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37화 (138/219)

137화

카이엔은 사절단의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모두를 불러올 수는 없었기에 성녀인 메르실라 세라프, 사절단의 대장인 고위 사제 제논 마르코스, 성기사인 하이낙 힐레 세 사람만 그와 동석하게 되었다.

식사 자리는 조용하고 평온했다. 시중을 드는 건 카이엔의 시종으로 보이는 청년 혼자였다.

“에밀은 어떤가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교황께서 중심이 되어있고 그 아래 추기경과 고위 사제, 사제분들로 구성되어있다고 하던데. 제가 신전을 운영하긴 해야 합니다만 혼자라서 낮에는 영주로서 일해야하고 밤에 신전을 봐야 할 것 같거든요. 아직은 입소문이 덜 나서 동네 애들만 놀러 오고 있지만요.”

“아, 확실히. 고생이 많으십니다.”

“사제라는 호칭을 써야 할지 신관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으음…”

“편하신 걸로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카이엔은 신전 운영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세 사람은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 보니 식사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러던 중 사제, 제논이 카이엔에게 물었다.

“백작님께서는 성서를 쓰실 건가요?”

“성서… 그냥 규칙 정도만 만들어두고 싶습니다. 정말 기본적이고 간단한 걸로요. 네 이웃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뭐 그런 걸로요. 누구나 다 알 수 있고 쉬운 걸로.”

“여분의 성서가 있는데 빌려드릴까요?”

“내일 빌려도 될까요? 제가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힘들군요. 사제분들께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이엔은 잠시 말하는 것을 멈추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긴 고민 끝에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측근 중에 이종족이 많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에는 마주칠 일이 많을 테니 놀라지 마세요.”

“알고 있습니다. 소문이란 게 참 굉장하더군요. 에밀까지 퍼질 정도니까요.”

“이종족에 몬스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기르는 만티코어가 가장 유명하죠. 그 외에 몬스터로는 뱀도 기르고 햄스터도 있고 케르베로스에 말미잘에…”

“말미잘요??”

“아, 생긴 게 그럽니다. 그러고 보니 소개를 안 해줬는데 어쩌지…”

“지금이라도 보여드릴까요?”

불현듯, 이곳에 온 사절단을 릴리시아에게 보여주지 않았단 걸 떠올린 카이엔이었다.

신전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깜빡했다. 그의 잘못이라 카이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바이스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카이엔은 식탁에 앉은 손님들을 보며 말했다.

“아니, 밤에 그랬다간 난리 날 것 같은데… 그, 혹시 별채에 돌아가시게 된다면 다른 분들께도 바깥으로 나오지 말아 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정원에 기르는 몬스터가 하나 있는데, 손님으로 소개해주지 않으면 다짜고짜 집어 드는 게 버릇이라… 아, 먹진 않습니다만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곤란하니까요.”

“아 네…”

‘대체 뭐지?’

‘말미잘? 정원에??’

“그리고 왕자님, 정확히는 말미잘이 아니라 알라우네입니다. 변종이지만요.”

“나도 알아. 하지만 생긴 게 말미잘이잖아. 이렇게 말해야 다들 잘 알 것 같고.”

다른 이들의 눈에 릴리시아가 알라우네로 보일 리가 없으니 적당히 말미잘이라고 설명한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바닷속에 사는 이상하게 생긴 생물. 몸통은 둥근데 촉수가 여러 개 달린 그거.

카이엔이 설명을 덧붙일수록 세 사람의 표정은 이상해졌다.

눈짓으로 의견을 주고받던 이들 중 성기사인 하이낙이 조심스럽게 카이엔에게 물었다.

“그럼 왕자님께서는 어쩌다가 그… 말미잘을 기르게 되신 건지.”

“어… 잡아 먹힐뻔해서요? 검은 숲에서 사람 잡아먹는 걸 말리다가 그만. 그래서 옮겨놓고 소와 돼지를 먹이면서 인간을 못 잡아먹게 하는 겁니다. 다행히 가축이 입에 맞는지 잘 먹더군요.”

‘이 사람은 대체 뭘까…’

몬스터와 말이 통하는 것으로 가르간트의 폐세자는 꽤 유명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식인 몬스터를 뒤뜰에 옮겨 심어놓고 가축을 먹이면서 기르다니.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카이엔은 정말로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몇 번이고 그들에게 바깥에 나오지 말라고 언급했다.

“내일 소개해주고 나면 붙잡힐 일은 없을 테니 답답하시더라도 오늘 밤은 계속 방에 계십시오.”

“으음… 알겠습니다.”

릴리시아에 대한 주의사항을 말해준 다음 카이엔은 이종족의 이야기 또한 꺼냈다.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없지만 이들이 보고 놀랄까 봐 미리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이종족으로는 아까도 이야기했던 다크 엘프와 늑대인간, 뱀파이어가 있습니다. 터전을 잃고 헤매다가 이곳에 오게 되어서 같이 살고 있고 인어는… 경매장에 나타난 걸 데려왔고요. 연못에 둥둥 떠다니는데 익사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정원에서 자라는 말미잘 형태의 알라우네에 이어서 연못에 둥둥 떠다니는 인어.

식탁에 앉은 세 사람의 표정은 이상해졌다.

그 외에 별채에는 마녀와 호문쿨루스, 몽마도 있었지만 카이엔은 이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정체가 비밀이기도 했으며 특히 몽마는 이들 중에서 가장 악마와 가까우니 괜히 언급했다가 비셰가 퇴치라도 당하면 곤란했다.

지금도 비셰는 혹시라도 사제들과 마주칠까 봐 아예 페이리가 있는 다락방에 같이 있게 했다.

“혹시 릴리시아… 정원의 알라우네가 궁금하시다면 지금 저랑 보러 가셔도 됩니다.”

“내일 가겠습니다.”

“백작님을 번거롭게 할 수는 없죠.”

“저, 그런데 말미잘이란 건 어떻게 생긴 건가요?”

“반으로 쪼갠 빵 덩어리에 손가락 같은 게 많이 달려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그런데 그걸 왜 정원에서 기르세요?”

“둘 데가 없어서….”

성녀 메르실라의 물음에 카이엔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처음 릴리시아를 데려올 때만 해도 그렇게 집채만 하게 커질 줄은 미처 몰랐었다.

알았다면 정원이 아니라 좀 더 넓은 곳에 옮겨 심었을 테니까.

안 데려왔을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카이엔이었다.

***

저녁 식사 이후, 거처로 돌아간 세 사람은 다른 일행들에게 카이엔이 해준 말을 전달했다.

정원에 말미잘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가 있는데 소개받지 않은 인간이 보이면 일단 붙잡는다고 말하니 모두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카이엔이 왜 정원에서 그런 몬스터를 키우는 건지에 대한 의문, 정말로 말미잘같이 생겼을까 궁금한 호기심 등등.

대장인 사제 제논이 그들에게 다시 한번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러니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해서 건물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내일 보여준다고 하셨으니 내일 밤부턴 괜찮겠지만요.”

“안 나가요.”

“백작님이 기르는 몬스터도 많고 이종족 분들도 있으니 함부로 공격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정말 많네요…”

“괜찮을까요?”

저택 안에도 몬스터가 있고 세자르 영지는 검은 숲의 바로 옆이었다.

방벽 너머가 바로 몬스터들의 땅, 검은 숲이었다.

성국 에밀은 몬스터 서식지와는 거리가 멀기에 토벌 지원 목적이 아니라면 보기가 쉽지 않은 대형 몬스터들이 날뛰는 땅.

세자르에 온 이들 중 몇 명은 검은 숲을 궁금해했다.

하나 그들의 목적은 신의 계시를 확인하는 것이었기에 그들이 검은 숲으로 들어갈 일은 없을 터였다.

저녁 식사 후, 사제들과 헤어진 카이엔은 페이리와 비셰를 보러 갔다.

비셰는 페이리와 함께 있어야 해서 남성체가 아닌 여성체로 변신해있는 상태였는데, 두 사람은 다락방에서 사이좋게 책을 읽고 있다가 그가 들어오자 황급히 책을 베개 밑에 숨겼다.

그 광경에 카이엔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뭘 보고 있길래 숨기는 거야?”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인원이 꽤 많이 왔는데 비셰 넌 어때?”

“신성력을 뿜어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괜찮아요. 이종족이 많다고 하니 억제하는 모양이에요. 만약 그 신성력이 문제라면 저보다는 프라우디에 씨가 더 골치 아파할 테니 그쪽도 신경 써주세요.”

“하긴 그렇겠네.”

프라우디에의 심장은 리치왕의 라이프베슬이니까.

악마에 속하는 몽마인 비셰만큼이나 신성력에 취약할 터였다. 마법 소녀들은 프라우디에에게서 사악한 기운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사절단에는 성녀가 한 명 있었다.

공연히 큰 소란이 나면 곤란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식사는?”

“가져다주셔서 해결했어요.”

“정기를 말하는 거야.”

“일하시는 분들이랑 돌아가면서 악수 한 번씩만 해도 충분해요. 아무 사람이나 정해서 꿈속에서 들어가 정기를 빼먹을 수는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언제 식사했는데?”

“글쎄요. 한 달은 넘은 것 같은데.”

“…왕성에 데려갔을 때 아무나 골라서 정기 좀 빼먹으라고 할 걸 그랬다.”

거기엔 사람이 무진장 많았으니까.

카이엔이 진심으로 하는 말에 비셰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튼 불편하더라도 며칠간은 여기 있어 줘. 페이리, 비셰 좀 부탁할게.”

“걱정 마세요.”

“그리고 비셰.”

카이엔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내밀었다.

“네?”

“먹을 거 없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앞으로도 과로할 왕자님 정기를 가져가는 건 좀…”

“많이 가져가지도 않잖아. 얼른.”

“주신다면야 받아야죠.”

웃으면서 비셰는 카이엔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카이엔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잡고만 있지 말고.”

“어떻게 아신 거람.”

“곧 자러 갈 거니까 많이 가져가도 돼.”

“안 돼요.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꿋꿋이 비셰는 약간의 정기만 가져갔다.

힘이 빠져나간 느낌이 살짝 있었지만 이내 회복됐고 카이엔은 한숨을 푹 쉬었다.

“너 나중에 힘들다고 하기만 해봐라.”

“안 해요.”

“나 이제 간다.”

카이엔이 돌아가자 두 사람은 얼른 다시 베개 밑에서 책을 꺼내 손에 들었다.

급하게 책을 숨기긴 했지만 잽싸게 책갈피를 끼워놨기에 읽다가 멈춘 부분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침대에 등을 기댄 채 양탄자 바닥에 앉아서 다시 책을 읽다가 페이리가 비셰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아요? 몽마는 정기가 없으면 힘을 못 쓰잖아요.”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에요. 악수나 포옹 같은 작은 신체 접촉만 있어도 자주 하면 문제없거든요. 별채 식구들이 도와주고 있고요.”

“몽마도 힘들겠네요.”

“어쩔 수 없죠.”

***

다음날.

오전 중으로 카이엔은 에밀의 사절단이 묵고 있는 별채를 찾아갔다.

릴리시아에게 이들을 소개해줄 때가 된 것이었다.

어쩐지 굳은 표정인 그를 보고 사절단 일행은 살짝 긴장했다.

어젯밤 카이엔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정원의 몬스터에 대해 들었기도 했고 묘하게 카이엔이 긴장한 것 같아서였다.

“…그럼 갑시다.”

다들 나온 것을 확인하고 카이엔은 바이스와 함께 사절단을 정원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에밀에서 온 그들은 정원에 떡하니 뿌리 박고 있는 거대 말미잘… 아니, 알라우네를 볼 수 있었다.

녹색의 둥그런 원통형 몬스터. 누가 몬스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이게 뭘까 하고 한참을 쳐다봤을 것이었다.

‘말미잘?’

‘촉수가 없는데?’

‘저거 뭐야 무서워.’

물론 카이엔은 아무렇지도 않게 릴리시아의 몸통을 툭툭 치면서 불렀다.

“릴리시아. 자고 있어? 아, 얘 이름입니다.”

‘이름도 지어줬어??’

‘근데 계속 말미잘이라고 했잖아!!’

말미잘이라고 해야 그들이 쉽게 알 것 같아서 일부러 말미잘이라고 했던 카이엔의 깊은 뜻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바이스는 그저 몇 걸음 뒤에서 흐뭇한 얼굴로 카이엔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이엔이 몸통을 쓰다듬으면서 부르자 저 위에서 릴리시아가 촉수를 꺼냈다.

빠르게 나타난 촉수는 이내 카이엔의 머리 위에 툭 올라갔다.

그 광경에 사제들이 경악했지만 카이엔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 깼나 보네. 저기 손님들 보이지? 함부로 잡아가면 안 된다?”

카이엔의 머리에서 내려온 촉수 하나가 알겠다는 듯 좌우로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는 사제들의 눈동자도 덩달아 흔들렸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카이엔의 이어진 말에 더욱 거세게 흔들렸다.

- 앞으로.

“한 명씩 나와보랍니다. 툭툭 건드릴 텐데 놀라지 마세요. 아, 뭐 안 묻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거의 동시에 다들 몸을 움찔거렸다.

누가 먼저 나설지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던 와중, 성기사 단장인 하이낙이 먼저 나섰다.

카이엔의 바로 앞까지 걸어 나온 그에게 릴리시아의 촉수가 가까이 왔고 머리와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드리고 휘휘 저었다.

- 끝.

“확인 다 됐답니다.”

“아 네…”

확인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히 끝났다.

이전에 영주성에 방문했던 기사단처럼 촉수로 들어올려 하늘 구경을 하는 일은 없었다.

릴리시아도 귀찮았던 모양인지 확인 절차의 규모를 줄인 것이었다.

그걸 모르는 사제들은 몬스터 가까이 가서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모양인지 몇 명은 질끈 눈을 감기까지 했다.

그렇게 스무 명 전부 릴리시아가 확인을 마쳤다.

아직도 얼떨떨해하는 그들을 보고 카이엔은 어색하게 웃으며 릴리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깨워서 미안하다. 다시 자.”

- 심심해.

“응? 놀아줘? 나 바쁜데.”

촉수 하나가 바닥을 툭툭 쳤다.

릴리시아가 불만을 표출하는 장면이었다.

몬스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카이엔이 릴리시아와 대화하는 걸 보고 대강의 대화를 유추해낸 사제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애완 몬스터라고 해도 카이엔이 다칠까 봐 염려하는 것이었다.

“바빠.”

“끼이이이이-”

“으헉?!”

“말했어??”

릴리시아에게서 울음소리가 나자 뒤에 서 있던 사제 몇 명이 깜짝 놀라 외쳤다.

울음소리를 한번 낸 릴리시아를 보고 카이엔은 몇 번 몸통을 쓰다듬어주더니 바이스에게 말했다.

“으음, 바이스 오리알 스무 개만 가져다줄래? 그, 조금만 기다려주실래요? 뒤로 좀 더 물러나시고요.”

“빠르게 준비해오겠습니다.”

바이스에게는 심부름을 시키고 사제들은 뒤로 물러나게 한다.

카이엔이 뭘 하려고 하는지 몰라 의아해하면서도 사제들은 그의 말대로 좀 더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바이스가 오리알이 담긴 바구니를 가져왔고 카이엔은 오리알 하나를 집어서 던졌다. 어느새 촉수를 하나 더 꺼낸 릴리시아가 카이엔이 던진 오리알을 챡 하고 받아냈다.

저 위에 있을 입에 오리알을 집어넣는 모습에 성기사인 하이낙이 조심스럽게 카이엔에게 물었다.

“…놀아주시는 건가요?”

“네. 릴리시아는 못 움직이니까요. 뿌리째 들어내면 옮길 수야 있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덩치가 훨씬 커져서…”

뭐 던지고 받는 놀이나 한 번씩 몸통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걸 좋아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간식도 주면서 놀아주는 것이라며 카이엔이 덧붙였다.

그는 릴리시아에게 말을 붙이면서 계속 오리알을 던졌다.

다음에 밥은 언제 먹으면 좋을지, 뭘 먹고 싶은지.

릴리시아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이들에겐 카이엔이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렇게.

“소? 돼지? 너 닭은 한번 먹으면 30마리나 먹잖아. 털 뽑아서? 생닭으로? 내일은 힘들고 모레쯤은 될 거 같은데. 그래, 그렇게 해줄게. 바이스, 모레에 생닭 30마리.”

“네.”

그런 식으로 오리알 20개를 다 던져준 카이엔은 다른 시종이 가져온 물 대야에 손을 씻고 사절단과 다시 이동했다.

일단 여기 사는 몬스터들 얼굴은 익혀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나하나 일러주면서 그가 말했다.

“방금 본 게 알라우네인 릴리시아입니다. 아라크네인 페이리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으니 보기 힘들 테고 사트로누스는 저 앞에 있을 거고… 햄스터랑 뱀 몬스터도 있는데 그 애들은 제 방에서 기르고 있어서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 왕자님. 햄스터면 쥣과가 아닙니까?”

“쥐죠.”

“뱀이랑 같이 둬도 되나요?”

“괜찮아요. 걔가 이깁니다.”

“네?!”

“햄스터 몬스터니까요. 뱀도 몬스터긴 하지만…”

애초에 루브는 너무 게을러서 맨날 먹고 자기만 한다.

글러티나가 잡아 왔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루브는 볼 때마다 자고 있었고 소금이에게 별 관심도 없었다.

졸지에 왕자님과 함께하는 영주성 투어가 돼버렸는데 카이엔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사제며 성기사들 모두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말로 몬스터 말을 알아듣고 소통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성을 지닌 몬스터가 있다니.

돌아가면 동료 사제, 성기사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참으로 많았다.

정원을 거닐던 그들은 곧 사트로누스를 발견했다.

플루토 없이 혼자 햇볕을 쬐고 있던 사트로누스는 카이엔을 보고 한 번 그르렁거리고 사제들을 보고 또 한 번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홱 돌아누웠다.

“만티코어 입니다.”

“굉장히… 독특하네요.”

“책에서 본 만티코어보다 덜 무섭게 생겼어요.”

“변종이거든요. 그래서 털 색도 저렇고요. 낮잠 자려는 모양이니까 다른 곳으로 가죠.”

괜히 귀찮게 굴면 사트로누스가 울음소리를 낼 테고 심장 약한 사제가 있다면 겁에 질릴지도 몰랐다.

카이엔은 빠르게 사트로누스를 지나쳤다.

플루토는 지금쯤 누군가가 산책시키고 있을 테니 못 만나면 케르베로스가 있다고만 알려주면 될 테고, 또 다른 문제아가 있는지라 카이엔은 사절단을 데리고 다른 별채로 향했다.

운 좋게도 가는 도중 그들은 플루토를 산책시키고 있는 라스를 발견했다.

“멍멍!”

“왈!”

“멍! 뭉!”

“아, 저쪽이 케르베로스입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라 데리고 있죠.”

“아직 어리네요?”

“네. 새끼 케르베로스입니다.”

“멍멍멍!”

플루토는 카이엔을 발견하자 신이 나서 달려들려고 했다. 하나, 라스가 잽싸게 목줄을 잡아당겨 플루토가 카이엔에게 달려드는 것을 막았다.

“플루토, 그만! 몸통 박치기는 안 돼!”

“허허…”

“우와, 케르베로스다…”

“별로 안 무섭네. 새끼라 그런가?”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중에서 가장 작은 몬스터였기에 사제들의 시선이 플루토에게 쏠렸다.

낯선 이들을 경계하지도 않고 플루토는 신이 나서 멍멍 짖으면서 폴짝폴짝 뛰었다.

가만히 뒀다간 저들 앞에서 놀아주라고 떼를 쓰거나 발라당 드러누워서 애교를 부리면서 못 지나가게 할 거 같아서 라스는 얼른 플루토를 안아 들었다.

“길을 막아서 죄송합니다, 왕자님.”

“아냐. 괜찮아.”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고 라스는 플루토와 함께 퇴장했다.

몬스터긴 해도 머리 셋 달린 강아지, 그것도 귀엽게 생긴 플루토의 등장에 사제들은 조금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카이엔의 안내는 끝나지 않았고 그들은 곧 인공 연못에 도착했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

“여긴 연못인데-”

“헉!!”

“저거 사람 아닌가요?!”

“빠, 빠진건가?”

“인어입니다. 슬로세이!!”

“…네??”

연못에 둥둥 떠다니는 사람을 보고 그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카이엔은 아무렇지도 않게 연못을 향해 외쳤고 곧, 등만 내놓고 둥둥 떠다니던 슬로세이가 고개를 들었다.

손님이 온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던지라 그녀는 해맑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 들었어요!!”

“너보고 시체인 줄 알고 놀라면 안 되니까 이왕이면 둥둥 떠다니지 마.”

“그치만 이게 제일 힘 안 든단 말이에요!”

“요즘 또 사냥철 되면 들락거리는 사람 늘어날 테니까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안 그래요!”

혀를 삐죽 내밀곤 슬로세이는 연못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파문이 일던 수면은 곧 잔잔해졌고 카이엔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인어를 만난 것도 놀랍지만 인어가 저런 식으로 물에 들어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모양이었다.

아직 안내는 끝나지 않았기에 카이엔은 그들을 재촉했다.

“이번엔 다른 곳으로 가봅시다.”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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