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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31화 (132/219)

131화

신전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으며 카이엔은 열심히 일했다.

신전이 완공되면 더 바빠질 테니 그때를 대비해 일에 치이지 않게끔 대비하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꾸준히 파티며 행사의 초대장, 구혼서가 왔지만 바이스는 이런 게 왔다면서 보여주기만 하고 싹 태워버렸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일이었지만 카이엔은 그때마다 걱정이 되어 물었다.

“너 진짜… 후환이 두렵지도 않냐?”

“못 받았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요.”

“어휴.”

“음, 그래도 이건 괜찮을 것 같아서 챙겨뒀습니다.”

바이스가 내민 건 두 개의 편지였다.

하나는 왕실에서 보낸, 쌍둥이 왕자와 공주의 생일 행사에 대한 초대장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에이들러가 카이엔에게 쓴 편지였다.

“미리 확인했습니다”

“어.”

어쩐지 봉투의 봉인이 뜯어져 있더라니. 바이스가 내용을 먼저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리 중요한 편지도 아니니 뭐라고 할 이유도 없었다.

왕실에서 보낸 건 형식적인 초대장이었고 에이들러가 보낸 건 자기 생일 파티에 카이엔이 꼭 와줬으면 한다고 적혀있었다.

덧붙여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멍멍이도 꼭 보고 싶다고 쓰여있었기에 카이엔은 피식 웃었다.

“플루토를 데려가야 하나.”

“아직 강아지 수준이니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요.”

“그리고…”

페이리에 대한 것도 적혀있었다.

친절했던 사람, 이라고. 왕성을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페이리가 동행하게 된다면 그녀의 몸을 가릴 수 있는 드레스를 특별 주문해야 했다.

“페이리가 입을 드레스가 있으면 좋겠는데.”

“재단사를 부르겠습니다.”

“응. 일단 페이리의 의견부터 물어봐야겠지만.”

페이리만 동의한다면 같이 왕성으로 향할 것이다. 페이리에겐, 보여주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았다.

인간들이 사는 땅이 궁금해서 방벽도 넘어온 그녀였다.

왕성은 분명히, 그녀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에이들러의 생일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예상대로 페이리는 크게 놀랐다.

어떻게든 떨림을 감추려고 애를 썼지만 눈동자며 다리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애써 그것을 모른 척하면서 카이엔이 입을 열었다.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은데, 어때?”

“제, 제가 어떻게… 제 몸은 이런데 가도 되는 거예요? 왕자님께 폐 끼칠 거예요.”

“괜찮아. 왕성에는 이전에도 다녀온 적이 있으니 안전 문제는 염려할 필요 없고, 요즘 나한테 구혼이 계속 오는 거 알지? 파트너를 데리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다른 분들도 많잖아요.”

“네가 제일 먼저 떠올랐어.”

“네?”

그 말에 페이리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너무 놀란 것 같아서 카이엔은 급히 에이들러의 편지를 언급했다.

“에이들러도 널 많이 보고 싶은가 봐.”

“아…”

“네 몸통과 다리를 충분히 가릴 수 있는 옷을 만들 거야. 국왕 일가에겐 네가 아라크네란 것을 미리 말해두면 괜찮을 거고. 에이들러가 알고 있긴 하지만 그 애가 너에 대한걸 레이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말했을 것 같진 않거든.”

“그럼… 가도, 될까요? 왕자님만 괜찮으시다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그럼 같이 가자.”

페이리는 살포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말고도 따라가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몇 명 더 데려갈 생각이었다.

간만에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하고 다들 불러 모아 파티 이야기를 하니 다들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난 저번에 고양이 되어서 갔었지. 으음, 이번에도 그렇게 할까?”

“플루토가 따라간다면 제가 늑대로 변신해서 갈 필요는 없겠군요.”

“저는 왕자님이 따라오라고 하시면 갈게요.”

“하긴, 저택을 지킬 사람도 필요하겠군요.”

“전 저택에 남을게요.”

살며시 손을 들며 엔베인이 말했다.

그는 다크 엘프에 언데드였다. 축하 행사에 사제가 참석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 얌전히 집을 보고 있겠다고 말했다.

엔베인도 세자르에만 있으면 지루할 텐데, 다크 엘프라 눈에 띄니 동행을 할 수가 없었다.

본인이 그것을 염려해 더욱 가만히 있으려고 하니 카이엔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미안하다.”

“전 괜찮아요.”

“이번에 마신전 공사가 다 끝나고 본격적으로 신전이 운영되기 시작하면 왕자님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널리 퍼질 테니, 그 이후엔 엔베인 씨도 외부 활동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으음… 그건 좀…”

“당신도 왕자님 곁에 설 수 있는 당당한 동료 아닙니까. 너무 기죽어있진 마세요. 그럼, 이번에 그리델라 씨랑 페이리 씨는 참석 확정이고 프라우디에 님도 가시면 좋을 것 같군요. 플루토도 데려갈 건데 더 동행하실 분은 없습니까?”

“찌이이-!! 쮯, 찌잇!”

- 뭐냐! 나까지 데려다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

“아 맞다 소금이.”

대화 소리가 시끄러웠고 소금이는 얌전히 먹기만 하고 있어서 그 존재를 깜빡하고 말았다.

화를 내면서 양발을 휘젓는 소금이를 진정시키면서 카이엔은 대충 파티에 대해 설명해줬다.

동그란 눈을 깜빡이면서 카이엔의 말을 듣던 소금이는 홱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 안 간다! 집 나가면 고생이야. 저번에도 그래서 죽을뻔했잖아.

“으음… 그랬지…”

햄스터 몬스터가 저런 말을 하는 건 굉장히 재밌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소금이에게 있어서는 몰래 따라 나온 외출에서 카이엔이 위험에 처했으니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리델라는 고양이 모습으로 따라가기로 했고 이번에는 애완 몬스터로 플루토가 함께 가기로 했다.

잠시 좌중을 둘러보고 바이스가 말했다.

“그럼 나머지 분들은 다 집 보기 담당입니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제 부재중에 왕자님을 지킬 사람이 필요한데요.”

“역시 저도 갈게요.”

“저도 가겠습니다.”

마음을 정했는지 프라우디에가 손을 들었고 자네인도 함께 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는 호위 역으로 카이엔을 지키겠다고 했다.

다시 한 번 자리에 앉아있는 이들을 확인하던 바이스는 이번에는 비셰에게 말을 걸었다.

“비셰 씨도 가시죠.”

“네…네?! 저도요?”

“왜 그렇게 놀라시죠?”

“저한테는 왕자님을 안 맡기시는 거 아니었어요?”

“비셰 씨가 어설프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어…”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하나, 비셰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시종 보조로 비셰가 따라가기로 해서 바이스가 따로 옷을 맞춰주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비셰는 일할 때 입는 작업복 말고 평상복은 몇 벌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뭐… 제가 없어도 세 분이나 붙어있다면 왕자님은 안전하시겠네요.”

“너 자리 비울 셈이야?”

“상황 봐서요.”

“으음… 아, 맞다. 난 이번 파티에는 에이들러 왕자와 레이지 공주의 사촌 형제이자 아베르나 백작으로서 참석하게 되었어. 그렇게 알고 있어.”

“아 맞다. 백작명 새로 지었었죠.”

“맨날 왕자님이라고만 불러서 신경을 안 썼어.“

아베르나 백작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정식으로 공표했지만 세자르에 사는 사람들조차 그를 백작님이 아니라 왕자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어차피 자기들은 여기 밖으로 나갈 일도 거의 없고 귀족 이름을 부를 일도 없는 데다가 한번 왕자님은 영원한 왕자님 아니냐면서.

억지긴 하지만 일리가 있어서 카이엔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고작 호칭 가지고 까칠하게 굴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세자르라면 모를까, 다른 곳 특히 왕성에서는 이제 호칭을 조심해야 했다.

”지은 지가 언젠데요. 밖에서는 왕자님이라고 불렀다가 괜한 오해 살 수 있으니 카이엔 님이라고 하던가 백작님이라고 하는 게 낫겠습니다. 어차피 저희 영지 분위기는 자유롭고 영지민들도 호칭을 자유롭게 쓰고 있긴 하지만, 가야 할 곳은 왕성이니까요.”

“명심할게요.”

“그것보다, 작년에는 아무 소식 없더니 올해엔 에이들러 왕자님께서 떼를 쓰셨나 봅니다. 카이엔 님께도 초대장이 온 걸 보니.”

“그런가? 그 애가 몇 월생이지?”

“겨울에 태어나셨죠. 12월입니다. 올해 국왕 탄신일에는 저희가 일이 많아서 참석을 못 했으니 에이들러 왕자님과 레이지 공주님의 탄신일에 초대장을 보낸 것 같기도 합니다만.”

“가보면 알겠지.”

올해엔 별의별 일이 다 있어서 수도에 가지 않았다. 국왕 탄신연을 넘겨버린지도 몰랐다면서 카이엔은 그때 뭘 했더라, 생각에 잠겼다.

물론 그 생각은 쌍둥이 사촌 동생의 생일 선물로 뭘 줘야 할지 고민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애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 선물을 사주든 말든 할 텐데, 그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국왕 탄신연 때는 선물 같은 건 안 가져갔지만 이번에는 애 생일이니까 뭘 줘야 할 것 같은데…”

“으음…”

“검…같은 건 좀 별로일까요?”

“으음…”

“내가 진주 줄까요?”

“애매하네.”

“애완동물을 기르라고 내어줄 수도 없고요.”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카이엔의 고민에 동참해주었지만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보석이나 이 지역 특산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지만 특산물이라고 해봤자 검은 숲 부근의 토벌, 사냥 후에 나오는 전리품 정도였다.

선물이란 건 대체 뭘 줘야 하는 걸까.

끙끙거리지만 그럴듯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왕자님이 이제 사제가 되었으니 관련된 선물은 어때요?”

“성물 같은 거라던가?”

“성물이라… 딱 떠오르는 게 없네.”

아직 신전도 성서도 뭣도 없는 종교인데.

평범한 다른 성물을 보고 따라 할 수도 있었지만 그쪽 성물도 천차만별이었다.

신성력이 담긴 물건만이 성물인 게 아니라 성자 성녀의 사후에 남은 뼈도 성물로 취급되니까. 그렇다고 그의 뼈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여러 후보가 거론된 토론 끝에 방에 두거나 부적처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을 하는 걸로 어느 정도 범위가 좁혀졌다.

“왕자님의 신성력이 과연 물건에도 깃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요.”

“역시 부적이 나을까?”

“공주 쪽은 모르겠지만 에이들러라면 왕자님이 뭘 줘도 기뻐할걸?”

“재료가 필요하면 우리도 도와주마.”

“진주는? 필요 없어?”

“진주는 없어도 될 것 같다.”

“칫.”

카이엔의 단호한 거절에 슬로세이는 토라진 체 하며 고개를 돌렸다.

장신구 가공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예스티카의 일행 중에 야장이며 금속 공예에도 조예가 깊은 장인이 있어서 그녀의 도움을 받아 구체적인 디자인과 재료를 정했다.

금으로 브로치의 형태를 만들고 중심에는 큼직한 루비를, 근처에 푸른색 사파이어를 장식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평범하게 생긴 디자인이었다.

카이엔의 부탁도 있었고 마침 할 일도 없었다면서 장인은 빠르게 브로치를 만들어주었다.

마침 할 일도 없었는데 잘 됐다면서.

완성품을 부드러운 손수건에 감싸서 양손에 든 채, 카이엔은 기도를 올렸다.

소지한 자를 지켜줄 수 있게끔, 안전을 위한 부적을 만들기로 했다.

에이들러와 레이지의 것으로 만든 두 개의 브로치는 각각의 상자에 담긴 채 카이엔의 눈에 띌 때마다 기도와 축복을 받았다.

“그 애들이 착용하고 다닐지가 문제네요. 레이지 공주라면 모를까, 에이들러 왕자는 당신이 주신 물건이라면서 애지중지 할 텐데.”

“망가지면 다시 만들어준다고 해야지.”

“하하. 그래도 아낄 것 같습니다만.”

“그러면 어쩔 수 없고. 떠날 준비는 잘 되어가?”

“네. 저희가 없어도 예스티카 님이 열심히 신전 공사를 하실 테니까요.”

예스티카는 이제 페르세이지에 대한 미련을 많이 버린 건지 바이스와 단둘이 이야기하면서도 평온한 반응을 보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인데, 분명히 힘들었을 테지.

바이스가 매정하게 떼어냈기에 예스티카도 마음을 단단히 먹은 걸지도 모른다.

그만큼 예스티카가 강인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평범한 사람이 바이스를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할 리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또 이상한 생각을 하시는 모양입니다.”

“내가 뭐.”

“그래 보였습니다.”

바이스한텐 뭘 숨길 수가 없었다.

눈치가 빠른 건지, 그를 거의 키웠다시피 한 사람이 바이스라 그런 건지.

괜히 찔려서 카이엔은 옆에 서 있는 바이스의 시선을 피하면서 딴청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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