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너희, 어떻게 여기 오게 된 거야? 리치왕이 여기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은 누구고?”
“바다에서 괴물과 싸우고 난 뒤에 누군가가 남긴 편지를 봤어요.”
“중간중간 괴물에게 타격을 준 사람이었는데 해치우고 나서 보니까 사라졌어요.”
“너희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마왕 선발을 위한 대리전의 계약자라 그 싸움에 휘말린 상태야.”
“마왕?”
“뭔진 모르겠지만 계약자, 라고 하기엔 영주님은 너무 약해 보여요.”
이 어린아이들조차 그를 약하게 여긴다는 것에 카이엔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마법 소녀들에 비하면 그는 약한 게 맞긴 했다.
“우리를 여기로 보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수상해.”
“우선 그자를 찾아내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요.”
화살표가 돌아갔다.
마법 소녀들은 이곳에 리치왕이 있다는 편지를 남긴 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이상하다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아이들을 향해 카이엔이 말했다.
“일단 좀 쉬어. 너흰 애들이니까… 프라우디에랑 계속 이야기를 해봐도 좋고. 괜찮을까, 프라우디에?”
“네. 전 좋아요. 저도 모르는 게 많으니까요.”
기억에 구멍이 숭숭 뚫린 마법 소녀나 기억 상실증인 리치왕이나, 떠올릴 수 있는 건 그게 그거겠지만 양측 모두 좀 더 대화를 나눠보는 것을 원했다.
마법 소녀들에게 손님용 별채의 방을 내어주기로 하고 카이엔이 말했다.
“셋이 같이 있어도 되고 따로 있어도 돼.”
“그럼 같이 있을래요.”
“그래.”
적이 아니라면, 공격할 의사가 없다면. 그 역시 마법 소녀를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시녀의 안내를 받아 마법 소녀들은 방으로 안내되었고 식사를 했고 옷을 받았고 목욕을 했다. 넓은 침대에 세 명이 나란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들이 악인을 처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사람들은 각자 감사의 표현을 하긴 했지만, 이런 식의 대접을 받은 건 난생처음이었다.
“이상한 사람이야.”
“그러게.”
“리치왕…이라고 추정되는 사람도 데리고 있고.”
하지만 그 어떤 친절도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라며, 이 환영도 며칠 못 갈 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아마 며칠이 지나면 떠나라는 눈치를 주거나 언제쯤 갈 거냐고 말할 테지. 환대와 환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었으니까.
하나 카이엔은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주칠 때마다 묵묵히 오늘은 뭘 하고 놀았는지 뭘 봤는지만을 물어보았다.
영주성에서 지내면서 그들은 카이엔이 기르는 몬스터와도 접촉했고 소금이랑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게 되었다. 엔베인을 보고 깜짝 놀라긴 했지만 사정을 듣고 나니 불쌍하다는 말도 하게 되었다.
원치 않게 마검에 먹혀 언데드로 추정되는 몸을 가지게 되었지만 정신이 먹히지도 않았고 태양 아래에서 멀쩡히 걸어 다니고 있으니 마법 소녀들은 엔베인을 벌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애초부터 언데드가 태양 아래에서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한 덕분이었다.
“흐음.”
“넌 또 왜 그래?”
“아뇨, 이이상 식구를 늘리면 곤란하잖습니까. 그래서요.”
“싸우지 않는 게 좋긴 하잖아. 게다가 그냥 보낼 수도 없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불안정한 애들이야.”
“그 말도 맞군요.”
플루토랑 놀아주는 거로 봐선, 평범한 아이들인데.
과거 대 재앙이자 절대 악이었던 리치왕과도 맞서 싸웠던 전설의 용사 중 하나이자 현재는, 악마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아이들.
아마, 그들을 이곳으로 보낸 건 다른 계약자일 텐데.
“곧 오겠지.”
“네. 자기가 보낸 암살자가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 오겠죠.”
“준비해야겠는걸. 영지에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깐.”
“단단히 준비하겠습니다.”
담담히 카이엔은 지시를 내렸고 바이스는 그것을 따랐다.
마법 소녀들은, 인간에게 우호적인 몬스터를 본적이 이게 처음인지 그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사트로누스나 놀아달라고 주변을 맴돌며 멍멍 짖는 플루토의 차이에 밝게 웃었다.
그 아이들이 이곳에 있다는 편지를 써서 티아마티스에게 전달하니 그는 한걸음에 달려와서는 혀를 찼다.
“상상도 못 한 꼴이군. …진작에 이랬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에? 뭐가요? 뭐가? 설명도 안 해주고 데려오고선 뭐라는 거예요?”
물론 티아마티스의 뒤에는 이노스가 붙어있었다.
긴 머리를 싹둑 자른 모습에 카이엔이 물었다.
“너 그게 뭐야? 머리 길었잖아?”
“아하하 그게-”
“이 녀석, 제 마법 하나 조종 못 해서 제 머리카락을 태워 먹었다.”
“…네?”
“하하하-”
“웃을 일이 아니야!”
“그치만 무려 드래곤이 직접! 마법을 가르쳐줄 정도로 제 재능이 뛰어나다는 거잖아요?”
“재능은 무슨… 내가 어쩌자고 이놈을 거둬서는…”
“티아마티스 님도 점점 군식구가 늘어나네요.”
“너만 하겠냐.”
하나 한숨을 푹푹 쉬는걸 봐선 이노스는 혼자서도 여러 명 몫을 거뜬히 해내는 모양이다. 사고를 잘 친다는 뜻이었다.
늘그막에 제자를 둔 티아마티스는 심적으로 많이 지친 모양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스승의 속도 모르고 이노스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마법 소녀면 마법 쓸 줄 알겠네요? 한 수 배워야겠어요.”
…라며 쪼르르 가버렸다. 티아마티스의 한숨은 점점 깊어졌다.
그의 눈치를 보며 카이엔이 물었다.
“저 녀석, 잘 배우긴 합니까?”
“나름 머리도 좋고 잘 따라오긴 하는데 태도가 영.”
“하긴. 아, 오신 김에 자네인 보고 가실 거죠? 지금쯤 연무장에 있을 텐데.”
“으음.”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보러 간다면서 티아마티스는 가버렸다.
이노스는 마법 소녀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더니 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제 여동생만큼이나 작은 아이들인데 이노스는 거리낌 없이 그들과 어울렸다.
정신연령이 비슷한가보다, 라고 카이엔은 이해했다.
이전에, 그는 세 마법 소녀에게 이름을 물어보았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플레임, 아쿠아, 에아.
…라고. 이걸로 부르면 된다고 했다.
본명이 아닌 자신이 받은 힘의 속성을 뜻하는 단어였다.
“이름조차 없는 건가…”
“무슨 생각 해요?”
“윽!”
“놀랐어요?”
어느새 다가온 그리델라가 바로 그의 옆에 있었다.
깜짝 놀란 그를 보고 그리델라는 방긋 웃었다.
항상 옆에 같이 있던 슬로세이가 없네, 라고 생각한 순간 저쪽에서 슬로세이가 마법 소녀들에게 달려가는 게 보였다.
하긴, 겉모습만 봐선 슬로세이도 마법 소녀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정신 연령이 맞나보네.”
“아하하. 슬로세이에게 또래 친구가 생기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또래?”
“겉보기엔 그렇잖아요.”
라면서, 슬로세이의 친구인 그리델라가 말했다.
자연스럽게 카이엔의 옆에 선 그녀가 물었다.
“저 아이들도 거둘 건가요?”
“글쎄. 그러고 싶지만, 안될 것 같아. 마왕 자리를 둘러싸고 악마 놈들이 자기들끼리 싸워대는 대신, 대리인을 내세워서 하는 비겁한 싸움이니까. 기권 같은 건 용납되지 않을 테고.”
기권이 가능했다면 그도 진작에 이런 싸움 따윈 때려치웠을 거다.
죽기 아니면 살기.
단 둘뿐인 선택지니 당연히 살고 싶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는 것 아닌가.
잔디밭에서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선 채 대화를 나누던 다섯 명은 카이엔과 그리델라가 그들을 쳐다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노스가 일행에서 떨어지더니 카이엔에게 달려왔다.
“카이엔!”
“왜?”
“검은 숲에 놀러 가도 돼요?”
“미쳤냐?”
“왜요! 마법 연습하려면 넓은 장소가 필요하다구요.”
“위험해. 안 돼.”
“허락해주세요~”
마법 소녀들이랑 프라우디에도 있고 그는 마법사고 슬로세이도 새로운 기술을 연습하려면 넓은 장소가 필요하다면서 이노스는 카이엔의 옷을 붙잡고 졸라댔다.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친구가 그러고 있으니 카이엔은 질색했다.
“안 돼. 못 가.”
“카이엔~~”
“갑자기 왜 검은 숲 이야기가 나와서는…”
“저도 구경해보고 싶단 말이에요! 다들 그렇대요!”
“위험하단 거 너도 알잖아.”
“그치만 다들 마법사잖아요! 제가 못 싸워도 프라우디에도 있고 마법 소녀들도 있고!”
“걔네가 너보다 강한 건 맞지만…”
“제발요~”
이노스의 뒤를 보니 다들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프라우디에는 민망해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이노스의 의견에 동의하듯 카이엔을 향해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부담스러운 눈빛들에 카이엔은 차마 앞을 바라볼 수 없었다.
“어차피 토벌도 끝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그러니까-”
“으윽…”
“카이엔~”
“…라스랑 엔베인한테 같이 가주라고 할게. 위험한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라.”
“와아, 고마워요! 역시 제가 친구 하나는 잘 뒀다니까요!”
“프라우디에, 구조 신호는 보낼 수 있지?”
“네.”
“라스랑 엔베인이랑 같이 다녀와. 내가 부탁했다고 말하고.”
“그럴게요.”
“프라우디에, 네가 이 일행의 인솔자야. 이노스는 못 믿겠어.”
“제가 뭐 어때서요?”
“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봐.”
항상 칠렐레팔렐레 돌아다니는 녀석인데.
이노스가 양심이 있다면 그의 앞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노스는 양심이 없었으므로 카이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무튼 다녀오겠습니다!”
“하아…”
“제가 잘 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프라우디에밖에 없었다.
여전히 철없는 친구가 어린애들을 데리고 검은 숲으로 놀러 가는 것을 보고 카이엔은 한숨을 푹 쉬었다.
카이엔의 허락과 보호자 동행하에 이들은 검은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물론 깊숙한 곳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다.
방벽을 넘어서, 한 삼십 분쯤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일행은 멈춰 섰다. 이 정도 걸었으면 됐다면서 이노스가 말했다.
“자, 그럼 연습해볼까요?”
“이노스 씨는 조준을 잘 못 한다면서요.”
“머리카락도 홀라당 태워버렸다면서.”
“끝만 조금 상했을 뿐이거든요?”
“절반도 넘게 잘라버렸잖아.”
“그건 티아마티스 님이 못 봐주겠다면서 썩둑 잘라버려서 그런 거고요.”
많이 태워 먹지는 않았다면서 이노스는 억울함을 표현했다. 물론 그 말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티아마티스가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이노스가 마법을 쓸 순서가 되었을 때 더욱 굳어졌다.
마법 소녀들은 플레임, 아쿠아, 에아라는. 자신의 호칭대로의 마법을 주로 썼고 프라우디에는 흑마법 대신 기본적인 원소 마법의 응용을 선보였다.
다른 이들의 마법을 유심히 살펴보며 꾸준히 감탄사를 내뱉으며 호응하던 이노스는 자기도 배운 게 많다며 자랑을 했다.
하지만 그가 쓴 마법은 다른 사람들이 쓴 것과는 전혀 달랐다.
“흩날리는 반짝이!”
“와!”
마력을 모으는가 싶더니만, 그가 쓴 마법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눈처럼 내리는 마법이었다.
슬로세이는 감탄했지만 마법사인 넷과 보호자로 따라온 두 명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되게… 예쁘지만 쓸모없는 마법이네요.”
“그러게…”
“예쁘긴 한데…”
“그것 말고는 영…”
마법 소녀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았다.
황당해하며 하늘에서 내리는 반짝이 가루를 보던 프라우디에는 이노스에게 물었다.
“그… 혹시 이거, 티아마티스 님이 가르쳐주셨어요?”
“아뇨? 적당히 개량해서 만들어본 거예요.”
“재능은 있는데…”
“아, 그 표정 티아마티스 님이랑 똑같아요!”
이노스는 해맑게 웃었다.
보호자로 따라온 라스와 엔베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고, 서로 다툴 일이 생겨도 이노스가 끼어있으니 불이 붙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예상을 벗어난 이노스의 마법에 한순간이지만 정신이 멍해졌던 마법 소녀들은 반짝이같은 건 필요 없다면서 바람 마법으로 반짝이들을 날려버렸다.
지속 시간이 길지 않았던 건지 이노스의 반짝이들은 힘없이 사라졌다.
그 뒤로도 서로 허공에 마법을 쏴보았고 이노스도 질 수 없다면서 반짝이 말고 정상적인 마법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나 참…”
“잘 노네.”
“그러게. 처음엔 좀 걱정했는데.”
카이엔이 다치면 어쩌나, 하고.
그런데 저 애들도 나름 잘 지내고 있는걸 보면 괜찮을 것 같았다.
걱정이었던 프라우디에와도 잘 지내고 있었다. 리치왕이란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건지 적대조차 하지않았다.
***
저녁 식사는 함께하게 되었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넓은 테이블이 꽉 찼는데 식사 중에 이노스가 카이엔에게 말을 걸었다.
“카이엔! 이따가 제가 만든 마법 보여줄게요. 아까 같이 간 사람들한테는 보여줬어요.”
“분명 쓸데없는 마법 일테지.”
“그렇지.”
카이엔의 말에 티아마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노스가 불만에 차 부루퉁해졌지만 카이엔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티아마티스가 참 고생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친 뒤 티아마티스는 자네인만 따로 불러냈다.
응접실을 잠시 빌려 마주 보고 앉게 된 두 사람은 다른 이들이 방에서 흘러나올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음성 차단 마법까지 사용했다.
그런 다음에야 티아마티스는 진지한 얼굴로 자네인을 보았다.
“너.”
“네.”
“프라우디에랑 결혼할 거냐?”
“겨, 결혼요?”
“그래.”
“그게…”
자네인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난데없이 결혼이라는 말을 꺼내는 티아마티스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판가름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 반응에 티아마티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내가 널 데리고 다닌 이후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없었으니.”
“하지만…”
“어차피, 아이는 못 가질 테니.”
“네?”
“난 신이 아니야. 하지만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이며 너는 내 피를 흘려 만들어낸 존재이니, 세상 그 어떤 종족과도 다르다. 그러니 이 땅에 애초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던 종족들과 섞일 수 있을 리가.”
애초에, 종족이 달라 생식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자네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프라우디에 녀석도 깊이 따지고 들면 인간이 아니니까.”
“그렇군요.”
“앞으로 남은 수명 역시 네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겠다. 그 녀석이랑 잘 생각해봐.”
“네….”
티아마티스가 세례하여 만들어낸 독룡으로서, 그녀는 수백 년 동안 그의 곁을 지켰다.
인간을 뛰어넘는 긴 수명을 가진 이상 그 목숨이 멸할 길은 주인인 티아마티스가 거두거나 정말로 크고 심각한 부상을 당해 숨이 끊어지는 것뿐이었다. 자연사할 가능성은 없었다.
“잘 지내는 거냐.”
“네. 그리고… 결혼, 이라거나 아이 같은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같은 관계만으로도 충분해요.”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려무나. 여기서 한적하게 살아도 되고 만약 수도에 입성하거나 권력을 쥐고 싶다면 얼마든지 말해라. 내가 가진 힘을 조정해 자리 하나 만들어줄 테니.”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그래. 그럼 됐다.”
예전 같았다면 이 말만 남기고 수도로 돌아갔을 그였지만, 오늘은 이노스라는 혹을 하나 데리고 온 상태였다.
하루쯤은 묵었다가 가기로 하고 티아마티스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자네인은 말없이 그대로 앉아있었다. 앉아서, 티아마티스가 한 말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분이 이렇게까지 바뀌다니.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