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만으로 주변의 배경이 바뀌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웬 황야 같은 곳에 있었는데 지금 그들은 성안에 있었다.
낡은 티가 나지만 먼지 하나 없는 성의 내부에 카이엔은 놀랐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쯧하고 혀를 차며 앙그라가 중얼거렸다.
“성까지 지어놓고 있었던 거냐고…”
“왔나?”
“음.”
낯선 목소리와 함께 창문을 열고 모르는 악마가 등장했다.
청보랏빛 머리카락을 하나로 땋아 늘어뜨리고 몸에 딱 붙는 검은색 옷을 입은 그는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물었다.
“이게 다인가?”
“곧 더 올 거야.”
“하긴, 어차피 다들 중심부로 곧장 갈 테니 우리부터 가도록 하지. 그런데…”
모두에게 전 마왕의 위치를 알린 악마, 네비로스의 눈이 카이엔을 향했다.
살짝 처진 눈꼬리 때문에 다른 이들에 비해 온순해 보이는 악마가 염려의 말을 입에 담았다.
“…혼자 인간인데 괜찮긴 하나?”
“어떻게든 되겠지.”
“저기요?”
앙그라의 무책임한 말에 카이엔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비로스 역시 꺼림칙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여기까지 온 걸 봐선 괜찮은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일행은 성의 중심부로 이동했다. 복잡한 내부 때문에 카이엔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잘 찾아올 수 있을까요?”
“아, 너는 모르겠구나. 그놈을 아는 우리는 기운을 쫓아서 움직일 수 있어. 지금도 느껴지고 있고.”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런데 이렇게 떼로 몰려갈 필요가 있는 거예요?”
“상황이 심각하니까 협조하라는 표현을 해야 된다.. 나랑 너만 갔다가는 내내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도망만 다녔을걸?”
“…전 마왕이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또라이란다.”
그러니까 마왕 대리전 같은 근본 없는걸 만들어 냈지, 라며 앙그라 마이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근본 없는 싸움의 우승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카이엔은 현명한 사람이었기에 침묵을 지켰다.
몇 걸음 뒤에서 걷던 아스모데우스가 무어라 첨언을 하려고 했지만 비셰가 급하게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냐.”
“가만히 있어요, 좀.”
“너희 왕자한테 시비 걸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것 말고요. 아니 그런데 전 왜 데려와서…”
“널 보면 그놈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거짓말 같은데…”
“다 왔다.”
안내하는 내내 뒤에서 벌어지는 촌극을 무시하고 제 할 일만 하던 네비로스가 입을 열었다.
복도며 계단을 오가던 그들의 앞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인간은 열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워 보였지만 악마라면 열 수 있을거다.
과연 네비로스가 가볍게 미는 것만으로도 문이 열렸다.
문 안은, 붉은 융단이 깔린 대리석 바닥의 넓은 홀이었다.
홀의 맨 끝에는 커다란 의자가 있었고 그곳에는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카이엔은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마왕의 이미지를 상상한 것과는 달리, 의자에 앉아있는 건 커다란 천으로 몸을 감싸고 그걸로도 모자라 얼굴까지 가린 이었다.
먼지가 앉은 것만 같은, 청회색 천을 뒤집어쓴 이의 체구는 갸날팠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의 등장에 그는 낡은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게 누구야! 여기까지 손님이, 이렇게나 많이 찾아오다니 별일인걸?”
“잠적한 것 치고는 화려한 성을 지어놓았군.”
“아하하, 그렇다고 오두막이나 초가집에 살 순 없잖아요?”
유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는 굉장히 듣기 좋았다. 겉만 봐선, 도저히 마왕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카이엔은 의아해하면서 옆을 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와는 달리 앙그라의 표정은 찌푸려진 채였고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그걸로 봐선 저놈이 아닌 것 같아도 위험하긴 한 모양이었다.
전 마왕이 움직이면서 그를 감싼 천이 펄럭였지만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드러난 하관 때문에 입만은 보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고요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네비로스는 관망하고 있었고 카이엔과 비셰는 아무것도 모르니 구경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 마왕은… 양팔을 가볍게 파닥이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진짜 뭐지…’
장난치는 건가?
슬쩍 옆을 보니 앙그라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욱 험악해진 것만 같았다. 그의 기분 탓이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분위기가 바뀐 건 그다음이었다.
허공에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카이엔도 잘 아는 악마인 벨레드였는데 다른 한 명은 모르는 악마였다.
검은 제복을 입고 어깨에 걸린 외투를 흩날리면서 등장한 악마는 어깨까지 닿는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전 마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전 마왕은 그것을 가뿐히 피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어라? 바알까지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야?”
“네놈한테 바람구멍 하나라도 뚫어주기 위해서지.”
“더울 때 시원하겠네.”
내뱉는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흑발에 검은 피부, 눈 밑의 휘어진 십자 문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는 악마, 바알은 전 마왕을 향해 쉼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반응에도 전 마왕의 반응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바알보다 살짝 착지가 늦은 벨레드는 그 덩치에 알맞지 않은 표현 같긴 하지만 고양이처럼 사뿐히 착지한 후 마찬가지로 전 마왕에게 덤벼들었다.
이쪽은 그냥 바알이랑 전 마왕이 싸우고 있으니 재밌어 보여서 끼어든 게 분명하다며, 카이엔은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있을 생각이야?”
“이불 아니야!”
여전히 전 마왕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마법이 발동했다. 붉은 촉수 수십 가닥이 나타났지만 바알은 검으로 그것들을 베어버렸고 벨레드는 붙잡아서 뜯어버렸다.
뜬금없는 난투에 앙그라 마이뉴가 혀를 찼다.
“금방 끝나진 않겠군. 귀찮은데.”
전 마왕은 덮어쓴 천을 팔락거리면서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공격이란 공격은 족족 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몸을 가린 천이 뒤집어지기는커녕 입밖에 안 보였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웃는 입에 앙그라 마이뉴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화났구나.
카이엔은 슬쩍 그녀에게 한 걸음 정도 떨어졌다.
좀 더 앞에서 이어지는 싸움을 바라보던 앙그라 마이뉴의 모습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순간 이동으로 전 마왕의 뒤까지 이동한 그녀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장난은 그쯤하고 대화나 하지.”
“악!”
“시간 끌지 말고.”
“알았어-”
그가 손을 휘젓자 바알도 한숨을 쉬더니만 검을 집어넣었다. 벨레드는 흥이 깨졌단 얼굴을 하는 걸 봐선 정말로 재밌을 것 같아서 끼어든 모양이었다.
앙그라에게 맞은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몸을 구부정하게 세운 전 마왕은 그제야 카이엔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 모양새가 꼭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아서 카이엔은 답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끝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어느새 그의 옆으로 온 벨레드가 물었다.
“꼬맹아. 너네 괴물 시종은 어디에 두고 혼자 왔어?”
“앙그라 마이뉴가 저만 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 그럴 만도 하네.”
어느새 다가온 건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며 카이엔은 벨레드의 말에 대충 대답해주었다.
그의 인사는 계속 이어졌다. 잘 지냈냐, 어째 변한 게 없다, 라면서 툭툭 건드려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름 바이스가 훈련시킨답시고 그를 굴려댔지만 악마 눈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게 그거인 모양이었다. 카이엔은 어쩐지 슬퍼졌다.
“힘 조금만 줘서 쳐도 뼈 부러질 것 같다. 신성력으로 몸도 강화하고 그래 봐. 인간 중에선 그렇게 해서 근육 터질 것 같은 놈도 있더만.”
“그 사람들은 단련해서 그런 것 같은데요.”
“넌 안 해?”
“하고 있는데요?”
“뭐가 바뀐 건지 모르겠는데.”
근육 덩어리인 사람이 보기엔 그러겠지.
대꾸하고 싶은걸 꾹 참고 카이엔은 벨레드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 와중에 비명이 들려서 고개를 드니 전 마왕이 뒤집어쓴 천을 벗기려는 앙그라가 있었다. 전 마왕은 꼴사납게 바닥에 주저앉아서 천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지랄.”
“당신은 너무 과격해!”
“되지도 않는 연기는 집어치우고, 얼른 이거나 벗어!”
“힘으로 나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컥!”
버티다가 그의 앞까지 온 바알이 한 대 걷어차니 전 마왕은 얌전히 고꾸라졌다.
이건 뭔가 싶어서 카이엔의 눈동자가 거세게 진동했고 아스모데우스는 긴 한숨을 쉬었다.
“저놈은 이런 와중에도 장난질이군.”
“…악마들은 참 또라이가 많네요.”
“응. 너도 그랬다, 릴리트.”
대놓고 그 단어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네놈도 만만치 않았다며 아스모데우스가 푸념했다.
앙그라는 결국 천을 벗기는 데 성공했다.
뒤집어쓴 거대한 천을 떼어내니 드러난 건 백발에 검은 옷을 입은 멀쩡하게 생긴 남자였다.
전 마왕은 창피하다면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앙그라의 보디 블로를 맞고 컥 하면서 손을 뗐다.
“…멀쩡하네.”
“생긴 건 멀쩡하지. 다들 그렇잖아?”
“아.”
벨레드의 말에 카이엔은 그를 한번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날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아니에요.”
“맞는 것 같은데.”
“아닌데요.”
바로 옆에도 생긴 건 멀쩡한데 좀 이상한 악마가 있지 않나. 벨레드 말고도 그런 악마는 많았다.
루키푸게도 그렇고 가미긴도 그렇고, 아까 비셰한테 하는 걸 봐선 아스모데우스도 조금…
‘악마들은 다 성격이 이상한가 봐.’
안타깝게도 카이엔의 이런 오해를 바로잡아줄 정상적인 악마는 이 자리에 없었다.
전 마왕은 시무룩해져서 앙그라 마이뉴에게 맞은 부분을 문질렀다.
멀쩡하게 생긴 미남이었다. 게다가 악마라고 하기엔 인상이 굉장히 순해서 겉만 봐선 절대로 악마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살짝 내려온 눈꼬리에 짙은 속눈썹, 녹색 눈동자.
맞은 데가 아프다며 엄살을 부리던 그는 앙그라 마이뉴가 그에게 신경도 쓰지 않자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창피해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그가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전 마왕, 사탄입니다.”
“다 알고 있다.”
“초면인 사람도 있잖아요.”
반말과 존댓말을 번갈아 가면서 쓰던 악마였지만 본래 말투는 존댓말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방긋 웃으며 그가 물었다.
“이제 초야에 묻혀서 사려는 저한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이렇게 떼로 몰려온 거죠? 현 마왕에 군단장에 유명한 이들은 다 왔군요.”
“마왕 대리전 따위를 저질러놓고 난 다음에 기다렸다는 듯 마왕 자리 떠넘기고 없어지면 다냐?”
“마왕 하기 질렸으니 어쩔 수 없죠. 앙그라 마이뉴, 당신이 잘하고 있으니 된 거 아닌가요?”
“일단 맞아라.”
“악!”
깐죽대다가 한 대 더 처맞은 전 마왕, 사탄이었다.
바알은 지근거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등짝을 얻어맞은 사탄은 울상을 짓긴 했지만 아까 맞았을 때처럼 아픈 척을 하진 않았다. 대신 입술을 삐죽이며 물었다.
“그래서 인간까지 데리고 뭐하자고 온 겁니까? 악마들만 온 거였다면, 제 목숨 노리려는 걸로 생각하고 싹 쓸어버렸을 텐데.”
그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인상을 쓰며 한 걸음 걸어 나왔다.
비셰를 지키려는 듯 한 팔로 그녀의 앞을 막은 채였다.
“쓸데없이 기운을 드러내지 마라. 약한 놈도 있으니까…”
“아, 드디어 릴리트를 찾았습니까? 생각보다 느렸네요.”
“너…”
“외모는 확실히 닮았는데요. 속은… 아, 꽤 일치하네요! 흩어진 릴리스의 잔해는 일부는 자연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그녀가 원하던 대로 생의 궤도로 들어갔으니까요! 물론 다시 악마로 태어나긴 했지만요!”
그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아스모데우스의 발밑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금세 세를 키워 일어난 불꽃이 파도처럼 사탄을 덮쳤지만 그의 바로 앞에서 그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손쉽게 아스모데우스의 마법을 없애버린 사탄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싸우기 위해 온 거라면 도전이야 받아주겠지만, 괜히 힘자랑하다가 마신 님께 찍히지 말고 이야기부터 하죠?”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하하.”
“카이엔이 인간 사제란 걸 알고 있는 건가?”
“뭐, 어쩌다 보니까 알게 됐어요.”
“알면서 장난질을 쳤겠다?”
“절 패는 것보다 우선인 일이 있지 않나요?”
주먹을 올리는 앙그라 마이뉴의 앞에서 가드를 올리며 사탄이 대꾸했다.
그 태도에 짜증이 났지만 앙그라는 진정했다. 카이엔까지 데려왔는데 여기서 더 난리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탄 놈 때문에 안 그래도 바닥이던 악마들의 이미지가 더더욱 추락한 것 같긴 하지만.
“…리치왕의 시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론, 네놈이 그 사건에 개입했는지 듣고 싶어.”
“아아, 먼 과거의 일이네요. 저도 그땐 많이 젊었죠!”
현재 외모도 기껏해야 이십 대 초중반인 인간의 외모를 하고 있는 주제에 사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바이스랑 나란히 세워두면 바이스 쪽이 좀 더 어른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다른 악마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사탄은 경망스러울 정도로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무엇을 듣고 싶나요? 리치왕의 과거? 그녀의 업적? 그녀가 이룩한 마도의 경지와 거의 성공할뻔했던 세계 전복?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답니다.”
“…알고 있다는 건가?”
“물론이죠. 전 마왕으로서, 인간계의 동태를 살필 의무가 있으니까요. 물론 인간들이 미쳤다고 마계로의 문을 스스로 열고 악마들을 공격하기 위해 넘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요.”
바알도 그 시기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던 건지 잠자코 사탄의 말을 경청했다.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자 사탄은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리치왕은 눈여겨볼 만한 인재였죠. 그녀의 목적은 마계의 문을 여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탐구의 연속이었으니, 지켜보기도 쉬웠고요. 뭐, 지고의 경지에 다다른 자들이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니 어디 한군데가 망가져 버리긴 했지만요.”
“중요한 것만 말해.”
“인간들은 라이프 베슬을 부수지 못했어요. 그걸 부수게 되면 더 큰 재앙이 올 거란 걸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봉인한 것을, 악마가 도굴해내고 또 다른 악마가 제자리에 묻어놓았고 그녀를 찾아 헤매던 자의 손에 들어갔죠.”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현재 카이엔이 가장 원하는 정보가 바로 그것이었다.
가미긴이 도굴했으나 네비로스가 제자리에 다시 묻어둔 리치왕의 봉인을, 라이프 베슬을 다시 파낸 자가 누군지.
사탄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뜨거운 시선에 사탄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지금 인간계 역시 저는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더이상 마왕은 아니지만 방법은 있거든요. 곧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예요.”
“그 재미를 뺏는 셈이 되겠지만 흑막 좀 알려주지 그래?”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다고 여긴 건지 벨레드가 눈을 번득였다.
사탄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그는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던 존재. 강대한 리치왕의 군세 중에서는 미약하기 그지없던 자. 오로지 리치왕 하나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미련하고도 불쌍한 사내.”
“과거, 사도(邪道)의 길을 열어 경계의 틈으로 손을 뻗은 자이며 저와 영혼을 걸고 거래한 적이 있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