 쓸 일이 많네. 그것 말고도 있고.”

“아직 별다른 보고는 없었죠?”

“…내가 좀 더 실력이 뛰어났다면, 프라우디에가 납치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적은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면서요.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요…”

그걸 알아내기 위해 글러티나 일행이 통곡의 원으로 향했다.

이번 일 말고도 카이엔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났기에 페이리는 그를 걱정했다.

조금이라도 편히 쉬었으면 좋을 텐데, 그럴 시간조차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왕자님의 기분은 알지만, 너무 힘들어 보여요.”

“괜찮으니까 걱정 마.”

“네…”

말끝을 흐린 페이리 였지만 이내 웃으면서 덧붙였다.

“왕자님이 무리하시는 게 보이면 바이스 씨가 어떻게든 하실 테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였지만 페이리를 안심시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기에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무실로 찾아온 이유가 차를 가져다주기 위한 것뿐이었는지 페이리는 조용히 돌아갔다.

여전히 발소리 하나 내지 않는 그녀에게 감탄한 뒤 카이엔은 생각에 잠겼다.

이 땅의 생물들은 이 위기를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드래곤인 티아마티스는 멸망 직전이 되지 않는 이상 끼어들려고 하지 않을 테고 악마들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구경하겠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이라곤 마신의 사제인 그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마신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들을 신도로 두고 있으니 인간이 적게 죽든 많이 죽든 신경도 안 쓰겠지만.

적이 노리는 건 리치왕의 라이프 베슬이지 프라우디에 그 자체는 아니다.

그렇다면, 라이프 베슬이 뽑힌 나머지 육체는? 프라우디에의 정신은? 영혼이 담긴 라이프 베슬에 ‘프라우디에’라는 존재는 남아있는 건가?

라이프 베슬이 프라우디에의 만들어진, 호문쿨루스의 몸에서 눈을 떴을 때 그 안에 리치왕의 존재는 없었다. 흐릿하게나마 그 인격이 남아있었지만 기억을 상실하고 자신이 리치왕이라고 불렸다는 것밖에 몰랐다.

그런데 그자가 리치왕을 부활시키려고 해도 과연 그게 리치왕이 확실할까?

자신의 실험이 실패한 것을 알게 되면 안 그래도 미친놈이 더 미쳐버릴거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활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성공해도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그자의 움직임은…

‘대륙을 향한 공격.’

리치왕이 부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든 부활시키기 위해 더 많은 생명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테고 부활한다고 해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닐 테니 숙원을 이루어주겠다는 말 따위를 하면서 공격을 감행할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 있을지도 모를 선전포고에 대비해 전쟁을 준비하자고 할 정도의 권한이 없었다.

그저 다른 이들도 언데드의 습격을 두려워해 자체적으로 무력을 증강할거라고 믿는 수밖에.

상념을 깨운 건 일부러 낸 듯한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였다.

그의 앞에 놓여있던 찻잔을 치우면서 바이스가 말했다.

“다 식었습니다. 페이리 씨가 걱정이 많아요.”

“…나도 알아.”

“사트로누스도, 소금이도, 플루토도. 항상 자고 있는 루브도 뭐, 왕자님 모습을 본다면 걱정이야 하겠군요.”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카이엔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공연히 맘 졸이면서 자신을 깎아내리지 마세요. 어떻게든 알아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왕자님의 상태가 불안정해지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모두의 사기가 저하됩니다.”

바이스는 찻잔에 이어서 책상에 늘어진 서류마저 정리해버렸다.

종이 위에서 굴러다니던 만년필마저 서랍 안에 넣어버리고 그가 말했다.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뭐? 나 아직 일도 다 못 끝냈는데-”

“안 그러면 기절시켜서라도 재울 겁니다.”

“…가서 잘게.”

좀 늦게 자겠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주인을 기절시키는 시종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바로 눈앞에 있긴 했지만 카이엔은 속으로 투덜거릴 뿐 입 밖으로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바이스는 한다면 하는 놈이었으니까.

방으로 돌아가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그가 침대에 눕는 것까지 확인하고 바이스는 방의 불을 모두 끄고 밖으로 나왔다.

주인인 카이엔이 잠자리에 들었다고 해서 그의 업무가 끝난 건 아니었다.

카이엔의 방에서 나온 그는 즉시 비셰를 만나러 갔다.

두 번 노크한 뒤, 그는 대답조차 듣지 않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흠.”

굉장히 난잡하게 어질러진 방안을 보며 그가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비셰는 온갖 마법진을 그려놓은 종이며 흩어진 마석등으로 엉망이 된 방에 널브러져있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바이스가 물었다.

“기절했습니까?”

“아…아직은요…”

“멀쩡하군요.”

“멀쩡하진 않은데요.”

살짝 투덜거리면서 비셰는 몸을 일으켰다.

자랑하던 예쁜 금빛 곱슬머리는 엉망이 된 채였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손으로 열심히 쓸어넘기면서 비셰는 바이스의 눈치를 보았다.

“잘 되고 있긴 합니까?”

“아뇨.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영…”

“몽마가 가진 꿈에 침투하고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프라우디에 님을 찾아서 어떻게든 접촉하겠다는 발상은 꽤나 독특했습니다. 문제는 찾는 거군요.”

“네. 몽마들이 사람의 꿈에 들어가서 정기를 뽑아내려고 해도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있거든요. 너무 오랫동안, 먼 곳까지 갈 수는 없어요. 지금 프라우디에의 마력을 쫓아서 어떻게든 연결해보려고 하는데 그것도 잘되지 않아요. 지금 깨어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죽었다거나.”

“…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에 비셰는 고개를 숙였다.

남성체일 때 보다 마력을 잘 다룰 수 있었기에 여성체로 변신한 상태인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덮어 가렸다.

“제 능력은 너무 하찮아요…”

자신이 약해서라기보단, 방법 자체가 까다로운 탓이었지만 비셰는 자책하고 있었다.

좌절하는 그녀에게 바이스가 말했다.

“비셰 씨는 예전보단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만.”

“…….”

“위로가 안 되는 말이었나 보군요.”

“네.”

냉큼 비셰가 답했다.

“아무튼, 무리 하진 마세요.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왕자님이 곤란해하니까요.”

“네.”

“그럼, 좀 더 수고해주세요.”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볼게요.”

양 주먹을 꽉 쥐며 결의를 다지는 비셰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바이스는 방에서 나갔다.

그가 나가자 비셰는 으그그, 하는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몇 시간 동안 쭈그려서 마법진만 그리다 일어나니 몸이 저절로 비명을 질렀다.

“으, 대체 어디가 문제지? 마법진은 맞게 그렸을 텐데.”

그렇다면 역시 거리가 문제거나 프라우디에의 숨이 끊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개를 저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버리고 비셰는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아스모데우스에게 속성으로 맞으면서 마법을 배우긴 했지만 아직도 그녀는 약했다. 냉정하게 본다면, 현재 티아마티스의 제자로 수련하고 있는 이노스가 전투 면에서는 그녀보다 강했다.

이노스가 타고난 천재기도 했지만 그녀가 약하기도 했다.

프라우디에가 없는 이상 일행에는 마법사 역할을 할만한 사람이 그리델라와 그녀밖에 없으니, 좀 더 노력해야만 했다.

다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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