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아라스크는, 그 태생부터가 남들에게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는 귀족의 정부였고,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죽고 말았다.
혼자 남게 된 그는 본명보다는 쓸모없다는 뜻의 ‘아르지마스’라고 불렸다.
몸도 약하고 재능조차 없었다. 그나마 볼만하다고 여겨진 게 외모였다.
금을 가늘게 뽑아 만든 것만 같다는, 햇살과도 같은 금발에 신비한 빛의 보라색 눈동자. 그를 한번 본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외모만은 아름다웠다.
애초에 사랑받은 적이 없기에, 제대로 된 감정의 교류를 해본 적이라곤 없었기에.
그는 그를 괴롭히던 이들을 무참히 박살 낸 그녀를 따라갔다.
강대한 힘을 뿌리면서 뭐든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의 앞에서는, 모든 것이 그와 똑같이 무가치했기에.
***
프라우디에를 안은 채로 그는 거주지에 도착했다.
워낙 체구가 작은 아이라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의 손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카이엔 일행이 예상한 대로 그는 통곡의 원의 위험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력한 결계로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고 있으며 곳곳에 함정을 설치해놔서 그것에 걸린 몬스터들을 실험에 쓰는 식이었다.
더미로 만들어놓은 연구실이 몇 개 더 있었기에 그중 한 군데에서 숨을 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먼저 온 이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흑마법사란 티를 물씬 내는 자들이었다.
어디에서 맞춰 입기라도 한 듯 시커먼 망토에 후드를 눌러쓴 이들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몰려들었다.
“도대체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가르간트에 대규모 언데드 군단이 나타났다고 하던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런 건 좀 상의를 해주고 하셨어야죠!”
“마왕 대리전 때, 당신들은 저랑 상의하고 악마랑 계약했나요?”
그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당시 악마와 계약하진 않았지만 교류하던 다른 이들은 악마의 손을 잡았다가 휘말려 죽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 반응에 남자는, 아라스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어차피 악마랑 계약해봤자 댁들 실력으론 강대한 힘을 가지는 건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악마라고 해봤자 이상한 놈들만 올 거라고 경고했지만 듣지 않고 계약한 놈들은 모두 죽은 지 오래였다.
무심하게 대꾸하며 그가 말했다.
“여기 온건 제 이동 경로에 혼란을 주기 위함이니 이쪽에서 미적거리지 말고 돌아가세요.”
이런 머저리 흑마법사들도 들락거리는 곳이니 추적이 안 될 리가 없었다.
이들은 그처럼 흑마력을 완벽하게 숨기지도 못하니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박대에도 불구하고 흑마법사들은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눈에 아라스크의 품에 안겨있는 작은 아이가 보였다.
“새로운 실험체입니까?”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군단을 이끌고 가서 가져왔을 정도면 꽤 상등품이란 건데…”
“쓰다 남은 거라도 좋으니…”
그들의 눈동자에 탐욕이 어렸다.
그 모습에 아라스크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괜찮지 않습니까? 그 정도라면…”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것도 오래니…”
그러나 그들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 순간 발밑에서 솟아오른 검은 그림자가 세 명의 흑마법사를 휘감았다. 순식간에 그들을 제압하고 아라스크는 웃었다.
“…그래요. 어쩌다 보니 발이 묶였었죠. 저도 참.”
그 사람은 이러지 않았을 텐데.
너무나도 손쉽게 흑마법사들을 제압한 그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웃었다.
“이제 필요 없어요.”
그 웃음과는 정반대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흑마법사들의 몸이 터졌다.
마치 물이 가득 들어 있는 고무풍선을 터뜨린 것처럼, 자리에 남은 건 피와 살점뿐이었다.
미련은 없었다. 어차피 동료도 아니었고.
그의 실험실을 발견하게 된 자들과 어쩌다 보니 한 번씩 연구 교류를 했던 것뿐이었다.
라이프 베슬을 훔쳐 간 것도 저런 자 중 한 명이었기에 그가 이 고생을 했던 거다.
이 기분 나쁜 곳에 한시라도 더 있기 싫다면서 그는 걸음을 돌렸다.
리치왕과 헤어진 이후 삶은 그에게 고통만을 줄 뿐이었기에, 그녀를 다시 만나야만 그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좀 더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루레이스.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본명을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흑마법사들은 마도에 입적할 때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 이름을 짓곤 했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을 버리겠다는 각오이기도 했으며 어차피 본명을 불러줄 사람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스승이었던 자의 이름은 아비스말이었다.
연구를 위해 납치며 인신매매를 자행했던 그의 실험체 중 한 명이, 바로 루레이스였다.
그녀가 살아남은 이유는 간단했다.
체질적으로 흑마법을 받아들이기 쉬운 몸이었으며 글을 알고 있었다.
실험실에 들어가자마자 졸도하는 아이들이 다수였기에 잠깐 움찔하고 말았던 그녀는 꽤 상등품의 실험체로 인식됐으며 상당히 영리했기에, 그 능력을 알아본 아비스말은 그녀를 조수로 부려먹었다.
그녀는 어깨너머로 흑마법을 익혔다. 아비스말은 그것에 놀라워하며 자신의 지식을 일부 전수했다.
좋은 뜻이 아니라는 건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햇병아리를 죽이고 마력을 흡수하는 것보단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자를 죽이는 게 마력이며 영혼이며 뽑아먹을 게 더 많았으니까.
자신이 나중에 잡아먹기 좋게 살을 찌우는 중인 가축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납치해온 장본인이자 스승이 되었던 흑마법사를 죽였다.
순식간이었다.
뒤에서 목에 식칼을 꽂고 주문을 외우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마력을 운용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수십번을 식칼로 찌르고 수인마저 틀지 못하게 손가락을 잘라냈다.
완전히 숨을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 시신은 불에 태웠다.
그렇게 그녀는 자유로워진 것만 같았다.
하나 이미 흑마법에 물든 몸이었다.
배운 것은 그것뿐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루레이스 미오소티는 흑마법사가 되었다.
“…당신이 해준 이야기예요.”
은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기며 아라스크가 말했다.
그 눈동자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린 것으로 인해 부드러운 빛을 띄고 있었다.
하지만 프라우디에는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의자에 몸이 묶인 채였다. 여전히 마력은 쓸 수 없었다.
참담한 심정에 프라우디에는 고개를 숙였다.
그 이유 말고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그가 앉아있는 곳의 맞은편 벽에 있는 관 때문이었다.
비스듬히 세워서 고정해놓은 관 안에는 시체가 하나 놓여있었다.
은발에 깡마른 사람의. 눈을 꼭 감고 있는. 창백하고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을 한 시체가.
“기억이 나지 않나요? 저 정말 열심히 만들었는데.”
프라우디에를 바라보며 아라스크가 말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관을 가리켰다.
“당신이에요. 정확히는, 리치가 되기 전의 당신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골격도 리치가 되었을 때 얼핏 보긴 했지만 검은 로브로 꽁꽁 싸매고 다녔어서… 최대한 비슷한 뼈들로 구해서 맞춰봤고요. 근육을 짜 맞추는 것도 피부를 덮는 것도… 아, 당신은 등에 화상을 입은 흉터가 있어서 그걸 똑같이 만들어내려고 버린 피부며 가죽이 꽤 많았어요. 완벽히 만들어냈다면 좋을 텐데.”
그 목소리에는 광기마저 담겨있었다.
“손발톱을 붙이고, 치아도 하나하나 끼워 맞췄어요.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심는 건 역시 힘들더라구요. 눈동자도 그렇고…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둘 다 못 쓰게 돼버린 적도 많았고요.”
“저만큼 당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리치는, 뼈밖에 남지 않아서… 당신이 저를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저를 만져줘도 이상하게, 당신인데도 전혀 따뜻하지가 않아서… 그땐 너무 슬펐어요.”
“이젠 리치 따윈 되지 말아요. 제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몸이니까, 당신도 마음에 들 거예요.”
“아….”
그는 프라우디에의 앞에 서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을 검집에서 빼내니 예리한 칼날이 드러났다. 얼굴이 비쳐 보일 정도의 예기였다.
의자에 묶어놓고, 마력을 봉쇄해 도망칠 수 없는 프라우디에의 앞에서 그가 말했다.
“라이프 베슬에는 상처 하나 내지 않을 거예요. 살을 찢고 뼈를 부술 거라 아플 테지만… 약 같은 건 쓰고 싶지 않아요.”
“이, 이러지 마세요…”
프라우디에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냈다.
너무나도 두렵고 꺼림칙한 느낌 때문에 입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들었다.
“리치, 왕은 기억을 잃어서… 아무것도, 몰, 라요… 티아마티스 님도, 라이프 베슬을 보고 나서야 제 존재를 확신, 하셨는데 어째서…”
“제가 당신을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요.”
프라우디에와 눈을 맞추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밝게 웃으면서 그가 말했다.
“곧, 다시 만나요.”
거칠게 잡아 뜯어 셔츠의 단추를 끊어내 옷을 찢어버리고, 드러난 가슴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라이프 베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고 심장 근처의 살을 도려내는 것이었다.
생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고통에 찬 비명이 지금껏 고요했을 연구실을 뒤흔들었지만 그는 무시했다.
우득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얼굴에 피가 튀었고 그는 계속 손을 움직였다.
가슴을 갈라내고, 심장을 대신해 자리 잡고 있는 라이프 베슬을 꺼냈다.
부르르 떨리던 팔다리가 멎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피에 젖은 라이프 베슬을 닦아내고, 그는 그가 만들어낸 시신으로 다가갔다.
품이 넓은 로브의 단추를 풀고 꿰매놓지 않아 그대로 열린 심장에 라이프 베슬을 이식했다. 촘촘하게 마력으로 바느질을 끝내니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곧 만날 수 있어.
눈을 떠줘요.
열망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떨렸다.
그는, 눈앞의 그녀가 눈을 뜨는 것을 바랐다.
마지막으로 라이프 베슬이 눈을 뜰 수 있게끔 촉매를 써야 했다.
촉매는 리치왕 본인의 마력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녀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를 라이프 베슬을 향해 흘려보냈다.
그녀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힘이었지만 그 중심이 되는 요소는 같았다.
그러나…
“어…”
그녀는, 루레이스는, 리치왕은 눈을 뜨지 않았다.
라이프 베슬을 집어넣고 마력마저 흘려 넣었다.
그런데, 눈을 뜨지 않았다.
심장 대신 존재하는 라이프 베슬이니 쿵쿵 뛰는 박동 따윈 들리지 않았다.
아라스크는 급하게 관을 바닥에 내려놓고 시신이 숨을 쉬는지부터 확인했다.
…미약한 숨소리가 들렸다.
소생은 완벽하게 끝났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헉…허억…”
아라스크는 미친 사람처럼 손을 허우적거렸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숨을 쉬지 못하겠는지 연신 컥컥거리면서 바둥거렸다.
성공했는데.
라이프 베슬이 만들어진 육체에 완전히 자리 잡았는데 어째서, 어째서 눈을 뜨지 않는 건가.
혹시 그가 놓친 것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몸은 미친 듯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요…”
“제발… 제발….”
“당신이 없으면 안 돼… 안 되는데…”
“나만 두고 가지 말아요….”
처절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고통스럽게 외쳤지만 리치왕은 눈을 뜨지 않았다. 숨소리 또한,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다시, 다시 만들면 될 거야… 어딘가 완벽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응, 그럴 거야. 어,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다 아니까, 기록해 놨으니까…”
하지만 과연 잘 만들 수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까?
새 몸을 만들기 위해선 재료가 필요한데 수중에 남아있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차마 눈을 뜨지 못하는 시신에는 손대지 못하고 그는 관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재료가 없다면, 다시 모으면 그만이었다.
이 땅에는 살아 숨 쉬는 것들이 참으로 많았으니 그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몇백 몇천 몇만을 멸한다고 해도 그것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절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