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야.”
“낑, 끼이잉-”
“꾸우우-”
- 으허엉… 엉…
다른 이들의 귀에는 그저 낑낑거리는 강아지 울음소리였지만 카이엔에겐 훌쩍이는 아이 목소리로 들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새끼 케르베로스에게 그는 계속 말을 걸었다.
“너 어디서 왔어?”
“끼이잉…”
- 엄마아…
“나랑 같이 가자. 네 엄마 찾아줄게.”
“낑?”
“끼이잉. 꾸웅…”
“으르르…”
- 무슨 말이야?
- 엄마, 엄마! 갈래!
- 너 말 할줄 알아?
“어느정도는. 바이스, 끝났어?”
“값을 좀 세게 부르네요.”
“…싸우진 말고 끝내.”
바이스가 혹시라도 주인을 죽여버리는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카이엔이 말했다.
정체를 알게 되니 더욱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시종은 그 행동이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다.
안 판다는 용병과 돈 줄테니까 팔라는 바이스의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대화를 종결한건 영주성에서 온 에피넬 백작의 시종이었다.
걱정이 돼서 카이엔이 잘 구경하고 있는지 사람을 붙인 모양인데 그가 한 가게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니 급히 시종을 보낸 것이다.
“와,왕자님! 제가 해결할테니 마저 구경하십시오.”
“흠?”
“부디 제게 맡겨주십시오!”
가만히 놔두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카이엔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밖의 소란에 가게 안에서 나온 바이스는 백작의 시종에게 여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제 권한 안의 일인건지 시종은 염려말하며 대답했고 카이엔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긴 했지만 결국 다른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새끼 케르베로스에게 괜찮을거라고 말해놓긴 했지만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그날 저녁, 에피넬 백작은 시종을 통해 카이엔에게 새끼 케르베로스를 데려다주었다.
여전히 철창 안에 기운없이 누운채로 울고있는 아이를 빤히 쳐다보며 카이엔이 말했다.
“나중에, 이녀석을 집에 데려다줘야겠는데. 검은 숲에 들어가야겠어.”
“네?”
“아직 어린앤데 엄마를 찾고있잖아. 쯧, 대체 사냥을 어떻게 했으면…”
가게 안에 남은 것 중에는, 케르베로스의 흔적따윈 없었다. 이미 팔려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용병들이 새끼만 잡아온걸지도 몰랐다.
생사가 불분명했지만 카이엔은 이 새끼 케르베로스에게 엄마를 찾아주고싶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인지 철창을 열어주자 새끼 케르베로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철창 밖으로 나왔다.
“헥헥.”
자신의 앞에 앉아서 꼬리를 흔드는 새끼 케르베로스를 보고 카이엔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널 검은 숲으로 다시 데리고 갈거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진 같이 있자. 인간 냄새가 배면 안되니까 물만 준비해줄게. 혼자서 씻어봐.”
“멍멍!”
“왕자님, 이쪽입니다.”
“자 따라와라.”
카이엔이 욕실로 걸어가자 새끼 케르베로스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바이스가 준비해놓은 높이가 낮은 나무통에는 따뜻한 물이 가득 차있었다. 카이엔이 손으로 나무통을 가리키자 새끼 케르베로스는 조심스럽게 그 안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쳤다.
씻는다, 라기보단 물장구를 치면서 노는 것 같았다.
흠뻑 젖어버린 녀석을 그냥 둘 수는 없어서 수건으로 돌돌 말아서 데리고 나왔다. 밥으로 뭘 줘야할지 몰라서 우유, 생고기, 간을 하지않고 구운 고기가 담긴 그릇을 준비했다.
세 개의 머리가 돌아가면서 한 입씩 먹어보더니만 멍멍 짖으면서 카이엔을 쳐다보았다.
“뭐가 제일 나아?”
“멍!”
“왈왈!”
“꾸웅.”
- 먹을거다!
- 밥이다!
- 난 이거.
이 녀석들도 익힌 것보단 날고기가 더 맘에 드는 모양이다.
머리가 셋인데 어떻게 움직이는걸까, 중심역할을 하는 머리는 뭘까 궁금해진 카이엔이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시장 관리를 잘못했다며 에피넬 백작이 직접 사과하러 찾아왔지만 카이엔은 괜찮다며 돌려보냈다. 그가 왕위 계승권을 지닌 왕자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는 계승에서 밀려난 한낱 백작일 뿐이니 에피넬 백작을 추궁하고 벌할 권한이 없었다.
케르베로스의 서식지로 향하려면 세자르보다 이쪽에서 출발하는게 더 빠르겠지만 에피넬 백작에게 준비를 부탁하고 방벽을 열어주라고 할 수 없었기에 카이엔은 새끼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일단 세자르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검은 숲으로 들어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들어가는게 한결 나을 터였다. 하루이틀 걸리는 거리도 아닐테니까.
새 가족으로 케르베로스가 합류했지만 곧 엄마에게 보내줄 예정이기에 카이엔은 새끼 케르베로스에게 따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철창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새끼 케르베로스는 기뻐하면서 카이엔의 말에 잘 따라주었다. 장난꾸러기 기질이 있었지만 카이엔이 말하면 잘 알아들었다.
따로 목줄을 채우지 않았음에도 새끼 케르베로스는 카이엔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그 모습을 본 에피넬 백작가의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말로만 듣던, 몬스터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왕자의 능력을 직접 본 셈이었으니까, 아닌척 하려고 해도 시선이 저절로 카이엔과 새끼 케르베로스를 향했다.
그가 세자르로 돌아가는 날, 에피넬 백작은 안 나와도 된다고 말했으나 꿋꿋히 문 앞까지 나와서 그를 배웅했다.
마차가 출발하자마자 카이엔이 한숨을 쉬면서 바이스에게 물었다.
“대체 왜 나한테 저렇게까지 하는거지? 난 이름만 왕자고 힘도 없는데.”
“탄신연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겠죠. 현 국왕께서 왕자님을 좋게 봐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해를 못 하겠는데.”
“왕자님께 친절하게 대해서 나쁠건 없을테니까요. 게다가 왕자님이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지않습니까. 이번에는 나트폰트라 변경백까지 회의에 참석해서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하셨다면서요?”
“그러긴 했는데…”
“그래서일겁니다.”
바이스의 말에 카이엔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새끼 케르베로스는 빙빙 돌다가 어지러워졌는지 카이엔의 바지를 물고 늘어졌다.
인간 냄새가 배지 않게 조심하려고 했는데 이 녀석이 너무 들러붙어서 다 글렀다.
그렇게 생각하며 카이엔은 조심스럽게 새끼 케르베로스를 안아서 무릎 위에 올렸다. 그러자 녀석은 헥헥거리면서 카이엔의 몸통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멍멍!”
“멍!”
- 놀자!
“안 돼. 여기서는 못 놀아.”
“끼이잉-”
- 히잉…
단호한 거절에 새끼 케르베로스는 낑낑거리면서 얌전히 카이엔의 무릎 위에서 둥글게 몸을 말았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세자르까지 갈 줄 알았는데, 도중에 새끼 케르베로스가 카이엔을 보며 멍멍 짖었다.
“멍멍! 멍! 멍!”
- 나 쉬! 쉬!
“뭐? 으악, 바이스! 얘 화장실!”
“엥?”
“여깄습니다.”
놀라는 에빌과는 달리 바이스는 미리 준비해뒀다며 네모난 나무 상자를 마차 좌석 아래에서 꺼냈다.
안에 두툼한 천이 깔려있었는데 카이엔이 그 위에 내려놓자마자 새끼 케르베로스는 용변을 보았다.
늦었으면 큰일이 날뻔했다며 카이엔은 이마를 짚었다.
“하… 미리 말해줘서 망정이지…”
“그러게요. 꽤 영리한 모양입니다.”
그의 무릎에서 실례를 안 한게 어디냐.
바이스는 환기 좀 시키자면서 마차 창문을 열었고 에빌은 어색하게 웃었다.
용변을 다 본 새끼 케르베로스가 다시 카이엔의 무릎 위에 앉으려고 했는데 이번엔 바이스가 팔을 뻗어 막았다. 대신, 그는 방석을 하나 내밀었고 그 위에 새끼 케르베로스를 올렸다.
“옷에 묻을지 모르니까 일단은 이대로 둡시다.”
“으응… 너 여기 앉아있어라. 알겠지?”
“멍!”
- 응!
다른 이들의 속도 모르고 새끼 케르베로스는 활짝 웃으면서 푹신한 방석 위에서 이리 굴렀다가 저리 굴렀다가 뒹굴거리며 움직였다.
굉장히 귀여운 모습에 카이엔은 손수건을 흔들면서 새끼 케르베로스와 놀아주었다.
세자르에 돌아가서 사트로누스가 이 꼴을 본다면 또 늘어났나며 핀잔을 주겠지만, 이녀석은 어미 케르베로스에게 데려다줄거니 기르지 않을거라며 변명할 준비는 다 끝났다.
물론, 사트로누스가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는게 눈에 선했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마차가 멈출 때마다 근처에서 새끼 케르베로스를 산책시키면서 용변을 보게 하니 마차 안에서 비슷한 소동이 일어나는걸 막을 수 있었다.
세자르에 도착하니 그를 기다리고 있던 모두가 그를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카이엔의 품 안에 안긴 새끼 케르베로스를 보고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에? 그건 또 뭐야?”
“케르베로스?”
“또 늘어나셨군요.”
“아니… 아냐! 검은 숲에 있을 엄마를 찾아주려고 데려온거라고!”
“흐음-”
“왠지 또 늘어날 것 같은데요.”
“맞아.”
다들 믿어주지 않았다.
카이엔은 한숨을 쉬었고 새끼 케르베로스는 낯선 인간들을 보고도 겁먹지 않고 활기차게 멍멍 짖었다.
아직 새끼 강아지와 같은 모습에 다들 미소를 지었고 카이엔은 적당히 그들에게 새끼 케르베로스를 소개시켜주었다.
인간 냄새가 묻지 않게 조심하려고 했는데 다 틀렸다. 가만히 둬도 흙투성이가 되고 물에 담가놔도 씻질 않고 물장구만 치고 있으니, 그가 씻겨줄 수 밖에 없었다.
잘 때도 그의 옆에서 꼭 붙어서 자려고 해서 카이엔은 냄새에 관해선 반쯤 손을 놓았다.
어미 케르베로스와 만나서 잘 설명하는 수 밖에 없다며 카이엔은 일단 새끼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집무실로 향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이 쌓였을 테니 급한 것부터 해치우고 검은 숲으로 들어갈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하루종일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다음날, 카이엔은 검은 숲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영주인 그가 기약 없이 자리를 비운다면 영지민들이 불안해할 터, 카이엔은 비셰를 불러와서 이렇게 말했다.
“비셰. 내가 검은 숲에 가있을 동안에 나인 척하고 있어라.”
“네에?!”
“너 혼자 두면 불안하니까 바이스를 옆에 붙일게. 그러니까-”
“안 됩니다. 왕자님을 혼자 보낼 수 없습니다.”
“나 혼자 가진 않을거야. 검은 숲이니까… 라스랑 엔베인, 글러티나 데리고 갈게. 다들 전투 가능한 인원이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도 위험합니다.”
역시나 바이스는 맹렬히 거부했다.
검은 숲에서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카이엔을 보낼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바이스라도 있어야 영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해결하기 쉬웠다.
“너라도 있어야지. 부탁할게.”
“…왕자님.”
“비셰는 겉모습만 나인척 하고 있을테니 일은 못해. 대신 일해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시는군요. 왕자님이 제 시야 밖으로 나가신다면 제가 많이 불안합니다.”
“내가 애도 아니고… 괜찮다니까.”
카이엔의 설득에 바이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라 카이엔은 살짝 긴장한채 바이스를 보았고, 결국 바이스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글라스 씨에게 왕자님을 부탁드리죠. 마차를 준비하는게 낫겠죠? 라스 씨를 타고 다닐 수는 없을테니.”
“으응.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하루만 기다려주라며 바이스는 집무실에서 나갔다.
그제야 비셰가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왕자님, 진짜 저한테 맡기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일은 바이스가 할텐데 뭘. 릴리시아랑 사트로누스는 내가 아닌걸 알아차릴테니 미리 말해두면 될테고.”
“어쩔 수 없죠…”
케르베로스의 서식지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에, 단단히 준비를 해야만했다.
안그래도 위험한 곳에 적은 수의 호위만을 데리고 가는 카이엔을 보며 바이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최근에 이쪽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과 맞닿은 검은 숲을 토벌했다는 것만이 유일한 안심거리였다.
막중한 임무를 맡게된 라스와 엔베인, 글러티나또한 언제 어디서 있을지 모를 전투를 위해 대비를 했다.
지금까지 엔베인에게 수련을 하려면 검은 숲으로 들어가야한다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하던 마검은 이번에 카이엔의 호위로 검은 숲으로 간다는 말에 체념한 듯 말을 이었다.
- 그래… 이렇게라도 가는 게 어디냐.
“넌 왜 그렇게 나를 검은 숲으로 못 데려가서 안달인 거야?”
- 훈련을 해야지! 네놈은 여기있는 인간들이나 이종족을 상대로는 절대로 제 힘을 못 쓴다. 큰 힘을 쓸 수 없으니 손속을 둘 수 밖에 없으니까. 제대로 죽일 수 있는 몬스터를 상대로 싸운다면 실력이 늘어날 테지.
“으음…”
- 넌 날 제대로 휘둘러본 적도 없잖아. 이참에 제대로 날 들고 싸워봐라.
“알겠어.”
마검의 말도 틀린 구석이 없기에 엔베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는 여기 와서 개인 수련을 하긴 했지만 제대로 마검을 휘둘러보지 못했다.
그는 이 마검이 몬스터에게 들러붙어서 얼마나 광폭한 힘을 냈는지 알고 있었기에 선뜻 휘두를 수가 없었다. 허나 마검의 말대로라면, 몬스터를 상대로라면 얼마든지 검을 쓸 수 있었다.
폭주의 가능성을 생각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마검이 다시 몸의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그를 꼬드기는 걸 수도 있었다.
그래도 카이엔이 있으니까.
그때, 그를 구해준 것처럼 또다시 그가 이성을 잃는다고 해도 그 목소리를 들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