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일정 지점에서 프라우디에는 청년에게 공격을 가해 땅으로 추락시켰다.
붙잡고 있던 사슬이 촤라락 풀리면서 그를 그대로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쿵-!
인적이 없는 공터.
검은 숲을 자주 들락거렸던 프라우디에인지라 싸우기 좋은 장소를 미리 봐둔 지 오래였다.
그러나 꽤 높은 곳에서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멀쩡하게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인간이라면, 뼈가 다 부러졌어야 할 정도의 충격인데.”
“난 보통 인간이 아니거든.”
“그거 다행이네요. 저도 보통 인간은 아니거든요.”
“귀엽게 생겨서는, 상당히 흉흉한 힘을 가졌는걸?”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전자인지 후자인지에 대한 답을 해주진 않았다.
프라우디에는 땅을 뒤집어엎어 안에 파묻힌 백골을 조립해냈다.
몬스터들의 땅. 파묻혀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뼈 짐승 두 마리가 쿵쿵, 땅을 울리면서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청년의 손에 닿자 힘없이 바스러졌다.
큰 힘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자신을 향해 단단한 뼈로 된 이빨이며 발톱을 들이대는 것들에 손을 댔을 뿐이었다.
그것은 부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으스러지고 부서져 내렸다.
그 힘에 대해 들은 것이 없기에 프라우디에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고 제힘만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뼈 짐승 둘을 해치운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상성이 나쁘네.”
그가 휘두른 주먹을 프라우디에가 낫으로 막았다.
흑마법으로 구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낫의 손잡이가 부러졌고 프라우디에가 뒤로 날아갔다.
이 정도 속도는, 바이스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커헉!”
“마법사들은 몸이 약해서, 거리를 두고 공격하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넌 아니네.”
“으윽…”
“가만히 있는 게 좋을걸?”
그는 가볍게 손을 털며 말했다.
진짜 리치왕이라면 모를까, 봉인 당해 힘도 기억도 몽땅 잃어버린 나약한 영혼 따윈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그와 계약한 악마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건 리치왕이라 불린 자의 라이프 베슬이 맞지만 육체는 나약한 호문쿨루스, 정신 또한 마찬가지라면서.
지금까지 프라우디에는 흑마법을 사용해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르는 식으로 적을 상대했다.
물량에는 장사가 없기도 했고 적의 대부분이 같은 흑마법 사용자인지라 마력 양으로 싸우면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하나 눈앞의 상대는 흑마법사도 아니었고 악마에게 무슨 능력을 받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제국에서 만났던 이베리카의 경우엔 그 힘이 흑마법과 연관이 있긴 했지만 그때도 그보다 많은 수의 뱀파이어를 조종하는 힘에, 그 뱀파이어들이 글러티나에게 가지 않게 막는 것이 고작이지 않았는가.
부러진 낫을 던지자 그것은 순식간에 안개처럼 녹아 사라졌다.
청년의 주먹은 낫을 부수고 그에게 약간의 내상을 입혔다. 이 정도면 금세 회복해야 했다. 통증이 사라져야 했고 마법으로 통증을 감소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나, 마법이 듣지 않았다.
마력은 멀쩡히 흐르고 있었는데 통증이 감소하기는 커녕 점점 퍼져나갔다. 인간이 아닌 호문쿨루스의 몸이었기에 프라우디에는 공격을 한번 허용한 것으로 그 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기능이, 정지하고 있었다.
“안에서부터 파고들어 전체를 망가뜨릴 거다. 결국엔 죽게 되겠지. 넌 정통으로 맞았으니까 버티기 힘들 거야.”
“당신은… 대체…”
“흠,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하기엔 영- 못 미더워 보이던데 다 너희 때문이었구나.”
신체 기능의 정지.
공격을 허용한 부분부터 시작해 일대의 조직이 죽어가고 있었다. 인간이 맞았다간 단숨에 즉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육체는 인간의 것과는 조금 다르기에 손상된 부위를 들어내고 새로운 조직을 채워 넣어 꿰맨다면 복구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에겐 치명적이다. 프라우디에는 입술을 깨물었다.
라이프 베슬까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라이프 베슬까지 침범하지 못하더라도 그 밖의 조직들을 죽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청년은 비틀거리는 프라우디에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고개를 들게 했다. 이렇게 보니 체격의 차이가 꽤 커서 어린애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꽤 아플 텐데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프라우디에를 보고 그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희가 지키는 녀석 말이야, 그 계약자. 너희 같은 녀석들이 옆에서 이렇게 싸고도니 성장을 할 수가 없지. 아무리 쓸모없는 힘을 받았다고 해도 말이야.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지?”
프라우디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신체의 기능이 정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력으로 정체불명의 힘이 퍼지는 것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었다. 오히려 그 방법 때문에 신체 조직이 괴사할지도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프라우디에가 대답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말을 이어나갔다.
“권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힘이 세지도 않고, 그렇다고 돈이 많아 보이지도 않고. 흠, 잘 모르겠는걸.”
“결국 죽을 테니 상관없나?”
딱 봐도 약해 보이니까. 그러니까, 곁을 지키는 녀석들만 처리해버리면 계약자 자체는 별거 아닐 테니까.
한편, 프라우디에가 청년을 검은 숲으로 끌고 가버린 뒤 저택에서는 자네인이 사람 없는 곳에 착지했다. 드래곤 모습 그대로인 그녀를 보고 카이엔이 놀라서 물었다.
“자네인? 어떻게 알고 온 거야? 그리고 프라우디에는-”
“검은 숲 쪽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쪽으로 가죠!”
“왕자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가야지. 몇 명은 여기 남아서 저택을 지켜줬으면 하는데.”
“아, 그럼 난 여기 있을게. 거기 가도 도움이 못 될 것 같아…”
“저도요.”
에빌과 글라스가 남기로 했다.
글러티나는 함께 가려고 했지만 크고 작은 부상, 검의 손상으로 인해 남기로 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말을 전해주십시오. 검은 숲으로 오라고요.”
“왕자님, 저도 갈래요.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제힘으로 시선을 돌려볼게요.”
“제 등에 타세요. 프라우디에가 걱정됩니다.”
싸움을 택한 이들은 모두 자네인의 등에 탔다.
바이스는 카이엔을 남겨두고 가기 원했지만 이 싸움은 원래 카이엔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카이엔이 가겠다고 했기에 말리지 못했다.
마법 소녀들 또한 드래곤을 타고 가는 게 더 빠르다는 말에는 동의해서 자네인의 등에 타서 비늘을 붙잡았다.
모두가 안전히 탑승한 걸 확인하고 자네인이 다시 날개를 펼쳤다. 거대한 드래곤이 비행을 하기 위해 날개를 펄럭이니 굉장히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에빌이 날아가지 않게 뒤에서 글라스가 붙잡아주었다.
“으헉, 고마워…”
“뭘. 우린 일단 여기 있는 불부터 끄자.”
순식간에 몇십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른 자네인은 고도를 더 높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아도 정원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꽃을 볼 수 있어서 카이엔은 마음이 심란해졌다.
프라우디에가 어디로 향했는지 알고 있기에 자네인은 즉시 검은 숲을 향해 날아갔다. 여기서 떨어지면 바로 사망이라 카이엔도 자네인의 몸체를 꽉 붙잡았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들이 보게된 건 바닥에 쓰러져있는 프라우디에와 주변의 아무 바위 위에 걸터앉아있는 청년, 이 안에서 싸워야 한다며 구역을 정해놓은 것처럼 주변을 둥글게 감싸고 듬성듬성 타오르고 있는 검은 불꽃이었다.
“프라우디에!”
자네인이 지상에 착지하자 카이엔은 급하게 그녀의 등에서 내려 프라우디에에게 달려갔다.
얼른 뒤로 끌어와 상태를 살폈다. 안색이 나쁘고 몸의 상처가 이상했다.
출혈이 심하거나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지만 몸이 굉장히 차가웠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카이엔은 프라우디에의 옷을 들춰보았다. 복부를 검은 얼룩 같은 것이 뒤덮고 있었다. 안에서부터,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뭐, 뭐야 이게…”
프라우디에의 경우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리치왕의 라이프 베슬이므로 그것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다. 과거 자네인의 앞발에 살이 쥐어 뜯겨서 라이프 베슬이 드러났음에도 봉합 수술을 하고 나서 멀쩡히 일어날 수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번은 그 상처가 굉장히 심했다.
카이엔이 나타나자 앉아있던 청년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카이엔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그 앞을 바이스와 자네인, 비셰, 그리고 마법 소녀들이 막았다.
가장 먼저 청년을 향해 달려든 건 마법 소녀들이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를 가볍게 쳐내며 청년이 말했다.
“아, 이쪽에 붙은 건가? 하지만 너희를 만들어낸 악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악마라니. 헛소리겠지!”
“얘네, 전혀 모르는 건가?”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대충은 알겠네. 너희를 구성한 것이 무엇인지.”
그를 무시하고 마법 소녀들은 무기로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마법을 사용했다.
검을 사용하는 엘리멘트 플레임, 루비아의 검에 불의 기운이 깃들었고 엘리멘트 아쿠아, 사피의 창이 얼어붙었으며 엘리멘트 에아, 에밀리가 겨눈 화살에 소용돌이가 생겼다.
그러나 세 소녀가 힘을 합쳐서 쓰는 마법도 청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를 뒤덮은 검은 불꽃에 모조리 상쇄된 것이었다.
각자의 공격도, 세 사람이 함께 쏘아낸 공격 또한 같았다.
여유를 넘어서 조금은, 권태로움까지 느껴지는 얼굴로 청년이 입을 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죽이는 힘을 가지고 있지.”
“너희를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을지도 알고 있고.”
“어차피, 버림 패가 되었으니 내 손을 쓸 필요도 없겠지만.”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헛소리겠지.”
마법 소녀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고 공격했다.
뚫리지 않는 방패를 몇십번이고 찌르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프라우디에가 소중한 존재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과거 가장 강대한 적이었던 리치왕으로 추정되는 존재였다. 적이었다. 하지만 악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무해할 정도로 순해서 가만히 두고 이따금 같이 마법 연습을 하고 산책하러 다녔을 뿐이었다.
세 사람은 생각했다. 그들이 저자와 싸우는 이유는 저 사람이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는 영주성에 찾아와서 불을 지르고 싸움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저 사람은 악인이니까 없애야 한다고, 그들의 행동에 이유를 붙였다.
‘이상해.’
‘힘들어.’
‘통하지 않아.’
지금까지는 괴물도 악인도 너무나도 쉽게 처단할 수 있었던 힘이었지만 청년이 만들어내는 검은 불꽃을 뚫을 수 없었다.
방패도 되고 창도 되는 그 힘 앞에서 그들의 마법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의지를 꺾지 않고 마법 소녀들은 계속 그 앞을 막아섰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끈다면 다른 이들 또한 정비를 마치고 싸움에 끼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너희 역시 상성이 좋지 않네.”
청년이 손을 움직였다.
지금까지 불꽃으로만 형상화되었던 힘이 거대한 창이 되어 날아들었다. 그 숫자도 적지 않았다.
수십 개의 창. 그들을 향해 겨눠진 검은 창을 보고 마법 소녀들은 급하게 방어막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들의 방어막은 검은 창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뚫려버렸다. 날아드는 창에 세 사람은 눈을 질끈 감았다. 피할 수 없다. 피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창이 날아온다. 꿰뚫린다.
저 숫자면 신체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 상상이 가는 광경이었다.
하나 고통이 없었다. 통증이 없었고 피가 흐르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눈을 떴을 때, 그들은 그 앞을 막아서고 있는 황금빛 몸체의 용을 보게 되었다.
아직 드래곤 화를 풀지 않았던 자네인이 거대한 몸을 움직여 마법 소녀들을 향한 공격을 모조리 막아낸 것이었다.
날카로운 잇새로 그르릉거리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큭…”
“아…”
“언니가…”
“어째서…”
“아아아-!!”
바늘처럼 빽빽이 꽂힌 창이 스르르 녹았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대로 금빛 용의 몸체에 녹아들어 그 주변을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마법 소녀들은 그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창은 뽑을 틈도 없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절망 섞인 그들의 얼굴과는 달리, 청년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그걸 다 맞았어. 세상에. 가만히 있었으면 더 오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너…!!”
분노한 마법 소녀들이 청년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검은 불꽃은 모든 공격을 막아냈고 오히려 그들에게 반격했다.
제 몸이 다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 소녀들은 청년에게 단 하나의 유효타라도 주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에도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불꽃을, 불꽃 형상을 한 그의 힘을 사용하며 말했다.
“너희는, 한 번에 같이 죽여야 한다더군. 애초에 하나가 되어버린 것을 세 개로 다시 쪼개어버린 것이라면서.”
펴고 있던 손이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거대한 검은 창이 나타나 세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세 개의 검은 창이 세 사람의 몸을 동시에 꿰뚫으려고 했다. …그러려고 했다.
카이엔이 그나마 손이 닿는 위치에 있었던 엘리멘트 플레임, 루비아의 팔을 잡아당겼다. 제 몸을 던져 루비아가 창을 피하게 했다. 검은 창은 그녀의 다리만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 두 명은 그대로 창에 맞아 고꾸라졌다. 쓰러지는 친구들을 보고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안 돼-!! 아아아악!!!”
“정신 차려! 루비아!”
그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처음으로 입에 담은 그 이름에 비명을 지르던 루비아가 고개를 돌려 카이엔을 보았다.
일렁이는 눈동자가 그녀를 뒤에서 붙잡고 있는 이의 얼굴을 그 안에 담았다.
알 수 없는 사람.
끝까지, 왜 이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사람.
이유 없는 호의.
이유 없는 친절.
그저, 당연히 그래야 했던 것이라면서 내밀던 손.
“나…”
그녀가 입술을 움직였다.
일그러지고 몇 번이고 짓씹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키던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이거, 꿈인 거죠?”
그녀의 목숨은 붙어있었다.
다른 두 친구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러나 그들은 꿈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밀려오는 두통에 루비아는 머리를 붙잡았다.
알 수 없는 기억이 물 밀듯 밀려 들어왔다.
죽은 게 분명할 텐데 몸을 일으킨 두 사람, 흐려지는 시야, 터질 것만 같은 머리. 그녀는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본 적이 없는 풍경.
한 적 없는 말.
들은 적이 없는 소리.
“모르겠어, 모르겠어요 이건 아니야… 내가 겪은 일이 아니야, 내가 한 말이 아니야, 내가 들은 말이 아니야, 내가 한 일이 아니야…”
“흠, 두 명이 죽고 한 명만 남으면 그 한 명에게 기억이 옮겨가는 건가? 원래 하나였으니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기도 하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은 네가 한 거지. 그대로 셋이 한 번에 죽게 했다면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청년은 혼란스러워하는 마지막 남은 마법 소녀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녀의 곁에 카이엔이 있기에, 그쪽을 노렸다간 바로 옆에서 바이스가 달려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쪽을 견제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 여기며 청년은 마법 소녀에게 관심을 거두었다.
루비아는 허공을 더듬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한참 동안 손을 움직이다가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왕자…님…”
“루비아?”
“목소리가, 계속, 들려요. 나… 다, 당신을 죽이지 못해 죽일 수 없어, 죽이고 싶지 않아. 이건 계시가 아니야. 신의 목소리가 아니야. 나는, 나는…”
“왕자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이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던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급하게 검을 꺼내 청년을 막아선 바이스는 이를 악물고 공격을 막아냈다.
“와, 또 사네?”
“제가 살아있는 이상, 왕자님은 못 건드립니다. 그나저나 연기도 할 줄 알고 꽤 뛰어나시군요.”
농담하듯 말하고 있었지만 바이스가 굉장히 기분이 나쁜 상태라는걸, 카이엔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루비아를 데리고 조금 뒤로 물러났다.
덜덜 떠는 그녀를 꼭 붙잡아 안은 채 사피와 에밀리에게 다가갔다.
검은 창을 맞긴 했지만, 정말 죽은 건지 확인해야 했다. 죽지 않았다면 루비아가 좀 더 안심할 수 있을 테니까.
고개를 숙인 채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불안정한 자세로 용케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루비아가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데리고 가주라는 뜻에 카이엔은 그녀를 부축했다.
바로 앞까지 다가간 뒤에 루비아는 카이엔에게서 떨어졌다. 떨리는 손끝으로 친구들의 어깨를 붙잡은 그녀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이미 죽은 두 사람의 심장을 향해 손을 찔러넣었다.
검은 창을 맞았을 때와는 다르게, 피가 뚝뚝 흘렀다.
심장에 손을 찔러넣어, 루비아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보석으로 만든 브로치와 비슷한 형태의 무언가였다.
카이엔은, 그것이 리치왕의 라이프 베슬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루비아역시 마찬가지인 건지 그것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이게, 아마도, 우리…”
“긴 전쟁이 끝나고 긴 싸움이 끝나고 길을 잃은 우리는 하나가 되었고…”
“누군가의 계략에 의해 다시 셋으로 나뉘었고…”
그녀는 카이엔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흐린 눈동자였지만, 조금은 빛이 돌아온 상태였다.
힘없이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고마워요.”
“나, 역시 당신을 죽이지 못해. 이건 신의 목소리가 아니지만 멋대로 몸이 움직이려고 해요.”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