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으으으…”
어쩐지 얼얼한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비셰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감옥 안에 갇힌 채였다.
화들짝 놀라서 비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를 보고 저기를 봐도 감옥이었다.
‘와, 나 붙잡혀온 건가? 이건 페이리 씨가 읽던 소설책에서나 나올법한 상황…’
감탄하는 것도 잠시, 비셰는 심각해졌다.
“…페이리 씨가 읽는 소설책은 전부 이상한 건데.”
그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아서 비셰는 열심히 팔을 문질렀다. 소매가 긴 옷이었지만 그래도 왠지 소름이 돋았다.
왜 감옥에 가둬논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탈출을 해야 했다.
당연히, 갇혀있으면 탈출을 해야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므로 비셰는 일단 모습부터 바꿨다. 여성체보다는 남성체 쪽이 좀 더 팔다리가 길어서 남성체로 변한 그는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감옥을 지키는 이는 없었다.
“휴우, 이제 어쩐다?”
괜히 나댔나 후회가 됐지만 그 상황에서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하찮게 취급하는 놈에게 머리를 숙이고 싶지도 않았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을 텐데…
‘일단은 탈출부터. 그게 우선이야.’
탈출해서 그다음엔 뭘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는 도망치기로 했다.
일단 감옥부터 나가야 했는데 철창은 매우 두껍고 단단했다. 부수려고 해도 잘되지 않을뿐더러 흔들어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쩌지?”
여기 계속 있다가 그가 정신을 차린걸 알게 되면 무슨 꼴이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렸다.
한참 동안 비셰는 끙끙거리면서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움직였다.
벽은 그나마 덜 단단할까 싶어서 두드려도 보고 발로 차보기도 했지만 손과 발만 아팠다.
여기가 무슨 감옥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다른 죄수조차 없는 건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비셰는 조심히 철창 사이로 손을 빼 자물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러니까…’
몽마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그 말을 듣고 예전에 프라우디에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럼 어떤 모습으로라도 바뀔 수 있냐면서.
비셰가 주로 하는 것처럼 남성형, 여성형이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로도 가능하냐며.
그래서 한번 시험해본 적이 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손가락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마력을 모아 손가락을 변형, 자물쇠에 넣어 비틀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철창의 문이 열렸다. 비셰는 조심스럽게 감옥 밖으로 빠져나왔다.
‘고마워요 프라우디에 씨…’
그때 해줬던 말이 도움이 됐어요!
잽싸게 탈출한 비셰는 일단 무작정 앞으로 걸어갔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가 있던 몽마의 성은 아닌 듯했다.
‘그럼 아스모데우스 손바닥 안이라는 건데!!’
혹시 이 탈출 상황도 그에게 전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비셰는 잔뜩 몸을 움츠린 채 움직였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복도를 걸어가던 비셰는 넓은 공간으로 나오게 되었다. 감옥은 지하에 있던 모양인지 긴 계단을 한참 동안 올라간 뒤에야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근처를 지나가던 악마에게 들켰다.
“…응?”
“어?”
양쪽 모두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먼저 움직인 건 비셰였다.
“수,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하하…”
어색하게 웃으면서 비셰는 슬그머니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갔다
‘으악! 으아악!!’
…속으로는 비명을 삼킨 채.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온 성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경보가 시작되었고 비셰는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악마들을 보며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쳤다.
한편, 비셰의 탈출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아스모데우스에게 알려졌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잡아 와. 죽이지도 말고 다치게 하지도 말고 멀쩡하게.”
“…네?”
“못 들었나?”
“아, 알겠습니다.”
산채로 잡아오라는 말도 놀라운데 다치게 하지도 말라니?
보좌 악마는 의아해하면서도 성안의 악마들에게 주인의 명령을 전달했다.
그러나, 그 명령에는 크나큰 문제가 하나 존재했다.
‘…어떻게 하면 죽이지 않을 수 있지?’
대악마의 부하, 심지어 이 성에 있는 하수인들조차 몽마에 비하면 강한 축에 속했다.
어느 정도의 힘으로 공격해야 죽이지도 않고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악마들은 처음부터 큰 난관에 봉착했다.
세게 때렸다가 비셰가 다치기라도 하면 주인의 명령을 어긴 셈이 되니 오히려 그들이 아스모데우스의 손에 죽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아주아주 약한 공격을 하면…
“으아아악!!”
- 딱!
“악! 와아아아악!!”
비셰가 맞고도 멀쩡히 일어나서 다시 도망쳤다.
성안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몽마 하나 못 잡고 그들은 쩔쩔매면서 비셰를 피해서 공격하거나 돌멩이 던지는 수준의 공격만을 했다.
운 좋게도 현재 아스모데우스의 성에 남아있는 유능한 인재들은 죄다 독기가 올라오고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 동서부 지역으로 파견된 참이라 손쉽게 힘 조절을 해서 단숨에 비셰를 잡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물론 그 사실을 비셰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쫓아오는 악마들을 피해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칠 뿐이었다.
‘출구! 어디로 나가야 하는 거야?!’
창문이라도 깨고 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마법이 걸린 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물을 삼키면서 비셰는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으헉… 헉…헉…!”
결국 지하에서 옥상까지 올라오게 된 비셰는 지치지도 않고 그를 쫓아오는 악마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면서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으헉?!”
“뛰어내렸잖아!!”
“죽으면 안 되는데!”
비셰가 뛰어내리자 악마들은 기겁하면서 외쳤다.
물론 비셰는 날 수 있었기에 작은 날개를 파닥이면서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아스모데우스는 그 상황을 모조리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비셰가 다쳐서 그의 명령을 어기게 될까 봐, 힘 조절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부하들의 무능함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력 좀 볼까.’
비명을 지르면서 온 성안을 돌아다닌 걸로 봐선 약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눈으로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겨우겨우 성에서 탈출한 비셰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 그의 앞에 아스모데우스가 나타났다. 마법으로 순식간에 제 방에서 밖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비셰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으헉… 으아아…”
“잘도 도망쳤군. 아니, 저놈들이 멍청한 탓이지.”
“으, 으아아아…”
“왜 그러지? 처음 봤을 땐 잘만 덤볐으면서.”
잔뜩 겁먹은 것 같은 비셰를 보고 아스모데우스는 진심으로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모습에 비셰가 외쳤다.
“그땐 그때고…!!”
“흠. 그래, 실력 좀 보지. 넌 다른 몽마들과 좀 다를 테니까.”
“다른 것 없는데요!!”
“설마.”
그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비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닐 텐데.”
“히익…!”
“날 실망시키지마라.”
“와아악!!”
비셰는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비명부터 질렀다.
주문을 외운 것도 아니고, 특정한 손짓을 한 것도 아니었다. 아스모데우스는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변에 생성된 다섯 개의 얼음 창이 비셰를 향해 쏘아졌다.
그에 비하면 비셰가 만드는 아이스 볼은 계란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서 비셰는 도망쳤다.
‘아직도 비명을 지를 기운은 남은 건가.’
도망치는 내내 소리를 질렀음에도 멀쩡한 모습은 조금 의외였다.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문지르며 아스모데우스는 얼음 창의 개수를 늘려갔다.
바닥에 꽂힌 것은 회수하지 않고 빗나간 것들은 방향을 조작해 다시 비셰를 향해 날아들게 했다.
마법으로 쳐내거나 상쇄하면 될 것을, 비셰는 울면서 도망치기만 했다.
‘저 정도도 못 쳐낸다고?’
새삼 몽마의 나약한 능력에 아스모데우스는 감탄했다. 물론 좋은 의미의 감탄은 아니었다.
그런 그의 속내를 모르는 비셰는 자신이 미친놈에게 잘못 걸렸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다른 애들도 이렇게 죽었나봐!!’
오래 살아서 미친 악마의 심심풀이로 창에 꽂혀서 죽었구나!
그는 과연 몇 번째 희생양이 되는 걸까. 세자르에 있는 이들의 얼굴이 벌써 떠올랐다. 주마등이었다.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는 비셰의 뒤를 쫓아 얼음 창이 쇄도했다.
인상을 쓰며 아스모데우스는 창의 위력과 궤도를 조정했다. 빠르게 날아든 얼음 창이 비셰의 바로 앞에 꽂혀서 길을 막았다.
비셰가 잠시 멈칫거린 틈을 타, 얼음 창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으왁…!!”
피하지도, 방어하지도 못하고 비셰는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아스모데우스가 얼굴을 찌푸리는 것과 얼음 창이 비셰에게 닿기 전에 누군가가 쳐내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흑청색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급하게 달려오느라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 뒤로 넘기면서 난입한 악마가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휴, 잘 끼어들었나 보네?”
“어…”
낯선 목소리에 비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고개를 드니 모르는 남자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비셰가 깜짝 놀라 외쳤다.
“다, 당신은…!”
“어? 너 나 알아?”
“누구세요?”
“역시.”
벨레드가 허탈해하며 웃었다.
결과적으로, 몽마들의 도움 요청은 성공했다. 카이엔에게 달려간 몽마가 비셰의 상황을 알렸고 카이엔이 앙그라 마이뉴와의 통신에 성공, 앙그라 마이뉴는 놀고 있는 벨레드에게 아스모데우스의 성을 찾아가라고 요구했다.
할 일 없이 빈둥대고 있던 참에 카이엔과 관련된 일이라기에 벨레드는 수락했고 아스모데우스가 비셰를 괴롭히고 있는걸 발견하자마자 바로 끼어든 것이었다.
뜬금없는 방해꾼의 등장에 아스모데우스는 짜증스러운 눈으로 벨레드를 쳐다보았고 벨레드 또한 그 시선을 눈치챘다.
‘흠.’
뭐라고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벨레드는 비셰를 일으켜 세우며 아스모데우스에게 말했다.
“이 애 말이야, 내가 좀 눈여겨 보고 있는 녀석 밑에서 일하고 있거든? 좀 데려가도 되지?”
“그런 이유로 온 건가?”
“그게 아니면 내가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잖아.”
능청스럽게 대꾸하는 벨레드를 보고 아스모데우스의 미간의 골이 더욱 패였다.
그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곤 벨레드가 손을 저었다.
“너도 몽마들 좀 그만 괴롭히고. 장난감 다루는 것처럼 갖고 놀지 마라. 새 마왕님 명령이시다.”
“웃기는군. 너 정도 되는 놈이 그런 녀석의 명령을 듣는 건가?”
“명령이라기보단, 나도 부탁 받은 게 있어서 그래.”
같은 대악마에 속해있는 그들인지라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벨레드의 뒤에 반쯤 숨은 비셰는 그가 자신을 도와주러 온 것임을 알고 안도했다.
현 마왕이라면 카이엔을 대리인으로 삼았던 악마!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살았다며 비셰는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데려가도 되지?”
“두고 가라.”
“안 되는데- 그러면 내가 무능한 녀석으로 찍힐 텐데?”
“네놈이 어떻게 평가받던지 나랑은 상관없지.”
“겨우 몽마 하나 때문에 현 마왕이랑 척을 질 셈인가?”
“네 말대로 겨우 몽마 하나지. 괜한 일에 끼어들었군. 예나 지금이나 몽마는 내 관할에 있다. 네가 그들을 보살필 게 아니라면 관두고 떠나라.”
어쩐지, 뒷말에는 으르렁거림이 섞여 있었다.
쟁쟁한 악마들의 기 싸움에 비셰는 움찔거리며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반면 벨레드는 아스모데우스가 짜증을 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뒤에 숨어있는 비셰를 힐끗 보며 그가 말했다.
“글쎄. 아예 이참에 몽마를 따로 떼어내 버릴까 하는데. 작은 땅이겠지만 영지를 내어주고 스스로를 왕으로 칭할 수 있게.”
“그게 가능할 것 같나? 인간의 정기 따위나 뽑아먹는 하위 악마가 너나 나와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여기는 건가?”
“나야 재밌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그리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녀석이 예뻐서 구하러 온 게 아니라 부탁받고 온 거고.”
“…그때 그 인간인가?”
“응? 너도 알아?”
“흐음…”
카이엔 이야기에 벨레드는 반색했지만 아스모데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짧은 고민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앙그라 마이뉴가, 마왕이 뭘 꾸미는 건지 모르겠군.”
“그건 나도 몰라.”
“너한테 묻지 않았다.”
짜증스레 대꾸한 아스모데우스의 시선이 비셰에게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비셰는 몸을 떨면서 바로 벨레드의 뒤에 숨어버렸다.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와 아스모데우스는 이마를 짚었다.
“그렇다면, 역시 다음 릴리트는 저 녀석이군.”
“에엥?!”
“아, 그래?”
“‘아 그래’라뇨!! 전 릴리트 될 생각 없거든요?!”
“하지만 이왕이면 왕이 낫지 않아?”
“전 종족 늘릴 생각 없어요!!”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 얼마 동안은 몽마 종족 수를 늘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지옥의 마기를 대신 머금으면서 살 수도 있을 테고.”
“그것 말고도 또 있는데…”
비셰는 부루퉁해졌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 낄낄대던 벨레드는 아스모데우스에게 말을 건넸다.
“자리 옮길까? 계속 이렇게 대치 상태인 것처럼 보이면 다들 긴장할 테고.”
“네가 할 말은 아닐 텐데.”
투덜거리면서도 아스모데우스는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슬쩍 몸을 빼려는 비셰였지만 벨레드에게 뒷덜미를 잡혀서 세 악마는 나란히 성 내의 응접실로 이동했다.
졸지에 벨레드에게 잡혀서 같이 끌려오게 돼버린 비셰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살려줘-!!’
구해주러 온 게 아니었나?
비셰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결국 삼자대면 같은 형식이 되어버렸다. 비셰를 가운데에 두고 앉아 두 악마는 유심히 그를 살폈다. 그 시선에 몸에 구멍이 뚫릴 것 같아서 비셰는 급격히 울적해졌다.
아스모데우스야 몽마들 사이에선 암암리에 성격이 개차반으로 유명했고 벨레드는… 지금 하는 꼴을 봐선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정상이면 옷을 저렇게 입고 다닐 리가 없었다.
비셰가 편견 섞인 눈으로 그를 보는지도 모르고 벨레드는 먼저 말하라며 아스모데우스에게 턱짓했다. 그 신호에 인상을 쓰면서도 아스모데우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잘도 숨기고 다녔군.”
“뭘요?”
“…이딴 식이니 내가 안 잡아 올 것 같았나?”
“하하. 있잖아 너, 태어난 지는 얼마나 됐어?”
“얼마 안 됐는데요.”
벨레드의 물음에 비셰가 뚱하니 대꾸했다. 그 말에 아스모데우스는 이마를 짚었고 벨레드는 팔짱을 꼈다.
저들이 그를 해치려는 것 같지 않아서 비셰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들 그래요 갑자기? 이상한 거나 묻고…”
“악마들이 언제 죽는지 아나?”
“네? 뜬금없이 무슨 말을…”
“너, 여성체로 모습 한번 바꿔볼래?”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던 벨레드가 말했다. 그 말에 비셰는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네. 별로 달라지는 건 없는데.”
감옥을 탈출하느라 남성체로 바꾸었던 비셰는 다시 여성체로 변했다.
달라진 점은 거의 없었다. 키가 조금 줄어들고 여성체일 땐 긴 머리를 선호하는 그의 취향에 맞게 머리카락이 길어질 뿐이었다.
비셰가 모습을 바꾸자 한숨을 쉬며 아스모데우스가 입을 열었다.
“…여성체일 때만 나타나는 흉터.”
“어? 엥? 뭐, 뭐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아…”
“내, 내가 기절했을 때 뭘 한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경악하는 비셰를 보고 아스모데우스는 더욱더 깊은 숨을 토해냈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것을 두어 번쯤. 가만히 앉아있던 그는 대충 쥐고 있던 지팡이를 꽉 쥐더니만 그대로 비셰에게 휘둘렀다.
“하여간! 그래서! 내가! 그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악! 으악! 갑자기 왜 때려요?!”
“푸핫-”
“웃지만 말고 도와줘요! 나 데리러 왔다면서!!”
회초리를 휘두르는 것처럼, 아스모데우스는 지팡이로 비셰를 때렸다.
얻어맞은 부분은 평범하게 얼얼하고 아팠다. 영문을 모르고 비셰는 얻어맞기만 했고 벨레드는 웃음이 터져서 몸을 굽히고 끅끅거리면서 어떻게든 웃음을 참으려고 했다. 물론 실패했다.
응접실 안에는 한동안 한 악마의 웃음소리와 한 악마의 의문 섞인 비명과 지팡이로 얻어맞는 소리가 이어졌다.
화가 났다면 더 세게 때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스모데우스는 더 화를 내려다가 참으려는 듯 헉헉거리다가 지팡이를 뒤로 던져버렸다. 뒤이어 갑갑한 옷의 단추를 풀고 넥타이까지 던져버린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아무것도 모르는 건 비셰 뿐이었다.
“뭐야 진짜…”
비셰는 울상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얻어맞은 것도 억울한데 그를 데리러 왔다는 악마는 거의 바닥을 굴러다닐 지경으로 웃고만 있었다. 콱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물론 상대는 대악마이므로 한 대 때려봤자 비셰의 손이 부러질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