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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85화 (86/219)

85화

“크윽! 이게 대체 뭐야! 무슨 괴물이…!!”

병사며 기사들은 한창 싸우는 와중에 땅속에서 솟아오른 언데드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놈의 괴물들은 머리를 날려버려도 팔다리를 잘라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아예 머리를 박살 내야 움직임을 멈추니 더욱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검을 가지고 머리통을 부숴버린다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언데드와 맞서 싸우면서 이리 섞이고 저리 섞이고 난리가 아니었다.

발밑에 채이는게 언데드인지 방금 생겨서 아직 온기조차 가시지 않은 사람 시체인 건지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상대편이 불러낸 괴물이라고 여기기엔, 그들도 미친 듯이 싸우고 있어서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괴물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무,무슨 일이지?”

“그어어…”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괴물들이 주춤거리더니 곧 자기들이 빠져나온 땅속을 향해 끌려들어 갔다.

제 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서’ 들어가는 거였다.

영문을 몰라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해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기 좀 봐…! 저기!”

“응?”

“사,사람?”

한 명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곳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체구의 누군가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쏟아지는 햇볕때문에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다.

“천사…?”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모두의 귀에 꽂혔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그 누구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늘에 떠 있던 천사는 괴물들이 모조리 땅속으로 사라지자 어딘가를 향해 곤두박질치듯이 하강했다. 곧, 꽈광하면서 큰 소리를 내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누군가가 ‘천벌이다’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뭘 본 거지?”

“글쎄…”

“이제 어떻게 하지?”

아군과 적군이 섞여 있었다. 서로 다른 갑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은 멋쩍어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싸우는 도중에 괴물까지 나타나서 교전하다 보니 이제 도저히 싸울 맘이 나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진영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이 오지 않아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색하게 뒤통수만 긁적이면서 서 있던 그들은 간절히 귀환명령을 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영에서 들리는 뿔나팔 소리에 머쓱해 하면서 뒤돌아섰다.

…두 진영에서 거의 동시에 나팔 소리가 울렸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하하, 완전 난리 났네요.”

웃는 얼굴로 이노스가 말했다. 반면, 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노스는 프라우디에에게 통신 마법에 대해 배웠기에 급하게 형제자매에게 연락을 했다.

모의 전쟁 전에 그들이 한 팀이 될 수 있다면서 밑밥을 깔아놓으면서 건넨 거울에 미리 마법을 걸어놓은 덕분이었다.

다행히 베르나르도 옥타비아도 거울을 버리지 않았기에 이노스가 연락하는건 수월했다. 두 사람에게 동시에 연락해서 군대를 추스르고 이야기 좀 하자는 말에는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일단 군대부터 진영으로 불러모은 다음 이노스는 가족끼리 이야기 좀 하자면서 그들을 그의 진영으로 오게 했다.

“다시 모의 전쟁을 이어나갈 수는 없어요. 이것에는 동의하죠?”

“당연하지.”

“나도 동의해.”

“언데드 출몰이라니, 괴상한 일이예요. 그 괴물들이 저절로 사라져서 다행이지.”

프라우디에가 힘을 썼지만 이노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카이엔은 그를 도와주기 위해 프라우디에와 일행을 데려온 것이니 가족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다. 괜히 휘말리게 할 수도 없었고.

다행히 프라우디에를 본 사람은 있어도 그게 누군지는 몰랐기에 이노스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형님 진영 근처에 흑마법사가 있었어요. 아시는게 있나요?”

“뭐? 오빠 그게 사실이야?!”

“아니 그게…”

“제대로 말 안 하면 지금 내 손에 죽는다!”

옥타비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외침에 살짝 몸을 움츠리며 베르나르가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그게… 전쟁에서 힘이 되어줄 테니 그 땅에서 나온 전리품의 일부를 자기한테 주라고 거래를 제안하더라. 그런데 어째선지 거절을 못했어.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한데…”

“흑마법사가 무슨 수작을 부린거 아니예요? 돌아가면 신전에서 검사 좀 받아보세요.”

“후우- 그 건엔 나도 찬성. 하긴, 오빠가 맨정신으로 그런 놈들을 끌어들일 리가 없지.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으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말 안 하면 죽여버린댔으면서.

지은 죄가 있으므로 베르나르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이노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핫! 아무튼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전력의 피해는요?”

“…언데드로 인한 피해가 너무 많아서 좀 더 시간이 필요해. 하아, 이걸 어떻게 설명한담?”

“본 사람이 많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언데드와 맞서 싸웠던 병사들도 입을 모아 증언을 할 것이다.

갑자기 지진이 나고 땅이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언데드가 튀어나왔다고.

현재 베르나르와 옥타비아가 지휘하던 군대 내에서 언데드들을 물리친게 천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긴했는데, 두 사람은 그걸 믿어도 되는 건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미쳤지… 미안하다.”

“네. 그때 미쳐서 그랬다고 칩시다. 다음, 옥타비아 누님은 이제 어쩌실 거예요?”

“몰라. 그냥 폐하께서 후계자를 정하게 둬야지. 황비님들 입김이 무지하게 거세겠지만.”

“아, 그런거 라면 전 빼주세요. 저 황제 안 하고 싶어요.”

“엥?”

“형님?!”

“너 그게 무슨…”

이노스의 폭탄 발언에 함께 앉아있는 모두들 깜짝 놀랐다.

발언권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조용히 있던 클로디우스도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모두의 표정을 보고 웃더니 이노스가 말했다.

“이번에도 들은 말인데 제가 마법에 재능이 있대요. 그래서 진득하게 그쪽 진로를 파볼 생각이랍니다! 이야, 황자가 마법 배운다니 좋은 스승이 저절로 찾아오겠죠? 기대되네요!”

“하여간 속편한 녀석…”

“너는 예전부터 그랬었지.”

이노스의 반응에 그들 모두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다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데면데면한 사이였으니까.

그 맘을 알면서도 이노스는 모르는척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누구든지 좋으니까 황제 되면 마법사 지원 좀 팍팍 해주세요.”

“먼 훗날의 일이지.”

“아, 그리고 제 동생 시집보낼 사람은 이미 점찍어놨어요.”

“…뭐?”

“누군데?”

“가르간트의 폐세자요.”

“진심이야?”

“믿을만한 친구랍니다.”

“아니, 폐세자라면서? 그럼 그녀석일거 아냐. 현 국왕의 조카! 안전상 문제없겠어?”

“애완 몬스터도 기르고 주변에 지키는 사람도 많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본인 의견은?”

“그게 문제죠. 그러니 도와주세요.”

“싫다.”

“싫어.”

단박에 베르나르와 옥타비아가 거절했다.

그런 일 생기면 외교 문제가 걸고 넘어지는거 아니냐는 물음에도 이노스는 싱글벙글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될지도 모르니 미리 알아두라는 말에 다들 한숨을 푹 쉬었다.

“전 후계자 다툼도 싫고 목숨도 아까워요. 살고 싶어요.”

“그건 나도 그래.”

“다 그렇지. 여기서 누군가가 황제가 되기 위해 다른 형제들을 다 죽일지도 모르니.”

“설령 본인이 하고 싶어 하지 않아도 주변 세력이 나서겠고.”

“만약 누가 절 죽이려고 든다면 외세를 끌어들일 거예요!”

“뭔 헛소리야…”

“할 이야기 끝났으면 짐 싸서 돌아가자. 이미 폐하 귀에도 들어갔을 것 같다.”

***

모의 전쟁의 일은 잘 마무리 지어졌다.

이노스가 이후의 일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할 테고 형제자매와 함께 해결하겠다고 했기에 카이엔은 냉큼 알겠다고 하고 가르간트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쌌다.

올 때는 이노스가 여행 경비를 전부 부담했지만 갈 때는 그렇지 않을 테니 빠르게 돌아가야했다.

“맞다, 카이엔 이거!”

“뭔데?”

“저, 일단은 용병단 고용한걸로 되어있잖아요. 지출이 있어야죠. 받아 가세요.”

“뭐야 이게.”

“돈요. 언데드와 마주친 정신적 충격에 대한 보상금으로 더 넣었다고 할테니까 가져가세요.”

“주니까 받긴 하겠는데… 나중에 돌려달라고 하지나 마라.”

“안 해요. 덕분에 살았어요, 나중에 또 봐요-”

“오지마.”

단호하게 대답하고 카이엔은 묵직한 돈주머니를 챙겼다.

돌아가는 길에는 큰 마차를 하나 사서 다 같이 타고 가기로 했다. 마부석에 바이스와 라스가 함께 타기로 해서 나머지는 전부 마차 안에 탑승했다.

언데드는 프라우디에의 손에서 모두 처리가 됐기에 나머지 인원은 관광만 하고 간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검을 쓸 일이 없었다며 글러티나는 프라우디에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나는 도움이 안 됐구나. 미안하다.”

“아녜요. 다른 분들이 계셔서 저도 맘 놓고 힘을 썼는걸요?”

“큰일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란 것만 생각하자.”

“그… 왕자님 잠시만요.”

“왜?”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비셰가 조심스럽게 카이엔에게 말을 걸었다.

의아해하며 카이엔이 비셰에게 몸을 돌리자 비셰는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바이스 씨는 대체 뭐하는 분이셔요? 다들 트라우마며 악몽에 허우적거릴 때 그분 혼자 멀쩡했어요.”

“…아마 무서운게 없어서 그런거 아닐까?”

“서,설마요. 그래도 사람인데…”

“직접 물어보던가.”

“그건 좀 무서워요.”

“그럼 가만히 있어.”

캐내려고 해봤자 소득이 없을게 뻔했다.

비셰는 작게 말한다고 말했지만 마차에 탄 사람들이 죄다 이종족이었으므로 모두에게 다 들렸다.

트라우마며 악몽이라는 말에 프라우디에는 고개를 끄덕였고 글러티나와 자네인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들역시 그 마법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비셰의 도움과 바이스의 충격요법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인간이라면서…’

‘으으음…’

그들이 바이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카이엔을 지키겠답시고 의절까지 하고 가문에서 뛰쳐나온 귀족이라는 것 뿐이었다.

바이올로스 후작가에 대해 티아마티스에게 들은 것이 있는 자네인마저도 바이스가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인간치고 굉장히 강하고 유능하고 이상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비셰는 진지하게 바이스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환상에 개입해 그 힘을 약화시키면서 다른 이들의 악몽을 엿봤다.

카이엔의 악몽마저 확인한 그는 남몰래 한숨을 흘렸다.

정신계 마법은 불안정한 사람일수록 잘 통하기 마련이었지만 글러티나와 자네인은 뱀파이어 로드였고 드래곤이었다.

그들마저도 약하긴 하지만 무서운 환상을 보았는데 바이스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멀쩡했다.

정신방벽이 그만큼 두껍고 단단한 건지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이 세상에 무서울게 하나도 없는 건지.

생각할수록 복잡해졌다.

‘인간은…맞겠지?’

괜히 의심이 들어서 비셰는 바이스를 힐끗거렸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아뇨 아무것도…”

“바이스 넌 멀쩡했어? 이상한 환상같은거.”

“아. 뭐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긴 했는데.”

“했는데?”

“기합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런게 되는 거야?”

“다 방법이 있습니다.”

무덤덤하게 말하는게 이 상황을 무마하려고 대충 던진 말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위를 판별할 수 없기에 카이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요한건 바이스의 정신 상태가 아니라 그들이 무사히 세자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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