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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69화 (70/219)

69화

오두막에서 나온 건 등이 심하게 굽은 사람이었다.

전신을 가리는 망토를 입었지만 그 괴상한 몸은 여지없이 티가 났다.

다만 후드를 눌러써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볼 수 없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흑마법사는 카이엔 일행을 발견하고 바로 노성을 터뜨렸다.

“누구냐! 감히 어떤 놈이 겁도 없이 내 구역에-”

그러나 흑마법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바이스가 품 속에 감추고 있던 단검을 던졌고 흑마법사는 그 공격을 피하며 비틀거렸다.

카이엔이 깜짝 놀라 옆을 보니 바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선수필승이죠.”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이놈-!”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흑마법사의 발밑에서부터 마력이 움직이면서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어느새 손에 들려진 스태프에서 흉흉한 빛이 새어나왔고 프라우디에가 카이엔과 바이스의 앞에 섰다.

바람결에 흑마법사의 후드가 벗겨지며 흉측한 얼굴이 드러났다.

잔뜩 주름지고 흉이 진 얼굴이었다. 어릴 적 병을 앓고 난 흔적같기도 했다.

그 모습에 카이엔은 질색을 했다.

말하는 도중에 공격을 당한 흑마법사는 더욱 화가 난 건지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마력의 양이 늘어났다.

“너 때문에 더 화났잖아.”

“괜찮을 겁니다.”

“뭐가…”

“그럴 것 같습니다.”

바이스의 근거없는 자신감에 카이엔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무시당했다는 것에 흑마법사의 표정은 갈수록 구겨지고 있었다.

“흥. 어떻게 여기 온 건진 모르겠지만 이곳을 발견했다니 네놈들 중에 마법사가 있는 모양이구나. 허나 실수한거다! 너희들도 전부 나같은 꼴로 만들어주지!”

말을 마친 흑마법사의 발밑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들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왔다.

저게 역병을 일으킨 원인인가? 카이엔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쪽에 흑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이쪽엔 천년전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다는 전설의 리치왕이 있다.

리치왕이 당할 리 없으니 눈앞에서 아무리 흑마법사가 난리를 친다고 해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역시나, 흑마법사가 일으킨 검은 안개는 그들의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소멸했다.

눈을 부릅뜨고 흑마법사를 응시하던 프라우디에는 그들을 덮치려 드는 역병의 기운을 깨끗하게 없애버리고 흑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자그마한 몸이었지만 마력으로 강화해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간 프라우디에는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마치 검을 휘두른 것만 같은 파공음이 들렸다.

흑마법사의 로브가 찢어지면서 늙은 흑마법사는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토, 통하지 않는다고? 이럴수가…”

“아, 다행이네요.”

- 내가 뭐랬냐? 할 수 있댔지?

리치왕의 목소리에 프라우디에는 작게 웃었다. 그 모습을, 자신을 비웃는걸로 착각한 흑마법사가 프라우디에를 향해 스태프를 휘둘렀다.

둔기처럼 머리 위를 향해 내리꽂힌 그것을 가볍게 피하면서 프라우디에는 나뭇가지로 흑마법사를 찔렀다.

마력으로 감싸 강화한 건 몸뿐만이 아니었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흑마법사가 뒤로 튕겨져나갔다.

연구에 몰두하는 마법사들은 특히 접근 전에 취약하고 흑마법사의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손쉽게 흑마법사를 날려버리고 프라우디에는 숨을 가다듬었다.

- 일단 포박. 그 다음에 고문…이 아니라 정보를 캐내자.

“네.”

리치왕의 말실수를 가볍게 무시하고 프라우디에가 손을 움직이자 땅에서 거무죽죽한 덩굴같은 것이 나와 흑마법사를 옭아맸다.

허나 몸을 묶었다고 해서 완전히 방심할 수는 없었다.

시동어만으로도 마법을 쓸 수 있었고, 말하지 않고 마력을 끌어내는 걸로도 마법을 쓸 수 있었으니, 여전히 주시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붙잡힌 흑마법사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애초에 프라우디에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속에 리치왕의 강대한 마력을, 그의 심장을 품고 있는 호문쿨루스를 인간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이럴 수가. 어째서!”

“당신이 이 근방에 전염병을 퍼뜨린 거죠? 치료할 방법을 말하세요.”

“너, 너는 대체 누구야! 너같은 놈도 참가한 건가?”

“에?”

“이럴 순 없다. 난 세상에 온갖 질병을 퍼뜨리고, 역신을 소환해낼 거야! 날 비웃던 놈들을 모조리 나같은 꼴로 만들어주겠어-!”

- 쯧. 저놈, 말이 안 통하는데?

“으음, 어쩌죠?”

- 저 오두막이 놈의 거처라면 저길 뒤지는 것만으로도 단서가 잡힐 거야. 그 전에 이놈부터 기절시키든 죽이든 해야지.

“그러는 게 낫겠죠?”

리치왕과 대화하는 프라우디에는, 남들이 보기엔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흑마법사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렸다.

“무, 무슨 대화를 하는 거냐! 너, 너는 힘만 얻은 게 아니었다고?”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는데요.”

“난 고작 역병을 조합하는 힘을 얻었을 뿐인데 너는 대체…!”

- 얼른 입 다물게 해라.

“네.”

헛소리를 더 들어줄 필요는 없다고 여긴 건지 프라우디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흑마법사의 몸이 덜컥 하고 한 번 흔들리더니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손쉽게 기절시킨 다음 프라우디에가 카이엔을 향해 손짓했다.

“오두막 안을 보고 올게요. 끔찍한게 많을 테니 왕자님은 여기 계세요. 그리델라 씨도요.”

“에? 나도?”

“감시를 부탁드릴게요.”

“응.”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리델라는 약간 고도를 낮춰 빗자루를 타고 비행했다.

프라우디에를 도와줄 셈으로 마법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도움없이 프라우디에 혼자서도 잘 해결해냈다.

일행을 뒤에 남겨두고 프라우디에는 흑마법사가 나온 오두막 앞으로 다가갔다.

어떤 광경일지, 상상이 갔다. 마른 침을 삼키고 그는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불이 꺼져있네요.”

프라우디에는 어두운 내부를 밝히기 위해 작은 불빛을 만들어냈다.

두둥실 떠다니는 불빛들이 오두막 곳곳을 비췄다. 빛이 닿자 어두운 오두막 내부가 밝아졌다.

그 안을 확인한 프라우디에의 인상이 단숨에 구겨졌다.

실험용으로 쓴 것만 같은 사람과 몬스터의 시신이 곳곳에 매달려 있었다.

연구를 한 것만 같은 실험대는 피가 잔뜩 말라붙어 있었다. 몇 번이고 덧칠된 핏자국이 보기 좋지 않았다.

싸늘한 죽음의 기운이 만연한 공간이었다. 플라스크 안에 떠다니는 괴상한 살점 덩어리를 보고 프라우디에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플라스크와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건 온갖 전염병의 매개체가 되는 것들이었다.

- 흠. 이건 천년 전에나 유행했던 건데.

“그런걸 어떻게 구했을까요…”

- 그러게. 수완이 좋아보이진 않던데.

지금 중요한 건 흑마법사에 대한 게 아니라 역병을 낫게 할 치료제를 구하는 거였다.

이미 목숨이 끊어진 자들의 시신의 앞에서 조용히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프라우디에는 조사에 착수했다.

발견해낸 역병의 근원은 커다란 유리병 안에 있었다.

실험한 동물의 사체에서 떼낸 건지, 감염자의 살점과 비슷한 형태를 띄고있었다. 옆에 있는 연구기록도 한번 훑어본 뒤 프라우디에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두 가지를 가방 안에 넣고 프라우디에는 오두막에서 나왔다.

“태우는 게 낫겠죠?”

- 그래.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위험하다. 괜히 잡다한 병에 감염되버릴 수도 있고.

“바로 할까요?”

- 해라.

리치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프라우디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만으로도 꽤 컸던 오두막이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였다.

흑마법의 기운으로 검게 물든 불꽃이 오두막을 태우기 시작했고 길게 피어오른 연기를 그리델라가 흩어지게 했다.

숲에서 불이 났다는 걸 바깥의 사람들이 봐서 좋을 일이 없다고 여겨서였다.

아예 흔적조차 남기지 않기 위해 불을 붙이니 안에서 무언가가 터지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열을 이기지 못한 유리병 같은 게 망가지는 소리였다.

그때, 붙잡아놓았던 흑마법사가 정신을 차린 건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헉… 으헉, 제,제발, 안돼, 제발!”

“응?”

“아,아직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자비를…!”

프라우디에는 기절만 시켰을 뿐 흑마법사에게 다른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늙은 흑마법사는 온 몸을 비틀면서 괴로워했다. 핏발선 눈은 프라우디에도 카이엔도 보고있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를 존재를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가 점점 흐려지더니만, 흑마법사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황급히 다가간 프라우디에가 맥박을 짚어보았지만 맥이 뛰지 않았다.

“어…?”

갑자기 흑마법사가 죽어버리자 프라우디에는 크게 당황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카이엔을 바라보니 카이엔 역시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죽었어요…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대체 왜 죽은 거지? 갑자기 미쳤나?”

“글쎄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일을 저질렀다가 실패하니 제거당한 건 아닐까요?”

“그건 좀…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런 놈들이 엄청 많다는 말이잖아.”

“하긴, 그건 꽤 끔찍하겠군요.”

“아무튼 해결했으면 돌아갈까? 시간도 늦었고…”

“시신도 같이 불태울게요. 그게 나을 거예요.”

온갖 역병을 다루던 흑마법사의 시신이다. 멀쩡히 남겨둬봤자 득될 것이 없기에 프라우디에는 마법으로 흑마법사의 시신을 불타는 오두막을 향해 집어던졌다.

그 탓에 오두막의 지붕이 폭삭 꺼져버렸다.

‘어차피 태워버릴 거니까 상관없나?’

“화력이 조금 약하지 않나요?”

“더 강하게 했다가 산불을 내버릴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옆에서 바이스가 얼른 태우고 가자고 하는 말에 카이엔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정상적으로 발생한 병이 아닌, 흑마법사가 인위적으로 조합해 만들어낸 역병은 이제 치료제를 만들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온 일행은 변경백령의 시설을 빌려서 치료제 개발에 몰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라우디에가 고생이 많았다.

프라우디에가 막히는 부분이 있어도 리치왕이 도와주었고 그는 모르는 이후 세대의 질병에 대한건 주변의 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자문을 구할 수 있었다.

개발된 신약의 효력 검증을 위한 투약에서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었기에, 즉시 대량생산이 실시되었다.

제조법을 의사들에게 알려준 뒤에야 프라우디에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고생했어.”

“아녜요. 알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연구 기록이 도움이 된 거야?”

“으음… 일단은요. 그런데 없어도 됐을 것 같아요. 가져온 근원을 적절하게 배양하고 살피는 것만으로도 어떤 식으로 조합했는지는 알 수 있었거든요.”

“대단하네.”

감탄하면서 카이엔이 한마디 했다.

자신보다 저급한 능력의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역병은 고위급 흑마법사인 프라우디에에겐 통하지 않았기에 프라우디에는 치료제의 개발을 마치고 나서 온 몸을 감싸고 있던 마스크와 망토, 장갑 등을 벗고 다녔다.

감염되면 어쩌냐고 화들짝 놀라던 사람들은 괜찮다면서 약을 나눠주고 다니는 그를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이제 돌아가도 되겠어요.”

“그래? 그럼 가자.”

프라우디에가 유능한 덕분에 하는 일 없이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델라는 옆에서 약 제조라도 도와줬지만 카이엔은 말그대로, 옆에 서있기만 했다.

그러나 돌아가려는 그들을 배웅해주러온 변경백은 카이엔의 손을 꼭 잡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한 게 없는데?”

“도움을 주시겠다고 오신 건 왕자님이 아니십니까.”

“난 도울 수 있다는 애를 데리고 온 것 뿐이다. 감사는 내 옆의 이 애한테 하도록.”

물론 그럴 생각도 있었다면서, 변경백은 프라우디에에게도 진심어린 감사인사를 했다.

무언가를 바라고 돕겠다고 정한 게 아니었기에 프라우디에는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있던 카이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그리델라가 속삭였다.

“…왕자님.”

“응?”

“내 약초 가방, 채워줄 거지?”

“당연하지. 세자르로 돌아가자마자 구해다줄게. 치료제를 만들어야 하니 구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지만…”

상당히 오래된 조합식 또한 섞여있었기에, 프라우디에는 그리델라가 가져온 약초 또한 이용했다.

덕분에 정성껏 말려놓고 가루로 만들어놓은 약들을 잃게 된 그리델라는 또 다시 시간과 노력을 들어서 비상약을 준비해야 했다.

흑마법사의 오두막에서 획득한 역병의 근원은 프라우디에의 연구실 선반에 놓여졌다.

그대로 파괴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좀 더 연구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프라우디에가 챙겨온 것이었다. 물론 병이 퍼지지 않게 잘 관리한다는 조건하에서였다.

그곳에서 수상쩍은 기운을 느꼈기에 가져온 것이었지만 프라우디에는 연구목적이라고만 밝혔었다.

오두막에서 가져온 흑마법사의 연구 기록을 다시 한 번 살피며 프라우디에는 리치왕과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이상하죠?”

- 그래. 그놈이 갑자기 덜컥 죽어버린 것도 그렇고.

“이런 식으로 만들어낸 것에 이질적인 힘이 섞여 있어요. 흑마법이라고 하기엔… 묘한 마력이.”

- 짐작가는 구석은 있지만 이해를 못하겠어. 고작 그런 놈이 그런 힘을 얻을 수 있을 리 없으니.

리치왕의 한숨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역병을 섞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예전에 사라진 병을 어떻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건지, 그것이 묘하게 찝찝했다.

- 일단 잘 봉인해두자구. 확실히, 이번에는 가기 잘한 것 같다. 병을 연구하는 건 이곳에서 할 수 없는 거니까.

“네. 직접 보니 생각보다 까다로웠어요.”

- 괜히 흑마법사가 천대받는 게 아니다. 애초에 연구하는 것 자체가 그런 괴이한 것이니 눈총받을만 하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리치왕이라고 불린 흑마법사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프라우디에는 가져온 유리병에 ‘굉장히 위험’이라는 쪽지를 붙여두었다.

혹시라도 바닥에 떨어뜨려 깨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유리병에 강화 마법도 부여했다.

“그냥 땅에 묻는 게 나을까요?”

- 아서라. 그러다가 어디에 둔 건지 몰라서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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