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영주 대리로 일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카이엔이었지만 자주 요양하는 남작을 찾아갔다.
그리델라에게 부탁한 보약을 먹어도 별 차도가 없다는 것에 카이엔은 아쉬워했고 남작은 허허 웃으면서 괜찮다는 말만 했다.
침대에 누워있어서 그럴까. 평소보다 더 마르고 병약해 보이는 그의 보호자를 보며 카이엔이 입을 열었다.
“얼른 나아야 할 텐데.”
“나이가 들면 다 이런 법입니다.”
“건강할 수도 있잖아.”
왜 점점 약한 소리만 하냐며 카이엔은 작게 투덜거렸다.
잠깐뿐인 쉬는 시간에 자신을 만나러 온 카이엔을 보며 남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어렸던 왕자가, 지금은 이렇게나 훌쩍 자랐다.
“…제 아들 둘은, 시골도 싫고 검은 숲도 싫다면서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죽었으면 죽었다고 소식이 올 텐데 안 오는 걸 봐선 살아있을 테니 그걸로 만족하고 있고요. 허허, 결혼은 했는지 손주는 생겼는지 궁금하군요.”
“왜 연락을 안 한담? 나쁜 놈들이네.”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검은 숲은, 그만큼 위험하니까요.”
남작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자식들이 장성한 만큼 그는 나이가 들어 병약해지고 말라비틀어졌다.
카이엔을 처음 데려왔을 때보다 훨씬 주름이 지고 마른 손을 바라보며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자님, 저는 처음에 당신을 맡게 되었을 때 많이 걱정했습니다. 이기적이게도 왕자님의 목숨보단 저와 제 가족의 목숨을 걱정했죠.”
“그럴만도하지. 내가 죽으면 공연히 네가 누명을 쓸 테니까.”
“왕자님의 시종이 어떤 사람인지, 이제는 아십니까?”
“페르세이지 바이올로스라던데. 난 잘 모르겠지만.”
“그가 왕자님의 시종이 되겠다고 왔을 때 대뜸 이런 말부터 꺼내더군요. ‘당신들이 엮이지 않게끔 할테니 평소처럼만 하라’라고요. 그것도 참 오래 되었군요.”
“…정체를 밝혔던 거야?”
“네. 왕자님을 지키는데 다른 이의 의견은 필요 없고 자기 맘대로 하고 싶다면서 처음부터 말했습니다.”
그 말에 카이엔은 이마를 짚었다.
남작은 진작부터 바이스가 바이올로스의 사람이란 걸 알았다는 거다.
그땐 바이스 녀석도 어렸을 텐데, 제 아비뻘인 남작을 압박할 수 있을 정도로 바이올로스의 권력이 강했던 건가?
골치가 아파와서 카이엔이 한숨을 쉬었다.
“뭐야 그게…”
“왕자님껜, 중요한 사실을 숨겨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별문제 없었잖아.”
“왕자님을 제가 돌보겠다고 말했던 건… 제가 당신을, 조금, 동정해버렸습니다. 어차피 저는 그때 자식들도 독립한 뒤라 괜찮을 거라 여겼으니까요.”
얌전히 이불 위에 놓여져있던 손을 깍지껴 잡으면서, 세자르 남작은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육아에서 손을 뗀 지도 오래였고, 당신이 너무나도 슬퍼보여서. 그래서 그저, 방관만 하고 있던 걸 바이스 군이 오고 나서야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항상 울면서 잠들던 당신을 그제야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었고 좀 더 친근하게 대할 수 있었어요.”
괜히 그가 손을 내밀었다가 오히려 더 상처를 주기라도 하면 어쩌나.
왕족에 비하면 비천하기 그지없는 귀족인 주제에 과연 그렇게까지 나서도 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겁 먹고 꼬리를 만 것이었다.
두꺼운 벽을 넘어 인간의 영지까지 온 아라크네가 카이엔의 곁을 지키겠다고 했고, 바이스가 와서 카이엔의 시종이 되기를 청하고 난 뒤에야 그도 조금씩 바뀔 수 있었다.
“이기적인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남작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그 모습에 카이엔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오랜 침묵 끝에, 열린 입에서는 뚱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별로. …당신이 없었으면, 난 좀 더 어두운 성격이 됐을 거야.”
“왕자님은 제가 없었어도 괜찮으셨을 겁니다.”
“세자르에 오게 되었기에 내가 얻은 것도 많아. 그리고, 남작 당신은 할 만큼 했어. 최선을 다했어. 아버지…라기보단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지만.”
피식 웃으며 카이엔이 덧붙였다.
“난 잘 자랐으니까 걱정 마. 당신이 그토록 아끼는 이 땅을 다스릴 영주 대리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잖아. 건강 회복하는데 전념하고, 그리델라한테 좋은 약 없는지 물어볼게.”
“하하. 약은 사양하고 싶군요. 몸에 좋은 약은 본래 입에 쓴 법이라지만 너무하더군요.”
“기력 회복에 좋다니까 먹어. 재료는 내가 계속 구해올 테니까.”
그리델라도 만능은 아니기에 만병통치약 같은 걸 만들어내진 못 했다. 그녀가 약초로 제조하는 건 어디까지나 건강 보조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더이상 남작의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몸이 더 약해지지 않게 뒤를 받쳐주는 용도였다.
수도에서 좋은 의사를 데려와야 하나? 그게 아니면 사제? 사제의 경우엔 상처를 치유하는데 특화된 몸이니 질병에는 별 효과가 없을지도 몰랐다.
여전히 부드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남작을 응시하다가 카이엔은 몸을 일으켰다. 슬슬 일하러 갈 시간이었다.
“내가 열심히 할 테니까, 신경써서 회복해.”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와주십시오.”
“응.”
집사와 바이스가 너무 유능해서 도저히 무능할 수 없는 카이엔이었지만 남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병들고 약해진 세자르 남작을 대신해 카이엔이 영주 대리로서 일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영지 내에 숨어있는 첩자가 왜 이렇게 많은건지, 카이엔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잡지 말라고 내버려둔 것이긴 했지만 슬슬 다 잡아서 정리해도 될 것 같았다.
세자르 남작이 요양을 시작했고 카이엔이 영주 대리 자리에 앉아있다.
남작의 아들 두 명은 장성해서 세자르를 떠난 지 오래였고, 남작은 갈 곳이 없었던 카이엔을 데려와 길러주었다.
그로 인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추측을 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이대로 세자르 남작이 죽는다면 그는 집 나간 아들들이 아니라 폐세자인 카이엔에게 세자르를 줄지도 모른다,’
…라고.
요양은 핑계고 카이엔이 실무를 볼 수 있게 물러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튼, 남작의 요양때문인지 저번에 왕성에서 세자르로 돌아올 적에 듀라벨 백작가에 들렀을 때 백작이 제 딸을 카이엔에게 인사시켰다는 말이 퍼진 건지 갑자기 구혼서가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국왕의 탄신연에 국왕이 직접 조카인 그를 초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도 한몫한 듯, 귀족들은 대박이 될지 쪽박이 될지 모를 카이엔 이디에우스라는 왕족에 집중하며 어떻게든 그와 끈을 만들고 싶어 했다.
수북히 쌓인 편지를 보며 바이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일단 이걸 다 카이엔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아무리 그라고 해도 두 손으로 들고갈 수 없는 양이었다.
다행히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기에 바이스는 그를 불러세웠다.
“비셰 씨.”
“네?”
“바쁘십니까?”
“아뇨. 간단한 심부름하고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그럼 저랑 같이 이 편지들 좀 들고 가주십시오.”
“네.”
별거 아닌 부탁이었기에 비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스는 적당히 분류해놓은 크고 작은 편지들을 토닥토닥 하나로 뭉쳐 정리해 비셰에게 한 무더기 안겨주었고 그 역시 편지 뭉치를 잔뜩 손에 들고 카이엔의 집무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일단 몸을 문에 기대 편지를 지탱한 후 문을 두드린 다음 몸을 떼었다.
한창 관련 서류를 검토하던 카이엔은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바이스와 비셰가 안으로 들어오자 살짝 인상을 썼다.
그들의 품 안에 있는 수많은 편지들을 보며 그가 물었다.
“뭐야, 일이 또 늘었어?”
“아뇨. 이게 다 왕자님께 들어온 구혼입니다. 이렇게 많이 왔는데요.”
“미친.”
질색을 하며 카이엔이 한마디 내뱉었다.
그럴줄 알았다는 듯 웃으면서 바이스는 집무실 한쪽 벽에 있던 벽난로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활활 잘 타고 있는 벽난로 안의 불을 향해 품 안의 편지를 죄다 쏟아붓고는 그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없습니다.”
“이런 미친놈….”
탄식을 하며 카이엔은 이마를 짚었다.
어디서 누구한테 어떤 내용이 왔을지도 모르는 편지를 죄다 태워버리다니.
수십통의 편지를 먹은 모닥불은 아까보다 더욱 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매캐한 탄내에 카이엔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모습에 바이스가 말했다.
“누가 키운 왕자님인데 감히 넘보는건지. 택도 없습니다.”
“하아… 그냥 나한테 주지 그랬어. 누가 보냈는지, 무슨 내용인지는 읽어봐야 하잖아.”
“안 봐도 뻔합니다.”
“너한텐 그러겠지만 나한텐 안 그래. 정말 중요한 거였으면 어떻게 하려고?”
“발신인은 확인했습니다만.”
“으음….”
“비셰 씨가 들고 있는 것도 이리 주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아, 네….”
바이스는 비셰가 들고 있는 편지도 죄다 모닥불 안에 집어넣어버렸다.
귀족들의 편지를 장작삼아 불은 활활 잘도 타올랐다.
분명 저중에는 구혼이 목적이 아닌 편지도 있었을 텐데.
카이엔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이렇게 된 이상 여자관계가 복잡한 망나니라는 소문을 퍼뜨립시다. 그럼 아무도 저런 걸 안 보내겠죠.”
“하지마.”
“대역이 필요한데 글러티나 님과 그리델라 님은 절대 해주지 않으실 테죠.”
슬로세이는 어린애니 논외였다.
바이스가 진심으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자 카이엔은 저절로 뒷골이 당겨왔다.
뒷목을 잡아말아,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슬그머니 비셰가 말했다.
“그런건 제가 변신해서 할 수 있어요. 왕자님 취향은 어떤 사람이신가요?”
“바이스 너 가만히 있어라.”
비셰의 말에 대답해주지 않고 카이엔은 바이스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허나 그런 보람도 없이 바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 한마디를 던졌다.
“흠? 설마 아직도 짝사랑을 끝내지 못 하신 건…”
“야!”
“에? 왕자님 좋아하는 사람 있으세요?”
비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마 뭐라고 말도 못하고 카이엔은 고개를 숙였다.
저번에 슬로세이가 했던 말 때문에 곰곰히 기억을 되짚어보니 걸리는 점이 하나 있긴했다.
그래도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잊어버리기로 했는데, 잊어버릴 쯤되니까 저런 말을 꺼낸 바이스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카이엔의 반응에 비셰는 바이스가 한 말이 진실이란 걸 깨달았다. 저절로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누군지 궁금했지만 물어봤다간 혼날 것 같아서 안간힘을 써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프라우디에와 자네인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둘 다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 두 사람은 아래쪽으로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프라우디에의 땋은 머리는 정갈한 반면 자네인의 머리모양은 어쩐지 엉성했다.
요즘 머리카락이 길어져서 이전보다 더 예뻐진 프라우디에는 품에 안고 있던 서류를 카이엔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왕자님? 무슨 일 있으세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프라우디에가 물었다. 그 목소리에 카이엔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프라우디에를 한 번, 자네인을 한 번. 집무실로 온 손님을 확인하고 그가 대답했다.
“아니. 별일 없었어. 무슨 일이야?”
“이번에 검은 숲으로 들어간 사냥꾼들이 잡아온 몬스터의 종류와 숫자, 피해 상황, 전리품 등을 정리했어요.”
“아아 그랬지. 고맙다.”
“뭘요. 쉬운 일이었어요.”
배시시 웃으며 프라우디에가 말했다.
자네인은 멀찍히 떨어져서 서있었는데 어쩐지 양 뺨이 붉어진 게,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자신의 모습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자네인과 프라우디에를 보고 카이엔이 물었다.
“너희는 무슨 일 있었어?”
“서로 머리를 묶어줬어요. 제가 손재주가 없어서 잔느 머리모양을 좀 망쳐버렸지만요.”
“그랬구나. 정리한 건 일 끝내고 바로 읽어볼게. 수고했어.”
“네. 수고하세요.”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프라우디에는 자네인의 손을 잡고 집무실에서 나갔다.
그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카이엔은 다시 고개를 숙였고 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한 비셰가 조심스럽게 카이엔에게 말을 걸었다.
“어… 그래서, 둘 중에 어느 쪽이예요?”
“하아…”
“슬로세이를 길가의 돌멩이 만도 못한 인어 취급을 하고 계시니 자네인 씨인가 보네요.”
비셰는 금세 눈치를 챘다.
인간의 정기를 흡수하며 살아가는 몽마의 특성상, 그는 감정의 냄새를 맡는데에 능했다.
카이엔 혼자 있었다면 모를까, 밖에서 두 사람이 들어오고 나서 아주 잠깐이지만 바뀐 분위기를 눈치챈 것이었다.
카이엔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비셰는 적은 단서만으로도 용케 정답을 맞췄다.
요즘 프라우디에가 머리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미소녀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자네인과 같이 다니고 있으면 연인이라기보단 자매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 두 사람은 친구라기엔 굉장히 미묘한 관계였다.
친구라고 하기에도, 연인이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하지만 굉장히 유대가 깊은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카이엔도 별말을 안 했을 거다. …라며, 비셰는 자신의 추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셰가 혼자서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고 있을 때 카이엔은 힐끗 바이스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웃고 있는 녀석을 째려보며 카이엔이 한 마디 했다.
“넌 나보다 연상인데다가 바이올로스 후작가 장자니까 약혼녀도 있었을 테고, 괜찮은 거 맞아?”
“하하. 그딴 거 다 버린지 오랩니다만?”
“너 진짜…”
“약혼녀가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 나온지가 언젠데요. 이미 파혼했겠죠.”
“사이가 나빴던 거야?”
“모르겠습니다. 원래 그런 건 집안끼리 정하는 거니까요.”
“네가 여기 있으면 쫓아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전 이제 이름도 기억 못 하는 걸요?”
“그건 좀… 너무한데.”
약혼녀 이름조차 까먹은 거냐.
대체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그것까지 까먹냐며 카이엔은 황당해했지만 바이스는 개의치 않았다.
“저한테 가장 중요한 건 왕자님이시니까요.”
“그래… 너무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어.”
바이스는 웃었지만 카이엔은 웃지 못 했다.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약혼녀의 존재를 개의치 않아할 테니까.
바이올로스 후작가정도라면 정략결혼 대상조차도 굉장할 텐데 저래도 되는 걸까. 아니면, 아버지인 후작에게 대형 사고를 하나 얹어주려고 일부러 저러는 걸까.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래… 별일 없겠지. 네가 집 나간 지도 오래됐잖아.”
“그렇죠. 이제와서 절 찾을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도 물 밀려오듯 찾아올 왕자님을 향한 구혼입니다.”
“하아…”
“역시 여자관계 복잡한 망나니 길을 걷죠.”
“싫어.”
딱 잘라 거절하고 카이엔은 읽던 서류를 마저 손에 들었다.
헛소리를 하면서 낭비할 시간이 아까우니 차라리 그 시간에 일을 하는 게 나았다.
그가 일하려고 하니 바이스도 옆에서 한마디씩 보태지 않고 얌전히 서있다가 할 일을 끝낸 비셰를 다시 돌려보냈다.
단단히 입단속을 시키니 알겠다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셰의 입이 싼 편도 아니고, 비밀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를 했다가 들킨다면 받게될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입조심을 하겠지.
이걸로 됐다면서 바이스는 만족했다. 약혼 건이야, 후작인 아버지가 어떻게든 처리했을 거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