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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45화 (146/219)

145화

“저 알아요? 언제 본 적 있어요? 난 모르겠는데…”

여전히 울상을 지으며 비셰는 아픈 등을 문질렀다.

아스모데우스가 때린 곳은 평범하게 아팠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맘만 먹으면 그를 순식간에 죽여버릴 수도 있고 고문 끝에 죽일 수도 있고 갖고 놀다가 버릴 수도 있는 악마가 왜 난데없이 화를 내면서, 지팡이를 들고 그녀를 때린 걸까?

게다가 아스모데우스는 그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초면임이 분명한데도.

아직도 덜 웃은 건지 벨레드가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비셰에게 물었다.

“크흡… 아까 한 질문으로 돌아가자. 악마는 과연 언제 죽는 걸까?”

“많이 다치면 죽겠죠. 모든 존재가 다 그렇잖아요.”

“그것 말고는?”

“또 있어요?”

“스스로를 멸하는 거지.”

어느 날 갑자기 살기 싫어졌거나 기나긴 권태에 너무나도 지루함을 느껴서 자기 심장을 펑!

제스처까지 취하면서 벨레드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나 비셰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 반응에 벨레드가 턱을 문지르며 물었다.

“왜 아스모데우스가 몽마를 관리하게 됐는지는 알고 있어?”

“옛날부터 관리했다고 했잖아요. 본인 입으로도 그렇게 말했고…”

“악마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 저 땅 위를 살아가는 존재들은 죽으면 육신과 영혼으로 분리되지. 그럼 악마는 어떻게 될까? 그녀는 그걸 늘 궁금해했었지.”

그의 시선은 비셰를 향해있었다.

처음에는 그도 긴가민가했지만 아스모데우스의 반응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살짝 몸을 숙이고 비셰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릴리트. 네가 그랬었어. 돌고 도는 윤회의 안에 과연 악마도 속해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면서. 그러더니만 친한 친구들 불러다 놓곤 펑! 뭐, 난 다른 녀석한테 들은 거지만.”

“어…”

“당시 있었던 건 나와 아스타로트, 살레오스.”

“같이 술 마시던 애들이네.”

“…….”

아스모데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비셰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 역시 잘못 본 줄로만 알았다.

당연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릴리트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눈앞에 있는 몽마의 모습은, 당시의 릴리트와 너무나도 닮았다.

“넌 릴리트를 닮았어. 그래서 일단 집어왔지.”

“…집어온 거라고요? 그게?”

“뭐가 문제지?”

“내가 그때 얼마나 놀랐는데!”

“놀랐다면서 그렇게 덤벼들었나?”

“이대로 죽는 건지 아니면 실컷 놀아나다가 죽는 건지, 무슨 꼴 당하는 건 아닌지 엄청 걱정했는데!!”

“그건-”

“게다가 예전부터 당신이 데려간 몽마들 중에서 잘된 애가 한 명도 없었잖아-!!”

할 말이 없다. 아스모데우스가 말을 잇지 못하자 벨레드는 다시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게 아스모데우스에게 물었다.

“몽마들은 왜 데려간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래서, 다 죽였어?”

“확인한 다음에 처리했지. 릴리트가 물려받는 왕의 이름이 아니라 실존했던 인물이란 게 알려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갖고 놀다 죽인 거 맞네, 그럼.”

“닥쳐라.”

어느새 다시 손에 들린 지팡이로 한 대 때렸지만 벨레드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바닥에 드러누워서 웃는 걸 보고 아스모데우스는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웃기 시작한 벨레드와는 달리 비셰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결국 그는 릴리트와 닮았다는 이유로 잡혀 온 게 아닌가?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머나먼 과거의 몽마 왕 때문이란 것에 비셰는 울기 시작했다.

“난 몰라요-!! 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돌아갈래!! 왕자님한테 갈 거야-!!'

“너-”

“겨우 시녀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바이스 씨랑 같이 왕자님 옆에서 계속 살 거란 말야-!!”

울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한 놈은 바닥을 구르면서 웃고 있고 한 놈은 이제 바닥에서 퍼덕거리면서 울음을 터뜨리자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응접실 안은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섞인 난장판이 되었다.

먼저 웃음을 그친 벨레드가 반쯤 몸을 일으키며 아스모데우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 얘 잡아다 놓고 뭘 하려고 했던 거야? 흉터 확인?”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흉터가 어디 있는 줄 알고?”

“…….”

알고 있었기에 아스모데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반응만으로도 벨레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그 두 사람이 막역한 관계이긴 했다. 결별과 재결합을 반복했던 두 악마를 떠올리고 벨레드는 피식 웃었다.

“내가 안 와도 잘 정리 됐겠네. 자, 너도 이제 그만 일어나라.”

멀쩡한 척하며 벨레드는 아직도 버둥거리면서 울고 있는 비셰를 잡고 들어 올렸다.

훌쩍이는 비셰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대충 문질러 닦아주며 그가 말했다.

“그럼 나 얘 데려다주고 온다.”

“오지 마.”

“오, 데려가지 말란 말은 안 하네. 아무튼, 나중에 너도 카이엔 보러 가자. 사서 고생하는 녀석이라 보고 있으면 꽤 재밌어.”

“혼자 실컷 봐라.”

“몽마 쪽은 어떻게 할래?”

“…당사자가 저러는데 어쩌겠어. 적당한 놈 뽑아야지. 릴리트, 넌 다음에 내가 꼭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겠다.”

“나 릴리트 아니야! 아니라니까!!”

끝까지 비셰는 거부하면서 아스모데우스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벨레드는 그런 비셰를 놀리면서 손수건을 쥐여주었다.

힘줘서 문질러 닦은 탓에 얼굴 군데군데에 새빨간 자국이 남았지만 비셰는 알지 못했다. 얼굴이 아픈지도 몰랐다.

자신이 릴리트란걸 인정하지 않고 고집부리던 비셰는 그대로 짐짝처럼 벨레드에게 들려서 운반되었다. 벨레드가 창문으로 나간 탓에 활짝 열린 창문을 닫고, 엉망이 된 응접실을 보며 아스모데우스는 연신 한숨을 쉬며 의자를 정리했다.

‘그 얼굴, 확실한데.’

왜 지금까지 눈치를 못 챈 걸까 싶었지만 애초에 그 녀석이 마계에 온 게 이번이 처음일지도 몰라서 그런 걸지도. 그게 아니라면, 계속 엇갈렸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가 릴리트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을 거다.’

의자를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릴리트는 그에게 있어서 누구보다도 가까운 존재였다.

수도 없이 결별했다가 재결합을 반복한 연인이기도 했으며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처음 그녀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자살을 했을 때 만큼이나 미쳐있진 않았다.

기나긴 지도자의 부재. 그로 인해 릴리트를 따르던 몽마들의 약화.

그녀가 다스리던 땅, 다스리던 힘, 다스리던 민족.

‘네 땅, 네 권위, 네 민족, 네가 해야 할 일들…!!!’

릴리트가 죽은 이후 그 모든 것을 땅도 가깝고 친하단 이유만으로 떠맡게 된 아스모데우스는 과거와는 다른 이유로 릴리트를 찾아 헤멨다.

그녀를 친구로 둔 탓에, 영지가 가까운 탓에!

지금으로부터 거의 천년에 가깝게 떠맡았던 일이 떠오르자 급속도로 혈압이 치솟아 저절로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처음 릴리트가 눈앞에서 죽음을 택했을 땐, 어떻게든 찾고 싶었다.

다시 나타나 주기만 하라고.

네 예상대로 우리에게도 영혼이란 게 있다면 인간처럼 환생하거나 마계의 다른 생명으로 태어날 테니까, 부디 나타나 주기만 하라고.

하나 릴리트의 부재로 그녀의 자식이며 권속인 릴림들의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졌다.

릴리트가 직접 자식으로 택하거나 세례 해 받아들인 이들의 수가 점점 적어지고 약해졌다.

그런 그들이 종족의 수를 늘리기 위해 다른 악마들과 결합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몽마였다.

처음엔 릴리트가 남긴 1세대를 아끼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그였지만 점점 그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는 예전 같은 눈으로 몽마를 바라볼 수 없었다.

주인을 잃은 악마는 그토록 쇠퇴해버리는 건가.

그것을 다른 악마들도 볼 수 있었기에… 그는 몽마의 왕 자리에 앉은 이가 ‘릴리트’라는 이름을 계승하게 했으며 그들이 인간계에서 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땐, 이젠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게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분명 처음엔 그리워했고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릴리트의 귀환을 기다렸지만 너무나도 긴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분노밖에 남지 않았다.

스스로도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스모데우스는 고개를 숙였다.

릴리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힘도 없는, 평범한 몽마처럼 보였다.

그것이 그를 슬프게 만들었지만 그는 그 감정이 슬픔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

비셰는 벨레드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세자르에 도착했다.

영주성에 와서 카이엔을 보자마자 비셰는 카이엔을 붙잡고 다시는 마계에 가지 않겠다며 울기 시작했다.

“으허어엉, 왕자님-!!”

“헉…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저 다신 마계에 안 갈 거예요. 으아앙!!”

갈 때도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몽마가 찾아와서 도움 요청을 했을 땐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몰라 카이엔은 벨레드에게 물었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음? 어… 자기도 기억 못 하는 전생의 인연 때문에?”

“전생?”

“저 아니에요! 그런 거 몰라요!!”

“…라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남은 릴리트의 조각이 몽마로 태어났겠지. 애초에 태초의 몽마들은 모두 릴리트의 자식이었고 지금은 릴리트 본인이 사라진 뒤라 전체적으로 질이 낮아져서.”

“그런 이야기 해봤자 전 몰라요.”

“아무튼 난 앙그라 마이뉴가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카이엔 너도 네 부하 잘 챙기거라.”

“부하 아닌데요.”

뚱한 얼굴로 카이엔이 대꾸했다.

자신과 대화하면서도 그의 허리를 붙잡고 울고 있는 비셰의 머리를 토닥여주는 카이엔을 보고 벨레드는 작게 웃었다.

지옥에서 잘 아는 악마들과 있을 때와는 말투가 조금 달라졌지만 비셰는 우느라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카이엔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곳저곳 살피고 툭툭 치며 만져보기도 한 뒤 그가 입을 열었다.

“넌 앞으로도 고생 꽤나 하겠군.”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난 가볼 테니 잘 있거라. 자세한 이야기는 저 녀석한테 듣고.”

손가락으로 비셰를 가리킨 뒤 벨레드는 조용히 돌아갔다.

남은 건 훌쩍이면서 눈물을 닦고 있는 비셰 뿐이었다.

도대체 마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조심스럽게 비셰를 떼어낸 뒤 카이엔은 그녀의 손을 잡고 영주성으로 들어갔다. 바로 집무실로 향해 소파에 비셰를 앉혀놓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비셰는 훌쩍거리면서 더듬더듬 마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차기 릴리트를 뽑아야 해서 마계로 갔고, 후보는 대충 추려졌으니 남은 건 투표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스모데우스가 나타나선 그녀를 잡아갔고 깨어보니 감옥이었고 탈출하려고 난리 치다가 죽을뻔하고 벨레드가 구하러 왔답시고 나타나선 알 수 없는 말만 해댔다고.

어쩌다 보니 셋이서 이야기하게 됐는데 뜬금없이 아스모데우스가 그녀에게 왕을 시키려고 하지를 않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너무 무서웠다고.

잡혀갔을 땐 이대로 친구들이랑 여기 식구들 얼굴을 못 보는 줄 알고 엄청 무서웠다는 말이 반복되었다.

덕분에 카이엔은 비셰를 진정시키면서 연신 눈물을 닦아주었다.

“앞으론 절대 마계 가지 마.”

“안 가요.”

“누가 잡으러 와도 내가 막아줄게.”

“네.”

“가서 쉬어. 며칠 동안 푹 쉬는 게 낫겠다. 필요할 때 부를게.”

비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에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계속 카이엔의 옆에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했던 바이스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악마들한테도 사정이 있었나 봐.”

비셰가 자기가 찾던 악마라는 거겠지. 하지만 비셰는 그걸 모르고.

“어떻게 하지?”

“일단 비셰 씨를 노리는 악마가 온다면 그때 생각하죠.”

“대책 없어 보이는데.”

“어쩔 수 없죠. 아니면 왕자님과 계약했던 그 마왕 부르면 끝나지 않을까요?”

“으음…”

오히려 더 큰 싸움이 벌어지면 어쩌지?

카이엔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괜찮겠지.”

“당분간 비셰 씨에겐 휴가를 줘야겠군요.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일단 왕자님의 울타리 안에 들어간 사람이니까요.”

“…그래. 네가 웬일로 다른 사람 걱정하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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