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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43화 (144/219)

143화

“마계?”

“네. 몽마는 인간의 정기를 빨아먹는지라 하급 악마에 속하는 편이어서 취급이 그리 좋진 않지만요. 새 마왕님이 땅 하나 내어주셨대요.”

“앙그라가 그랬나 보구만.”

“얼마나 오래 걸리나요?”

“왕만 뽑으면 되니까 금방 올 거예요. 다녀올게요!”

“조심히 다녀와. 마계면 우리가 함부로 못 가니까…”

“네!”

“기다릴게.”

활기차게 웃으며 대답한 비셰였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릴리트의 사망에 그녀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도 않았고 아르젠 실루이타에 불을 지른 것도 다른 악마 계약자인 대리인이었겠지만 다른 몽마들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망설여졌다.

계속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비셰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두운 밤.

달이 구름에 가려지는 순간, 비셰는 조심스럽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달빛마저 내려오지 않는 완연한 어둠 속에서 암흑 터널을 열어, 그 통로를 통해 마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처럼 인간계에 머물고 있는 몽마들은 이 방법을 통해 마계로 넘어가곤 했다.

‘괜찮…겠지?’

마계.

지옥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에는 아무도 함께 갈 수 없으니까.

마른침을 삼키고 비셰는 암흑 터널을 통해 마계로 넘어갔다.

싸늘하고 메마른 공기가 느껴졌다.

인간계와는 전혀 다른, 황폐한 땅이었다.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다들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와!”

“오랜만이다, 비셰.”

“으응…”

“아직도 인간계에 있어?”

“응.”

“너 말고도 안 건너온 애들이 꽤 있다더라.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

“그래?”

“응. 꽤 있던데? 이번엔 새 지도자를 정해야 하니까 그 애들도 건너오겠지만.”

넓은 홀이 금세 가득 찼다.

몽마들이 모두 모여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라고 해도, 의견을 내는 이들은 소수였고 그 의견에 찬반을 거수하는 식으로 셈하곤 했다.

이전의 왕. 릴리트의 자리에 올랐던 몽마의 보좌였던 몽마 니엘이 단상 위에 올라서 회의를 이끌어나갔다.

전대 릴리트는 마왕 대리전에 끼게 되어 그 난리에 말려들어서 죽었다.

다행히 이번에 새롭게 마왕의 자리에 오른 앙그라 마이뉴가 그들에게도 살 곳을 내줘서 지내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정기를 빼내고 관리할지 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릴리트’를 정해야 했다.

전대 릴리트 후보로도 거론됐던 이들이 있는지라 이번에도 그들 셋 중에서 왕을 뽑기로 했다.

“일단 해산. 사흘 뒤에 다시 모입니다.”

손뼉을 치면서 니엘은 회의를 파했다.

다들 새로 얻게 된 땅을 살피고 거주지를 옮겨야 했기에 부산스럽게 자리를 떴다.

이전에 있었던 좁은 땅에 있던 집과 건물들을 모조리 옮겨왔지만 이것저것 뒤섞여버린 짐들도 꽤 많아서 자기 물건을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비셰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르젠 실루이타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면서 피해를 본 동료들도 꽤 많다는 말에 비셰는 입술을 깨물었다.

인상착의로 봐선, 이전에 카이엔과도 싸웠던 그 미치도록 강한 인간이 제국까지 와서 릴리트의 숨통을 끊어놨던 모양이다. 불은 근처에 있던 기름과 술, 성냥으로 지른 것 같고.

‘왕자님이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 괴물 같은 인간을 어떻게 쓰러뜨린 걸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며 비셰는 한숨을 쉬었다.

“전대 릴리트는 왜 악마들 대리전에 끼어서는… 가만히 있었어도 됐을 텐데.”

“그랬어야 할 사정 같은 게 있었으려나.”

“비셰, 넌 어떻게 할 거야?”

“응? 뭐가?”

잠시 딴생각에 잠겨있던 비셰가 물었다.

그 모습에 친구들이 물었다.

“넌 인간계에서 살고 있잖아. 이번 일 끝나고 나면 돌아갈 거야?”

“으응… 그럴 거야.”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으니까.

세자르에 있는 이들을 떠올리니 저절로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비셰의 얼굴을 보고 한때 아르젠 실루이타에 같이 있었던 몽마들이 고개를 기울였다.

“잘 지내나 보네. 다행이다.”

“거기 이종족들 많댔지? 어때? 좋은 사람들이야?”

“응. 전부 종족은 다르지만 잘 지내고 있어.”

“신기하네.”

“그때 봤던 애들도 계속 같이 지내고 있어?”

“갈 데가 없거든… 나도 그렇지만.”

“하긴.”

“네가 갈 데가 왜 없어. 다시 여기로 오면 되지.”

“아니 마계는 좀…”

“푸핫.”

“하긴 나도 그래. 지낼 곳 있으면 인간계가 낫지.”

마계의 공기는 무겁고 바람은 거칠었다. 약소 종족인 몽마에겐, 좋은 땅이 아니었다.

고위 악마라면 모를까, 하위 악마들은 지능도 낮고 이성도 없는 짐승과도 같아서 서로 죽이고 잡아먹으면서 힘을 기르는 일도 잦았다. 그런 식으로 자신과 같은 하위 개체를 잔뜩 잡아먹고 성장한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고 했다.

“얼른 회의 끝나면 좋겠다. 다음 왕은 누가 될까?”

“글쎄… 다들 쟁쟁한데.”

“셋 다 하기 싫어해서 내기해서 진 사람이 왕을 한다거나.”

“아하하 그럴 수도 있겠다.”

다음 릴리트는 누가 될 것인가.

몽마들은 그 이야기를 했다.

왕은 몽마들을 다스리고 지키고 규칙을 세우는 자였다. 그리고…

“종족을 늘리는 역할도 하니까.”

“…응.”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몽마들이 모아온 정기를 생명의 나무에 주입하면서 나무를 돌보고 새로 태어난 몽마들을 재우고 먹이고 보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직접 품고 낳을 수도 있었지만 마력과 정기가 부족해서 굉장히 비효율적이었다. 약하게 태어나도, 나무를 이용하는 게 훨씬 나았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비셰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사흘은 훌쩍 지나갔다. 비셰는 친구들과 함께 다시 회의가 열리는 대회의장으로 향했다. 이전에는 전체적으로 알릴 사항이 있었기에 홀로 모였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몽마들은 여성체, 남성체로 모습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지만 그 변화에 따라 미약하게라도 힘이 달라졌다.

여성체일 때 더 강한 개체가 있고 남성체일 때 더 강한 개체가 있었다. 몸을 바꾸는 건 취향에 따라 선택했지만 강한 쪽이 따로 있었기에 대회의 날, 몽마들은 보다 힘이 강한 쪽으로 모습을 변화시키고 참석했다.

비셰는 여성체일 때가 살짝 더 마력이 높았기에 여성체인 상태였다.

회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전대 릴리트 '마리치카'의 보좌관이었던 니엘이 앞장서서 대회의장의 중앙을 가로질러 가운데의 단상으로 향했다. 그 뒤를 후보자 세 명이 뒤따랐다.

아시오스(남성체), 위리카(여성체), 하르마티(여성체)

이 중 아시오스와 위리카는 전대 릴리트 경합에서 마리치카보다 힘이 조금 더 약해 밀려났었지만 이번에도 다시 후보에 올랐다.

다들 예상했던 후보들인지라 몽마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셋 중 누가 왕이 될진 모르겠지만 힘들게 일하게 될 테니 참 안 됐다면서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럼 투표를 시작할게. 마력을 모아서 각자 원하는 후보가 입고 있는 옷 색깔로 변화시켜서 공중에 띄우면 돼.”

투표는 간단했다.

이미 셋 다 아는 얼굴이었고 사흘 동안 누구를 왕으로 뽑아야 할지 마음을 정한 뒤였기 때문이다.

비셰도 마음속으로 정한 후보가 있었다.

아르젠 실루이타가 사라진 이상, 몽마들은 앞으로 지옥에서 살아야 할 테고 왕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질 거다. 게다가, 그들은 마왕 이전에 다른 악마를 상관으로 두게 될 테고…

니엘의 신호에 맞춰 대회의장에 모인 몽마들은 일제히 마력을 끌어올리고 투표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니엘이 신호를 보내기 직전, 큰 소리와 함께 대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모든 몽마들이 입장한 뒤 굳게 닫혔던 문이 벌컥 열렸고 문지기로 세워 놨던 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대회의장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중앙 단상과 이어지는 긴 복도를 걷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입구 근처에 있던 몽마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어어…”

“어째서…?”

“왜 온 거야…?”

다들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갈색 피부에 은빛 곱슬머리의 남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회의실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그 뒤를, 그의 심복으로 보이는 악마들이 뒤따라왔다.

그가 누군지 아는 이들은 혹시라도 그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올수록 그 안에 있던 모든 몽마들이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아스모데우스.

전대 릴리트였던 마리치카가 마왕 대리전에 끼어들게 했던 장본인이었다.

난데없는 그의 등장에 다들 술렁거렸지만 이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대악마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서였다.

고요한 대회의실 안에, 뚜벅거리며 울리던 발소리가 멎고 대 악마가 입을 열었다.

“-왕을 뽑는 건, 아직인가.”

“조,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후보를 추렸으니 남은 건 투표뿐-”

“어차피 하는 일은 예전과 다르지 않을 텐데. 아니, 조금은 달라지겠군. 앞으로는 인간계가 아니라 지옥에서 살 테니.”

그 지옥이란 말이 유난히 심장을 푹 찌르는 것만 같았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만큼, 몽마들은 이 대악마를 두려워했다.

약한 악마들은 강한 악마들의 지배를 받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는 몽마는 대악마의 지배하에 있었다.

아스모데우스의 시선이 대회의장에 모인 몽마들을 살폈다. 그의 눈에는, 하나같이 약한 것들뿐이었다.

“전부 고만고만하군. 저 셋이 후보인가? 다른 놈들과 다를 게 없어.”

혀를 차는 소리가 천둥 번개가 치는 것 처럼 크게 들렸다.

역시 고위 악마가 보기엔 다 그게 그거라는 거구나. 몽마들은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한편, 그럴 거면 왜 여기 온 건지 모르겠다면서 속으로 열심히 아스모데우스를 욕했다.

얼른 저 악마가 가야 투표를 진행해서 왕을 뽑든 말든 할 텐데 아스모데우스는 몽마들의 수를 세보기라도 하려는 건지 대회의장의 모든 몽마들을 훑어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이, 어느 한구석에서 멈추었다.

“…다른 놈들과 다른 냄새가 나는 녀석이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지? 다들 어리둥절해 있는 그때였다.

친구들 틈에 끼어서 분위기를 살피고 있던 비셰의 발밑에서 나뭇가지 같은 게 솟아 나와서 그녀를 옭아매 들어 올렸다.

“으악!!”

“와아악!!!”

“비셰-!”

“흠.”

난데없이 비셰가 번쩍 들어 올려지자 비셰 본인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친구들도 비명을 질렀다.

보기 쉽게 허공에 들어 올려진 비셰를 보며 아스모데우스는 제 입가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인간 냄새도 나고 늑대 인간 냄새도 묻어있고 별의별 게… 밖에서 꽤 놀고 다녔나 보지?”

“으… 악수하고 다닌 것뿐이거든?! 날 뭘로 보는 거야-!!”

“으헉…”

“비셰…”

정기 먹기가 쉽지 않으니 그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모았었다.

명색이 대악마씩이나 되는 자가 현재 그녀의 상태를 못 알아볼 리도 없을 텐데 누굴 놀리기라도 하는 건지.

비셰는 인상을 쓰면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가 움직일수록 나무가 꽉 옭아매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컥컥거리는 그녀를 보고 아스모데우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나뭇가지는 그대로 비셰를 그의 발밑까지 던져버렸다.

“으헉!”

대회의실 바닥에 그대로 내던져진 비셰는 얼굴부터 떨어져서 아픈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문질러댔다.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이면 되겠군.”

“어… 네?”

“비슷한 놈들투성이니 좀 더 경험이 많은 녀석이 하는 게 낫겠지.”

“아니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무어라 항변하려던 비셰였지만 누군가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비셰가 항의하다가 대악마의 화라도 살까 봐, 염려한 몽마 동료들이 마법으로 입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억울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비셰를 보고 동료들은 그 맘 안 다면서 울상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아스모데우스에게 덤비지 말란 뜻이었다.

그런 비셰를 쳐다보다가 아스모데우스는 뒤돌아섰다.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그 행동에 몽마들은 안도했다.

그를 따라온, 그를 보좌하는 악마들이 그들을 벌레 취급 하는 눈으로 보는 것이 기분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하니까.

몽마는 약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멀쩡한 이는 있었다.

그녀를 걱정해서 제 자리에서 내려와 부축해주는 친구들의 팔을 뿌리치고 비셰는 잽싸게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다들 경악했지만 비셰는 고집스럽게 달려가 아스모데우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미안하지만, 저는 릴리트 될 생각이 없거든요?!”

“호오.”

“돌아가셔 모셔야 될 분이 있어서 말이죠. 그분이 아닌 다른 사람을 모실 생각도 없고 명령에 따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말에 다들 경악했다. 몽마들은 저마다 얼굴이 새파랗게, 혹은 새하얗게 질렸다.

제 귀가 멀쩡한 건지 수도 없이 의심했다.

차마 비셰를 말리지 못하고 보내버린 친구들은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으며 아스모데우스의 보좌 악마들도 어이가 없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비셰도 지르고 나서 후회했다.

‘괘…괜찮,을까?’

하지만 릴리트가 되면 다시 인간계로 돌아갈 수도 없을 테고 카이엔과 별채 식구들과는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몰랐다.

기다린다고 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았다.

아스모데우스가 입을 열기 전 단상에 있던 몽마 세 명이 비셰의 앞으로 나왔다. 차기 릴리트 후보인 세 몽마는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제대로 교육을 하지 못한 저희 잘못입니다.”

“빠르게 다음 왕을 뽑고 자리를 정리할 테니 부디 이 아이를 용서해주세요.”

“이 애는 저희랑 달리, 바깥으로 나갔던 아이입니다. 아직 어리기도 하고요. 그러니 제발…”

“내게는 너희 말고도 다룰 수 있는 군사가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그, 그럼요. 부디 아량을 베푸셔서…”

“하루빨리 네놈들의 지도자를 정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에 다들 안도했다. 하나,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별개지.”

낯선 마력이 몸을 휘감는 게 느껴졌다. 비명도, 구조 신호도 보내지 못하고 비셰가 쓰러졌고 아스모데우스는 세 몽마를 지나쳐 쓰러진 비셰를 들쳐멨다.

옆에서 보좌관들이 쩔쩔맸지만 그는 다른 이에게 넘기지 않고 손수 비셰를 들어 올렸다.

“이 녀석은 데려간다.”

“어…어어…”

“제, 제발…”

세 몽마가 어떻게든 비셰를 받아내려고 했지만 아스모데우스는 그들을 무시하고 가버렸다. 어떻게든 손을 뻗는 그들을 보좌관들이 신경질적으로 밀쳐냈다.

쿵, 하고 넘어지는 소리에 아스모데우스가 짜증스레 내뱉었다.

“소란피우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이래서 혼자 오려고 했건만…”

몽마들이 아닌 보좌 악마들에게 짜증을 낸 그는 보좌 악마들을 남겨놓고 성큼성큼 혼자 가버렸다. 그가 가버리자 악마들은 진땀을 흘리면서 그를 뒤따라갔다.

남은 건, 망연자실한 얼굴로 입구를 바라보는 몽마들 뿐이었다.

그중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쩌지 이제? 비셰 어떡해…”

“걔는 바깥에 집에 있댔는데…”

다른 사람들과 있는 비셰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이전에 아르젠 실루이타에 왔을 때도 뱀파이어에 정체불명의 종족들을 친구로 데리고 왔던 비셰였다.

다른 악마도 아니고 아스모데우스가 잡아갔다니!

그가 이런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하인이나 잡일꾼 등의 명목으로 그의 성으로 향했던 몽마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에는 비셰가 같은 꼴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아스모데우스가 사라지자 대회의장은 혼란에 빠졌다.

“으아아악! 우린 이제 어떻게 해!?”

“비셰에에에-!!”

“비셰도 문제지만 어쩌지? 지옥이면 우리 사는 땅은 아스모데우스 대공 통치잖아! 우린 이제 망했어!! 예전부터 망했지만 더 망했어!”

“망했다! 와하하하!! 망했다고!”

“아아악!!”

“다, 다들 진정해라!”

“아직 멀리 안 갔을 수도 있어!”

“지금쯤이면 갔겠지! 대악마가 한가하게 걸어가겠어?!”

대회의장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니엘이 쩔쩔매면서 몽마들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릴리트 후보인 세 몽마도 마찬가지였다.

겨우겨우 대회의장의 몽마들이 안정을 되찾자 그들은 즉시 다른 회의를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에 중요한 건 누가 차기 릴리트가 되는지가 아니었다.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비셰가 잡혀가 버렸다. 그리고, 생사의 안위가 불분명해졌다.

비셰가 혼자라면 모를까 그녀에겐 인간계에 두고 온 친구들이며 가족 같은 이들이 남아있었다.

그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침울해진 분위기 속에서, 한 몽마가 손을 들었다.

“그, 제가 해볼게요.”

“응?”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예전에… 전 릴리트인 마리치카의 명령으로 비셰가 의탁하고 있던 곳에 가본 적이 있어요. 그곳에 갈게요.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무슨 수로…”

“우리 말을 들어주긴 할까?”

“암살하러 왔는데 비셰의 친구라면서 안 죽이고 돌려 보내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말은 통할 것 같아요. 그리고 비셰가 모신다는 그 인간이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마왕 대리전의 우승자니까요.”

차분한 그녀의 말에 다른 이들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갔다.

도움 요청.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비셰를 두고 볼 수는 없기에, 그녀가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괜찮겠어?”

“그 인간과 계약했던 악마가 현 마왕이신 앙그라 마이뉴 님이시잖아요. 어떻게든… 뭐라도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마왕이 과연 과거 자신이 이용했던 인간을 도와줄 일이 있을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몽마들이었기에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비셰가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일족의 생명과 안전도 중요했지만 한 명을 버림 패로 쓸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몽마들의 상황은 더 안 좋아질 것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인간계에 있는 그 사람에게, 비셰가 지키려고 했던 그 사람에 이 일을 전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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