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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20화 (121/219)

120화

축제가 시작되었다.

영주성의 지원 또한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작년 보다 힘주어 축제를 준비했다.

카이엔이 영주가 되어 처음으로 관리하게 된 축제인 만큼 주변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축제 당일, 매번 카이엔의 일을 돕느라 호위 기사에서 물러나 보좌관 비슷한 일을 하게 돼버린 에빌이 카이엔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 지키고 있을게. 넌 애들 데리고 놀러 갔다 와.”

“뭐?”

“너랑 놀러 가고싶어 할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첫날부터 영주가 들락거려도 되겠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웃으면서 에빌이 말했다.

그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조용히 카이엔 옆에 서 있던 바이스까지 포함해 세 사람이 함께 있던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왕자님! 같이 축제 보러 가자!”

슬로세이였다.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온 그녀를 향해 바이스가 눈을 흘겼지만 슬로세이는 한번 움찔거리기만 할 뿐,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마법 소녀 세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것 봐라, 내 말이 맞지 않냐, 라고 말하는 듯한 에빌의 얼굴을 한번 쓱 쳐다보고 카이엔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아…”

“왕자님!”

“너희끼리 가도 되잖아. 아니, 너희끼리는 안 되려나. 어른 한 명 데리고 가.”

“왕자님 있잖아!”

“난 일해야 해.”

“마을 축제인데 왕자님은 안 갈 거야?”

“내가 가면 불편해할걸?”

“뭐? 그런 사람들 아냐! 왕자님이 나타나면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난리일걸? 왕자님도 사간 음식! 왕자님도 사간 기념품! 광고할만한 이야기잖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하나 카이엔은 고개를 저었고 덕분에 슬로세이의 뺨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저대로 내버려 뒀다간 바닥에 드러누워서 떼를 쓸 기세였다. 슬로세이의 정신연령을 굉장히 낮잡아본 바이스가 조심스럽게 카이엔에게 첨언했다.

“다녀오시죠. 에빌 씨가 영주성도 봐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말을 하냐.”

“뭐, 소란스러운 것보단 낫죠. 슬로세이 님 한 명뿐이라면 저도 안 된다고 나섰겠지만 뒤에 셋이나 더 있지 않습니까. 슬로세이 님만 따라다니게 했다간 아이들이 굉장히 잘못된 상식을 얻게 될까 봐 걱정되는군요. 더불어서, 바가지 씌우는 상인들이 마법 소녀들 손에 목이 뎅겅뎅겅 잘릴지도 모릅니다.”

“아…”

바가지 상인도… 악인은 악인이라는 거구나.

카이엔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다녀오라니깐. 내가 여기 있을게.”

“…알았어. 부탁한다, 에빌.”

“난 신경 쓰지 말고 잘 놀다 와~”

“글라스 씨도 짐꾼으로 데리고 나가죠.”

“너는?”

“저도 갈 겁니다만.”

당당하게 자기는 짐을 들지 않을 테니 글라스에게 다 들게 하자고 말하는 바이스였다.

차마 뭐라고 말도 못 하고 카이엔은 고개를 돌렸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슬로세이는 반색하며 달려갔고 바이스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이엔의 팔을 끌어안았다.

“슬로세이, 나 옷부터 갈아입어야 하는데.”

“문밖에서 기다릴게!”

“방문 말고, 저택 문 앞에서 기다려.”

“응!”

슬로세이도 마법 소녀들도 외출할 준비는 이미 끝낸 뒤라서 그 혼자만 준비하면 됐다.

가는 길에 글라스를 만나 함께 외출할 것을 알린 뒤 바이스는 카이엔의 외출복을 성심성의껏 골라주었다.

“자, 그럼 갈까요? 왕자님의 지갑이 텅 비겠군요.”

“그건 좀 참아줬으면 하는데…”

“많이 들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왕자님의 사비입니다.”

“나도 알아.”

저택 문밖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슬로세이와 마법 소녀 세 사람은 카이엔이 바이스, 글라스와 함께 나오니 얼른 가자면서 앞장서서 걸어갔다.

슬로세이가 제일 앞이었다.

영주성 밖으로 나가 그들은 마을로 향했다. 첫날부터 축제의 분위기는 떠들썩했다.

아이들의 눈을 잡아끄는 볼거리와 구경거리, 먹거리들. 잘 꾸민 거리를 보고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라도 한 건지 굉장히 힘을 들인 게 눈에 보였다.

나무를 깎아놓은 조각상이나 건물과 건물을 연결한 화려한 장식들, 외부에서 온 악단이며 극단도 있었다.

“와, 나 축제는 처음이야. 축제는 이런 거구나.”

“그러게…”

“사람 되게 많다.”

“이 마을 사람이 아닌 사람들도 많아.”

“축제니까 여기저기서 구경 왔나 봐.”

과연 먹거리 종류도 굉장히 많았다.

대부분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게 나무 꼬치에 끼워져있거나 종이봉투 등에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구경만 할 뿐 카이엔에게 사주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시선 끝을 유심히 살피면서 카이엔은 바이스에게 손짓을 했다. 사 오라는 뜻이었으므로 바이스는 조용히 빠져나가서 아이들의 수만큼 간식거리를 사 들고 와서 손에 쥐여주었다.

손에 들려진 꼬치구이며 빵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마법 소녀들과는 달리 슬로세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카이엔에게 메뉴 투정을 했다.

“난 야채 싫어. 이 고기도 그닥.”

“먹어.”

“힝.”

“바닷속에 사는 인어면서 생선만큼이나 다른 식재료에 까다롭군요.”

“바다엔 풀 없어.”

“고기도 없습니다만.”

그래도 채소보단 고기가 나은지 슬로세이는 고기 중간중간 파와 버섯이 끼워져있는 꼬치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얼른 먹어야 손이 비기에 마법 소녀들도 카이엔에게 우물쭈물 감사 인사를 하며 간식거리들을 입에 댔다.

검은 숲을 인접한 영지답게 토벌에서 얻은 전리품을 파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종족이며 몬스터의 취급에 엄격한 규칙이 있는 세자르에서는 이종족을 차별하지 못했고 정해진 장소에서만 몬스터와 사냥에서 얻은 것들을 거래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축제에서 애들한테 보여주지 못할 것은 없다는 뜻이다.

프라우디에도 여기 껴놓으면 구분이 안 갈 텐데 데려올 걸 그랬나, 조금 후회가 됐지만 지금쯤이면 자네인이랑 데이트를 잘 하고 있을 테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영주가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모습을 드러내자 시장 상인들은 열심히 제 가게의 상품들을 광고했다.

카이엔은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그가 데리고 나온 어린애만 넷이었다. 그중 한 명이라도 카이엔에게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는 순간, 그날 매상은 훅 뛰어오를 게 뻔했다.

과연, 구경만 하는 마법 소녀들과는 달리 슬로세이는 나무를 깎아 만든 기념품이며 유리 공예품, 싸구려 보석으로 만든 액세서리에 관심을 가졌다.

인어의 눈물이 진주였지만 슬로세이는 보석이 더 예쁜 건지 한참 동안 판매대를 쳐다보더니만 보석 장식을 가죽끈에 묶은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왕자님, 나 이거.”

“더 비싼 거로 골라도 돼.”

그 순간 상점 주인이 헉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진정시키면서 상점 주인은 다른 보석들도 있다면서 슬로세이에게 보여주었다.

상대가 영주인지라 바가지를 씌울 수는 없었지만 하나라도 팔리면 이득이었고 영주님도 들렀다 간 가게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좀 더 비싸고 커다란 보석들을 보고도 슬로세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목걸이 세 개를 집어서 마법 소녀들의 목에 하나씩 걸어주었고 다른 하나를 집어 그녀의 목에 걸었다. 카이엔의 손목에는 팔찌 하나를 걸어주었다.

“이렇게 다섯 개.”

“그래.”

즉시 장신구값을 지불하고 일행은 몸을 돌렸다.

상점 주인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슬로세이는 물건을 더 살 생각이 없었다. 대신 카이엔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저기서 맛있는 거 사줘.”

“그래.”

“너희도 이쪽으로 와.”

살짝 뒤를 돌아보면서 슬로세이는 마법 소녀들에게 손짓했다.

한 걸음 뒤에서 그들을 따라오는 세 명에게 슬로세이는 괜찮다며 계속 손을 흔들었다.

“달라붙어도 화 안 내니까 이렇게 매달려도 돼.”

“으음…”

하지만 마법 소녀들은 머뭇거리기만 했다.

카이엔의 팔은 두 개니까, 슬로세이가 떨어진다고 해도 한 명은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대로도 괜찮다며 고개를 젓는 그들을 보고 슬로세이는 고개를 기울였다.

‘정말 뭐든지 셋이 같이 하려는 건가?’

그러고 보니 셋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맘대로 떼쓰고 달라붙어도 카이엔은 한숨을 쉬면서도 받아줄 텐데.

한쪽 팔은 양보해줄 수 있는데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자 슬로세이는 다시 카이엔에게 시선을 돌렸다. 카이엔은, 평소처럼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편 축제의 상점가엔 비상이 걸렸다.

카이엔이 애들을 데리고 가게를 보러 다닌다는 소문이 쫙 퍼져서 다들 열성적으로 호객을 했따.

언제 카이엔이며 영주성 식구들이 구경 올지 몰라 상점 주인들은 청소에 신경 쓰면서 자신이 파는 물건의 가격이 과연 바가지가 아닌지 점검해야 했다.

카이엔의 방문은 잘 되면 한몫 벌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쪽박이 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시끌벅적해진 분위기에 카이엔은 살짝 인상을 썼다.

‘뭐가 이렇게 시끄럽지?’

원래 이렇게 시끄러웠나? 축제라서 그런가?

하긴, 시간이 지날수록 장사하는데 열을 올릴 수는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런 그의 옆에서 바이스가 조심스럽게 소곤거렸다.

“왕자님이 보러오신다니까,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자는 거의 없는 듯하군요.”

“‘거의’없다고? 있긴 있고 넌 그걸 봤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하하. 나중에 처리하겠습니다.”

“처리라니…”

무섭게도 말한다.

바이스가 말하면 장난이어도 장난 같지 않게 들렸다.

그렇게 좀 더 걷다가, 슬로세이가 밤에는 등불을 세워놓고 장사를 하니까 그때 또 나오자며 카이엔에게 졸라댔다.

꽤 오래 걸어서 힘들긴 했으므로 카이엔은 영주성에 돌아가는 것에 찬성했다.

많이 걷기도 했지만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에 있으려니 자연스럽게 머리가 아파진 탓이었다.

“이따 밤에도 놀려면 지금 쉬어둬야 해. 낮잠 자자.”

“우린 안 자도 돼.”

“에이, 그럼 나만 자야겠네.”

조금만 자고 일어나겠다며 슬로세이는 호수로 들어갔다. 방이 아니라 호수였다.

그리고, 호수에 둥둥 떠서 낮잠을 자겠다며 그대로 물 위에 누워버렸다.

얼굴이 물 위로 나오게 떠 있었지만 잠시 후 그대로 몸이 뒤집혔다.

뽀글뽀글 공기 방울이 올라오는 모습은 참으로 기괴했기에 마법 소녀들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아요…”

“사실 나도 그래.”

아무튼 잠깐 쉴 시간이 생겼으니 카이엔도 마법 소녀들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슬로세이는 낮잠을 자게 두고 카이엔은 마법 소녀들을 보았다.

아직, 그는 이 아이들의 이름을 잘 부를 수 없었다.

“너희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꽤 오래 같이 지냈는데 이름이 플레임, 아쿠아, 에아라니.

그 호칭의 부자연스러움, 어색함을 알기에 다들 이 아이들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마법 소녀라고 한데 묶어서 부르는 것도 이상했다.

카이엔의 말에 마법 소녀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색이 다른 세 쌍의 눈동자가 그를 응시하더니만 제일 먼저 엘리멘트 플레임, 분홍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왕자님, 이름 잘 못 짓는다면서.”

“윽…”

“그냥, 이거로도 좋아요.”

그녀는 팔찌의 보석을 가리켰다.

하나 카이엔은 보석에 대해 잘 몰랐다. 같은 보석이라도 색이 천차만별이고 조악한 싸구려가 귀중품으로 둔갑하여 팔리기도 했으니까.

똑같은 붉은 색의 보석이어도 그게 루비인지 가넷인지 붉은색의 오팔이나 지르콘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의 팔찌에 장식된 보석은 아주 작았다.

그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요.”

“정말로,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을 것이니까요.”

“그럴 리가 없잖아.”

이름이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역시 악마가 이 아이들을 이용하려고 되살릴 때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었다.

말없이 아이들과 팔찌의 보석을 살피던 카이엔이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루비아, 사피, 에밀리.”

“임시로나마, 그럼 이렇게 부를까. 좋은 이름은 생각하기 어렵네.”

“이걸로도 충분해요.”

“어차피 왕자님만 그렇게 부를 테니까요.”

“저희를 잘 부르지도 않으면서.”

“그건 미안…”

“괜찮아요.”

“이해해요.”

영주성에서 지내면서 마법 소녀들도 어렴풋이 느낀 게 있었다.

다른 이들은 신의 계시 따윈 받지도 않으며 징벌을 행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악인의 피라고 해도 손에 다른 이의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무리 사악한 이를 해쳤다고 해도 죄책감을 느낀다.

안 그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러했다.

카이엔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런 주제에 그들을 멀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가까이 두고 보호하려고 하니 참 이상했다.

이곳에 있을 땐, 지금까지 그들을 움직이게 했던 힘이 발휘되지 않았다. 신벌을 행하고 다니는 징벌자가 아니라 평범한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어린아이라면. 다 자라지 못한 인간의 아이라면.

이곳에 있는 작은 인어처럼 맨날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놀고, 낮잠을 자고, 사고를 치고 그러다가 혼이 나기도 하는 걸까.

좋아하는 사람에겐 눈에 띄게 애정 표현을 하고 싫어하는 것에는 진심으로 싫다며 질색을 할 수 있는 걸까.

그 모든 것들이 그들에겐 익숙지 않고 남의 일인 것만 같아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 쌍의 동그란 눈이 그에게 향해 있었다.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카이엔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그 상처를 추스르고 일어나기 위해선 든든한 버팀목으로 받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런 이는 세자르 남작과 바이스였고 그 덕분에 그는 조금씩, 느리게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어떨까.

자신들이 상처 입은 것조차도 모르고 상처 입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인데.

서로 죽여야 하고 죽어야 하고, 그래야만 끝이 나는 싸움이었다.

만약 무한대로 시간을 끌 수 있다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천히, 그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남은 이는 적어도 셋 이상.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땅이 확실했다.

그와 마법 소녀가 이곳에 있으니 남은 이가 자연스럽게 이곳에 발을 들일 테니까.

“너희들도 들어가서 쉬고 있어. 저녁이 되면 슬로세이가 또 부르러 갈 테니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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