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66화 (167/219)

166화

“윽…!”

이유 모를 오싹함에 카이엔은 몸을 떨었다.

기도를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건가, 싶어서 그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차디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마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그는 아직도 사제로서 뭘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상태였다.

성서를 쓰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마신전은 그냥 영지 명물, 관광 명소 같은 걸로 놔둬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요즘 그의 생각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카이엔은 신전 밖으로 나왔다.

근처에 목줄을 매어놓은 플루토가 그가 나오는 걸 보고 멍멍 짖으면서 팔짝팔짝 뛰었다.

플루토를 산책시켜줄 겸 신전으로 온 거라서 묶어놓은 목줄을 다시 손에 쥔 그는 영주성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한두 명 정도 호위로 따라왔겠지만 그가 혼자 가고 싶다고 했기에 플루토가 호위 역할을 대신하기로 했다.

물론 아직도 아기 멍멍이인 플루토는 호위 같은 건 모르겠고 카이엔과 산책 나온 게 즐거워서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영주성으로 돌아와서 마저 일하기 위해 그가 손에 펜을 들었을 때, 옆에 서 있던 바이스가 물었다.

“왕자님, 올해 생일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응?”

“원하시는 것이 있는지 묻는 겁니다.”

“네가 알아서 해. 알아서 잘하겠지.”

“진심이십니까?”

“…갑자기 왜 그래? 무섭게.”

바이스가 엄숙하게 묻자 카이엔이 살짝 몸을 움츠렸다.

그러고 보니 벌써 생일인가. 시간이 참 빨랐다.

“적당히 해줘. 어차피 크게 할 것도 아니고 조촐하게 할거잖아.”

“흠, 왕자님이 그걸 바라신다면야. 다른 분들의 의견도 물어보겠습니다.”

“그래. …또 이상한 회의 같은 거 하는 건 아니지?”

“하하.”

“할 셈이구나.”

“걱정 마십시오. 왕자님께는 비밀로 할 거라 몰래 모일 겁니다.”

“그래.”

생일 당사자를 앞에 두고 파티를 어떻게 할지 정하진 않을 모양이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카이엔은 일하기 시작했다.

회의라고 해봤자, 이전에 몇 번 했던 것처럼 쓸데없는 현수막 하나 걸어놓고 잡담이나 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었다.

하나 이번에는 달랐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일곱 시가 되자 식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종족 식구들뿐만이 아니라 식당의 요리사며 하인, 하녀 같은 영주성의 고용인들이 모조리 식당에 모인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모인 회의를 이끌어나가는 건 바이스였다.

“자, 올해 왕자님 생일 파티에 대한 좋은 의견을 받고 있습니다. 다들 말해보세요.”

그는 진지하게 카이엔의 생일 파티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머리가 여러 개 모이면 좋은 생각이 나올 것이란 전제 하였다.

장식, 요리, 케이크, 음악, 행사 진행 방법 등등.

이번엔 좀 더 멋지게 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요리사도 적극적으로 요리며 케이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음식과 케이크 디자인이며 맛에 대해 토론을 이어나갔다.

카이엔이 생일이라고 해서 온종일 쉬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돕고 싶은 마음은 다들 같았다.

작년보다 더 유명해진 그에게 온갖 선물이며 뇌물이 들어오겠지만 죄다 돌려보낼 준비도 단단히 했다.

“엮이고 싶지도 않고 아직 왕자님께 신붓감은 이릅니다.”

“어…”

“네에.”

다들 고개를 저으면서도 반박하지 않았다.

카이엔을 키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세자르 남작과 바이스였는데 남작은 이미 죽고 없으니, 바이스가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탓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카이엔에 대한 사항에서 말로 그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기에 다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생일 파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이 오갔다. 슬로세이도 손을 들고 제 생각을 이야기했다.

“무도회 해보고 싶어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꼭 해보고 싶어요!”

“흠…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군요. 생각해보겠습니다. 다른 의견 없습니까?”

“케이크는 3단으로 하는 게 어때요?”

“파티 이야기는 아닌데, 선물을 줄 거면 다 같이 한꺼번에 줬으면 좋겠어요. 선물 준비할 생각에 눈앞이 깜깜하긴 하지만요…”

뒤이어 그리델라, 엔베인이 말한 의견은 채용되었다. 요리사가 5단 케이크는 카이엔이 부담스러워할 테니 최고의 3단 케이크를 만들겠다며 주방 식구들과 함께 찬성했고, 선물 건도 다들 동의했다.

카이엔 몰래 하는 카이엔 생일 파티 준비 회의라니. 깜짝 놀랄만한 생일 파티를 준비하겠다며 다들 열정이 넘쳤다.

“…그런데 비셰는 언제 오는 거지?”

“그러게. 마계에 다녀온댔으니깐, 조금 걸릴지도 모르겠네. 본인도 그렇게 말했고.”

“왕자님 생일까진 잘 맞춰서 오면 좋을 텐데.”

마계에 간 사람에게 연락을 할 방법이 없어서 다들 비셰가 잘 맞춰서 돌아오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카이엔 몰래 그의 생일 파티를 위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한편 카이엔은 페이리가 소금이, 루브, 릴리시아랑 모여서 자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서로 말이 통하진 않았다.

하지만 페이리는 소금이와는 간단하게 좋고 싫음의 판단 여부나 간단한 의사소통은 색깔 블록을 이용한 것으로 대충이나마 의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루브는… 맨날 자고 있어서 이따금 페이리를 따라 바깥에 햇볕을 쬐러 나갈 뿐이었다. 그 외엔 계속 유리 수조 내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릴리시아와는 바닥에 그림을 그려서 소통을 시도하는 모양인데 릴리시아가 그림에 재미를 붙인 건지 촉수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땅에 신나게 그림을 그리자 페이리는 당황해서 팔을 휘저었다.

“그게 아니야-!!”

“…해석해줘?”

“네?! 아, 아뇨! 저 혼자서 잘 해볼게요!”

슬쩍 카이엔이 옆에서 물어봤지만 페이리는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다면서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에 카이엔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다만 페이리가 바닥에 내려놓은 바구니에서 나온 소금이가 쪼르르 그의 신발 쪽으로 달려오니 손에 들고 어깨에 태워서 정원을 나섰다.

“…너희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찟.”

- 몰라.

“몰라? 페이리가 열심히 뭐라고 말하던 것 같던데.”

“찌잇, 찍.”

- 간식 이야기 아니었어? 그런 줄 알았는데.

“하하…”

잘 될지 모르겠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제대로 말이 통하는 건 나 뿐이니깐.”

“찟찟, 쮯…”

- 뭘 먹어야 할지 바닥에 그리는 줄 알았는데…

“그래, 그래.”

페이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게 지켜보기로 했다. 워낙 학구열이 높으니까.

산책 좀 하다가 일하러 발을 돌리는 카이엔에게 소금이가 열심히 찍찍댔다.

“찍찍찍!!”

- 요즘 너무 앉아만 있는다!”

“어쩔 수 없지. 바쁘니까.”

무슨 일이 해도 해도 줄지를 않는 건지.

한번 토벌을 마친 다음에는 사냥이 있고 그 뒤에는 관련 보고서가 줄지어 올라온다. 그걸 해결할 때쯤이면 또 다른 사냥 시즌이 돌아온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제때 밀려오는 일을 끝내는 것도 벅찼다.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알지만 평범하게 알아서 잘 하겠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바이스한테 맡겼으니까 충분히 잘 해낼 터였다.

그리고 생일 당일.

“왕자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아침에 그를 깨우러 온 바이스가 제일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 후는 평소와 같았다. 다만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바이스가 선물 이야기를 꺼냈다.

“이르게 도착한 것들을 미리 확인했습니다. 다른 귀족들이 보낸 것은 돌려보냈지만 왕실에서 보낸 건 돈과 금이라 그냥 뒀고, 쌍둥이도 선물을 보냈더군요.”

“…에이들러랑 레이지가?”

“네. 수도에서 유행 중인 소설책과 최신 개정판이라는 몬스터 사전, 선더버드의 알이라는 몬스터 알입니다.”

“알??”

이젠 알까지 품어야 하는 건가?

카이엔이 황당해하자 바이스가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보온 마법이 걸려서 오긴 했는데 부화할진 모르겠습니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지켜볼 거고요.”

“어… 그래.”

“한번 보시겠습니까?”

“응. 보긴 해야겠다.”

몬스터의 알이라니.

보통 그런 게 발견되면 사방에서 연구하겠다고 손을 내밀 텐데 어떻게 잘 빼돌려서 그에게 선물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야생의 몬스터 알을 인간이 부화시키면 그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라던가.

에이들러야 몬스터 알이라니까 이거다! 라면서 선물로 선택했을 게 뻔했다.

선더버드의 알은 방 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보온 마법이 풀릴 것을 대비해서 주변에 뜨거운 물을 담은 가죽 주머니를 두고 알 자체는 두꺼운 솜이불로 둘둘 감아놔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저러다가 알이 익어버리진 않을까? 걱정하며 카이엔은 알 가까이 다가갔다.

표면이 매끈한 게, 몬스터 알이라고 안 알려 줬다면 세상에 뭐 이렇게 큰 오리알이 있나 라고 생각할뻔했다.

“흠. 왕자님이 손을 대시자마자 부화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그건 기우였나 보군요.”

“날 뭘로 보는 거야…”

“알과는 소통 못 하십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뭐, 할 수도 있죠.”

“일단 알은 여기 두자. 방에 뒀다간 분명… 소금이가 새로운 장난감처럼 쓸 게 분명해.”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그의 부재중에 알이 깨지기라도 했다간, 안에서 태어난 새끼 몬스터가 소금이를 먹어버릴지도 몰랐다.

저게 진짜 몬스터 알인지도 모르겠고 언제 부화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저대로 두기로 하고 카이엔은 방에서 나왔다. 이제 일하러 갈 시간이었다.

“맞다. 저녁에는 파티를 열 겁니다. 크게요.”

“파티? 그런 것까지 하는 거야?”

“안전한 시기 아닙니까. 이럴 때나 파티해야죠.”

“너희가 하고 싶다면야…”

“다 함께 즐겁게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그렇지… 비셰는 아직 소식 없어?”

“없네요. 솔직히 저도 걱정이 되긴 합니다만, 알 방법이 없네요.”

꼭 강해져서 돌아오겠다면서 비셰는 지옥으로 갔다. 그리고, 여태 연락이 없었다.

걱정되긴 했지만 저번에도 앙그라에게 신세 진 적이 있는지라 또 부탁하기도 미안했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 가긴 했지만 정말 괜찮긴 한 건지.

“늦기 전에 오면 좋겠습니다만.”

“그러게.”

그래도 비셰니까, 늦기 전에 오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끝으로 카이엔은 일에 열중했다. 생일이라고 해서 쉬는 것도 아니었고, 얼른 일을 끝내야 다들 기대하는 파티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

파티는 저녁 식사를 할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넓은 식당에 다들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카이엔에게 축하 인사를 한마디씩 건넸다.

소금이도 테이블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접시 위에 마련된 식사를 접시 안에서 열심히 먹었다.

사트로누스는 테이블이 불편하다면서 카이엔의 의자 옆 바닥에 앉아있었다. 플루토는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페이리는 의자 없이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릴리시아는 올 수가 없어서 이따가 정원에 가서 만날 예정이었다.

요리사가 신경을 쓴 모양인지 평소보다 음식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식사 시간이 끝나자 다들 그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다들 식당에 들어올 때 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오던데 그게 선물이었던 모양이었다.

페이리는 가죽 표지로 된 책을 하나 그에게 건넸다.

“제가 처음으로 쓴 책이에요. 꼭! 혼자 보셔야 해요!”

“응. 고마워. 나한테 줘도 되는 거야?”

“당연하죠.”

“맘에 들면 출판 제의해도 돼?”

“그, 그정돈 아니에요!”

얼굴을 붉히면서 페이리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모두가 건넨 선물이 하나하나 카이엔의 옆에 쌓였다.

그리델라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보석 장신구를 건넸고 엔베인은 이전에 토벌 나갔을 때 얻은 재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다크 엘프들이 쓰는 부적을 만들었다며 그에게 선물했다.

글러티나와 글라스는 솔직히, 그가 뭘 주면 기뻐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면서 며칠 전에 작정하고 검은 숲 안으로 들어가서 강해 보이는 놈들을 족족 잡아 왔다고 말했다.

“여기.”

“어…”

남매가 내민 보따리를 여니 몬스터에게 떼어낸 전리품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안 다쳤어?”

“응.”

“멀쩡해요.”

“다행이네.”

이렇게나 많이 잡아 왔으면, 한 달 뒤에 보낼 토벌단은 정찰만 하고 돌아와도 될 정도였다.

“고맙긴 한데 너무 무리 하진 마. 너희가 다치는 게 더 싫으니까.”

“참고할게.”

“다음엔 좀 더 멋진 선물을 준비할게요.”

“돈 될만한 거로 가져왔으니까 천천히 팔아서 비자금으로 써.”

“으음… 그럴게.”

이렇게 많으면 파는데도 굉장히 오래 걸릴 텐데.

바이스한테 맡기기로 하고 카이엔은 다른 선물들도 살폈다.

라스는 플루토와 사트로누스를 데리고 산책을 하러갈 때 그가 손을 다치지 않게끔 보다 튼튼한 목줄과 가죽 장갑을 만들어봤다면서 나무 상자에 담긴 선물을 내밀었다.

슬로세이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인어의 눈물에 마법을 가미해서 만든 귀걸이를 건넸다. 그녀가 손짓만 하면 그에게 접근하는 나쁜 놈에게 비수 한 번은 던질 수 있을 거라면서.

고리에 진주 하나만 달린 무난한 디자인이라 카이엔도 괜찮을 것 같다면서 선물을 받았고 슬로세이는 신이 나서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프라우디에는…

“솔직히,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살포시 웃으며 프라우디에가 입을 열었다.

“왕자님이 깜짝 놀랄만한걸 주고 싶었거든요. 누굴 기쁘게 만든다는 건 정말 어려워요.”

이렇게 말하는 프라우디에는, 제 키만 한 상자를 끌고 왔다. 자세히 보니 바퀴가 달린 커다란 여행 가방이었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그는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키가 1미터쯤 되는 인형이었다.

꼭 사람처럼 생긴 정교한 인형을 가리키며 프라우디에가 말을 이어나갔다.

“태엽을 감아서 안에 새겨진 마력 회로를 작동시키는 방법으로 움직여요. 인형이다 보니 신체가 망가져도 빠른 수복이 가능하고요. 으음…”

잠시 머뭇거리다가 프라우디에가 덧붙였다.

“왕자님이, 조금 더 안전에 신경을 쓰셨으면 해요.”

한 마디로 보디가드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든 거였다.

프라우디에 본인보다도 작은 인형은 아직 태엽이 감기지 않은 상태라 눈을 감고 있는 상태였다.

뉘어진 가방이 꼭 관처럼 보였다.

그의 반응을 기다리는 모습은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를 보고 카이엔이 말했다.

“고마워.”

프라우디에는 호문쿨루스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였다.

그런 아이가 태엽을 감아서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어냈다. 분명히 많은 고민 끝에 만들어낸 거겠지.

그 안에 담긴 건 영혼이 아니라 마력을 불어넣으면 새겨진 식대로 움직이는 기계 장치뿐이겠지만…

“태엽은, 지금 감아야 하는 거야?”

“아뇨. 조용한 곳에서 하는 게 나아요.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눈에 담는 사람이 중요하니까요.”

“그럼 나중에 해야겠네.”

커다란 상자 안에 있는 갈색 머리카락의 도자기 인형을 보며 그가 말했다.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인형이란 걸 모를 정도였다.

인간과 다른 점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함인지 짧은 소매로 인해 드러난 팔다리의 관절은 인형의 그것이었다.

태엽을 감을 땐 옆에 프라우디에가 같이 있어 주기로 하고 그는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선물 증정 이후엔 디저트가 나왔다.

생일 케이크는 5단으로 되어있었는데 원래 3단으로 할까 했다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큰 케이크를 만들겠냐며 주방 식구들이 힘을 합쳐서 만들었다고 한다.

층마다 맛이 다른 케이크에 카이엔은 한번 놀랐고 바이스가 만든 이들의 정성이 있으니 다 먹으라고 다섯 조각의 케이크로 접시를 꽉 채워서 주자 두 번 놀랐다.

이외에도 영주성에서 일하는 사용인들 모두가 정성을 들여서 파티장을 함께 꾸몄고 별거 아니지만 선물이라고 줬다며 바이스가 손수건과 넥타이를 건넸다.

“다들 돈을 모았습니다.”

“…비싼 거 아냐?”

“그러니 여러 명이 조금씩 모았죠.”

“고맙다고 전해줘.”

손수건과 넥타이가 담긴 종이 상자도 선물들 틈에 잘 올려놓았다.

5단 케이크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이걸 어떻게 구워낸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다 먹을 수 있나 걱정되긴 했지만 사용인들이 한 조각씩 먹으면 처리할 수 있을 거라며 바이스가 귀띔했다.

케이크까지 다 먹고 나니 바이스가 손뼉을 치며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 이제 자리를 옮깁시다.”

“응? 뭐가 더 있어?”

“이쪽으로 오세요.”

그는 식당에 있던 모두를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기껏해야 대련장으로만 썼던 넓은 홀로 안내했다.

다른 귀족들이라면 파티나 연회의 장소로 쓸 넓은 홀이었지만 세자르에선 연회를 열지 않았으니 그대로 방치된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이, 오늘은 반짝반짝하게 청소도 잘 되어있었고 장식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카이엔이 깜짝 놀라 물었다.

“이건 또 뭐야?”

“다들 무도회를 원하더군요. 어떠신가요?”

그 물음에 카이엔이 피식 웃었다.

“옷 갈아입어야 하나?”

“준비되어있습니다.”

“방으로 가야겠네.”

“네. 다들 옷을 갈아입고 올 거고 그 사이에 악단이 정비를 마치고 간단한 술상이 마련될 겁니다.”

“선물도 옮겨야겠다.”

“글라스 씨가 옮기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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