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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09화 (110/219)

109화

이노스에게 조사단의 연락 두절에 대해 전해 들은 글러티나, 프라우디에, 자네인은 즉시 제국에서 처음으로 실혈증 환자가 대거 발생했다는 남서부의 엘로탸로 향했다.

자네인이 드래곤으로 변해 두 사람을 태우고 날아갈 수도 있었지만 굉장히 눈에 띌 테니 마법으로 속도를 높이는 게 낫다고, 프라우디에가 말했다.

밤낮으로 움직인 결과 그들은 단시간에 엘로탸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 주둔해있던 이들과 마주쳤다.

기사, 의사로 이루어진 조사단이었다.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해서 죄다 죽은 줄 알았는데, 수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세 사람을 보고 마을을 조사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외쳤다.

“헉! 누, 누구시죠?”

“어? 사람… 조사단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이노스 황자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온 겁니다. 다행히 무사하시군요.”

“아… 네에…”

“마법사들은 어디 간 거죠?”

“다른 곳을 조사하러 갔습니다.”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갑옷이며 몰골에 글러티나는 혀를 찼다.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건 다행이었지만 그 수가 아주 적었다.

그리고, 생존자가 있음에도 황성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게 몹시 수상했지만 겉으로 봐선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힐끗 프라우디에를 쳐다보니 글러티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조사에 동참하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엘로탸에서 실혈증이 처음 발생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근처의 크고 작은 마을이 시발점이 아닐까 여겨져서요. 다들 흩어져서 그쪽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보고가 늦은 이유는요?”

“이상하게 통신 마법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사람을 보냈는데, 아무래도 엇갈린 모양이군요.”

“흠.”

이쪽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경계하되 일단은 동행하기로 하고 일행은 엘로탸 근처의 다른 마을로 향했다.

솔리우스 백작령에 속한 플랑조라는 마을이었는데 과연, 그곳은 반쯤 망가진 상태였다.

인적도 뜸할뿐더러 큰 싸움이라도 일어났던 것처럼 집이 부서져 있고 그 잔해가 나뒹굴고 있었다. 다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썩는 냄새는 났지만, 눈에 보이는 시신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없는 건가요?”

“네? 이상하네요. 분명 이쪽으로 가셨는데…”

함께 온 기사들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하나 인간보다 감각이 예민한 그들 셋은 그곳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도 고요한 마을.

프라우디에의 옆에 서 있던 자네인은 한쪽을 응시하다가 빠르게 검을 빼 들었다.

콰직!

빈집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고 그것은 자네인이 휘두른 검에 베여서 쓰러졌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괴이한 모습을 한 그것의 피부는 시커먼 색을 띄고 있었으며 긴 송곳니와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단칼에 죽어버린 그것을 보고 글러티나가 외쳤다.

“구울이다! 젠장, 이런 놈들이 기척을 숨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이런…!”

글러티나의 외침에 프라우디에도 금방이라도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게 준비했다.

그러나 그의 마법이 향한 방향은 적막한 마을이 아니라 동행했던 기사와 병사들을 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자들이 눈이 뒤집어져서 그들을 덮치려다가 프라우디에의 마법에 온몸이 구속되어서 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당했나 봐요!”

“큭!”

그것을 시작으로, 마을 곳곳에서 구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인간이었을 적의 모습을 잃은 괴물들의 주둥이에는 굳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세 사람은 놀라기만 할 뿐, 겁을 먹지는 않았다.

더한 괴물들을 만난 적도 있기에. 저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구울의 팔을 잘라버리고 그대로 걷어차 버린 다음 글러티나가 외쳤다.

“조심해라, 이놈들에게 물린다고 해서 감염이 되진 않지만 상처를 입으면 독이 퍼질 거야!”

“네!”

프라우디에가 적으로 돌변한 기사들을 처리하는 동안 글러티나와 자네인은 마을에서 튀어나온 구울 들을 상대했다.

한 마을 사람들이 전부 다 구울로 변한 것이라고 하기엔, 그 수가 상당히 많았다.

‘함정이었나.’

그녀의 감각까지 속일 정도로 정교한 구울 이라니.

아마, 조사단으로 파견된 이들도 이런 식으로 함정에 빠져서 그대로 구울이 되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저들은 자기들이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테고,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을 게 뻔했다.

평소에는 인간인 척 움직이고 있다가 그들을 구울로 만든 자가 명령을 내리면 단숨에 괴물로 바뀌는 걸 테고.

이런 방법을 쓰려면, 이 정도로 많은 수의 구울을 마음대로 조종하려면 굉장히 강한 자일 텐데.

서둘러 이곳을 정리하고 황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혼자 황녀의 곁에서 그 어린아이를 지키고 있을 비셰가 걱정되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땅이 움푹 패였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불꽃의 구가 빗나가며 생긴 흔적이었다.

조사단에는 기사는 물론이고 마법사까지 포함되어있으니, 구울이 된 마법사가 마법이라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간일 적에 비하면 굉장히 낮은 화력이지만 보통 구울 보다는 훨씬 귀찮을 터. 프라우디에는 상대하고 있던 기사들을 일단 머리만 밖으로 내놓고 땅에 묻어버린 다음 구울 마법사를 향해 날아갔다.

“글러티나, 다 해치우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서둘러 황성으로 가야 해. 이쪽이 미끼일지도 몰라.”

“알았다.”

서슴없이 구울을 베어버리면서 자네인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구울의 피는 굉장히 끈적해서 묻은 피가 잘 떨어지지 않고 검을 무디게 만들었다.

다시는 재생하지 못하게 머리통을 밟아 부숴버린 다음 자네인은 검을 거두고 대신 두 손을 들었다. 전투가 끝난 뒤 검을 세척하는 것보다 손을 씻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퍽!

그녀의 주먹질 한 방에 구울의 머리가 터지면서 시커먼 피와 살점을 흩뿌렸다.

역시 주먹이 더 나았다.

일몰이 오기 전, 마을에 있던 모든 구울의 처리가 끝났다.

숨을 고르면서 세 사람은 구울의 시체를 한데 모았다. 프라우디에가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 불꽃이 확 피어오르면서 구울의 시체를 불살랐다.

더 남은 것들이 없는지 주변을 살피면서 글러티나가 말했다.

“해가 지고 나면 다른 놈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 …조사만 조금 하고 돌아가자.”

“네.”

“까다로운 녀석은 없었어. 역시 함정이었나 봐.”

방해될만한 구울 들을 제거한 뒤 그들은 마을을 조사했다.

빈집 안으로 들어가니 피 냄새가 진동했다. 이미 말라붙고 썩은 피가 가득한 데다가 동물의 사체와 인간의 시체가 뒤섞여있었다.

피를 빨다 만 것들, 내장을 먹다 만 것들. 이미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부패한 흔적을 보며 글러티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 허기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하급이 이렇게나…”

이곳에는 상당히 많은 구울이 있었다.

그것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산 것이 피와 고기가 필요하니, 그 많은 것들이 지금까지 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과 짐승을 잡아먹었던 것일까.

이대로 이 괴물들이 더 퍼져나간다면 제국은 물론이고 근처의 다른 나라들까지 큰 피해를 입을 게 뻔했다.

“글러티나 씨…”

“일단 엘로탸로 돌아가자. 우리와 동행한 이들도 있지만 아닌 자들도 있었으니까. 그자들도 구울일 거야. 도망치기 전에 처리해야 해.”

“네.”

다른 집들도 조사를 해봤지만 비슷했으므로, 그들은 즉시 엘로탸로 돌아갔다.

하나 그곳에는 빈 천막만이 남아있었다.

텅 비어있는 천막을 보고 그들은 주변을 살피면서 해가 저물 때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날이 저문다면, 어둠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괴물들이 날뛰기 좋은 시간이 될 테니 움직이는 것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해가 진 뒤에도 뱀파이어는커녕 구울 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이미 버림 패였던 걸까요?”

“황성으로 가자. 늦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내가 드래곤으로 변할 테니까 타고 가자. 그편이 더 나을 거야. 밤이라 높게 날면 잘 보이지도 않을 테고.”

“그래도 되겠어요?”

“응. 빨리 가는 게 중요하잖아.”

“그럼 부탁할게.”

자네인은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공터가 넓긴 하지만 그녀가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한다면 십중팔구 주변 나무들을 꺾어버릴 게 뻔했다.

프라우디에와 글러티나가 말려들지 않게 충분히 거리를 벌린 뒤 자네인은 모습을 바꾸었다.

쿠우우우-

이전과는, 사뭇 다른 변신이었다.

그녀의 몸이 금빛으로 물들더니, 이윽고 점점 커졌다. 밤의 어둠에도 은은히 빛나는 금빛 몸체의, 거대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고, 프라우디에와 글러니타는 감탄할 틈도 없이 자네인의 등 위에 올랐다.

프라우디에가 흑마법으로 안장과 고삐 비슷한 것을 만들어 자네인의 몸에 연결했고, 두 사람이 안전하게 등 위에 올라탄 걸 확인한 자네인이 한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비행을 시도했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가면 되지?”

“이쪽이요. 제가 알려줄게요.”

다만, 하늘에서는 방향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은지라 황성으로 가는 방향을 뒤에서 프라우디에가 알려주기로 했다.

***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밤.

사샤가 일찍 잠자리에 든 지 두 시간 정도 지났다.

여느 때처럼 사샤의 곁을 지키고 있던 비셰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

이런 밤중에 황녀의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라니.

이노스라면 문을 두드리고 바로 벌컥 열고 들어올 사람이었으니 이노스는 아닐 게 분명했다.

사샤가 깨지 않게 조심히 문 앞까지 걸어가서 비셰가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리자입니다. 황녀님의 용태를 살피러 왔습니다.”

“…괜찮으니까 돌아가세요.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잖아요. 황녀님은 회복되는 추세고요.”

이상한 대답에 비셰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하나 문밖에 선 이는 계속 문을 똑똑 두드렸다. 열어줄 때까지 노크를 멈추지 않을 모양인지 문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소름 돋을 만한 상황임에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던 비셰였지만 사샤가 몸을 뒤척이자 한숨을 푹 쉬었다.

수상하긴 하지만, 일단 주의를 줘야할 것 같았다.

살짝 문을 열고 비셰가 말했다.

“황녀님 깨시겠어요. 얼른 돌아가세-”

그녀가 문을 연 순간, 밖에 서 있던 시녀가 강한 힘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면서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휘둘렀다.

고개를 옆으로 움직여서 그것을 피하고 비셰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이 멀쩡한 이가 밤중에 황녀의 침실로 들어와서 나이프를 휘두를 리는 없다. 이전에 글러티나가 경고했던 것을 떠올린 비셰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몸을 돌려 시녀의 등 뒤로 이동했고, 그대로 뒤에서 붙잡고 목을 졸랐다.

싸늘하지 않은, 멀쩡한 체온이 느껴졌다.

물린 건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몸이 따뜻한 걸 봐선 구울이 아니라 단순히 조종당하는 것 일터. 비셰는 시녀의 목을 졸라 기절시킨 뒤 문밖으로 내보낸 뒤 방문을 잠갔다.

“후우-”

긴 숨을 토해내고, 비셰는 침대 가까이 가서 사샤를 흔들어 깨웠다.

“황녀님, 일어나세요. 사샤님.”

“으응…”

“괜찮으셔요?”

“무슨 일이야?”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사샤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그녀가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겉옷을 걸쳐주면서 비셰가 말했다.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요. 몸은 좀 어떠세요?”

“졸린 것 빼곤 괜찮아.”

잠을 깨려는 듯, 사샤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

이제 됐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비셰는 살포시 웃었다.

조종당하는 시녀가 방에 온 것뿐이었지만 비셰는 만일을 대비해 사샤를 피신시키기로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알아. 그치만 오라버니는 괜찮으실까 모르겠어.”

“이노스 님도 성물을 가지고 계시니 괜찮으실 거예요. 그리고 그분은 마법사시잖아요!”

“그래도 명중률이 떨어지셔서 궁을 반파시키지나 않으면 좋을 텐데…”

쿠구구궁-!!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사샤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콰광,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순간 밖에서 빛이 번쩍인 것 같았다며 비셰는 서둘러 커튼을 걷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이 밤중에도 보일법한 불꽃이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위치는…

“…이노스 황자님이 계신 궁 같은데.”

“하아.”

사샤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던가.

그녀의 우려대로 이노스가 정말로 궁을 부숴 먹은 것이었다.

황제는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 각자 궁을 내어줬기에 다 따로 살고 있었다. 명백히 이노스의 궁 쪽에서 나는 연기에 비셰는 잠시 굳어버렸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새 사샤는 방 한쪽에 모셔뒀던 성물을 챙겼다.

“일단 저쪽으로 갈까? 오라버니도 계시니까.”

“아뇨… 여기서 대기해요. 분명 저 소란에 병사며 기사들이 집결할 텐데 괜히 그쪽으로 갔다가 휘말리면 안 되니까요. 저 정도 굉음에 여파면 괴물들도 다 저쪽으로 몰려갈 거예요.”

“오라버니를 미끼로 쓰게 된 것 같네.”

“전 황녀님을 안고 하늘을 날아가려고 했는데 이 상황에서 하늘을 날아갔다간 분명히 공격받아서 추락하고 말 거예요.”

이노스의 궁에서 난 불 덕분에 주변이 환해져서 그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을 단단히 잠갔으니 일단은 방에서 대기, 이곳이 위험해지면 창문을 통해서 탈출하면 그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

글러티나와 자네인, 프라우디에가 엘로탸로 간 틈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누군가가 그들의 움직임을 엿보고 있다가 행동한 것만 같았다.

‘나 혼자서는 무리인데

뱀파이어로 추정되는 이. 수많은 수하를 거느린 자.

아마도, 마왕 대리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과연 그녀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아, 아무 일 없으면 좋을 텐데…’

왠지 자신이 없어져서 비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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