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99화 (100/219)

99화

[최후의 10인이 남았습니다.]

[당신은 인간계에서 진행되는 대리 전쟁의 최후 10인 중 한 명입니다.]

[최후의 승자와 계약한 악마는 추후 마왕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낯선 목소리가 난생 처음 듣는 말을 했다.

그 순간 카이엔은 어이가 없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건 무슨…”

악마? 그런 놈이랑 만난 적이 있던가?

그것보다 악마라고 한다면 흑마법사들이 소환하려고 환장하는 종족 아닌가?

그런 놈들이 한가하게 인간 세계를 돌아다닐리도 없을 텐데?

짐작 가는 구석이 없었지만 그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익숙한 숲.

왕성에 있는, 그곳이었다.

이전에 탄신일 때문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 왕성의, 한밤중에 그가 빠져나가 올라갔던 작은 산의 그 장소, 그 바위 위에.

검은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있었다.

- 너, 참 재미없는 삶을 살다가 가겠구나.

- 안타깝네.

- 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 내가 주는 선물이야.

틱, 하며 그 순간 기억이 끊겼다.

힘이 탁 풀려서 쓰러질뻔한 카이엔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숨을 내쉬었다.

만약 방금 그가 떠올린 것이 정말이라면…

‘설마…?’

몬스터 말을 알아듣는게 선물?

다른 놈들을 보면 무지막지한 힘을 얻어서 사방을 부수고 다니더만 뭐?

어이가 없어서 카이엔은 입을 딱 벌렸다.

게다가 그 선물이라는 것도 그가 원해서 받은게 아니라 그놈이 일방적으로 건네준게 아닌가? 물론 그 힘 덕분에 사트로누스와 말이 통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충격에 휩싸여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을 때, 다른 이들은 무너지는 저택을 보고 있었다.

“잘 무너지는군요.”

바이스가 아무런 감흥없이 입을 열었다.

그들이 빠져나온 직후, 저택은 산산히 부서지더니 이윽고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곳에서 죽었을 아이들의 시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델라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었고 바이스는 검을 살폈다. 소녀를 베면서 남은 핏자국이 남아있는걸로 봐선 꿈을 꾼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튼 무사히 잘 끝나서 다행입니다. 돌아가죠. …왕자님은 왜 그러고 계십니까?”

“아,아무것도 아냐… 일단 가자.”

에이들러도 있는데 이상한 목소리니 마왕 대리전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카이엔은 힘없이 걸음을 옮겼고 바이스는 미심쩍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노을이 지는 와중에 기사단과 합류했고 세자르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저문 뒤였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 카이엔은 에이들러를 그의 방에서 재웠다.

혼자 두는 것도 걱정 되었고 에이들러가 그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악몽을 꾸는지 끙끙거리는 사촌동생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카이엔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대리 전쟁.

계약한 악마.

마왕.

모르는 말들 투성이었지만 그와 관련이 있으니 그런 소리가 들렸을테고 그렇게 따지니 지금까지 마주쳤던 흑마법사 놈들이 했던 말들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그녀석들은 카이엔이 자기들과 같은 처지인줄 알고 그랬을 테고.

‘그나저나 열명이라니…’

그가 그런 놈들과 마주쳤던 것처럼 다른 참가자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싸움을 했단 걸까?

그런 것 치곤, 세상은 굉장히 조용했다. 마왕 대리전 따위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을 정도로.

기권을 할 수는 없는걸까. 한참을 뒤척이다가 카이엔도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사이좋게 식사를 깨작이는 카이엔과 에이들러를 보고 바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두 분 다 입맛이 없으신가보군요. 그럴수록 잘 드시고 힘을 내셔야합니다.”

“난 네가 참 신기해…”

“하하.”

“난 마음이 복잡하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보군요. 상담이 필요하십니까?”

“조금.”

바이스의 물음에 카이엔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 대답에 바이스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카이엔이 말을 아끼는걸로 봐선 에이들러의 앞에서 할 말은 아닐거라고 재빠르게 판단을 마친 그는 카이엔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식당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을 정원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플루토의 목줄을 쥔 글라스가 서있었다.

플루토는 영문도 모르고 헥헥거리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멍! 멍멍!”

- 놀자! 놀자!

- 놀아준댔어!

- 산책가는거지?

“허어?”

“에이들러 님과 플루토를 함께 놀게 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아… 그렇긴하지.”

플루토는 아직 아기 몬스터라 기운이 넘치긴 해도 다른 애들에 비하면 힘이 세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 다른 사람이 붙어있다면 위험한 상황에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바이스가 웬일로 좋은 생각을 했다며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릎을 굽혀서 플루토와 시선을 마주하며 손을 내밀었다.

“플루토, 손.”

“멍멍!”

작은 앞발이 착 하고 카이엔의 손 위에 안착했다.

칭찬해달라며 눈을 빛내는 새끼 케르베로스를 보고 카이엔이 말했다.

“에이들러, 이번에 새로 온 식구야. 종족은 케르베로스, 이름은 플루토. 인사해.”

“어… 안녕?”

“멍!”

“왈왈!”

“목줄 잡아봐. 산책해줄래? 이녀석, 움직이는걸 좋아해서 하루에 몇 번이고 산책을 나가줘야 하거든.”

“어…해봐도 돼요?”

“응. 글라스, 네가 같이 있어주지 않을래?”

“네.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부탁할게. 플루토가 앞으로 갑자기 튀어나가면 얼른 막아줘.”

에이들러는 망설이면서도 글라스에게 플루토의 목줄을 건네받았다.

플루토는 신이 나서 멍멍 짖으면서 깡충깡충 뛰더니 얼른 가자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카이엔보다 훨씬 작은 에이들러를 제대로 인식하고 힘 조절을 하는 것이었다.

에이들러는 카이엔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플루토와 함께 산책을 하러 갔다. 그 뒤를 글라스가 따라갔다.

손쉽게 카이엔의 옆에서 에이들러를 떼어내고 바이스가 물었다.

“이젠 괜찮을까요?”

“다른 사람들도 불러왔으면 좋겠는데.”

“회의실로 모으겠습니다.”

글라스는 에이들러를 보호해야하니 미안하지만 그대로 두기로 하고, 바이스는 그 외 이종족 식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오랜만에 꽉 찬 회의실에 카이엔은 수심이 깊어졌다.

비셰는 설거지를 하다 온건지 두르고있는 앞치마가 물에 젖어있었다.

괜히 일 잘 하고있는 애를 불러온 것 같아서 미안해하는 것도 잠시, 카이엔은 바이스의 눈짓에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크흠… 다들 불러와서 미안하다. 내가 좀… 일이 있었거든.”

“그리델라한테 들었다.”

“나도.”

“저도요.”

“그것 말고 다른 일도 있어서 그래.”

함께 인형의 집에서 에이들러를 구해온 그리델라가 그들의 모험담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그와중에 슬로세이는 부루퉁해져선 투덜거렸다.

“나도 왕자님 어렸을적 모습 보고싶은데!”

“넌 왜 그런 말을…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냐.”

“그럼 수상한 힘을 쓰던 자에 대한건가요? 요즘 그런 자들이 꽤 많았으니까요.”

“맞아요. 이번은 흑마법사가 아니었지만 그리델라 씨의 말에 따르면, 그 아이에게 마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고 해요.”

엔베인의 의견에 프라우디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두 사람의 말에 카에인 역시 비슷하다며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다들 관계가 조금씩은 있던 모양이야. 그리고 나도. 난 그때… 그 집에서 탈출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거든. 인간계에서 진행되는 대리전의 최후의 10인, 그리고 승자와 계약한 악마가 마왕이 된다는 말. 너희, 혹시 아는거 있어?”

“…대리전?”

“마왕?”

“신기하네. 난생 처음 듣는 말이야.”

“왕자님도 짐작가는 구석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다들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기울였다.

프라우디에는 살짝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머릿속으로 리치왕과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리치왕 역시 아는게 없었던건지 프라우디에가 울상을 지었다.

“리치왕도 잘 모른대요. 기억이 없어서 그런 것 같고요…”

“으으음…”

“하지만 마왕에 악마란 이야기가 나오니 왜 사고를 친 놈들 중에 흑마법사가 많았던건진 알겠습니다.”

“맞아요.”

“난 한 번도 본적 없는데.”

“봐서 좋을 거 없어.”

“비셰, 몽마는 일단 악마 계통이지? 너는 아는거 있어?”

“네? 아… 실은, 몽마는 마계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인간계로 반쯤 거처를 옮긴지가 꽤 오래 됐어요. 부족한 마력을 채우거나 다쳐서 요양, 혹은 대 회의가 있을 때만 돌아가요. 그래서 악마에 대한걸 물어봐도 저는 잘 몰라요. 마계 몽마의 영지의 생명의 나무 아래에서 태어나긴 하지만 성 밖으로 나가지않고 교육받고 어느정도 자라고 나면 인간계로 파견나오거든요. 게다가 저희, 요즘 출생률도 점점 낮아지고 있고요.”

마계에 안 가본지도 꽤 됐다며 비셰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마 몽마도 몽마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더 물어봤자 비셰만 곤란해할 뿐이니 다들 시선을 돌렸다.

“그럼 왕자님은 무슨 힘을 받은건데?”

“그러게.”

“으음… 나도 잘 모르겠지만 가장 짐작가는건 몬스터의 말을 알아듣는 것 정도인데…”

“허어?”

“진짜로?”

“와, 되게 이상하다

다들 뭐 그런 잡스러운 힘을 줬냐는 반응이었다. 카이엔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난 힘이 없는데 기권 못하나?’

지금까지 만났던 적들도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죄다 해치웠다. 그는 얼떨결에 살아남은 것 뿐인데 벌써 열 명 밖에 안 남았다니.

다른 아홉명이 그처럼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서 싸움에서 이기진 않았을 테고, 혼자서 적을 격파해나가다가 승자가 되었을 텐데.

그는 악마니 마왕이니 하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이상한 싸움에 끼어든 것만 같아서 억울했다.

”앞으로 더한 싸움이 있다는 말이군요.”

“그러게. 우리도 각오 좀 해야겠다. 왕자님 일이면 우리 일이니까.”

“맞아. 남은 이들이 얼마나 강할지 알 수가 없으니, 우리도 좀 더 노력하는 수 밖에.”

언제 어디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그것에 모두 집중했다.

별 쓸모가 없는 힘을 받은걸로 추정되는 카이엔의 전투능력은 0에 가까웠으니 그들이 지켜주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바이스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훈련을 좀 해야겠습니다. 가끔은 글라스 씨에게 왕자님의 시중을 맡겨야겠어요.”

“어… 그래.”

“제가 아니면 누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왕자님을 지키겠어요.”

그 말에 카이엔은 대꾸하지 않았다.

마왕이니 대리전이니 하는 것에 대한 수확은 없었지만 다들 언제든지 위험한 일이 닥칠 수 있다는걸 인지했고 좀 더 힘을 기르는 것에 동의했다.

그날부터 별채의 식구들은 개인 수련에 더욱 몰두했다.

특히 엔베인은 마검이 실전이 중요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기에 일주일에 한번꼴로 다른 이들과 함께 검은 숲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잡고 대련을 하다가 나오기로 했다.

바이스역시 자기가 한 말을 지키며 글라스에게 카이엔을 맡기고 카이엔이 쓰지않아 텅 비어있는 가주 전용 훈련장에서 검을 휘둘렀다. 어차피 카이엔이 쓰지않으니 좀 빌리겠다면서.

슬쩍 바이스를 관찰하러간 카이엔은 앞에 아무것도 없는데 살기를 풀풀 날리면서 검을 휘두르는 바이스를 보고 깜짝 놀라 다시 돌아갔다.

심히 살벌한 모습에 뒤통수만 보고있어도 가슴이 떨렸다.

“어휴… 쟤는, 쟤는 왜 시종 일같은걸 하는거야….”

“그러게요….”

카이엔을 따라온 글라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전에 한번 대련을 해본 적이 있어서 바이스의 실력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있어서 카이엔보단 덜 놀라서였다.

아마 바이스는 카이엔이 쳐다보고있는걸 알고있기에 카이엔도 알 수 있을정도로 살기를 날리면서 움직였을 것이다. 참 짖궃은 사람이라며 그는 혀를 찼다.

“저놈이 내 적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나저나… 난 대체 뭘 해야 하는거야? 난 검에도 재능이 없고 마법도 못 쓰고, 할 줄 아는거라곤 몬스터 말을 알아듣는 것 뿐인데.”

그렇다고 말이 통하는 몬스터들을 가르쳐서 그 대신 싸우게 할 수도 없었다.

그게 투견을 기르는 것과 무슨 차이인걸까, 싶었다.

말만 통하는게 아니라 같이 있다보면 마음이 통하고 정이 들게 되는데. 그를 대신해서 사지로 몰아넣기위해 몬스터를 기른다는건 택도 없는 소리였다.

“기권하는 법이 있으면 꼭 기권해야겠어.”

그렇게 다짐하면서 잠을 청한 그날 밤, 카이엔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사방이 안개로 휩싸여서 뿌옇게 보이는 와중에 이전에 만난적이 있던 검은색 머리카락의 남자, 루키푸게가 그 안에 서있었다.

그는 카이엔을 바라보더니만 황당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와, 흐릿하게 만드려고 했는데 완전히 지워졌었나?”

“…뭐야.”

“너 말야, 그때 나랑 앙그라 씨랑 만난거 죄다 까먹었어? 그러니 기권이니 뭐니 하는 소리나 하고 있지.”

“뭔데…”

대답할 기운도 없다며 카이엔은 손을 저었다.

파리라도 쫓는 것 같은 손짓에 루키푸게는 허탈해하며 웃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제대로 대답이라도 좀 해봐.”

“별거 아냐. 인간계에서 벌어지는 마왕 선발의 대리전. 악마들이 대리인을 정해서 대신 싸우게 하는 거거든.”

“대체 왜 나한텐 이런 쓸데없는 능력같은 걸 준거야?”

“아하하 그건 미안. 그치만 그때 앙그라 씨가 말했잖아. 힘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녀를 불러. 그럼 알 수 있을거야. 그리고 그때 그 능력 없었으면 너 죽었다?”

“하아…”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죽을래 지금 죽을래, 라는 말과 다를게 없었다.

이미 받은거 도로 돌려줄 수도 없고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어서 카이엔은 인상을 찌푸렸다.

루키푸게가 하는 말을 봐선, 기권은 택도 없는 소리인 모양이다.

“물어볼건 더 없지? 나 간다? 너랑 계속 같이 있으면 다른 녀석들이 눈치 채! 그럼 곤란하다구.”

“뭐가 곤란한데?”

“나 말고도 지켜보는 녀석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어?”

“아니.”

“그러니까 그런거야. 간다!”

루키푸게의 모습이 안개에 휩싸여 사라졌고 그 순간 카이엔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이건 무슨 개꿈인가 싶어서 손으로 얼굴을 덮었는데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왕자님?”

“…어?”

“깨셨군요.”

카이엔이 고개를 돌리니 침대 옆에 바이스와 비셰가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카이엔의 눈이 동그래졌고 바이스가 재빨리 설명을 해주었다.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 비셰 씨를 불러왔습니다. 꿈이라도 엿보려고 했지요.”

“별거 아냐.”

“그럼 다행이지만요.”

“응. 완전 개꿈이었어.”

“꿈에 접근하기 직전이었어요.”

비셰의 말에 카이엔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밖에서 누군가가 침입하려고 해서 루키푸게가 급하게 떠난건가?

참으로 쓰잘데기 없는 놈이라면서 카이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기권할 수 없다…’

그럼 끝까지 싸워서 마지막 승자가 되거나 죽는 수 밖에 없었다.

죽기는 싫으니 끝까지 살아남는 수 밖에. 전투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카이엔은 서글픈 마음에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흠.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나갑시다, 비셰 씨.”

“네.”

“새벽에 불러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두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 뒤에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엔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가 위험에 처할 일이 많아진다면, 주변 사람들은 분명히 휘말리고 만다.

에이들러에겐 미안하지만 인형의 집 사건도 있으니 다시 왕성으로 돌려보내는게 나을 터. 카이엔은 본래의 예정이었던 2주 뒤가 아니라 1주 뒤에 에이들러를 왕성으로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