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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39화 (140/219)

139화

짧은 휴식 시간. 카이엔은 시간을 내서 성기사들을 만나러 갔다.

단장인 하이낙의 동의하에 다른 성기사들이 그와 같이 카이엔이 신성력을 일으키는 모습을 관찰하고 조언을 해주기로 정했다.

신성력을 일으키는 법을 배우는 건 사절단이 이곳에 왔을 때부터 카이엔이 부탁했던 사항이라 그들은 흔쾌히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마신의 사제의 신성력이 궁금한 참이었다.

그렇게 카이엔은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마신의 사제라고 해도, 그가 쓰는 힘은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마신의 사제라고 하셔서, 신성력도 검은색이 아닐까 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으니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이낙이 고개 숙여 사과하자 카이엔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이 힘을, 앙그라 마이뉴는 ‘안식’이라고 불렀다.

아군에게는 평온을, 적에게는 죽음을.

살벌한 말이 뒤따랐지만 카이엔은 굳이 그 말까지 하진 않았다.

“성기사들은 신성력을 둘러 신체와 무기를 강화합니다. 보다 신성력이 강한 사제님들은 축복까지 내려주실 수 있고요. 일단 신성력을 몸에 두르는 것부터 해볼까요?”

하이낙과 성기사들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신성력은, 마치 오러처럼 움직이면서 그들의 몸을 둘러쌌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카이엔은 심호흡을 하고 신성력을 움직였다.

…잘되지 않았다.

‘…나 그때 그놈이랑은 어떻게 싸웠던 거지?’

위기 상황이라 팍팍 써댔던 걸까.

목숨이 경각에 달해서 있는 힘 없는 힘 모조리 끌어다 쓴 걸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그때 너무 많이 써서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다거나.

끙끙거리면서 카이엔은 최대한 정돈된 모습으로 신성력을 절제하며 조절하려고 했다. 어떻게 따라 하긴 했지만 유지하는 데에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 모습에 하이낙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치유를 위해 쓰는 힘과 이런 식으로 전투에 활용하는 것은 쓰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백작님의 경우에는 치유 쪽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대로 치료에 써본 적도 드물어서 말이죠. 흠, 인간에게 써본 적은…”

바이스 정도려나?

자네인은 독룡인이고 프라우디에는 리치왕의 심장이 든 호문쿨루스니까.

그때 바이스도 꽤 중상을 입었지만 신성력으로 치유하니 금세 살이 아물었다.

힐끗 고개를 돌려 바이스를 보고 그가 물었다.

“너 그때 어땠어?”

“뭐가 말입니까?”

“다쳐서 내가 치유해줬을 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땐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잘 안 납니다.”

“하긴…”

다들 다치고 깨지고 난리가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바이스야 심한 부상이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강심장의 소유자니 조금이라도 힘이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였을 테고.

카이엔의 질문에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바이스는 멀쩡한 얼굴로 헛소리를 내뱉었다.

“한번 다쳐볼까요?”

“절대 하지 마.”

“많이 해볼수록 실력이 늘 텐데 말입니다. 저희가 다칠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검은 숲의 몬스터 정도로는 절대 그들 일행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신성력으로 인한 치유는 상처가 있어야 그 위력을 알 수 있었기에 카이엔은 일단 성기사들에게 신성력을 전투에 활용하는 법부터 배웠다.

검술에 미숙한 그였기에 성기사들은 느리게 무기를 맞대면서 신성력끼리 부딪치는 것을 보여주었고 혹시라도 서로의 신성력이 반발력을 일으키지 않는지 관찰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치유의 경우는 사제들이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치료소를 운영하고 있기에 그 모습을 보러 가기로 했다.

성기사들이 동행하기로 해서 카이엔은 바이스만 데리고 함께 마을로 내려갔다.

“…사람이 많네요.”

“으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산했는데 아무래도 소문이 퍼진 모양입니다.”

“네. 사제분들이 이곳에 와서 무료로 치료를 해준다는 소식이 퍼져 근처 영지에서 환자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전염병 환자는 없고 여관 운영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막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나는 왜 이제야 알았지?”

“어제부터 몰려온 환자들이고 왕자님, 어제는 훈련하다가 지쳐 쓰러지지 않으셨습니까.”

“일부러 말을 안 했다고?”

“점심 이후에 올라갈 서류 사이에 끼어있었을 겁니다.”

“어휴…”

여전히 체력 훈련을 병행하고 있었지만 적응이 잘되지 않아 항상 끙끙대는 카이엔이었다.

바이스의 말도 일리가 있었으므로 그는 한숨만 푹 쉬었다.

그 반응에 바이스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미리 전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아냐… 내가 몸져누워서 그렇지. 신성력을 잘 쓸 수 있으면 회복해가면서 훈련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좀 더 노력할게.”

“그렇게 된다면 참 편리하겠군요. 훈련 강도를 높일 수 있겠어요.”

“…정신력은 회복이 안 됩니다.”

카이엔이 얼마나 지옥 같은 훈련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녁에 산책을 하다 보면 카이엔이 기사들이 쓰는 운동장을 죽을상을 하며 달리는 모습이라던가, 연무장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오지 못하고 바이스에게 업혀서 나오는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몸을 혹사하는 건 좋지 않다며 성기사 단장인 하이낙이 한 마디 얹었다.

대화를 하면서 걷다 보니 금세 임시 천막인 치료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제들은 성심성의껏 환자들을 돌보다가 카이엔을 발견하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으음… 이렇게 환자가 많이 몰릴 줄이야. 천막밖에 세워두지 않았는데, 죄송합니다.”

“아녜요. 천막조차 없는 경우도 있는걸요.”

“이 부근에 신전이 없어서…”

“이제 하나 생겼지 않습니까.”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오히려 기쁩니다.”

사제는 역시 사제였다.

힘들 텐데도,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음에도 그들은 치유에 열중했다.

그들 중에는 메르실라도 끼어있었다.

성녀라는 이름답게 그녀는 가장 위중한 환자만을 돌봤는데 그녀가 신성력을 일으키자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은 다른 이들의 배였다.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웃으면서 일하는 모습이, 굉장히 대단했다.

“사제분들은 참 힘드시겠어요.”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한 일이 아니에요. 제 몸 깎아가면서 남을 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카이엔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얻은 신성력이었지만 신은 그 힘을 거둬가지 않았고 그에게 신전을 만들 것을 원했다.

신이 바라는데 어쩌겠는가. 들어줘야지.

팔자에도 없을 사제가 돼버렸지만 카이엔은 침착하려고 했다. 어찌 됐든 그 신성력 덕분에 그도 다른 이들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니까.

무려 성녀가 직접 나서서 치료를 해줬다.

소문이 퍼져서 다른 마을에서도 환자가 줄지어오니, 앞으로 이 행렬은 계속 이어질 거다. 카이엔은 혀를 찼다.

그 틈에 섞여서 이상한 놈들이 들어오면 큰일이니 영지의 방어를 강화하기로 했다.

“주변 순찰대와 경비 수를 늘리고 숙박시설은… 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까지 온 이들 중에 여관에서 묵고 갈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돈이 없어 의사를 찾지 못하는 빈자나 의사가 고칠 수 없는 병이며 상처를 낫게 하려고 온 이들입니다. 임시 숙박시설로 쓸 수 있게 천막을 더 설치해야겠군요.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건 천막뿐입니다.”

“어쩔 수 없지. 그거라도 해놔야 겠다.”

북적거리는 치료소에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카이엔은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성기사들이 주변 경비를 해주기로 해서 카이엔은 호위를 거절하고 바이스와 함께 영주성으로 돌아갔다.

떠나기 전, 메르실라와 저녁 식사 이후에 신성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을 했다.

“나도 사제가 되면 저렇게 종일 환자를 돌봐야 하나?”

“낮에는 일하셔야죠.”

“아…”

“유일한 사제시니 힘들 겁니다.”

“그렇다고 신앙을 전파할 생각은 없어. 성서도 교리도 뭣도 없는데. 그냥, 기도만 올려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 땅의 많은 이들 중 단 몇 명만이라도 마신에게 기도를 올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신이 만족해준다면 좋을 텐데.”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말씀해보시죠.”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 리 없잖아.”

투덜거리면서 카이엔은 걸음을 옮겼다.

그를 발견한 영지민들이 인사하는 모습에 손을 흔들어주면서 영주성까지 향하는 길. 인적이 드물어진 길에 도달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치안은 어때?”

“다들 환자에 빈민입니다. 아직까지는 별일 없습니다.”

“불만은 없고?”

“치료받을 사람들은 전부 치료받은 후니까요. 그리고 외부에서 사제분들을 만나러 온 게 빈민만 있는 게 아니고 일부는 돈을 잔뜩 들고 온 상인이나 귀족이라더군요. 이곳에는 성녀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흠…”

“그런 이들이 오면 여관에 하루쯤은 쉬었다가 갈 테니까요.”

“그럼 됐어.”

사제들이 돌아갈 때 기부금이라도 챙겨줘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카이엔은 메르실라와 만났다.

멀리 갈 필요까진 없었고 정원에 있는 파고라에 앉아서 신성력을 써보는 것이었다.

신성력을 일으키는 것까지는 좋은데 응용 부분에는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메르실라가 조언을 해주는 식이었다.

“연습을 많이 하셔야겠어요.”

“…그러게요. 잘 될 땐 잘 되는데.”

그렇다고 목숨이 경각에 달할 만큼 위험해진 상태에서 연습하고 싶진 않았다.

어쩐지 낮보다 밤에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의 양이 늘어난 것만 같았다. 그 이야기를 하니 메르실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는 밤이라고 해서 신성력이 덜 나오거나 하진 않던데…”

“그럼 제 착각이겠네요.”

카이엔은 신성력을 사용하면서 메르실라와 대화를 나누었다.

“좀 더 익숙해지면 낮에는 영주로서 일하고 밤에는 신관 일을 해야겠죠. 갈 길이 머네요.”

“힘드시겠어요. 으음, 다른 사람을 좀 더 둘 생각은 없으신가요?”

“저조차도 어둠의 신에 대해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보고 믿으라고 할 수는 없어서요.”

짧게 한숨을 쉬고 카이엔이 덧붙였다.

“그저, 인간 말고 다른 종족들에게도 그들을 보살피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모든 이가 적대적인 게 아니라는 것도요. 말이 통한다면, 마음이 통한다면 서로 잘 지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그를 보고, 메르실라는 생각에 잠겼다.

몬스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왕자. 이종족을 곁에 두는 왕자.

이곳에 오면서 들었던 카이엔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쫓겨난 왕자, 폐세자이지만 이곳의 모두는 그를 왕자라고 부르고 있었고 그와 말이 통하는 몬스터들은 그를 아끼고 있었다.

카이엔의 그 말은 그녀에게도 뜻깊었다. 그들의 신이 보살피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가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 신은 나쁜 이도 아니었고 사제도 카이엔 한 명이었다.

“혼자서 사제 일까지 하시려면 힘드실 거예요.”

“안 그래도 여기 있는 어떤 아이가 회복약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피로회복제를 만든다는데… 잘 되기를 빌어야 하는 건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지.”

“네?”

“어차피 제가 그걸 먹고 죽어라 일할테니까 진심으로 응원하기가 좀… 어렵더군요.”

“아하하.”

남몰래 털어놓은 진실에 메르실라가 작게 소리 내 웃었다.

그녀가 웃자 카이엔도 미소를 지었다.

성녀여서인지 메르실라의 원래 성격이나 분위기 때문인 건지, 둘이서만 대화하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주변을 경계하지 않아서일까. 카이엔도 메르실라도 누군가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분위기가 묘하네…”

“하긴, 나이도 비슷하고 한창때니까.”

“성녀가 연애하면 뜯어말리지 않습니까?”

성기사와 사제 틈에 끼어있던 바이스가 한마디 했다.

그는 카이엔이 메르실라에게 신성력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고 해서 위험한 일 없으니 다른 일을 하고 있겠다고 물러나 있었다.

물론, 말로만 물러난다고 하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비슷한 마음으로 몰래 두 사람을 구경하러 온 성기사와 사제들은 사이좋아 보이는 그 둘의 모습에 한마디씩 했다.

“성녀도 사람이니까요.”

“마음이 간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흠…”

이상하게 긍정적인 반응에 바이스는 살짝 인상을 썼다.

좀 더 나이 든 이라면 모를까, 젊은 성녀가 연애를 한다고 하면 이런저런 추문이 돌지도 모르는데 같이 온 성기사도 사제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에밀은 생각보다 자유로운 국가인 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가 입을 열었다.

“전 반대입니다만.”

“엥??”

“우리 성녀님이 뭐가 어때서요?!”

“상대가 누구든 저희 왕자님 옆에 서기엔 모자라 보인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어…”

‘평생 결혼 안 시킬 셈인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던 모자라 보인다니. 가족도 아니고 일개 시종이 할법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카이엔이 굉장히 복잡하고 힘든 나날을 보냈던 것을 조금은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잠자코 고개를 돌렸다.

메르실라가 모자란 게 아니라 바이스의 눈에는 어느 나라 공주님이 온다고 해도 자기가 모시는 왕자님에 비하면 턱도 없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들의 눈에는 메르실라가 아까웠고 그 말은 꾹 눌러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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