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티아마티스는 카이엔의 요청에 응답해주었다.
유능한 드래곤인 그는 바쁘니까 빨리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겠다면서 텔레포트로 순식간에 세자르까지 와주었다.
응접실에는 카이엔과 프라우디에 둘 뿐이었고 티아마티스는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겔로스의 일은 나도 들었다. 그곳에 가다니, 미쳤냐?”
“아니 그게…”
“목숨은 붙어있으니 됐다. 하여간… 누굴 닮은 건지.”
돌아가신 부모님이 아닐까, 카이엔은 생각했다. 하나 입 밖으로 그 생각을 꺼내지 않았다.
한숨을 푹 쉬고 티아마티스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겔로스에 나타난 애들이 내가 저번에 말해준 마법 소녀가 아닐까 의심된다는 거지?”
“네.”
“그 녀석들은 진작에 죽었을 텐데. 누가 그 유해라도 파헤쳤나 보군. 그게 아니라면 인위적으로 조합해낸 건가? 난감하군.”
“혹시 더 아시는 게 있으신가요?”
“글쎄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티아마티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카이엔에게 대충 마법 소녀에 대해 전해 들은 프라우디에는 안절부절못했다. 과거 리치왕과 적대했던 세력이 다시 나타났다는 말에 불안한 것이었다.
그런 프라우디에와 카이엔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다가 티아마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녀석들은, 선하다고 여겨진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니까.”
순수한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고, 선택받았다는 것에 기뻐해 위험한 전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거대한 적과 맞서 싸웠다.
수많은 동료가 함께 있었기에 그 아이들은 용사 일행, 마법사단, 신관 등의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위험을 헤쳐나갔다.
하나 그 당시 절대 악이었던 리치왕을 봉인한 뒤로 세상은 재건되었고 그때와 같은 절대적이고 강력한 악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법 소녀들도 영웅이었기에, 이전처럼 치안 유지를 위해 힘쓰는 건 다시 마련된 경비대와 복구된 나라의 병사, 기사들이 하게 되었다.
그들은 할 일을 잃었다.
절대 선이 없는 세계. 절대 악도 없는 세계.
그 시간 속에서 그 아이들은…
-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맞아요. 이젠, 우리는 필요 없어요.
- 힘은 남았지만 쓸 수가 없어요.
그 시간 속에서 그들은 스러지고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랬을 터인데…
‘흔적을 발견해서 복구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 아이들이 죽은 직후 그 유해를?’
그저 힘의 조각, 증표만 남아있는 걸 거두었다가 마왕 대리전이 벌어지니 다른 인간의 몸이 이식해서 써먹었을 테지.
티아마티스는 짐작 가는 바를 모조리 카이엔과 프라우디에에게 알려주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큰 고난을 겪어서 평화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홀연히 떠나버린,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게 된 세 사람의 최후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너희는 걱정할 거 없다.”
“네?”
“당시 절대 악이었던 리치왕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니 악마의 손으로 복구된 마법 소녀라고 해도, 이 녀석을 보고 눈 뒤집혀서 달려들진 않을 테니까.”
“으음…”
“전쟁의 끝에 수많은 영웅이 탄생했지. 그런데 그 애들은 너무 어렸어. 그래서 제대로 기준이 잡히지 못한 거야.”
어린아이는 성장하고 어른이 될 텐데.
주변에서 붙잡아주고 지탱해주려고 했지만, 그 목소리는 닿지 못했다.
어린 시절 너무나도 큰 충격을 입어버린 탓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큰 힘을 얻고 난 후 그것에 대해 조언해주거나 그 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인물조차 없었다.
구한 이들도 많았지만 잃은 이들도 많았다.
가까운 이들이 죽어 나갈수록 아이들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전쟁터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구한 이들이 늘어나고 리치왕과 맞서는 이들이 모두 용사로 칭송받고 나니 그 아이들 역시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 자신들이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그저 자신의 정의에 따라 행동했다고 한다. 점점 그 기준이 확고하게 굳어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꺾이고 부러져서 자신이 망가져 버리고 말았을 테니 어쩔 수 없지만.”
티아마티스는 잠시 침묵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강할 거다. 그러니 조심해라. 지금은 그 정신 상태가 어떨지 모르겠구나. 현재 겔로스를 복구 중인 모양이니 부디 별일 없으면 좋겠군. 카이엔 너는 굉장히 눈에 안 띄게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 말거라. 다른 대리인들이 날뛰면 그 아이들은 분명 그쪽으로 향할 테니까.”
“걱정할 거 없단 말인가요?”
“그래. 그 아이들이 신경 쓰는 건 악뿐이니까.”
절대 악의 아래에서 자잘한 악행들은 무시당했지만 그것이 없는 이상, 아무리 작은 악행이며 죄도 그들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그들의 뒤에 악마가 있다면 무슨 수를 썼을지도 모른다.
그가 카이엔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천 년 전, 과거에 그가 만났던 마법 소녀에 관한 이야기 뿐이었다.
‘지금’의 마법 소녀가 과거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모르는 것보단 나을 터. 그는 카이엔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아는 이야기를 전부 해주었다.
***
어두운 밤.
발밑에 놓인 수많은 시신을 바라보는 세 소녀의 눈동자는 공허할 뿐이었다.
그 안에는 두려움도 공포도 없었다. 그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피투성이의 시신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겔로스의 사령 기사라는 굉장히 악한 존재를 해치우는 그들을 향해 언데드의 마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감탄과 칭송을 보냈고 망가진 땅을 다시 복구시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았다.
하나, 그사이에 선한 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소매치기, 강도부터 시작해서 살인마, 방화범, 사기꾼 등등.
불안정한 환경에는 온갖 범죄가 들끓었고 불쌍한 사람들이 범죄자로 인해 고통받았다.
나쁜 놈들투성이인 것이었고 언데드 사냥을 마친 그들은 범죄자 사냥에 나서게 되었다. 결과는, 이러했다.
“왜 이렇게 나쁜 사람들이 많은 걸까?”
“그러게.”
“이만큼이나 잡아버렸어.”
크게는 범죄자. 작게는…
“그리고 우리를 믿지 않았지.”
“응. 믿어주지 않았어.”
“어째서일까?”
그들의 힘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던 사람들.
오히려 언데드보다 더한 괴물로 취급하면서 돌팔매질을 하던 사람들.
상냥한 척 하면서 접근해서는 그들을 마음대로 이용하려고 했던 사람들.
그들 역시, 범죄자들과 함께 사이좋게 숨통이 끊긴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세 소녀는 가만히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이젠 괜찮겠지?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거야!”
“그럼. 청소는 힘들지만 하다 보면 뿌듯해지니깐.”
“내일도 힘내자!”
그들은 한목소리로 밝은 내일을 희망했다.
이렇게나 많이 나쁜 사람들을 없앴으니 분명 남은 사람들은 좀 더 착한 사람들일 거라고.
나쁜 사람이면 어떤가, 다시 그들이 벌하면 될 일이다.
악마의 개입으로 어딘가가 심각하게 틀어진 소녀들이 그곳에 있었다.
대화하는 것보단 힘을 보이는 게 쉽고 힘을 쓰는건 더 쉬웠다.
그들은 분명 착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과 다른 아이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적대했다.
소녀들의 선의에 보답하는 착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나쁜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아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나쁜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얼마나 더 흐른다고 해도, 그들의 행동이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진작에 대리전에서 탈락해 하릴없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악마들에게 있어서 그 광경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지옥에서 지상을 구경하던 악마들은 그 모습에 손뼉을 치며 웃거나 반대로 고개를 저었다.
저들을 보자마자 꼼수란 걸 알아차린 자들은 계약한 악마를 찾으려고 난리였다.
“흠.”
화려한 의자에 앉은 채 지상을 관찰하던 앙그라 마이뉴는 손끝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카이엔이 질까? 당할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저 셋이 한꺼번에 덤비면 위험하긴 할 테니까.
‘뭐, 위험하면 부르겠지.’
그 정도로 멍청한 아이는 아니니까.
일단 손 놓고 구경하고 있기로 했다. 그때, 그녀의 발밑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의자 아래의, 땅바닥에 앉아있던 루키푸게였다.
“앙그라 씨,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구경만 해. 넌 도망이나 잘 다니고.”
“예예~”
현재 카이엔의 계약자 악마로 의심되는 건 루키푸게 였으므로, 그 역시 다른 악마들을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악마들의 입장상, 이게 마왕 자리를 얻기 위한 대리전이라고 해도 계약자가 이겨도 악마가 죽으면 쓸모없지!…라는 판단하에 이젠 대리인은 대리인끼리 싸우게 두고 악마들은 악마들끼리 싸우는 또 다른 개판을 만들어낸 탓이었다.
다행히 그놈들이 앙그라 마이뉴가 자리 잡고 있는 마신전까진 쳐들어오지 못해서 루키푸게는 이곳으로 몸을 피한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벨레드가 쉽게 물러난 게 이상하군.”
“그러게요. 그 녀석, 이번 대리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게 뻔히 보이긴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놈을 선택하더니만 마지막엔 마법 소녀들의 손에 계약자가 당하게 뒀어.”
어차피 이젠 쓸모없다고 여긴 거려나.
사령 기사는 잘만 쓴다면 큰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령 기사를 버린 데다가 카이엔이 도망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원래 막 나가는 놈이라 앞으로의 행보를 짐작할 수 없다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너는 잘 도망 다니기나 해라.”
“네- 그런데 저 녀석들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낸 걸까요?”
“계약자는 본디 한 명밖에 둘 수 없어. 예를 들면… 셋을 한데 모아서 하나로 만든 다음 다시 셋으로 쪼갰다던가?”
“가능한 거예요?”
“어차피 같은 힘에서 파생되었을 테니 한데 뭉치는 것쯤은 쉬웠을지도 모르겠지. 튼튼할지는 모르겠지만.”
더 위험한 놈이 있는데 그놈이랑 저 셋이 싸워서 같이 파멸해준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된다면 카이엔은 별 탈 없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앙그라 마이뉴의 비호 아래 루키푸게는 마음 놓고 마신전에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이 있는 자리 뒤편에 슬쩍 나타나 말했다.
“흠, 여기 숨어있었구먼.”
“으헉?!”
“늙은이 같은 말투 쓰기는.”
“하하. 나보다 연장자 앞에서 너무 주름잡았나?”
치렁치렁한 흑청색 머리카락의, 굉장히 창백한 피부의 남성이었다.
검게 보일 정도로 짙은 머리색과 몸에 딱 달라붙는 시커먼 옷의 앞섶을 풀어 헤친, 굉장히 자유분방한 차림이었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악마, 벨레드를 발견한 루키푸게는 화들짝 놀랐지만 앙그라는 무덤덤하게 핀잔을 던졌다.
손을 휘휘 저으며 그녀가 말했다.
“잘 왔네. 마침 네 이야기도 하고 있었는데.”
“좋 은건 아닐 것 같군.”
“네가 카이엔 앞에서 너무 착한척한 게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아, 그 녀석 이름이 카이엔인가? 특출난 힘 같은 건 안 보이던데 대체 뭘 준건지.”
벨레드는 힐끗 루키푸게를 쳐다봤지만 루키푸게는 그 시선을 무시했다.
아예 그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시선도 주지 않아서 벨레드는 피식 웃음소리를 흘렸다.
“마법 소녀들은 어떻지? 넌 직접 싸워보기도 했으니 뭐 느낀 점 없느냔 말이다.”
“대놓고 알려주라고 하는군. 뭐, 누가 배후인지는 알아냈다만.”
“누군데?”
“시트리. 그녀도 참 대담한 수를 썼지.”
짧은 공방만으로도 배후를 알아내다니. 앙그라 마이뉴는 혀를 찼다.
다행히 이놈은 뭣 때문이지 카이엔을 좋게 보고 있는 모양인데 대체 뭘까 싶다.
카이엔이 꽤 특이한 인간임은 그녀도 인정하지만 이종족이야 그렇다 쳐도 악마의 관심을 받아서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강 눈치챈 건지, 루키푸게가 그녀를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빠른 의견교환 후, 루키푸게가 눈치 없는 척하며 벨레드에게 물었다.
“그런데 남의 인간은 왜 그리 눈독 들이십니까? 닮을까 두렵게.”
“상당히 특이한 놈 같아서 말이지. 너무… 약해.”
“으음…”
그 말에 둘 다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카이엔은 굉장히 약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강했다. 그중 약한 이가 있다고 해도 카이엔보다는 강했다.
벨레드의 입장에선 리치왕이 카이엔 옆에 꼭 붙어있는 것도 제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의아하고 궁금해할 만도 했다.
그 약한 인간을 대리인으로 삼은 루키푸게가 굉장히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래서 이미 다른 악마들이 집요하게 루키푸게를 쫓고 있지 않은가.
물론 마신전까지 쳐들어온 건 그가 유일했지만 싸울 의사가 없기에 신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거였다.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원.”
“옆에 다른 이들이 많으니까요.”
“제힘은 약한 주제에 세력을 이끌고 있지. 다른 대리인 놈들은 혼자서 움직이는데 말이야. 그게 복이 될지 흉이 될진, 나중에 알게 되겠지.”
가장 위험한 놈과 마주치게 된다면 알게 될 터. 벨레드는 가만히 팔짱을 끼며 앙그라 마이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있었고 그는 그 뒤에 서 있어서 시선이 아래로 향하니 자연스럽게 얼굴이 아니라 정수리가 보였다.
여유롭게 뒤를 보이고 있지만 섣불리 공격할 수 없는 그녀에게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바쁘실 마교황께서 한가롭게 인간 구경이나 하는 이유가 뭘지 궁금한데?”
“재밌으니까, 라고 해두지.”
“과연.”
“너무 쳐다보진 마. 닳는다.”
“둘이 똑같은 말을 하는구먼. 걱정 말게. 싸우는 모습이 아니면 관심이 없으니 나중에 또 보세.”
할 말은 다 한 모양인지, 벨레드는 순순히 돌아갔다.
그가 걸음을 내딛는 자리에 푸른 불꽃이 일렁이다가 사라졌다.
루키푸게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앙그라 마이뉴는 한숨을 푹 쉬었다.
“괜찮을지 모르겠네.”
“…눈치챘을까요?”
“그걸 알아보려고 직접 온 걸 거야.”
“으으음…”
“너도나도 사기 치고 있는 판이니 정직하게 임하는 놈이 멍청이가 돼버리니 원.”
“하하. 그래야 악마죠.”
벨레드는 순순히 탈락했고 그 결과에 앙심을 품어서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 것이다.
솔직히, 사령 기사가 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 때부터 그는 다른 대리인들을 알아내고 그 계약자를 찾아낼 속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처럼.
“…너는 그 녀석이랑 친하게 지낼 수 있겠니?”
“네? 저요?”
“어. 난 찾아오는 부하를 마다할 생각은 없거든.”
“어… 으으음… 제 직급을 좀 더 높여주신다면야.”
“그렇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