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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95화 (96/219)

95화

결국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온 그들을 영주성 식구들이 맞이해주었다.

바이스는 카이엔이 오자마자 힘들었을 테니 쉬라면서 방으로 끌고 가서 목욕부터 시켰다.

털어도 털어도 모래가 나온다며 불평하는 모습에 카이엔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카이엔이 케르베로스를 놓지 않았기에 졸지에 새끼 케르베로스도 카이엔과 같이 목욕을 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푸르르르-”

“…밖에 두고 올걸 그랬습니다.”

욕조 밖으로 뛰쳐나간 녀석이 격렬하게 몸을 털면서 물을 뿌려대자 바이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덕분에 옷이 더 많이 젖어버렸다고 투덜거리면서 바이스는 새끼 케르베로스를 붙잡고 때가 묻은 몸에 비누칠을 했다.

깨갱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카이엔의 귀에는 사람 말처럼 번역되어서 들렸다.

“깽! 깨갱! 끼이이잉-!!”

“낑!”

“멍멍!멍멍멍!”

- 이거 놔! 끄악! 으앙!!

- 도망치자!

- 안 놔주잖아! 으아앙!

카이엔을 욕조 안에 담가둔 채 바이스는 새끼 케르베로스의 목욕부터 말끔하게 끝냈다.

벗어나려는 녀석이 발톱까지 꺼냈지만, 바이스는 가지고 있던 솔로 발톱마저 쳐내면서 상처하나 없이 해냈다. 쫄딱 젖은 새끼 케르베로스를 큰 수건으로 돌돌 말아 뭉쳐놓고 바이스는 카이엔에게 다가갔다.

한 손으로는 데운 물을 담은 병을 기울여 그 안의 물을 머리 위로 흘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카이엔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모래가 나오네요.”

“으음… 좀 험한 곳이어서.”

“다치신데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씻고 나서는 푹 쉬시지요.”

“그럴게.”

검은 숲 안에서는 잘 씻을 수가 없으니, 그게 불편했다.

따뜻한 물 속에 있으려니 괜히 더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물이 식으려고 하면 바이스가 그때그때 더운물을 부어서 계속 비슷한 온도가 유지되었다.

카이엔의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이 잡듯이 뒤진 바이스는 몇 번이고 머리를 감겨주며 한 톨의 모래나 흙 알갱이 하나 남지 않게 노력했다.

“결국 어미 케르베로스는 찾지 못했나 보군요.”

“…응. 웬 흑마법사가 또 있더라.”

“요즘 자주 보이는군요.”

“그러게. 해치우긴 했지만, 또 헛소릴 하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헛소릴 했죠?”

“나보고 세력을 키웠느니 어쩌니 하면서 내가 왕좌를 노리니 뭐니 하던데.”

“굉장한 헛소리군요.”

“그렇지?”

하품을 하며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금방이라도 잠들 것만 같은 얼굴이자 바이스는 재빨리 목욕을 마무리 지었다.

원래는 머리까지 말려주고 침대에 눕게 할 생각이었지만 카이엔이 너무 피곤해 보였기에 바로 침대에 눕혔다. 카이엔의 옆에는 수건에 돌돌 감긴 새끼 케르베로스를 내려놓았다.

“주무십시오. 내일 이야기합시다.”

“응.”

“멍멍!”

“가만히 있어.”

수건으로 돌돌 말아놓은 케르베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카이엔은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지만 피곤한 나머지 바로 잠들었고 카이엔이 자는 걸 확인한 바이스는 방에서 나왔다.

검은 숲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들어도 충분했다.

나머지 넷은 카이엔보다 체력이 좋았으므로 아직 멀쩡했기에 바이스는 글라스를 먼저 찾아갔다.

“글라스 씨, 잠시 이야기 좀 합시다.”

“아, 네!”

막 짐 정리를 마친 뒤였는지 글라스는 바로 바이스에게 달려갔다.

글라스는 케르베로스의 서식지로 향하면서 고쳐나간 지도를 바이스에게 건넸고 바이스는 그것을 확인한 뒤 접어서 겉옷 주머니 안에 넣었다.

지도는 차차 확인하기로 하고 그가 물었다.

“검은 숲에서, 별일 없으셨습니까? 왕자님은 흑마법사가 나왔다고 하던데.”

“네. 있었어요. 그놈이 케르베로스 서식지로 추정되는 돌로 된 협곡에 있었는데, 다른 몬스터들과 케르베로스를 섞어서 키메라를 만들어놨더라고요. 물론 다 처리했지만요.”

“흠. 어땠습니까?”

“입에서 불을 뿜는 놈도 있었지만 아닌 녀석들도 많았어요. 죄다 라스랑 엔베인이 처리했고요.”

“잘 됐군요.”

“흑마법사는 누님이 잡으셨어요. 죽였습니다. 뭘 캐내기도 전에 발작을 일으켜서 왕자님 귀에 들릴까 봐 바로 목을 쳤습니다.”

“가만히 놔둬도 죽었을 테죠.”

글라스는 흑마법사와 마주쳤던 일에 대해 상세히 대답해주었고 바이스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킨 흑마법사는,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나트폰트라 변경백령에서 원인불명의 역병이 퍼졌을 때. 그들은 흑마법사를 발견했고 그자는 프라우디에에게 졌다.

그때, 놈이 뭐라고 했었지?

- 아,아직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자비를…!!

그전에는?

- 무,무슨 대화를 하는 거냐! 너, 너는 힘만 얻은 게 아니었다고?

- 난 고작 역병을 조합하는 힘을 얻었을 뿐인데 너는 대체…!!

“흐음…”

누군가가 흑마법사에게 힘을 주었고 좋을 대로 써먹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저번의 그놈도 그렇고 이번에 카이엔이 마주친 흑마법사 역시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해댔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단단히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것이 오해가 아니라면.

“…왕자님께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군요.”

“네?”

“추측일 뿐입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굉장히 곤란합니다. 앞으론 절대 왕자님의 곁을 비우지 않아야겠어요. 다른 의심스러운 구석은 없었나요?”

“그놈을 잡아 온 건 누님이시니 누님 쪽이 더 많이 알고 계실지도 몰라요.”

“글러티나 님을 만나러 가야겠군요. 감사합니다.”

글라스와의 대화를 마친 바이스는 글러티나를 찾아갔다.

하나 글러티나역시 자세히 아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빠르게 흑마법사를 제압했기에 놈의 입에서 많은 정보를 뽑아내지 못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기에 글라스는 얌전히 물러났다.

***

카이엔은 일찍 잠든 탓인지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옆에서 고롱거리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여전히 수건에 돌돌 감긴 케르베로스가 눈을 꼭 감고 자고 있었다.

머리 세 개 달린 강아지 모습의 몬스터를 보며 카이엔은 말없이 손을 뻗어 차례대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흐트러진 그의 머리카락이 새끼 케르베로스에게 닿아서 그 아이들에게 머리카락이 생긴 것처럼 보여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애들에게 엄마를 찾아주기 위해 검은 숲에 들어갔건만, 그곳은 이미 흑마법사로 인해 초토화가 되었고 케르베로스들은 모조리 흑마법사가 죽여버린 뒤였다.

인기척을 느낀 건지 머리 하나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카이엔과 눈이 마주치자 새끼 케르베로스가 멍멍 소리를 내며 짖었다.

“멍! 멍!”

- 안녕!

“쉿. 다른 애들 깨겠다.”

“끼잉.”

- 괜찮은데…

“너도 좀 더 자. 피곤하잖아.”

그의 말에 잠에서 깬 머리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낑. 끼이잉.”

- 안 잘래. 안 졸려. 집에 가고 싶어.”

“…미안. 이제 그곳에는 아무도 없어. 어떤 미친- 아니, 나쁜 놈이 죄다 망쳐버렸거든.”

좀 더 빨리 갔다면 엄마를 찾아줄 수 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 아이 역시 흑마법사의 실험재료로 쓰였을까.

카이엔은 손가락으로 톡톡, 새끼 케르베로스의 머리를 두드렸다.

“어떻게 할까. 나는, 몬스터와 함께 지내고 있어. 너만 괜찮다면 나랑 같이 살자.”

“멍?”

- 어떻게?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름부터 지어줘야 하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건지 나머지 두 개의 머리도 부스스 눈을 떴다.

귀엽게 하품을 하면서 다른 머리들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먕먕먕!”

“왈!”

- 뭐야, 뭐야?

- 이야기?

“나랑 같이 살래?”

“끼이잉?”

세 개의 머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들끼리 멍멍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하니 카이엔은 옆으로 누워서 그 토론을 지켜보았다.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새끼 케르베로스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여기서 지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곧 결론을 내리고 카이엔을 향해 짖었다.

- 같이 살래!

“그래. 그런데 너희, 이름은 어떻게 지어줘야 하지? 머리가 세 개니까 세 개 지어줘야 하나?”

- 그건 좀…

- 아닌데.

“으으음…”

이름을 어떻게 지어줘야 하나. 카이엔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직 어린 멍멍이인 새끼 케르베로스는 사트로누스처럼 밖에 두고 키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사고뭉치 녀석을 돌보는걸 인간에게 맡겼다간 힘에 부칠 테니 사트로누스에게 맡기기로 하고 카이엔이 입을 열었다.

“플루토라고 하자. 이 정도면 되겠지.”

바이스가 웃다가 뒤로 넘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끼 케르베로스를 플루토라고 부르기로 하고 카이엔은 좀 더 자자며 플루토의 몸에 감긴 수건을 풀어주었다.

자유로워진 플루토는 기분이 좋은지 멍멍 짖다가 카이엔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카이엔은 플루토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같이 잘 지내보자, 플루토.”

“멍.”

“왈왈.”

“멍멍.”

- 응.

세 개의 머리가 각자 짖으면서 답해주었다.

울음소리는 조금씩 달랐지만 뜻은 같았다.

조금 더 자고 난 뒤,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 되자 바이스가 그들을 흔들어 깨웠다.

카이엔이 일어나자 플루토도 낑낑거리면서 눈을 떴는데 그 모습을 보고 바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왕자님, 옷이 축축하지 않으십니까?”

“응? 으악!”

“케르베로스도 잘 때 침을 흘리는가 보군요.”

플루토가 카이엔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서인지 잠옷의 가슴팍이 침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카이엔의 놀란 얼굴에 플루토는 깨갱, 하면서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린 다음 그대로 침대 밑으로 몸을 숨겼다.

그 모습에 카이엔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렇게 숨는다고 안 보일 줄 알아? 하여간…”

“그새 많이 친해지셨군요.”

“앞으로 같이 지낼 거니까.”

“일단 옷부터 벗으시죠. 바로 세탁을 맡기겠습니다.”

플루토의 침으로 축축하게 젖은 잠옷부터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카이엔은 세수 했다.

풀이 죽어서 안 나온다고 고집을 부리는 플루토를 끄집어내는 데에만 삼십 분이 넘게 걸렸다.

말로 설득하려는 카이엔의 옆에서 바이스는 그냥 끄집어내면 안 되냐며 겁도 없이 바닥에 엎드려서 침대를 향해 팔을 뻗었고 재빠르게 플루토를 낚아채 침대 밖으로 꺼냈다.

카이엔이 삼십 분 동안 못한 일을 바이스는 일 분도 안 돼서 해낸 것이었다.

그 다음에야 식사를 했고 그 뒤에 정원으로 나가 사트로누스에게 플루토를 내밀었다.

“사트로누스. 새 식구야.”

“크릉.”

-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아니… 어쩔 수 없었다고. 네 옆에 둘 거니까 잘 좀 봐주라. 네 자식처럼 돌봐줘.”

“그릉.”

- 자식은 무슨. 네가 키우기로 했으면 네가 돌봐라.

“나 돌봐줬던 것처럼 봐주면 되지.”

물론 사트로누스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홱 돌렸다.

카이엔이 플루토를 내려놓자 플루토는 제 덩치의 열 배는 넘어 보이는 만티코어에게 달라붙었다.

퍽퍽 머리로 박치기를 하기도 하고 등에 올라타려고 낑낑거리는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는데 사트로누스는 그런 플루토를 내쫓는 것도 귀찮은 건지 얌전히 누워있기만 했다.

“잘 봐주네.”

- 귀찮다.

“부탁할게.”

- 어차피 말도 안 통하는데 무슨…

“말은 안 통해도 마음은 통하니까.”

사트로누스에게 플루토를 맡기기로 한 카이엔이었지만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트로누스와 소금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던 것처럼 마을에 데리고 나가기도 했는데 카이엔을 배려하며 힘 조절을 하고 달려 나가지 않던 사트로누스와는 달리, 플루토는 낯선 환경에 신이 나서 앞으로 뛰쳐나갔고 카이엔은 그 힘에 질질 끌려갔다.

“와,왕자님!”

“어이쿠 저게 뭐람!”

“저 강아지는 뭐여? 머리가 셋? 돌연변이?”

“몬스터 아냐?”

“아무튼 왕자님부터 잡어!”

저러다가 카이엔이 넘어질 것 같다며 다들 안절부절못했다. 물론 함께 나온 바이스가 카이엔이 넘어지려고 하자 안전하게 받아냈다.

넘어지기 직전까진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넘어지는 건 막았다.

플루토의 목줄을 잡아당기며 바이스가 말했다.

“플루토! 앉아! 가지 마!”

“멍멍멍!”

“이거 안 통하는군요. 왕자님이 하셔야겠습니다.”

“플루토! 그만! 달려가지 마!”

“멍?”

- 응?

“하아… 너 왜 이렇게 힘이 넘치는 거야…”

“혼자 다니시면 안 되겠군요. 플루토는 달려 나가고 왕자님은 넘어져서 바닥에 질질 끌려다니실 겁니다. 가서 교육 좀 하죠.”

“…당연한 말일 텐데 왜 네가 말하니까 무섭게 들리는 걸까.”

“기분 탓입니다.”

아직 어린 강아지 크기기도 하고 머리가 세 개 달리긴 했지만 일단 갯과였다. 외모가 꺼림칙하지 않은 데다가 귀여웠다. 그 점은 마을 사람들의 경계심을 낮추는데 한몫했다.

세자르 영지의 주민들은 금세 플루토에게 적응해서 산책 나온 플루토를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이 작은 케르베로스는 활발하고 주인인 카이엔을 당황하게 할 정도로 힘이 셌으며 맛있는 냄새가 나면 항상 먹을 걸 사달라고 카이엔을 졸라대서 상점가의 사람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마을의 명물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경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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