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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100화 (101/219)

100화

예정보다 앞당겨진 귀환 날짜에 에이들러는 대단히 실망했지만 인형의 집 사건도 있었던지라 얌전히 카이엔의 말에 따랐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 모습에 카이엔은 남은 시간동안 에이들러와 놀아주었다.

덕분에 슬로세이가 단단히 토라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기 생일에 꼭 초대할테니까 꼭 와달라며 몇 번이고 당부한 뒤, 에이들러는 왕성으로 돌아갔고 카이엔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마왕 대리전이라는 정체불명의 괴사건에 대해 알게된 이후, 영주성은 또다시 공사에 들어갔다.

프라우디에의 작업실이 확장 공사로 인해 좀 더 넓어졌다. 마법을 연습할 공터도 공사를 마쳐서 프라우디에와 그리델라가 함께 이용하기로 했다.

비셰는 능력 자체가 공격 계통이 아니라서 그냥 본업인 주방 일에 충실하기로 했다.

다른 이들이 힘을 기르며 훈련에 몰두하며 검술이며 마법을 연마할 때, 카이엔은 일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몇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몸이 뻐근해질 때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산책과 더불어 그가 유일하게 하는 운동 비슷한 거였다.

바이스 또한 카이엔에게 전투능력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제 검을 갈고 닦는데에 신경을 집중했고 덕분에 글라스를 시종 대리로 삼고 교육한 보람을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카이엔은 또다시 이전에 들었던 그 목소리를 들었다.

[최후의 9인이 남았습니다.]

“이런 미친…”

한 명 죽었구나.

이런식으로 공지하다니, 살 떨리기 그지 없었다.

몸을 떨면서 카이엔은 쥐고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가만히 있다간 그 역시 공격받을게 뻔했다. 분명 대리전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떠돌아다니는 자도 많을테고, 떠돌이가 떠돌이를 만나는 것보단 떠돌이가 한군데에 멈춰있는 이를 발견하는게 더욱 수월할테지.

뾰족한 수라도 생각해내야할텐데 다들 그에겐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 지켜준다면서.

‘아니… 나도 강해져야 내 몸도 지키고 도움도 될거 아냐.’

무력하게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그가 이상한 능력을 가진걸로 봐선 만났던 악마도 별볼일 없는 놈 아니냐면서 자기들이 지켜 주겠다고 나섰다.

힘이 모자르면 수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말에 카이엔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보통 계약이면 주고받는게 있어야하는데 왕자님은 받은건 둘째치고, 준 것이 있나요?”

“없는 것 같은데.”

“그럼 계약한 것 자체려나?”

“그 기억도 흐릿해.”

“뭐야 대체.”

다들 이상해하며 추측해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카이엔도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루키푸게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힘이 필요하면 앙그라를 부르라니.

아니, 힘준건 자기면서 왜 다른 악마를 부르라는 건가.

일단 부를 일이 없을테니 가만히 있겠지만 뭔가 이상했다.

***

아홉 명이 남았다는 알림이 있었지만 카이엔의 주변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에 안심하며 카이엔은 앞으로 이런 평온한 나날이 계속 되기를 바랐다.

하나 그런 소망이 이루어질리가 없다는 듯, 가르간트의 구석에서 살고있는 그에게도 위험한 소식이 전달되었다.

가르간트는 네 개의 나라와 국경이 맞닿아있었다.

제국 아이칸트라, 제국과 통곡의 원을 공유하는 소시에라, 성국으로 불리는 에밀, 나라라고 하기는 애매한 다크 엘프들의 땅 더스크라이즈.

성국 에밀의 동쪽에 위치한 겔로스에서 사령 기사가 나타나 유령 군대를 이끌며 진군하고 있다는 소문에 카이엔은 또 일이 터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소식을 전달한 바이스가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봤자 옆이 바로 성국입니다. 국경 부근에 성기사와 사제들이 파견되어 괴이한 무리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고있다는군요. 여기까지 이 소식이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을테니, 지금쯤이면 겔로스 안으로 들어가서 생존자를 구출하고 유령들을 정리했을겁니다.”

“…그러겠지?”

사령 기사라는 말을 딱 듣자마자 마왕 대리전이 떠오른 카이엔이었다.

역시 악마들과 관련된 일이어서인지 언데드가 대거 출몰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교황도 마왕 대리전에 대해 눈치채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제국의 모의 전쟁에서 벌어진 대규모 언데드 사태는 제국 황실에서 단단히 입단속을 하겠지만 그래도 퍼지긴 퍼질터.

흑마법사들 또한 의도적으로 에밀 말고 다른 나라에서 사고를 칠테지만 성기사와 사제가 거기에만 콕 박혀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대로 있으면 사제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죠.”

“으음…”

“다른 분들에게도 말해놓겠습니다.”

“어.”

“아마 그 사령 기사도 살아남은 자들 중 한 명이겠죠. 아, 이미 죽었으니 살아있다고 취급하긴 좀 그렇지만요.”

도대체 어떤 악마가 사령 기사를 계약자 삼아 휘두르고 있는걸까.

분명 정상적인 놈은 아닐거라며 카이엔은 한숨을 쉬었다.

바이스는 마왕 대리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령 기사의 소식을 별채의 모두에게 전했다. 다들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저도 왕자님이 구해주지 않으셨다면 그렇게 됐을까요?”

엔베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마검을 바라보았다.

사령 기사보다 더한 괴물이 됐으면 됐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령 기사가 나타나서 행패를 부린다는 소식은 전달되었지만 사망 선언이 들리지 않았다.

보통, 그런 큰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 죽으면 치안을 위해서라도 대대적으로 공표를 해야할텐데, 이상하게 잠잠했다.

설마 사제들이 밀린건가? 걱정이 된 나머지 카이엔은 좀 더 소식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세자르가 구석이다보니 소문이 퍼지는 것도 꽤나 늦습니다. 하지만 사령 기사가 이렇게 크게 사고를 치고 있다면 분명 남은 대리인들도 그 자가 적이란걸 인식하고 겔로스로 몰려들테죠. 가만히 둡시다.”

“직접 가봐야하는거 아닌가…”

“위험합니다. 그리고 에밀이 통과시켜줄리도 없고요.”

안그래도 사령 기사와 그가 이끄는 유령 군대를 상대하느라 힘든 와중에 누가 겔로스로 넘어간다고 한다면 당연히 막을게 뻔했다.

바이스는 남은 녀석들끼리 치고박고 싸우게 내버려 두자는 입장이었지만 카이엔은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성국을 통해 가는건 무리여도 다크 엘프의 땅을 거쳐서 가면 되잖아.”

“꼭 그곳에 가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좀… 말이 통하는 녀석이 있으면 좋겠어. 나는 그 마왕 대리전이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사령 기사라고 하면 말은 통하지 않을까?”

“흑마법사보단 나을거라고 여기십니까?”

“응.”

“하아… 어쩔 수 없군요. 그쪽에 대해서 저희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엔베인 님께 전달하겠습니다.”

“부탁해.”

더스크라이즈 출신인 엔베인이 길 안내를 해준다면 겔로스 까지 무난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더스크라이즈에 득실거리는 몬스터들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해치우면 그만이었고.

무엇보다, 카이엔은 혼자 갈 생각이 없었고 그가 혼자 간다고 해도 안 된다며 따라갈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바이스가 엔베인 말고 다른 이들에게도 겔로스로 간다는 말을 한건지 다들 따라가겠다면서 난리였다.

카이엔이 아주 약하니 사령 기사를 만나기도 전에 픽 죽어버릴까봐 걱정이라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픽 쓰러져서 죽어버리진 않는다며 카이엔은 인상을 썼다.

“아니… 다들 가면 여기는 누가 지켜?”

“맞다!”

“그렇지.”

“적당히 나눠야겠네요.”

카이엔은 힐끗 바이스를 쳐다보았고 바이스는 미소로 화답했다. 하나, 그 미소에는 자기를 두고가면 가만두지 않을거라는 속내가 담겨있었다.

엔베인은 길안내를 해야하니 당연히 가야했고 프라우디에는 언데드들과 싸우는데 특화되어있으니 함께 가기로 했다. 프라우디에가 간다니 자네인도 함께였다.

거기에 호위 삼을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하다고 해서 라스가 함께 가기로 했다.

“나머지는 집 지키는 역할?”

“균형이 안 맞는 것 같은데.”

글러티나가 대답했다.

유령이 많은 곳이니 그리델라가 자기는 별로 도움이 안 될거라며 물러났고 슬로세이 역시 마찬가지라 남게 되었는데 비셰또한 전투 능력이 전무했으니, 여기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그녀 밖에 없지 않냐는 말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카이엔은 재편성을 하려고 했지만 바이스가 반대했다.

“왕자님의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어차피 적이 여기까지 온다고 해도 목적은 왕자님이실테니 “왕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가겠죠.”

“그러면 좋겠지만…”

“그리고, 허투루 낭비할 시간 없습니다. 다 끝난 다음에 겔로스에 도착할 수도 있으니 서둘러 준비하죠.”

“네가 남으면 될 것 같은데.”

“헛소리하지 마시고요.”

가볍게 카이엔의 말을 무시하고 바이스는 떠날 사람들은 얼른 준비를 하자면서 일행을 해산시켰다.

카이엔에게는 짐은 모두 그가 준비할테니 그동안 지금까지 모아진 자료나 읽어보라면서 말하곤, 방으로 밀어넣었다.

졸지에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게된 카이엔은 침대에 풀썩 주저앉아서 바이스가 가져다준 사령 기사에 대한 자료를 읽었다.

자료의 근원지는 사령 기사가 나타난 땅인 겔로스와 그와 맞서는 성국 에밀의 보고서였다. 이런걸 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건지 모르겠다며 카이엔은 혀를 내둘렀다.

사령 기사는 목이 없는 기사, 듈라한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그가 걸음한 곳에서 시체가 일어나니 계속 그 수가 늘어난다고 했다.

하나 시체도 얼마나 오래 됐느냐에 따라서 살점이 있는 부류와 아예 백골만 남은걸로 분류되는데, 사령 기사는 양쪽 다 이끌되, 주로 군에 속했던 이들의 시신이 무덤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사령 기사로 불리는 것처럼, 본인이 인간이었을 적에도 군대에 속해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다가 사령 기사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씌여있지 않았다. 보통, 그 원인을 먼저 알아내려고 하지않나?

‘그게 아니면, 목격자가 몽땅 다 죽었거나.’

겔로스와는 꽤 거리가 먼 가르간트까지 소문이 퍼질 정도니, 지금쯤 아마 겔로스는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령 기사가 사망해 경쟁자가 한 명 줄어들었다는 신호는 오지 않았다.

그 말인 즉슨 아직까지 에밀이 사령기사의 군대를 격파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언데드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신성력을 보유한 군대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는건 사령 기사의 힘이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세다는 뜻이었다.

‘…정말 가도 될까?’

왠지 가야할 것 같아서 가기로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좀 걱정이 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더스크라이즈를 통해 겔로스로 들어가는 입장이다보니 남몰래 국경을 넘어 겔로스로 가야 했다.

에밀의 성기사들에게 들키기라도 했다간 난감해진다.

‘잘 되겠지’

미리 고민해봤자 해결할 방법이 없기에 카이엔은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다만, 사령 기사는 듈라한이라 머리가 없는데 대화를 나눌 수 있긴 할까 그게 조금 걱정이 되긴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자리를 비우면 에빌한테 부탁해야겠구나.”

에빌에겐 이번에도 영주 대리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출발 당일, 또 자기만 놔두고 간다며 울상이긴 했지만 영지를 다스리는 일 역시 중요하기에 에빌은 눈물을 닦으면서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동행하는 인원이 꽤 많다 보니 마차 두 대에 나눠서 타고가기로 했다.

위험한 곳까지 갈거라서 마차는 바이스와 라스가 하나씩 맡아서 몰고 가기로 했다.

평범한 마부를 데려가기엔, 사령 기사며 언데드가 나타나는 겔로스는 너무 위험했다.

여기서 더스크라이즈로 가는데에도 굉장히 오래 걸릴터라 일행은 서두르기로 했다.

사람이 없는 평지를 움직일 땐 프라우디에가 말에게 속도 향상 마법과 체력 증진 마법같은 것들을 몇 번이고 겹쳐서 걸어주면서 속도를 높였다.

덕분에 카이엔은 마차 멀미가 더 심해져서 끙끙 앓았다.

“왕자님. 힘들면 차라리 약이라도 드시고 주무세요.”

“아냐… 괜찮아.”

“안 괜찮아 보여서 하는 말입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카이엔은 그는 신경 쓰지 말고 앞이나 잘 보라고 했다.

바이스는 마차를 몰면서도 그가 걱정되는지 계속 말을 붙였다.

하지만 문제는 더 있었다.

이전에 더스크라이즈에 방문했을 땐 티아마티스의 도움으로 쉽게 방벽을 넘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들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쪽을 염려하지 않아서 이동 중에 끙끙거리며 고민하던 카이엔에게, 프라우디에가 말했다.

“마법으로 투명화를 시키고 들어서 옮기면 돼요.”

“…그게 가능해?”

“열심히 할게요.”

너무나도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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