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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29화 (130/219)

129화

앙그라 마이뉴와의 대화 끝에, 카이엔은 일단 신전은 짓기로 했다.

그를 위해 나서준 마신을 위해 신전 하나쯤은 세워줄 수 있었고 영주성의 금고를 확인해본 결과, 작게만 만들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일단 재료도 알아봐야 했고 땅 위치도 선정해야 하는 등 복잡한 문제가 남아있었다.

건축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는지라 두통을 앓는 카이엔을 보고 바이스가 말했다.

“전문가를 부르면 됩니다. 제가 알아보죠.”

“으응…”

바이스에게 부탁했지만 걱정이 태산이었다.

신전을 지어놨는데 나중에 재료가 싸구려라고 신이 속상해하면 어떻게 하지? 구조가 맘에 안 든다고 하면 어쩌지?

그 전에 신이 그에게 직접 말을 거는 건지 앙그라 마이뉴를 통해 말을 전달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너한테 맡길게. 잘 좀 알아봐 줘.”

“걱정 마십시오.”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우선 전문가부터 불러와서 의견을 묻기로 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카이엔은 잡다한 일로 바쁘게 지냈다.

신전에 대한 걸 거의 잊어버릴 무렵, ‘전문가’가 도착했다.

바이스가 뭐라고 말하고 고용한 건지 전문가는 혼자 온 게 아니라 수십 명의 일꾼과 짐꾼, 재료가 가득 찬 짐마차를 이끌고 도착했다.

“왕자님, 인사하십시오. 신전을 지어주실 분입니다.”

“…응?”

그리고, 도착한 이의 얼굴을 보고 카이엔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자르를 찾아온, 마신의 신전을 만들기 위해 도착한 전문가는 그도 아는 사람이었다.

길었던 금발을 단발로 잘랐고 피부가 살짝 그을리긴 했지만, 예전과는 달라진 구석이 거의 없는 예스티카였다.

그녀는 드레스 대신에 몸에 딱 맞는 셔츠와 외투, 바지를 입고 있었다. 카이엔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왕자님!”

“아니 왕자 아닌… 예스티카 님?”

“님은 빼주세요. 제가 아직 공작가 영애이긴 하지만 지금은 건축가로서 방문한 거거든요.”

“바이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놀랍게도, 예스티카 님께 이번 일을 의뢰 하니 열과 성을 다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열의를 보이시더군요.”

“그리고?”

“신전 건축에 쓰일 질 좋은 대리석을 무상으로 제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벨라시 공작님의 후원도 있으시고요.”

돈 아끼려고 그런 거냐?

이 말이 목구멍 바로 앞까지 올라왔지만 카이엔은 꾹 눌러 삼켰다.

바이스도 바보가 아니니 아무한테나 마신전 건축이라는 중요한 일을 맡겼을 리 없다.

여러 가지 요소를 확인해본 결과, 가장 나은 사람이 예스티카 벨라시였기에 그녀에게 의뢰했을 터. 하나 너무 의외의 인물이 등장해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예스티카…”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예스티카 씨, 건축을 배우신 겁니까?”

“네. 돌아가자마자 바로 배웠어요. 예전부터 관심은 많았거든요.”

“예스티카 님은 실력자입니다. 다만 귀족 아가씨가 건축을 배운 거라 다들 일을 안 맡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봉사활동 식으로 공작가 영지를 돌아다니면서 고아원을 수리해주거나 빈민가 재건축을 하고 있어요.”

“예스티카 님을 따르는 일꾼들도 대다수가 여성분이시고요.”

“목수, 건축가, 대장장이 등등. 많이 있어요. 집만 짓는다고 끝이 아니라 손봐야 할 부분이 많으니까요.”

예스티카는, 예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생기가 넘치고 자신감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은 모습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목소리도 좀 더 커진 것 같았다.

“왕자님, 절 믿어주실 수 있나요? 최선을 다해 신전을 만들겠습니다!”

“믿습니다. 당연히 믿을 수 있죠.”

“아하하. 감사해요.”

“그럼 위치부터 보러 갈까요?”

“네! 어디에 신전을 세우실 생각이에요? 바이스 씨에게 의뢰에 대한 걸 듣고 신전 구조에 대해서도 엄청 공부했어요. 신전은 처음이거든요.”

예스티카는 신이 나서 꾀꼬리처럼 노래 부르듯 말을 이어나갔다.

신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기둥은 어떤 양식으로 할지, 어떤 돌을 쓸지, 역시 신전이니까 나무보단 돌이 좋지 않을지, 장식은 어떻게 하고 구조는 어떤 식을 따를지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가 샘솟았다고 말했다.

열심히 신전에 대해 말하는 그녀를 보고 카이엔은 예스티카가 굉장히 공부를 많이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꽤 고생을 많이 했음을 눈치챘다.

이렇게나 열정적이고 실력도 있는 사람에게 그동안 일거리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 오히려 그가 의뢰를 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예스티카의 집안인 벨라시 공작가에서 대리석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나설 정도라는 것.

마신전이 완공된다면, 세간에 그녀의 실력이 퍼진다면, 예스티카는 좀 더 유명해질 수 있을까?

그는 별 생각 없이 마신전을 만들자고 했지만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일반 신전처럼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개성을 살려서 하면 신이 그걸 더 좋아할지도 몰라요.”

“그런가요? 예상도를 잔뜩 그려왔으니까 그것도 봐주세요.”

“일단 땅부터 보러 갑시다. …좀 걱정되니까 다른 사람들도 데려갈게요.”

마신전이라고 해도 일단 신전이다.

좋은 땅에 지어야 했기에 카이엔은 그리델라와 프라우디에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예스티카를 따라서 땅을 볼 줄 아는 인부들도 몇 명 따라왔다.

영주성에서 나오면서 카이엔이 조심스럽게 예스티카에게 말을 걸었다.

“그… 알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지으려는 건 천신의 신전이 아닙니다.”

애초에 천신의 신전을 지으려고 했다면 성국 쪽에서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가르간트 내에는 신전의 수가 적었기에 신전을 세우고 싶으니 허가를 해주고 사제를 지원해주라는 요청을 했다면 성국에서는 기뻐하면서 관련된 자원을 내어줬을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들릴까 봐 목소리를 낮추고 카이엔이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이종족과 인연이 깊다 보니 어쩌다가 마신 사제와 인연이 닿아서…”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아, 그럼 검은색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흰색 대리석만 준비했는데…”

“아뇨, 까맣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이에요.”

예스티카는 문제없다는 듯 웃었다. 이미 바이스에게 자세한 사항을 다 듣고 의뢰를 수락했던 것이다.

오히려 천신의 신전이 아니라면 다른 식으로 꾸밀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 그녀는 그 의뢰를 받아들였다.

“영지 내에 좋은 곳이 있나요? 일단 영주성이랑 가까워야 하는데.”

“이렇게 된 김에 직접 발로 뛰면서 불법 건축물이 있으면 밀어버립시다.”

“…그래도 되는 거야?”

“불법 건축물인걸요. 그래서 프라우디에 님을 모셔온 건데요?”

“네? 저요? 전 그냥 잡귀 있으면 그거 쫓아버리라고 따라오라고 하신 줄 알았는데…”

“잡귀나 잡건물이나 그게 그거죠.”

“참… 페르, 아니 바이스 씨는 여전하시군요.”

프라우디에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졸지에 불법 건축물을 통째로 날려버리기 위한 폭탄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예스티카는 바이스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예고 없는 영주님의 행차에 마을 사람들은 놀랐다. 게다가, 카이엔의 손에는 사트로누스의 목줄도 플루토의 목줄도 없었다. 그 모습에 마을의 꼬맹이들이 카이엔에게 물었다.

“왕자님, 오늘은 산책 안 시켜요?”

“어. 오늘은 산책 안 시킨다.”

“힝…”

“멍멍이 주려고 간식 가져왔는데.”

“너희가 먹어. 그리고, 개한테는 간식 함부로 주는 거 아니다.”

그들은 일단 마을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다.

주민들의 거주지를 피하고 빈 땅이 없나 살펴보기로 했다. 지을 땅이 없으면 영주성 쪽에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예스티카의 머릿속에는 이미 신전의 규모가 정해져 있었기에 적당한 공터를 발견하면 그녀가 크기를 확인하는 식이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카이엔은 작은 언덕 위에 나무가 자란 곳을 발견했다.

“저기 괜찮지 않을까?”

“저긴 예전에 교수형을 할 때 쓰던 곳입니다.”

“…교수형?”

“네.”

“프라우디에, 저쪽에 귀신같은 거 있는지 좀 봐줘.”

“으으음-”

카이엔의 요청에 프라우디에가 집중하면서 나무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있긴 한데, 금방 끝나요.”

“응?”

“이렇게 하면 돼요.”

어느새 소매에서 짧은 지팡이를 꺼낸 프라우디에가 나무를 향해 지팡이를 휙 휘둘렀다.

가벼운 휘두름이었지만 프라우디에의 손짓에 나무는 폭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크게 뒤흔들리며 나뭇잎을 우수수 쏟아내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끝났어요.”

“으으음…”

“땅도 한번 뒤집어봐야 할 것 같아요.”

“하긴, 교수형 터엔 만드라고라가 자란단 말도 있으니까요.”

“네. 한번 보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만드라고라라.

다른 곳이었다면 농담으로 넘겼을 텐데 프라우디에가 말하니까 농담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종종걸음으로 프라우디에가 언덕으로 향했고 그리델라도 구경하고 오겠다면서 그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리는가 싶더니만 삼십 분 정도 지난 뒤, 두 사람은 손에 무언가를 잔뜩 매달고 돌아왔다.

“…그건 또 뭐야?”

“이건 만드라고라고요.”

“이건 묻혀있던 해골 모아온 거!”

“…….”

“허어…”

“아무래도 저 땅, 축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예스티카가 제안했다.

귀신도 들끓었고 땅을 파니 해골까지 나왔다.

교수형장에 그대로 신전을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녀의 제안은 타당했다. 하나, 카이엔은 축성이 뭔지 몰랐다.

“왕자님, 하실 수 있겠습니까?”

“축성이 뭔데…”

“일단 내일 다시 오죠.”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성수같은 걸 뿌리면 되지 않을까요?”

“성수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물이라도 떠 놓고 기도해보세요.”

“으으음…”

일단 이곳은 후보로 지정해놓기로 하고 일행은 자리를 옮겼다.

그 후 몇 군데를 더 돌았지만 신전을 세우기엔 위치가 애매하거나 영주성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결국, 교수형장으로 쓰였던 곳을 잘 청소하고 정화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카이엔은 은으로 만든 대야에 물을 채우고 방 안에 가져다 두었다.

“음…”

물이라도 떠 놓고 기도해봐라…

바이스의 말을 떠올리며 카이엔은 조심스럽게 은 대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가 지금 뭔 짓을 하는 거람…’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일단 어쩌다 보니 신성력도 받았고… 사제가 되기로 했습니다만,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살면서 지금까지, 사제와 인연이라곤 없어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신전도, 저 살아있을 동안만 유지될 확률도 높고…”

“그래도 이렇게 됐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못미더운 사제라도 괜찮으시다면.

기도라곤 해본 적이 없어서 카이엔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뭘 빌어야 할지 몰라서 마신전에 대한 걸 기도했다. 성수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바랐다.

어설픈 기도를 마치고 카이엔은 침대 위로 올라갔다. 일찍 자고 내일 저 물이라도 그 땅에 뿌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잠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 대야에 떠 놓은 물이 살짝 반짝였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건, 아무도 없었다.

***

다음날, 카이엔은 일행을 데리고 축성하러 갔다.

프라우디에가 해골 조각 남은 것들도 싹 빼내서 땅 밑은 안전하다고 알려주었다. 땅속을 한번 솎아냈으니 인부들이 일하기에도 좋을 거라고도 말했다.

잡귀도 쫓아내고 만드라고라며 해골도 파내서 깨끗해진 땅 위에, 카이엔은 은 대야에 있는 물을 나무 국자로 퍼서 뿌렸다.

“이걸로 된다면 좋을 텐데.”

“뿌리면서 기도라도 하시죠.”

“윽…”

바이스의 말에 질색을 하는 카이엔이었지만 혹시라도 공사하다가 무슨 일이 나면 안 되므로 한마디씩 하면서 은 대야의 물을 뿌렸다.

“이 땅을 지상 최초의 마신전으로 선포하리라.”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땅속에 잠긴 원혼들은 마신의 품에서 잠들 것이며 영원한 안식을 얻어 눈을 감을지어다.”

“어둠이 땅에 내려올 때 신전은 불을 밝힐 것이며 빛이 포용하지 못한 자들을 어둠이 감싸 안을 것이다.”

기도의 말을 생각하느라 카이엔이 물을 뿌리는 속도는 느렸다.

한마디씩 하면서 축성을 하는 카이엔을 보는 바이스의 눈빛은 따뜻했다.

그 작던 왕자님이 이렇게 커서 사제도 되고 축성도 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대야의 물을 다 비우고 나서 카이엔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뭘 해야 하나. 모든 것이 다 처음이라 알 수가 없었다.

“…제사 지내야 하나?”

“그럴까요?”

“일단 짓고 나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한데, 짓기 전에 한 번 하고 짓고 나서 한 번 더 하자.”

“소 한 마리 잡아야겠군요.”

축성도 했으니 간단하게나마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임시로 준비한 제단 위에 소를 잡아 올리고 통째로 불태웠다.

남은 뼈는 어떻게 할까 고민한 끝에 신전을 지키는 해골 병사 어떠냐는 프라우디에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따로 항아리에 담아두었다가 신전이 완성되면 장식하기로 했다.

축성을 하고 나서 3일 뒤, 신전 공사가 시작되었다.

카이엔의 요구대로 작게 만들 거라 일단은 토대부터 짓게 되었다.

예스티카를 따라온 조각가들이 기둥 조각을 시작했고 다른 인부들이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렸다.

건축에 대한 건 예스티카에게 맡기면 되므로 카이엔은 본래 하던 일을 하기로 했다.

신전이 완공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예스티카는 물론이고 그녀를 따라온 사람들 모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었으므로, 시간이 꽤 단축될지도 몰랐다.

‘…성국에 마신 신전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하지?’

신들끼리 이미 의견을 맞췄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대놓고 신전까지 만들어도 된다고, 만들어주라고 말할 정도면 정리는 다 해뒀겠지만 묘한 불안감에 진정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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