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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54화 (155/219)

154화

또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는걸, 다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마왕 대리전처럼 카이엔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게 둘 수 없는 이들은 수련에 몰두했다. 바이스가 카이엔의 옆에 찰싹 붙어있는 걸 그만두고 글라스, 비셰와 시간을 나누어서 카이엔의 시중을 드는 것만 봐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 와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들끼리 대련이며 훈련 스케줄을 짜는 이들을 보며 슬로세이는 부루퉁해졌다.

그녀는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인어였고 강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활약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힘이 달렸다. 비슷한 체구를 가진 프라우디에는 엄청난 마법사지만 그녀는 보통 인어에 불과했다.

“으으- 어쩌지?”

그리델라도 제 특기를 살리겠다며 마법 약 제조와 마법 공부를 시작했다.

덕분에 슬로세이는 혼자 덩그러니 연못 앞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별채의 이종족 식구 중에서 가장 약한 건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나서려고 해도 어린애니까 뒤로 물러서 있으라고 다른 이들이 앞을 막아서서 보호하려 했다. 약한 건 사실이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나긴 고민 끝에 슬로세이는 몸을 일으켰다.

결심이 섰다.

그날 저녁, 다 같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같이 식사를 하자는 카이엔의 의견에 모두 동의한 덕분이었다.

오늘의 디저트는 레몬 머랭 타르트였다. 머랭을 거무스름하게 구운 건 비셰와 그리델라였는데 불꽃 마법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구웠다며 자랑했다. 그 말에 카이엔이 각자의 접시에 담긴 타르트를 보았다.

어쩐지 모양이 제각각이라고 했는데 연습하다 보니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너희건 먹을 수 있긴 한 거야?”

유독 머랭이 새까맣게 그을린 두 사람의 타르트를 보고 카이엔이 물었다.

그러자 비셰와 그리델라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많이 안 탔어요!”

“맞아. 탔어도 긁어내고 먹으면 되지!”

“으음… 그래.”

두 사람이 괜찮다고 하니 그가 더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가 막 타르트를 조금 잘라서 입에 넣었을 때, 갑자기 슬로세이가 손을 들고 일어서더니 말했다.

“저기, 나 이제 바다로 돌아가려고. 할 일이 있어!”

“그래?”

“집 가는 건가?”

“그동안 즐거웠다.”

“바다로 돌아가서도 잘 살아라.”

“아냐! 성인식 하러 가는 것뿐이거든?!”

슬로세이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인 줄 알고 다들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슬로세이는 양손을 휘저으며 반박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성인식?”

“응!!”

“역시 아직 애였구나.”

“흥- 그렇게 말하는 것도 잠시뿐일걸! 성인식 하고 나면 쑥 클 테니까!”

“아, 그래.”

“잘 다녀와.”

모두의 반응은 온건했다.

잘 다녀오라는 말은 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슬로세이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먹이를 잔뜩 저장해놓은 소금이 마냥 뺨이 부풀어 오른 것을 보고 카이엔은 턱을 괴었다.

슬로세이를 혼자 보내도 되는 걸지, 걱정이 되었다.

이전에도 운 나쁘게 인간들에게 잡혀가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었다.

요즘 뒤숭숭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지라 카이엔이 말했다.

“너 혼자 갈 수 있겠어? 힘들 텐데…”

“그럼 같이 가자. 바닷속 구경시켜줄게!”

“저번에 들어갔잖아.”

“초면이 아니니까 더 잘해줄 거야!”

“그런 위험한 곳에 왕자님을 보낼 수는 없죠. 다른 사람 데리고 가세요.”

“엥?”

“딴 사람들은 위험해져도 된다는 거야?”

“왕자님은 아직 혼자 보내긴 너무 약합니다. 그때 셋만 보낸 것도 제가 많이 봐준 거였어요.”

바이스의 눈빛이 매서워 졌다.

그러고 보니, 그때 슬로세이랑 그리델라와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바이스가 쫄딱 젖은 그를 보고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었다. 감기 걸리면 어쩌냐면서.

게다가 바이스가 제기한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저번엔 상황 보고와 인사를 하러 갔었는데 이번엔 성인식이라니. 얼마나 걸리는 겁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안 됩니다. 왕자님은 못 데려가요.”

“칫.”

“아하하. 바이스 씨 고집은 못 꺾지.”

“하지만 슬로세이 혼자 보내는 것도 걱정되는데.”

“바다 앞까지만 같이 갔다가 나올 때까지 근처에서 대기한다던가.”

그들 중 가장 어린아이 모습인 슬로세이가 먼 길 떠나 바다로 간다는 건 충분히 걱정되는 일이었다.

다들 한 마디씩 의견을 건네는 사이에 카이엔은 바이스에게 손짓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바이스가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하자 카이엔이 소곤거렸다.

“내가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거리는 멀어도 인어도 이참에 마신의 신자로 끌어들이면 좋을 것 같아.”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신가요?”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마신 사제로 있는데 이대로 신전을 텅 비워놓는 것도 좀 그렇고… 신도 속상해하는 것 같아서.”

“휴우.”

“안될까?”

“왕자님 혼자는 못 보냅니다.”

그 말인즉슨 자기도 따라간다는 뜻이었다.

“그리델라 님, 인어의 성인식은 어떤 건가요?”

“에? 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난 슬로세이나 몇몇 인어랑 친하게 지냈을 뿐이라서.”

“그런 건 나한테 물어봐야지!”

“그렇군요. 뭡니까?”

“그냥 시험 보는 거야.”

“시험?”

성인식이 시험?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슬로세이가 말했다.

“다른 인어들이 말하는데, 그냥 시험이래.”

“별로 어려운 건 아닌가? 떨어지는 사람도 있어?”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괜찮겠네.”

어려운 건 아닌 모양이라 다들 안도했다.

그러나 슬로세이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인어의 나라를 보여주고 싶은 모양인지 계속 같이 가자면서 졸라댔다. 하지만 슬로세이가 인어족의 공주라고 해도 이방인을 많이 데려가는 건 좋지 않았다.

“다른 인어들이 우리를 경계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그때 너를 구해줬었다고 해도 말이야.”

“칫…”

“바다까지 혼자 보내는 건 역시 걱정이니 일단 근처까지는 같이 갈까요?”

“으음, 그치만 여기서 바다라니 엄청 멀어요.”

“슬로세이 혼자라면 내가 빗자루에 태우고 갈 수 있는데 여럿이서 가려면 마차로 가야 하니까.”

마차를 타고 가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서 가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오고 가는 시간, 그리고 바닷속에서 보낼 시간.

그것을 계산하면서 그들은 어떤 방법이 제일 좋을지 고민했다.

슬로세이는 슬로세이대로 옆에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지?”

“왕자님을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슬로세이가 떼를 쓰자 바이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슬로세이를 혼냈다.

소금이처럼 빵빵하게 부푼 뺨을 보고 그가 물었다.

“물속에서 숨은 어떻게 쉬고 헤엄은 어떻게 칠 거고, 인간이 무슨 수로 바닷속에서 지냅니까?”

“인어의 축복 있단 말이에요-!!”

“그게 뭡니까?”

“그, 그건…”

슬로세이는 카이엔을 힐끗 쳐다봤다가 바이스를 보고는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그 행동이 매우 의심스러웠기에 바이스는 그리델라를 보았다. 그리델라도 무언가 아는 눈치기에 그는 타깃을 그리델라로 바꾸었다.

“…이전에 왕자님과 같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건 그리델라 님이었죠.”

“윽!”

“인어의 축복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그, 그게 그러니까…”

“뭐길래 말도 못 하고 제 얼굴도 똑바로 못 쳐다보는 겁니까? 솔직히 말하세요. 말 안 하면…”

“바, 바이스 씨, 죽이는 건 안 돼요!!”

바이스의 표정이 살벌해지자 프라우디에가 급하게 그를 붙잡고 말렸다. 앉아있는 자리가 카이엔과 가장 가까운 탓에 바이스와도 가까워서였다.

프라우디에가 그를 붙잡자 바이스의 시선이 그에게 옮겨갔다.

“프라우디에 님은 아시는 거 있으십니까?”

“네? 아뇨 없어요. 그치만 다 같이 바다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요?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도 있고-”

“바다에 인어 말고 몬스터도 삽니까?”

“에? 어… 먼바다에는…?”

“인어 왕국은 어디죠?”

“깊은 바닷속이긴 한데 안전해요!

제발 같이 가자는 간절한 눈빛에 바이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축복이나 사실대로 말씀하시죠.”

“여기선 좀 그렇고…”

비밀이라면서 슬로세이는 바이스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빡 하는 소리와 함께 슬로세이의 울음소리가 식당 안까지 울려 퍼졌다.

“에엥?!”

“맞았어??”

“바이스 씨!!”

다시 식당으로 돌아온 바이스는 한숨을 쉬고 있었고 슬로세이는 아픈 정수리를 문지르면서 울고 있었다.

잘못했다면서 펑펑 우는 슬로세이가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에빌이 황당해하며 중얼거렸다.

“아니 애를 왜 때려…”

“본인도 맞을만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차 없다니까…”

“너도 참… 대체 무슨 말을 들었길래.”

“왕자님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만.”

“난 왜?!”

“하아…”

어쩐지 시름이 깊어 보이는 바이스였다.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슬로세이가 훌쩍이는 소리만이 퍼졌다.

“머리 쪼개지는 줄 알았어-!!”

그리델라를 붙잡고 슬로세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슬로세이를 보는 바이스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훨씬 무시무시했다.

“제가 쪼개려고 했다면 진작에 쪼개졌을 겁니다.”

“으아앙!!”

그 눈빛과 말에 슬로세이는 머리를 붙잡으며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어른이 되어서 어린애를 울리고 괴롭히다니.

다들 경악했지만 바이스가 짜증이 난 것 같길래 그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았다. 카이엔 역시 바이스와 슬로세이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다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바다에 갈까?”

“늦었지만 휴가 가는 셈 치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영주님이신 왕자님이 자리를 비워야 하니 대리가 있어야 합니다. 집 지킬 사람을 정해주는 건 불쌍하니 제비뽑기라도 할까요?”

“아, 나랑 글라스는 남겠다. 태양빛에 약하진 않지만 이왕이면 일광도 바다도 피하고 싶어서.”

“누나?!”

“넌 가고 싶어?”

“어… 아뇨, 괜찮아요. 남을게요.”

“늑대 인간도 바다에선 필요 없겠지. 저도 남겠습니다.”

다들 한 마디씩 제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다들 프라우디에를 바라보면서는 이렇게 말했다.

“프라우디에는 가야겠지?”

“원체 능력이 뛰어나니까, 어딜 가도 잘 싸울 테고.”

“그 정돈 아닌데…”

“하지만 네 힘이 어딜 가던 제일 잘 통한다는 건 사실이니깐.”

칭찬이 이어졌다.

반면 장소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제한되는 이들은 자진해서 남겠다고 손을 들었다. 비셰도 그중 하나였다.

“저도 쓸모없겠네요. 남을게요. 뭐… 저는 물 위에서나 물 안에서나 쓸모없는 건 같지만요…”

“의외네. 꼭 따라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수영복 입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오버했다가 바이스 씨한테 혼나긴 싫어요.”

“성장했군요.”

그럼 몇 명이나 슬로세이와 함께 바다로 가는 걸까? 다들 한 명씩 수를 세어보았다.

엔베인은 자신도 바다랑은 상성이 좋을 것 같지 않으니 남겠다고 했다. 죽은 몸에 물이 닿으면 정말로 썩을 것 같다면서…

결국 슬로세이와 친하고 인어와도 안면을 튼 그리델라와 카이엔, 바이스, 프라우디에 정도만 따라가기로 했다. 자네인은 프라우디에가 간다니 같이 갈까 남을까 고민하고 있다가 슬로세이가 붙잡아서 함께하기로 했다.

“가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정말 내가 자리를 비워도 될까?”

“남기로 한 인원만으로도 영지 방어는 충분합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제가 에빌 씨에게 일하는 법을 가르쳐 줬죠. 영주 대리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집사님도 계시고요.”

“하긴… 그런데 넌 왜 아직도 집사, 부 집사 역할을 안 맡고 꿋꿋이 시종인 거야?”

“아, 현 집사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나면 제가 그 자리 꿰어 찰 생각입니다.”

“어… 그래?”

“이미 남작님 시절부터 계시던 분을 내쫓을 수는 없죠. 아직도 건강하시기도 하고요.”

“으음…”

의외였다.

그런데 집사님은 꽤 정정해 보이던데, 앞으로 10여 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던데.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삼키고 카이엔은 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바닷속에서 숨 쉬는 건 어떻게 하지?”

“제가 마법 약을 만들게요. 인어의 축복이란 걸 많은 사람에게 하기는 힘든 모양이니까요.”

“그럼 부탁할게. 그런데 바이스 넌 왜 슬로세이 머리를 쥐어박은 거야? 엄청 울잖아.”

“잘못을 했으니 혼을 낸 것뿐입니다.”

“굳이 때릴 것까지야…”

“전 폭력밖에 모르니 어쩔 수 없죠.”

“하여간 말은 잘한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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