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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70화 (171/219)

-170화

곳곳에서 등장한 괴물들로 인해 사회는 혼란스러워졌다.

무차별적으로 이어지는 살인 사건에 일부에선 시체가 구울이 되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퍼졌다.

마검은 조종하는 육체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바로 다음 숙주를 찾아가 버리니 처리 또한 곤란했다.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살인귀에 언데드의 소문에 각국에 파견된 에밀의 사제와 성기사들은 바쁘게 전 대륙을 움직였다.

그런 뒤숭숭한 정세에서도 세자르는 평화로웠다.

일부러 괴물들이 피하는 건지 아니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수도에 있는 티아마티스가 봤다면 좀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다.

검은 숲의 근처에 있는 다른 영지에서도 괴물을 봤다는 신고가 이어졌지만 세자르만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는 마물의 소문에 힘입어 다른 살인 사건들도 일어났다. 마치, 마물의 소문에 묻어가려는 듯이.

수도 쪽은 에빌라이 공작으로서 티아마티스가 잘 해결할 거라고 믿고 카이엔은 그가 돌볼 수 있는 땅에 집중하기로 했다.

엔베인과 라스가 야간 순찰을 자원했고 글러티나와 글라스도 자신들은 밤눈이 밝으니 돕겠다고 나섰다.

이따금 그리델라도 빗자루를 타고 다니면서 순찰을 돕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렇게 네 명, 혹은 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순찰을 하기로 했다.

“그르릉.”

- 넌 어떻지?

“뭐가?”

“으릉.”

- 수상한 소문이니까.

“너까지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심각한 모양이네. 이쪽은 평화롭지만, 다른 곳은 난리도 아니겠지.”

사트로누스의 털을 쓰다듬으며 카이엔은 생각에 잠겼다.

적의 목적을 알 수가 없었다.

단순한 혼란이 목적일까? 그렇다면 반쯤은 성공한 셈이다.

프라우디에는 산채로 마물을 잡아 오면 검과 떼어내는 실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위험부담이 높으니 그 자리에서 처단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엔베인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 역시 더스크라이즈의 숲에서 마검과 접촉했을 때, 무시무시한 속도로 정신이 침식되는 것을 직접 경험했으니까.

자기보다 강한 놈이 있다면 그 자에게 들러붙어서 정신을 조종하려고 드니까 주의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설령 그들이 당한다고 해도 이쪽에는 정신 조작을 전문으로 하는 몽마, 비셰가 있어서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부러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비셰는 악덕 고용주가 부른다면서, 가기 싫다고 울긴 했지만 마계에 다녀오겠다며 외출한 상태였다.

언제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야간 순찰이 시작되었다.

영주성에서 순찰에 대해 공고하니 영주민들은 ‘아, 심각한 사건 때문에 이러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밤에 외출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저물면 바깥 행동을 하지 않고 이상한 걸 줍지 않고 몸조심을 하기로 했다.

야간 순찰의 첫 번째 날, 라스와 글러티나가 함께 영주성 밖으로 나갔다. 라스가 땅에서, 글러티나가 하늘에서 영지를 살폈다.

프라우디에가 급하게 만들어준 마도구로, 영지 내의 범위 내에선 소통을 할 수 있는 작은 물건을 하나씩 손에 든 상태였다. 둘 다 마법을 못 써서 마도구를 들고 다녀야 했다.

글러티나는 하늘을 날면서 지상을 살폈다. 밤눈이 밝은 그녀에겐 어둠을 뚫고 영지의 곳곳이 훤히 잘 보였다.

라스는 순찰을 하며 수상한 냄새나 흔적을 발견하면 연락하기로 했다.

첫날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그렇게 글러티나와 라스가 3일간 야간 순찰을 한 뒤 4일째에는 엔베인과 글라스가 나섰다.

두꺼운 흑색 망토를 두른 글라스는 열심히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고 엔베인은 평소처럼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찰을 하면서 하는 일이라곤, 근처에 곯아떨어진 취객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거나 외벽에서 야간 순찰을 하는 경비병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는 것 정도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경계가 풀릴 법도 하건만, 그들은 오히려 눈에 불을 켜고 수상한 점을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순찰을 하게 된 지 2주째 되는 날.

평소처럼 정해둔 순찰 경로를 지나던 엔베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글라스.”

- “응? 무슨 일 있어?”

“좀,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져서. 난 외벽 쪽으로 가볼게.”

- “앗, 난 반대쪽이라 좀 늦을지도… 나도 빨리 갈게.”

“양쪽에서 올지도 모르니 넌 그쪽을 확인해줘.”

빠르게 통신을 마치고 엔베인은 외벽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도착했을 땐 영지를 둘러싸고 있는 외벽의 경비병들이 군데군데 횃불을 켜놓고 다가오는 자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엔베인을 보자마자 경비병들은 그를 안내해주었다. 외벽의 위에서, 엔베인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을 든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놈이 아니었다.

총 세 명. 천천히 다가오고 있지만 이쪽으로 오는 게 분명했다. 방향을 틀 것 같지도 않았다.

“어,어떻게 하죠? 영주성에 바로 신고를-”

“할 필요 없다. 내가 처리하면 되니까. 다른 방향에서 더 올지도 모르니 그쪽 경계를 강화해.”

“네. 알겠습- 허어억!!”

할 말을 마친 엔베인은 즉시 외벽에서 뛰어내렸다.

평범한 사람이면 떨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을 정도의 높이였지만 엔베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내린 뒤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그는 검을 빼 들었다.

그의 마검은 말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졌다.

프라우디에는 그 현상에 대해, 마검의 의지가 그에 의해 꺾여서 그저 괴이한 힘을 가진 검으로 변한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그의 정신이 약해지면 다시 그것이 그를 침식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두렵지 않았다.

예전의 그는 검에 의해 침식당했지만 카이엔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으며 지금도 그는 카이엔을 지키고 있었고 여러 명의 동료가 생겼다.

더이상 그의 정신이 흔들릴 일은 없다.

굳게 믿으며 엔베인은 마검에 의해 조종당하는, 마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예전엔 인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괴물이 되어버린 마물들. 카이엔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가 되었을 괴물들을 망설임 없이 공격했다.

“-그워어!!”

“크아아악!!”

그의 등장에 세 마물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공허한 눈에 일순간 살기가 들어차더니만 괴성을 지르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들고 있는 마검과 비슷한 흉흉하고 기분 나쁜 기운을 풍기는 검이었다.

맞받아치면서 엔베인은 서슴없이 검을 휘둘렀다.

마물들의 몸체를 자르고 검을 부순다! 검이 있다면 얼마든지, 제가 빨아들인 생명력으로 인해 신체를 수복하는 놈들이었다.

예리한 검격이 이어졌다. 엘프 특유의 민첩하고 유연한 움직임으로, 엔베인은 적의 공격을 피하고 흘려넘겼다.

같은 마검인지라 그 흉측한 기운도 그에게는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생명력을 흡수하려는 시도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침식당했으니 생명력이란 게 있을 리 없었다.

엔베인의 팔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그는 검을 휘둘러서 한 놈의 몸체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검을 든 팔을 자르고 검을 밟았다.

밟는다고 부서지는 게 아니라 혀를 차고 깨부수려는 듯 그가 가진 마검을 높이 들어 올리자 다른 두 놈이 양옆에서 그를 공격했다.

날카로운 찌르기에 엔베인이 몸을 뒤로 물렀다. 잘린 놈의 몸뚱이가 꾸물거리면서 다시 검을 향해 뭉치려고 했다.

한번 베어버린 놈을 무시하고 엔베인은 다른 마물을 상대했다. 마물의 손에서 떨어진 마검을 집어 들자 새까만, 빛조차도 모조리 흡수할 것만 같은 칠흑의 검날이 갈라지면서 그를 덮쳤다.

몸을 마비시키고 공포에 떨게 하는 기운이 그를 내리찍었지만 엔베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마검으로 그것을 내리쳤다. 검이 두 동강 나자 괴이한 기운 또한 자취를 감췄다.

부러뜨린 마검을 미련 없이 버린 뒤, 엔베인은 다른 마물들을 공격했다.

마검이 있는 한 저놈들은 재생한다.

그렇다면…

“……”

그는 목에 걸고 있던 작은 물병을 만지작거리더니 가죽끈을 끊고 마물을 향해 병을 던졌다.

마물은 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평범한 유리병은 당연히, 쨍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건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끄아아아-!!”

성수에 닿은 마검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마검이 지배하는 몸뚱이가 비명을 질렀다. 같은 편이 비명을 지르든 말든 다른 마물은 엔베인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엔베인은 그놈을 해치운 뒤에, 성수에 닿은 마검을 확인했다.

마검은 반쯤 녹아있었고 숙주의 형체도 일그러져있었다. 더이상, 재생하지 않았다.

‘효과가 있구나.’

카이엔에게 알려주면 기뻐할 거라며 엔베인은 미소를 지었다.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서 부순 마검의 잔해를 집어넣으며 그는 남은 것을 살폈다.

성수가 더 있었다면 남은 숙주의 몸체… 썩은 살들을 정화할 수 있겠지만 가진 게 없었다.

애초에 그가 목에 걸고 다니던 성수도 카이엔이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까 하나씩 받아 가라고 준 것을 작은 병에 나눠 담아서 목걸이처럼 하고 다닌 것뿐이었다.

일단 아침에 카이엔이 일어나면 상황 보고를 하기로 하고 그는 후드를 눌러쓰고 길게 숨을 내쉰 뒤 그대로 외벽을 향해 달려갔다.

안쪽에서 문을 열어줄 필요 없이, 그는 그대로 외벽을 타고 달려서 올라갔다. 그 기상천외한 능력에 외벽을 지키던 병사들은 크게 놀랐다.

그 모습을 못 본 건지 엔베인은 눌러쓴 후드가 벗겨지지 않게 손으로 누르면서 말했다.

“혹시라도 저런 마물이 더 나타나거나 시체에 좋지 않은 변화가 일어난다면, 바로 영주성으로 신고하도록.”

“네…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엔베인 씨!”

“수고해라.”

짧게 대답하고 엔베인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외벽을 타고 올라온 그였지만 내려가는 건 평범하게 통로와 계단을 통해서 내려갔다.

그제야 그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통신 마도구를 꺼냈다.

“그쪽은 어때?”

- “어… 이쪽은 괜찮아. 지금 난 검은 숲 쪽에 있는데 이쪽도 문제없고.”

“계속 정찰 부탁할게. 난 프라우디에를 만나러 가야겠어.”

- “나한테 맡기고 다녀와!”

“부탁할게.”

그가 처음 세자르에 왔을 때 다가온 게 글라스라, 엔베인은 그에게는 어느 정도 편하게 말을 놓을 수 있었다.

글라스와 연락을 마친 뒤 엔베인은 조심조심 마도구를 만지면서 이번에는 프라우디에에게 연락을 했다.

자고 있으면 어쩌나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바로 연락이 닿았다.

- “아, 엔베인 씨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 마검들을 발견해서 싸웠어. 총 세 명이 있었다.”

- “그래요? 저 연구실에 있으니까 바로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그래.”

프라우디에가 깨어있었고 허락한지라 엔베인은 바로 연구실로 향했다.

길에서 달렸다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사람이나 길고양이와 부딪칠까 봐 그는 건물의 지붕 위를 타고 날 듯이 달려갔다.

영주성에 도착해 프라우디에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로 향하니 프라우디에가 밖에 나와 있었다. 그를 발견한 엔베인은 말없이 후드를 벗었고 프라우디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괜찮으세요?”

“아직까지는.”

엔베인의 얼굴 반쪽은 검게 물들어있었다.

다크 엘프인지라 원래 피부색이 검긴 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검은빛이었다.

게다가 한쪽 눈의 흰 부분이 검게 물들었고 원래 붉었던 눈동자에는 푸른 기운이 서려 있었다.

프라우디에는 엔베인의 검게 물든 얼굴 부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차분히 엔베인이 말했다.

“조금, 힘을 썼더니 이렇게 됐어.”

“그래도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금방 복구할 수 있어요.”

프라우디에의 손이 닿자 검게 변한 부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눈동자 또한 엔베인이 눈을 감았다가 뜨니 원상 복귀 되었다.

그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프라우디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상태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끝까지 숨길 수도 없을 테고요.”

“하지만, 이편이 나아.”

엔베인은 짧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나갔다.

“인간형이여야 해. 적어도,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어야 해.”

그는 마검에 침식당한 그 날,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검과 하나가 되어 반쯤 언데드화 되었다고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다크 엘프의 형상을 한 것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반쯤 언데드, 라는 것에 주목해서. 그러나 프라우디에는 달랐다.

언데드는 살이 썩고 만다.

엔베인은 마검으로 인해 언데드화 된 일종의 데스나이트였다. 살이 썩고 남은 자리엔 뼈만이 남게 되지만, 그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다.

프라우디에가 마법으로 그의 상태를 유지해주고 있었다.

살이 썩지 않도록, 뼈가 드러나지 않도록.

언데드 특유의 푸른색 안광이 보이지 않도록.

두 사람만의 비밀이었다. 엔베인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라우디에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다크 엘프라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는데 실은 언데드에 마법이 없었다면 지금쯤이면 뼈밖에 남지 않은 스켈레톤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을 그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천신의 사제들과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안 좋은 소문이 퍼질 수도 있다는 것을…

프라우디에가 그의 모습을 고쳐주자 엔베인은 다시 순찰을 하러 가겠다며 몸을 돌렸다.

“다시 나가려고요?”

“글라스 혼자 살피고 있으니까.”

“에휴… 조심하세요.”

“응. 아 맞다, 아까 주워온 마검의 파편들이야.”

“으음- 이렇게 봐선 그냥 고철 덩어리네요. 자세히 살펴볼게요.”

다시 후드를 눌러쓰고 엔베인은 영주성 밖으로 나갔다.

마도구로 글라스와 통신하며 그가 확인하지 못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이엔은 그가 다크 엘프 모습이던 해골밖에 남지 않던 똑같이 대해주겠지만, 별채의 식구들 또한 같겠지만 그는 이 몸에 대한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오래 못 갈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가만히 있다면 모를까, 조금 전과 같은 전투가 일어나면 바로 티가 날 테니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이 모습을 유지하고 싶었다.

이 모습이, 이 얼굴이 그의 진짜 모습이었지만 그건 과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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