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28화 (129/219)

128화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카이엔은 바이스의 감독하에 훈련을 시작했다.

첫날에 호되게 당한 이후 바이스도 계획을 수정해서 운동의 강도를 낮춰주었지만 카이엔에게 있어서는 그거나 이거나 마찬가지였다.

오전에는 간단히 조깅을 하고 업무를 본 뒤 점심을 먹고 또 운동 하고, 일하다가 중간에 또 달리러 나가는 게 며칠 동안 반복되었다.

첫날에는 근육통 때문에 일도 방에서 하고 그나마도 급한 것만 처리한 뒤 나머지는 에빌에게 맡긴 카이엔이었지만 서서히 아주 미세하게나마 체력이 붙게 되었다.

“신성력을 피로 회복에는 못 씁니까?”

“몰라… 안 해봐서…”

“해보세요.”

“힘들어서 못 해…”

“당분간은 계속 운동과 휴식을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게 낫겠군요. 그나저나 악마는 이제 안 옵니까?”

“왜?”

“저번에 저도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이야기 하고 싶은 것도 많고요.”

카이엔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바이스를 쳐다보았다.

침대 위에 엎드린 채 고개만 돌려 그를 바라보는 카이엔을 보고 바이스가 뚱하니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들이 더 원하는 것이 있는지, 왕자님은 이대로 사제로 직업을 바꿔야 하는 건지 등등.”

“내가 왜 사제가 되어야 하는 건데…”

“힘만 받고 입 씻으려고요?”

“내가 받고 싶어서 받은 것도 아닌데.”

“흠, 하지만 사제가 되면 좋지 않나요? 결혼 안 해도 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하겠지만 요즘 신관들 꼴을 보면 몰래 애인도 만들고 자식도 만들던데, 그래도 할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부패한 종교인이 되고 싶진 않은데…”

카이엔은 말끝을 흐렸다.

뭣보다 인간들 사는 땅에서 마신 사제라고 잘못 말했다간 큰일이 날 텐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놈들을 어떻게 기다려?”

“그러니까 다음에 왕자님을 찾아오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이제 나한테 볼일 없을걸?”

“그랬으면 좋겠군요.”

투덜거리는 카이엔 보을고 바이스는 내일 훈련은 좀 더 강도를 높여도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슬슬 몸이 적응하는걸 봐선 이쯤에서 좀 더 힘들게 해도 될 것 같았다. 입을 열심히 움직일 체력이 있으니 저 체력도 내일은 쏙 빼놔야겠다면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무시무시한 생각을 했다.

카이엔이 맨날 죽상으로 돌아다니자 걱정이 된 사트로누스도 오늘은 함께 방 안에 있었는데 카이엔의 모습을 보고 사트로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크릉.”

- 저러다 죽겠다.

“안 죽어…”

“사트로누스가 무슨 말을 했나 보군요.”

“별거 아냐.”

카이엔은 힘없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던 중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고 하니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민 건 페이리였다.

“왕자님, 간식 드세요.”

“응? 어어…”

“찌익, 찌직! 쮜이잇-!!”

“으왓, 소금이?!”

페이리가 내민 간식 바구니에서 소금이가 튀어나오자 카이엔이 깜짝 놀라 외쳤다.

소금이는 소금이대로 앞발을 파닥이며 외쳤다.

- 인간아, 너! 어디 있었던 거냐!!”

“소금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왕자님을 보고 싶다고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너희 말 안 통하잖아.”

“저번에 왕자님이 통역해주셔서 간단한 건 가능해요.”

페이리는 입고 있던 앞치마의 주머니에서 색칠된 나무 조각을 보여주었다.

“이건 간식 주라는 거, 이건 귀찮게 굴지 말기, 이건 왕자님 보러 가자는 거예요!”

“아… 직접 만들었어? 엄청 작은데 고생했겠다.”

“잃어버릴까 봐 예비용도 많이 만들었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페이리가 알려주었다.

카이엔이 나무 조각을 살피며 소금이에게 말해주니 소금이도 나무 조각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페이리는 바이스처럼 카이엔의 방에 허락 없이 들어와도 좋은 사람이었기에 이따금 소금이를 찾아가서 놀아준다고 했다.

간식 바구니에서 소금이를 꺼낸 다음 안을 들여다보니 말린 과일을 얹은 머핀과 쿠키가 들어있었다.

“왕자님이 주방 공사로 안을 넓혀주셔서 저도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아요.”

“다행이네. 공사해도 안 되면 아예 주방을 하나 더 만들까 했는데. 아니, 이참에 돈 모이면 하나 더 짓자. 괜찮겠지?”

“물론이죠.”

“아, 안그러셔도 되는데…”

“너도 다락방에만 있지 말고 바깥에 자주 돌아다녀. 사트로누스를 봐, 저 녀석 이제 만티코어가 아니라 이 동네 명물이 다 됐다. 다들 큰 개 취급이라니까.”

“크르릉-”

- 시끄러.

“맞는 말이구만 뭘.”

페이리는 사트로누스만큼이나 오래된 식구였지만 바깥사람들은 그녀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다.

저택 사람들과 잘 지내는 만큼 페이리 역시 외부로 나가도 될 텐데, 페이리는 외출만큼은 절대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치만, 완전히 몬스터인 거랑은 다르잖아요. 전 반쪽은 인간과 비슷해도 나머지 절반은 완전히 거미인걸요.”

“누가 너한테 뭐라고 하면 나한테 말해. 이 땅에 발 못 붙이게 쫓아내 버릴게.”

“왕자님도 참…”

“쫓아낼 필요까지 있습니까? 말 그대로 발을 못 디디게 잘라버리면 될 것을.”

“넌… 피를 안 보는 방법 따윈 없는 거야?”

“피를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으니까요.”

“찍찍!”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소금이도 찍찍거리며 추임새를 넣었다.

영주성의 요리사의 도움을 받아서 페이리가 만든 머핀은 굉장히 맛있었다. 맛을 칭찬하니 페이리는 얼굴을 붉혔다.

“소금이도 같이 주방에 있었어?”

“네. 구경만 했어요.”

“찍!”

- 과일 먹었다.

“풉. 많이 먹진 않았지? 과일 많이 먹으면 배탈 난다.”

“찟.”

- 조금밖에 안 주더라.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카이엔은 웃음을 터뜨렸다.

***

“돌아가야 해요.”

아침 식사를 하며 이노스가 투덜거렸다.

정확히는, 카이엔이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오니 이노스가 빈자리에 앉아서 같이 밥을 먹게 된 거였다.

접시 위에 올려진 오믈렛을 포크 끝으로 툭툭 치며 이노스가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돌아오라는 전언이 도착한 거 있죠? 너무해요!”

“오라고 했으면 가야지.”

“너무해요. 냉정한 사람!”

“큰일은 다 지나갔으니까 너도 공부에 전념해.”

“공부하기 싫은데…”

이노스는 울상을 지었다.

쭉 놀다 보니 다시 공부할 생각만 해도 싫은 모양이다.

한숨을 푹푹 쉬는 친구를 앞에 둔 카이엔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운동을 하기 싫어서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카이엔, 재밌는 일 있으면 꼭 불러줘야 해요?”

“그럴 일 없어.”

“히잉.”

아쉬워하면서도 이노스는 얌전히 마차를 타고 수도로 향했다.

티아마티스가 오라는 말만 하고 텔레포트 게이트나 이동 마법진 같은 걸 만들어주지 않았기에 마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노스가 안 간다고 계속 버티고 있었다면 기다리다 지친 티아마티스가 세자르까지 와서 뒷덜미를 잡고 끌고 갔을 텐데. 잡혀가는 건 싫은지 이노스는 제 발로 세자르를 떠났다.

이노스가 떠난 뒤에도 세자르는 평온했다.

‘…앙그라 마이뉴랑 진짜 이야기를 해봐야 하나?’

부른다고 와줄지는 모르겠지만 바이스가 한 말이 있어서 신경이 쓰였다.

그는 신성력을 받았다. 신앙심도 없는 그에게 신성력이 하사된 거다.

보통 사제나 성기사가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럼 그는 마신의 사제가 되어야 하는 건지. 인간이 마신을 믿어도 되는 건지. 문제는 없는 건지.

안 그래도 이종족이며 몬스터에게 호의적인 성격 탓에 그를 주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마신을 믿는다는 소문이 잘못 퍼지기라도 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지금까진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그에게 연락해서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곤 했다. 게다가 대리전이 끝난 이상 그쪽에서 그를 주시할 이유도 없었다.

‘연락 좀 되면 좋겠는데.’

제발. 좀.

그의 바람이 닿은 걸까.

어느 날. 잠결에 카이엔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 계속 날 찾는구나.

- 그럼, 찾아가겠다.

그 말을 끝으로 카이엔은 눈을 떴다.

“…음.”

온다는 건가?

이전에도 벨레드가 직접 그를 찾아온 적이 있었기에 카이엔은 잠이 덜 깬 눈으로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잠시 후 그를 깨우기 위해 바이스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카이엔이 입을 열었다.

“저녁이나 밤쯤에, 앙그라가 올 것 같아.”

“연락이 닿은 겁니까?”

“글쎄… 일단 혼자 오진 않을 것 같고 차보단 술을 좋아할 것 같으니까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카이엔은 어디 가지 않고 방 안에서 대기했다.

언제, 어디서 앙그라 마이뉴가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카이엔은 힐끔거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늦은 밤. 11시를 넘어 자정에 가까워질 무렵, 그 혼자 있던 방 안에 스르륵 앙그라 마이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얇은 흰 천을 숄처럼 두른 그녀는 카이엔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구나.”

“응? 혼자 온 거야? 루키푸게도 데려올 줄 알았는데.”

“성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지. 혼자 두면 불안해서 벨레드도 두고 왔다. 같이 온다는 놈을 떼어놓고 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

“으으음…”

그 덩치가 같이 따라온다고 떼를 쓴 건가.

앙그라 마이뉴 혼자 와서 다행이라며 카이엔은 한숨을 쉬었다.

“잘 지내나 보네.”

“겨우 시간을 낸 거다.”

“술상을 준비했으니 들일게.”

카이엔은 방 안에 뒀던 종을 울렸다. 잠시 후, 바이스가 술과 함께 간단한 안주를 가져왔다.

테이블 세팅을 마친 그는 방에서 나가지 않고 소파에 앉아있는 카이엔의 뒤에 섰다. 그런 그를 보고 앙그라 마이뉴가 물었다.

“앉지 않는 건가?”

“감히 왕자님 옆에 앉을 수는 없죠.”

“호오, 그럼 감히 나를 내려다볼 수는 있다는 건가?”

그 말에 바이스는 카이엔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묻는 듯한 눈빛에 카이엔이 말했다.

“그냥 내 옆에 앉아. 이야기할 것도 있다면서.”

“…알겠습니다.”

바이스가 카이엔의 옆에 앉자 앙그라 마이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전 최종 우승자인 이상, 그녀가 이제 마왕일 텐데 앙그라 마이뉴는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곤 없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눈으로 카이엔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이유로 날 찾은 거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네가 아니라 네 시종 쪽이 나에게 볼일이 있었던 거구나.”

“걱정되는 점이 있었으니까요.”

바이스는 눈앞에 있는 자가 악마고 이젠 마왕이 됐다는 걸 알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 모습을 좋게 본 건지 앙그라 마이뉴는 바이스의 물음에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신성력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거둬가지 않으실 겁니까?”

“딱히 가져갈 이유는 없다.”

“다른 악마들이 아무 말도 안 합니까?”

“자기들도 꼼수를 쓴 게 있으니 할 말이 없는 셈이지. 그리고 이제 내가 마왕이다. 그러니 괜찮다.”

“마지막에 싸운 자와 계약한 악마도 아무 말 없던가요?”

“바알 말인가? 그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애초에 자기 계약자가 승리했어도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다는 소원을 이뤄줄 생각은 없다고 하더군.”

“…그거 사기 아냐?”

카이엔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러자 앙그라가 웃으며 말했다.

“뭐든지, 회피할 구멍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으으음…”

“저희 왕자님은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겁니까? 기껏 아등바등 살아남았는데 사제들 손에 죽을까 봐 걱정입니다. 악마들이랑 연을 끊을 수는 없고요?”

“과격한 말이군. 그쪽은 괜찮다. 이미 위에서 이야기가 다 끝났거든.”

“위쪽…이면…”

“신이지.”

“하아….”

“음? 왜 한숨을 쉬는 거지? 잘된 일이지 않느냐. 네가 천신의 사제들에게 이단으로 몰려서 죽을 일은 없단 거다. 애초에 빛이 있어서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어서 빛이 있는 것이니, 적대할 일이 없지.”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게 뻔한데…”

“하지만 내가 인정한 사제는 너 뿐이지 않느냐.”

앙그라 마이뉴는 뭐가 문제냐는 듯, 카이엔을 가리켰다.

“너 혼자뿐이다. 그러니, 네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는 이상 마신 사제의 명맥이 인간의 땅에서 이어질 리 없다. 너는 후계자를 만들 생각 따윈 안 하는 걸로 보이는데.”

“그렇긴 한데…”

“그럼 된 거다. 나도 그리 큰 뜻이 있어서 네게 그 힘을 준 것이 아니니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괜찮은 능력이 그것이었고 그 힘이 아니라면 인간에게 ‘파멸’의 힘 따위를 준 바알 놈을 이길 수 없었을 테고.”

“그 바알은 그 뒤로 어떻게 됐습니까?”

“가장 치열하게 다툰 상대나 마찬가지니 그 공로를 치하하고 높은 위치를 주었지. 원래부터 권력이 강한 놈이라 달라진 건 없지만. 마계 쪽은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신들끼리 이야기가 끝났다면 그가 다른 신관이며 사제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을 일도 없었다. 바이스는 그 점을 가장 다행으로 여기는 듯했다.

하긴, 기껏 살아남았는데 신을 믿는 이들이 그를 죽이려 든다면 더한 고생길이 펼쳐질 테니까.

그가 안도하니 앙그라는 잠시 눈을 감더니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작은 신전쯤은 세우거라. 그래야 신이 조금이라도 기뻐할 거야.”

“하긴, 세자르에는 천신 신전도 없지?”

“없습니다. 작은 곳이니까요.”

“아직 신전도 없고 신앙심도 없고 오로지 힘만 받은 작은 인간 아이를 걱정해서 우리 신이 먼저 천신에게 대화를 요청했으니까.”

“…아.”

마신은 생각보다 굉장히 착한 신이었던 모양이다.

인간계의 세력을 보면 천신이 훨씬 힘이 셀 테니 자기가 숙이고 들어 갔어야 했을 텐데.

고작 한 명뿐인 인간 신자, 앞으로도 신자일지 신자가 아닐지도 모르는 그 한 명을 위해 먼저 나서줬다니, 굉장히 고마웠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카이엔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금의 여유가 있으면. 신전 세우려면 땅도 봐야 하잖아.”

“부탁한다.”

“진짜 작게 신전만 하나 세울 거야. 사제는 안 될 거고.”

“맘대로 하거라. 다만, 신전을 세우려면 기도실도 있어야 하고 제사를 지낼 제단도 만들고 필요한 건 다 갖춰놓도록.”

“난 그런 거 잘 모르는데…”

“그리고 다 지었으면 제사도 한 번 지내라.”

어쩐지 점점 커지지 않나?

카이엔은 어쩐지 사기당하는 기분이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사 지낼 때 뭘 써야 하는 건데요?”

“그냥 다른 신전들처럼 하면 되지.”

“…딴 신전은 뭘 바치냐?”

“기도와 그 해 빚어낸 가장 좋은 술 정도입니다.”

“흠, 고작 술로 된다는 거냐?”

“그럼 뭘 바쳐야 하는 건데…”

“좋은 소 한 마리 잡아서 태우거라.”

“아 네…”

사람 잡으라고 안 해서 다행이다. 카이엔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좋은 소 한 마리 정도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제사라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신앙을 증명하는 요소기에 더 좋은 걸 더 많이 바칠 수 있다면 좋을 테고.

신이 입이 있어서 제물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손이 있어서 제물로 바쳐진 물건을 가져갈 수도 없으니 태워서 날려 보내는 게 가장 흔한 방법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술은… 뭐하지?”

“포도주는 식상하니까 벌꿀 술은 어떻습니까? 잘 만들면 굉장히 독해집니다.”

“…그 정도면 제물이 아니라 암살용 아냐?”

“뭐 어떻습니까.”

“너 그런 거 먹어본 적 있는 거야?”

“제가 그런 거 먹었으면 왕자님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술 먹고 정신 놓고 있으면 딴 놈들이 기회구나, 하면서 카이엔을 죽였을 테니. 그 말을 살짝 돌려서 하는 바이스를 보고 카이엔은 얼굴을 찌푸렸다.

맞는 말이긴 한데 기분은 좋지 않았다.

“전 술 안 먹습니다.”

“어… 그런데 벌꿀 술은 어떻게 만들지? 과일주랑 비슷하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왕자님도 만들 수 있어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쓰면 꿀을 입에 넣고 씹어서 뱉는 식으로 만듭니다.”

“더럽잖아!”

“왜 그러십니까? 신께 바치려면 왕자님이 만드셔야 하는데.”

“다른 거로 해, 다른 거로!”

“그래. 꼭 네가 만들 필요는 없지. 네가 만든 실패작보단 남이 만든 명작을 더 반길 거다.”

앙그라 마이뉴도 한마디 보탰다. 카이엔은 더욱 표정을 구겼다.

어쩐지 두 사람 다 그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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