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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94화 (95/219)

94화

우연히 새끼 케르베로스를 발견했고 엄마를 찾아주기로 했다.

힘든 일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검은 숲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케르베로스는 없고 웬 괴물이 나타났다.

엔베인이 무언가를 발견했고 글러티나가 뛰어나간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아?”

인상을 쓰며 카이엔이 중얼거렸다.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동물 저 동물 이 몬스터 저 몬스터 기타 등등을 섞어놓은 것 같은 몬스터들이 머리를 내밀며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새끼 케르베로스를 품에 안은 채 카이엔은 혀를 찼고 글라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저것들 되게 고약한 냄새가 나네요. 으음, 누님은 가버리셨고… 저희끼리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할 수 있겠어?”

“저는 원거리에서 엄호 정도? 두 사람은 어떤가요?”

“나야 돌격형이고 엔베인 너도 비슷하지?”

“응. 하지만 마검을 제대로 휘둘러본 적이 없어서, 서로 반대 방향을 맡는게 나을 것 같아.”

“그래.”

빠르게 라스와 엔베인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라스의 무기는 단련된 신체 그 자체였기에, 그는 맨주먹으로 키메라를 때려눕혔다.

북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뒤로 날아가는 키메라를 보며 카이엔의 눈이 동그래졌다. 라스가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였다.

인간보다는 당연히 강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주먹 하나 휘두른걸로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늑대 인간들이 다 저렇게 강하다면, 어째서 한 명에게 죄다 당해버린 거지?’

대체 늑대 인간을 노린 놈이 누구길래.

라스는 키메라 한 마리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리고 곧바로 다른 놈을 향해 달려갔다. 제 동료가 당했음에도 키메라들은 개의치 않고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피하면서 라스는 양옆에서 달려드는 두 놈에게 사이좋게 발차기를 날렸다.

반면, 엔베인은 마검을 든 채 정면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라스가 맡은 후방에 비해 전방에 배치된 키메라의 수가 더 많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까지 본래 힘의 절반도 끌어내지 못하고 수련만을 하고있던 그는 마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 휘두르기만 한다고 다가 아니다. 그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알긴 하지.”

힘이 강하면 좋지. 기술이 있으면 더 좋고.

바이스가 같이 오지 않은 이상, 그들의 힘만으로 카이엔을 지켜야 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키메라들에게 엉켜있는 검은 연기 덩어리 같은 것이 보였다.

아마, 누군가가 저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리라.

검은 기운이 가장 많이 뭉쳐있는 곳을 심장으로 여기기로 하고 엔베인은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저놈들은 왜 저러지?”

“글쎄요.”

엔베인이 가까이 가자 키메라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마검에서 나오는 기운 때문인 건가? 카이엔은 의아해하다가 품속의 케르베로스가 버둥거리자 얼른 팔에 힘을 주었다.

“가만히 있어.”

“끼이잉! 멍, 멍!”

- 저거 뭐야! 뭐야! 이상한 냄새! 괴물들!

몬스터도 저놈들을 보고는 괴물이라고 하는구나.

새끼 케르베로스를 진정시키며 카이엔은 엔베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더스크라이즈에서 데려와서 프라우디에의 치료를 맡긴 뒤, 그는 엔베인에게 그 어떤 일도 부탁하지 않았다.

좀 더 편하게 지내도 된다는 의미에서였지만 그런 자유는 오히려 엔베인에겐 부담이 되었던 건지. 그는 완벽히 한 몸이 되어버린 마검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훈련을 이어나갔다.

이제 엔베인의 손에 들린 마검은, 처음 형태와 그 모습이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손잡이부터 검 끝까지 새까만 칠을 해놓은 것만 같은 그것은, 태양 빛조차 반사하지 않고 빛마저 잡아먹는 것처럼 보였다.

후웅-

검이 휘둘러지면서 난 소리가, 협곡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갈랐다.

저마다 모습이 다른 키메라들이 엔베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어서 앞을 향해 달려드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엔베인은 마검을 휘둘렀다.

그가 손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키메라들의 몸이 찢어지며 피가 터져 나왔다. 쏟아지는 피를 피하지 않고 엔베인은 계속 키메라를 베어나갔다.

콰아아-

아까 봤던 그 키메라처럼 불덩어리를 쏘아내려고 힘을 모으는 놈도 보였다.

다 모으기 전에 목을 치는 것으로 방어한 엔베인은 곧바로 다음 타겟을 확인하고 검을 휘둘러 키메라를 베었다.

이번엔 가죽이 질긴 놈이었는지 두 번이나 휘두른 다음에야 피를 볼 수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절반정도 피로 물들어 붉게 젖었다. 숨어있는 놈들도 처리할 생각인 건지 잠시 엔베인의 모습이 커다란 바위 뒤로 사라졌다.

쾅! 콰광!

굉음이 울리기 몇 차례. 멀쩡한 모습으로 엔베인이 바위 뒤에서 걸어 나왔다.

“대충 보이는 놈들은 다 처리했습니다.”

“어… 그래. 좀 괜찮아? 완전 피투성이인데.”

“저는 괜찮지만 가까이 오지 마세요. 피에 독이 섞인 것 같습니다.”

“뭐? 그럼 너도 위험하잖아!”

“전 평범한 몸이 아니니까요. 독이 있는 것 같다고는 느끼고 있지만 통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 인간이었으면 죽었어.

“…씻어낼 만한 거 없나?”

“식수가 이 정도 있긴 한데.”

“아껴 쓰세요.”

마검의 말을 알아들은 카이엔의 물음에 글라스가 물통을 하나 꺼냈지만 택도 없었다.

엔베인은 멀뚱히 카이엔을 바라보다가 정말 괜찮다면서 뒷걸음질 쳤다.

혹시라도 그가 가까이 다가와서 키메라의 피가 묻을까 봐 염려해서였다.

“다 처치한 거야?”

“네. 근처에 있는 녀석들은 다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다 비슷하게 생겼어도 구성은 다른 것 같았어요.”

- 한 개체마다 뇌나 심장 역할을 하는 장기의 위치가 달랐다.

“그래? 그런 건 어떻게 안 거야?”

“으음… 보이더라고요.”

“신기하네.”

아마 마검을 들고 있는 것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아래쪽이 다 정리된 다음에야 글러티나가 내려왔다. 그녀는 포박한 검은 로브의 무언가를 끌고왔는데 아무래도 이놈이 주범인 것 같았다.

“잡아왔어.”

“어. 이놈은 또 뭐야? 흑마법사?”

“정답.”

“하… 요즘 왜 이렇게 많아? 정기 모임이라도 갖는건가? 그게 아니면 올해가 사고치기 좋다는 말이라도 들었나?”

도대체 왜 숨어산다는 흑마법사 놈들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있다는건 그의 운이 나빠선지 이 흑마법사 놈들의 운이 나빠서인건지.

글러티나가 얼마나 잘 기절시킨 건지 흑마법사는 쉽게 깨어나지 않았고 곧바로 발길질이 이어졌다.

“으음…”

저러다 죽는거 아닐까?

옆에서 말리는 글라스 말마따나, 팬다고 바로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고 오히려 죽을 것 같았다.

얼굴이나 좀 보자며 카이엔이 말했다.

“로브, 치워봐.”

손대기 싫은 모양인지 글러티나가 부츠의 발끝으로 로브를 걷었다.

얼굴은 평범했다. 이전에 역병 사건으로 마주쳤던 흑마법사보단 훨씬 양호한 상태였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서 카이엔이 말했다.

“글라스. 물통.”

“네.”

글라스는 그의 요구에 즉시 물통을 건네주었다.

좀 아깝긴 하지만 시간도 없으니 이게 제일이라며 카이엔은 물통의 뚜껑을 열고 그대로 흑마법사로 추정되는 검은 로브 남자의 머리를 향해 부어버렸다.

어쩐지 물고문을 하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으극, 으브브… 푸헙!”

“오, 깼네.”

“흠, 이편이 차라리 나았던거군.”

라스와 글러티나의 감탄사에 대꾸하지 않고 카이엔은 완전히 제압당한 흑마법사를 내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흑마법사는 붕어처럼 눈이 동그래지더니만 갑자기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이,이렇게나 세력을 키웠구나-!!”

“뭐?”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너, 너는 대체 뭐야!”

“나야말로 묻고 싶다. 여기 있는 케르베로스들을 다 어떻게 한 거야?”

“아, 그거라면 이놈이 죄다 실험재료로 썼다던데.”

무덤덤하게 글러티나가 대답했다.

새끼 케르베로스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카이엔은 다시 흑마법사를 쳐다보았다.

이전에 만났던 놈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너 나 아냐? 왜 아는 척이야?”

“크으으… 네놈이 왕좌를 노린다는 게 온 대륙에 퍼질 것이다-!!”

“이 녀석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냐?”

“모르겠는데요.”

“시끄러운데 처리할까요?”

카이엔의 심기가 불편해진 걸 보고 엔베인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어느새 다시 검집 안으로 들어간 마검이 금방이라도 다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포박한 적을 앞에 둔 일행은 경계따윈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흑마법사는 묶여있던 손을 조용히 움직였다

손가락을 움직여서 마법을 사용하려는 수였지만 글러티나가 눈치채고 바로 밟아 중지했다.

“크헉…”

“빨리 아는 대로 다 말하는 게 좋을걸? 아… 너는 잠시 저쪽에 가 있을래? 심문은 우리끼리 할게.”

“응?”

“맞아요. 왕자님, 저랑 저쪽에 가 있을까요?”

“아니 왜 나를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거야?”

“그야 이런걸 보여줄 순 없으니까?”

“바이스 씨한테 혼날걸요?”

“으으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특히 글라스가 한 말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뻔한 카이엔은 찜찜한 기분을 지우지 못하고 글라스와 함께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라스와 글러티나, 엔베인에게 둘러싸인 흑마법사가 왠지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왕자님, 보지 마세요! 눈 건강에 나빠요!”

“어…”

과보호에 떨떠름해 하면서 카이엔은 고개를 돌렸다.

흑마법사를 심문하려고 한 세 사람은 체감상 10여 분도 채 되지 않아서 돌아왔다. 표정이 좋지 않아서 카이엔이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캐낸 게 없습니다.”

“면목이 없네.”

“갑자기 소리 지르면서 죽을 것 같길래 입을 막는 게 다였어요.”

“…그래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구나.”

비명을 지르는 입을 틀어막았거나 그대로 목을 쳐서 음소거시켰거나.

참 살벌한 친구들이라며 카이엔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짓을 하는 건 바이스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가 이들을 너무 온순하게 본 듯했다.

“그럼 이곳엔 더는 케르베로스가 없다는 거군.”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은 새끼 케르베로스에게 엄마를 찾아주기 위함이었는데, 이곳엔 이제 케르베로스가 없었다.

품에 안긴 새끼 케르베로스 역시 그걸 아는 건지 시무룩해져서 축 늘어져 있었다.

세 개의 머리를 번갈아 가며 쓰다듬으며 카이엔이 말했다.

“…일단 집에 가자. 더이상 이곳에 신경 쓸만한 것은 없겠지?”

“네.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야.”

“그럼 가자.”

여기서 더 죽치고 있어봤자 나아지지 않을 거라며 카이엔은 귀환을 택했다.

힘없이 낑낑대는 새끼 케르베로스를 안은 팔을 고쳐 좀 더 안정적으로 품에 안은 다음, 그는 걸음을 옮겼다.

그의 귀에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인간인 그보다 감각이 뛰어난 이종족 일행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흑마법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용병들이 이번 사냥으로 케르베로스를 잡아 온 거였다면 얼마 안 되었을 텐데.’

“혹시 너, 언제 잡혀 온 건지 기억해?”

“왈왈.”

- 모르겠어.

아무리 새끼라고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다.

생포해놓고 오랫동안 방치해놨을 리는 없을 테니 이 새끼 케르베로스가 무리에서 떨어져 놀고 있을 때 근처를 지나던 용병들이 잡아갔거나 용병들이 떠나기가 무섭게 흑마법사가 협곡에 도착했을 거다.

‘이 녀석만이라도 무사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가.’

“멍?”

-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일단 돌아가자. 여긴 이제 아무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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