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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65화 (166/219)

165화

“으으으으-!!”

이를 악문 기합 소리.

비셰는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힘을 줘서 문질러도 부서질 염려가 없는 바닥을 걸레로 박박 문질러 닦는 그녀는 현재, 여성체였다.

그러나 평소 청소하는 영주성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이곳은, 다름이 아니라 아스모데우스의 성. 그중에서도 아스모데우스의 방이었다.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던 비셰는 큰맘 먹고 아스모데우스를 찾아갔다.

지난번에 그렇게 헤어진 탓에 얼굴 보기가 무척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만고만한 실력인 몽마 친구들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고 아스모데우스는 지옥의 악마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마법에 능한 자였다.

파괴력이 높기로 유명한 악마인 안드라스며 벨레드가 사방을 제 몸으로 때려 부수고 다니는 것과는 달리 아스모데우스는 가만히 서서 혹은 의자에 앉아서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마법으로 죄다 처리했다.

“강해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다신 오고 싶지 않았던 곳이다.

몽마에게 있어 아스모데우스는 파도 파도 괴담밖에 나오지 않는 악마였다.

오래전 죽어 그 존재가 잊힌 릴리트를 대신해서 남은 그녀의 자식들, 권속들을 책임지게 된 그는 처음에야 상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폭군일 뿐이었다.

그때도 회의 중간에 난입해서 그를 납치해가지 않았던가.

절대로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건만 비셰에겐 이것 말고 더 좋은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가라.”

카이엔에게는 강해지는 법을 알아 오겠다면서 비장하게 말하고 떠났던 그녀였다.

하지만 아스모데우스는 그녀를 보자마자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성에서 일하는 악마를 따라와 아스모데우스의 방까지 오게 된 비셰였다.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방으로 부른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대론 못 가요! 뭐라도 해야 한단 말이에요!”

어떻게든 강해지고 싶다면서 붙잡으니 그는 한숨을 푹 쉬면서 어딘가에서 메이드복을 하나 꺼내 던졌다.

그러면서 꺼낸, 청소나 하고 있으란 말.

영주성에서 시녀 혹은 시종으로서 일하면서 온갖 일을 도맡아 하는 비셰였다.

돌아가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겠지만 비셰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지금 이렇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바닥이라도 엄청 미끄럽게 닦아서 넘어지는 꼴이라도 봐야겠다!!’

대악마가 고작 바닥이 미끄럽다고 넘어지진 않을 테지만 비셰는 이를 악물고 청소에 집중했다.

이미 다른 곳은 다 청소했다.

먼지가 있다는 트집이라도 잡힐까 봐 천장의 샹들리에부터 시작해서 천장과 벽면 기둥의 장식을 손걸레로 닦았다.

선반과 가구들은 윗부분의 먼지부터 닦아내고 침대 밑으로 들어가서 그 안의 먼지까지 죄다 끄집어내 청소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며 열심히 바닥을 문지르고 있는 비셰였다.

곱게 깔린 양탄자는 세탁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죄다 걷어놨기에 반짝거리는 돌바닥이 그녀의 열정을 증명해주었다.

‘넘어져라 넘어져라 넘어져라!!’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을 마신께 빌면서, 비셰는 열심히 바닥을 닦았다.

한편, 비셰를 방에 내버려 두고 나온 아스모데우스는 방황하고 있었다.

굳은 얼굴로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그를 본 사용인들은 화들짝 놀라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든 그의 근처를 지나가지 않으려는 의지에 기반한 행동이었다.

사실 아스모데우스는 비셰의 얼굴을 보기가 좀 껄끄러웠다.

릴리트지만 그가 아는 릴리트가 아니라는 건 이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 얼굴만 보면 화가 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니까.

“하…”

그가 내뱉은 한숨에, 힐끔힐끔 그의 모습을 살피던 사용인들이 후다닥 도망쳤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릴리트. 릴리트.

한참 동안 그 이름을 입속에서 굴리다가 그는 걸음을 떼었다.

강해지고 싶다고 찾아온 녀석에게 메이드복 하나 던져주고 청소나 하고 있으라고 하고 방에서 나와버렸다.

그의 입으로 청소나 하고 있으라고 말하긴 했지만 내팽개치고 갔거나 적당히 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릴리트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방문을 연 그는 문을 열자마자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번쩍이는 바닥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는 방안을 확인했다.

그가 나가기 전보다 훨씬 깨끗해진 방은, 양탄자는 어디에 뒀는지 매끈한 돌바닥이 샹들리에의 불빛을 받아 굉장히 번쩍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의자 뒤에 숨어있는 것처럼 몸을 감추고 앉아있는 비셰가 보였다.

이 녀석이 대체 뭘 한 건가 싶어서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미끄러웠다.

왁스 칠을 엄청나게 한 모양이었다.

돌바닥에 왁스 칠이라니.

환기를 시켰는지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뭘 노리고 했을지는 뻔했다.

“릴리트 너…”

대답이 없었다.

한숨을 쉬면서 아스모데우스는 비셰를 향해 걸어갔다.

구두 굽 소리가 나지만 미끄러지지 않았다. 어차피 마법을 쓰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비셰의 바로 옆까지 간 그는 그녀의 옷을 덥석 잡고 끌어올려 서게 했다. 비셰는 고개를 돌려서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내 얼굴도 안 보려고 하고,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을 거면 대체 왜 날 찾아온 거지?”

비셰는 뚱하니 인상만 썼다.

살짝 삐죽 튀어나온 입술에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애써 준비한 함정에 넘어지지 않은 그에 대한 불만인 건지 뜬금없이 청소시킨 것에 대한 불만인 건지 아스모데우스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짧은 대치 후 비셰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내가 뭘 어떻게 해줄 줄 알고?”

“그치만 뜬금없이 릴리트로 떡하니 앉혀놨으니 뭐라도 해주겠죠.”

딱!

여전히 뚱한 태도에 아스모데우스는 비셰의 이마를 약하게 때렸다.

악 소리를 내면서 이마를 붙잡는 비셰에게 그가 말했다.

“넌 너무 약해.”

“알아요.”

“입은 살았군.”

“나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몽마는 너무 약해요. 왕이 되었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요.”

“무늬만 왕이니까. 내가 그렇게 선언하기도 했고.”

“앞으로는 언데드 군단 같은 놈들이랑 싸울 텐데 그런 녀석들한테 매혹이나 환상이 걸릴 리도 없고…”

“…아, 그 이야기군.”

벨레드에게 들은 것이 있으므로 아스모데우스도 비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눈치챘다.

하나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셰는, 그것과 엮이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의 옆에 두고 좀 강하게 가르쳐서 키우면 실력 향상은 저절로 될 테니까.

몇백 년 정도, 곁에 두고 지켜볼 셈이었다.

어차피 인간의 수명은 짧으니 그 왕자가 죽고 나면 갈 곳 없는 비셰는 지옥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강제로 붙잡아둘 수단은 많았지만 비셰가 그와 있고싶어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풀어줬던 것.

그런데 그런 비셰가 제 발로 그의 성, 그의 앞까지 찾아왔다.

“강해지는 방법을 알고 싶나?”

“당연하죠!”

“가장 쉬운 건 동족 포식이지. 약한 놈들 위주로 잡아먹다가 나중엔 좀 더 강한 놈을 노리는 것도 방법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쉽고 빠르게 강해지는 법이지. 네가 부탁한다면 귀족 급으로 잡아다 줄 수도 있으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 눈동자에 비셰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알았다고 하면 아스모데우스는 정말로, 그 밑의 서열의 악마들을 잡아 와서 그녀에게 마력이며 영혼을 먹일 게 분명했다.

처음부터 비셰가 거절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바로 다음 방법을 입에 담았다.

“두 번째는 마력을 섞는 방법. 이전의 릴리트가 잘 쓰던 방법이었지. 마력의 단계도 높이면서 종족을 늘릴 수 있어서 자주 썼던 방법이지만.”

“그것도 싫어요.”

“안다. 세 번째는 무턱대고 마력이 잘 통하게 몸에 과부하를 거는 법이지. 중간중간 막혀있을 흐름을 뚫기 위해 한번 폭주시키는 것. 수용 한계치가 늘어나면 쓸 수 있는 마법이 늘어날 테고, 그렇게 되면 이전보단 나을 거다.”

“그럼 세 번째…”

“이걸로 끝이라곤 안 했는데?”

“네?”

“그 외에도 마도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싸운다거나, 지금부터 천천히 수련에 몰두하는 것이나 다른 고위 악마와의 계약으로 힘을 나눠 받는 것 등등. 방법은 많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세 번째…”

“진심인가?”

“빠른 방법이 필요해요. 혼자 걸림돌이 될 수도 없고요.”

뚫어져라 노려보는 시선에도 비셰는 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맞추는 비셰를 보며 아스모데우스는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로서는 첫 번째, 하다못해 두 번째 방법이 제일 나았고 얼마든지 어울려줄 수 있었지만 비셰는 세 번째를 선택했다.

선택했으니, 그 방법대로 해줄 수밖에.

“그럼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하지.”

아스모데우스의 손끝이 비셰의 이마에 닿았다.

간단한 접촉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온몸이 거세게 뒤틀리는 듯한 느낌에 비셰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의 몸에 그의 마력을 집어넣었다. 억지로 몸속에 흐르는 마나의 길을 자극하고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컥… 허윽-”

“…….”

아스모데우스는 비셰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지켜보던 그는 그 주변에 간단한 결계를 설치했다.

비셰가 움직이다가 벽이나 가구에 부딪히면 그것도 큰일이므로 나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비명과 신음을 들으면 괜히, 더 신경 쓰일까 봐 소리까지 차단한 다음 그는 소파에 앉아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리려나’

적응이 빠르면 금방 끝나겠지만 느리면 일주일은 족히 걸릴지도 몰랐다. 잘못하면 죽으려나.

그는 무심히 제 할 일에만 몰두했다.

그로부터 두어 시간 뒤, 아스모데우스에게 추가된 서류를 가져다주기 위해 방까지 찾아온 비서는 차분히 제 일을 하는 아스모데우스와 바닥을 뒹굴고 있는 비셰를 보고 크게 놀랐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오래 살아서 반쯤 정신이 나간 주인을 보기 두려워서 얼른 일거리만 넘겨주고 방에서 나갔다.

“흐으… 끄으윽-”

“잘 버텨봐라. 난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힘든걸 택한 건 너니까.”

옆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도 비셰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몸을 비틀면서 괴로워할 뿐이었다.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아무것도 없는 돌바닥에 부딪힌 손톱이 깨지며 애써 닦은 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서 카이엔을 지킬 것이다.

그는 빈손에 맨몸으로 무작정 찾아와서 의탁을 요청했다. 아무 쓸모도 없는 몽마를 동료로 받아들여 줬고 도움까지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또 다른 하나의 가족이 되어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왕…자님…”

꼭 살아서 돌아갈게요.

첫 번째 발작이 멈추고 뒤틀리던 몸이 잠잠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스모데우스는 한숨을 쉬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테고, 얼마 안 있어서 또 깨어나 고통에 몸부림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먼 과거, 릴리트와의 실험으로 마력 폭주의 경우는 얼마만큼의 마력을 집어넣어야 최대 효율을 뽑아낼 수 있을지 연구한 적이 있었다.

물론 실험대상은 릴리트의 충실한 부하들과 아무 데서나 잡아 온 하급 마족들이었다.

정확히 계산하고 집어넣었으니 비셰의 정신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지 않는 이상, 비셰는 멀쩡할 거다. 다만, 거슬리는 구석이 있었다.

‘그 왕자란 놈, 자꾸 언급되는데.’

어떤 놈인지 새삼 궁금해져서, 조만간 얼굴 좀 보러 가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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