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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65화 (66/219)

65화

“…지금 이게 무슨 꼴이야? 비셰, 너 연못에 빠졌어?”

“어? 와, 왕자님?!”

화들짝 놀라 비셰가 외치자 슬로세이와 에이들러도 퍼뜩 고개를 들고 옆을 바라보았다.

누가 불러온 건지, 카이엔이 바이스와 함께 나타난 것이었다.

카이엔은 인상을 찌푸린 채 쫄딱 젖은 비셰와 양 뺨이 부어오른 두 사람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 한숨 소리에 슬로세이와 에이들러의 몸이 움찔 떨렸다.

“비셰, 방에 가서 씻고 오늘은 쉬어라.”

“네? 아뇨, 저 일 할 수 있어요!”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너도 잔병치레쯤은 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제가 잘 말해두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쉬시죠.”

“어… 네. 그럼 가볼게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비셰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비셰가 가자 카이엔은 엄한 눈으로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비셰에게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단 걸 알린 하인은 왕자님에게도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다른 요리사의 말에 급하게 카이엔을 찾아가서 그 사실을 전했다.

마찬가지로, 왜 그 둘이 싸우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카이엔이었지만 일단 말려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가 너무 늦어버렸다. 비셰가 말리다가 연못에 빠져버렸으니까.

“하아… 너희, 대체 왜 싸운 거야?”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카이엔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긴 한데, 왠만해선 친하게 지내라. 어차피 얼마 안 있으면 헤어질 텐데 굳이 얼굴 붉히면서 싸울 필요는 없잖아.”

“…왕자님 때문이잖아!”

“뭐?”

“왕자님이 제일 바보야!”

“슬로세이!”

빽 소리를 지르고 슬로세이는 호수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약한 파문을 남기다가 금세 잔잔해진 수면을 바라보던 카이엔은 어이가 없어서 입만 벙긋거리다가 바이스에게 물었다.

“…내가 잘못했냐?”

“글쎄요?”

“나 참… 에이들러 너는 또 왜 싸운 거야?”

“으…”

“응?”

“으아앙-!”

“넌 또 왜 울어?!”

한 명은 호수 속으로 들어가버렸고 한 명은 갑자기 울기 시작하자 카이엔이 당황해하며 외쳤다.

영문을 모르는 건 그도 마찬가지인데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상황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난데없이 에이들러가 울음을 터뜨리자 카이엔은 머리가 아파왔지만 일단 아직 어린 사촌동생을 안아들었다.

“가서 이야기하자. 바이스, 차라도 준비해야 겠다.”

“알겠습니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 건지 에이들러는 카이엔의 품을 파고들면서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슴께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에 카이엔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애들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복잡한 사정이라도 있던 건지, 한 명은 호수에 잠겨버리고 한 명은 울고. 슬로세이도 물 속에서 울고 있을지도 몰랐다.

눈앞에서 터진 게 에이들러니 일단 이쪽부터 진정시키고 슬로세이도 보러가야겠다며 카이엔은 걸음을 빨리했다.

그의 방에 가서 소파에 에이들러를 내려놓은 다음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아직도 훌쩍이고 있는 사촌동생을 보면서 카이엔은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에이들러.”

“흑… 훌쩍.”

“그만 울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랑 슬로세이가 싸울 일이 뭐가 있다고.”

두 사람 다 뺨이 빨갛게 부어있는데다가 지금 보니 에이들러의 뺨에는 손톱자국까지 남아있었다. 서로 뺨을 잡아 늘리기라도 했던 건가, 싶었다.

주먹질을 하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싸웠다는 것 자체가 골치아픈 일이었다.

카이엔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에이들러는 울음을 멈추려고 했지만 히끅거리는 소리만 날 뿐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있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히윽… 으, 나, 흡…”

“천천히 해. 시간 많으니까.”

에이들러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카이엔은 소파에 몸을 기댔다.

노크 소리와 함께 바이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테이블 위에 준비해온 차를 내려놓았다.

어느순간 슬쩍 사라졌다가 돌아온 그가 따라준 뜨거운 차를 바라보며 카이엔은 바이스에게 손짓을 했다.

“비셰는?”

“주방장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래.“

비셰는 상당히 운이 나빴다.

이종족이라고 해도 다른 이들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운동신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다른 이였다면 억지로 두 아이를 떼어놨거나 밀쳐졌다고 해도 호수에 빠지는 일은 없었겠지.

몽마라는 종족의 특성상 정신이나 꿈에 간섭하기 마련이니, 현실에서의 신체 능력은 인간과 비슷한 수준일지도 몰랐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갑자기 그가 나타나서 놀란 건지 아니면 혼날까봐 지레 겁을 먹었던 건지, 이젠 딸꾹질까지 하게된 에이들러는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서 천천히 삼켰다.

어느정도 목이 진정되니 에이들러는 천천히 목소리를 냈다.

“…죄송해요.”

“뭐가?”

“싸웠잖아요…”

“알면 됐다. 그리고 애초에 왜 싸운 거야?”

잠시 에이들러는 말이 없었다. 가만히 머릿속을 정리하는가 싶더니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보고 집에 가랬어요.”

“허어? 어차피 때 되면 갈 건데?”

그래서 싸운 거야?

황당해하면서도 카이엔은 뒷말을 삼켰다.

무언가 분한 지점이 있어서 에이들러도 슬로세이에게 맞받아친 게 있었을 테니까.

과연 에이들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카이엔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형이랑 친한게 싫은가 봐요.”

“그랬어?”

“네. 그래서 얼른 가버리랬어요.”

“으으음…”

어린애들끼리의 질투인 걸까.

확실히 슬로세이는 이상하게 그에게 친근감을 느끼면서 친해지고 싶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인간 왕자다보니 신기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대충 넘겼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카이엔은 힐끗 바이스를 쳐다보았다. 바이스는 다른 이들이 그에게 가까이 오는 건 막지 않았는데 유독 슬로세이한테만 벽을 치곤 했다.

길게 한숨을 쉬고 카이엔이 말했다.

“그래서 싸웠어?”

“…네.”

에이들러는 찻잔을 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찻잔은 따뜻했지만, 공기는 무거웠다. 무겁게 느껴졌다.

“…저는, 형의 존재를 그날 처음 알았잖아요. 떳떳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런 말들이 더 싫었어요. 형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주제에 이제와서 친한 척 어리광 부리면서 달라붙어있는 거요.”

“으음.”

“그럴 자격도 없고 철없는 행동이란 건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전 형이랑 친해지고 싶은걸요.”

에이들러도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으니, 자신은 관계가 없다는걸 알면서도 미약한 죄책감이 남아있었을 텐데 그게 자극이 되버린 모양이다.

뭐라고 위로를 해줄지 몰라 카이엔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느새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 에이들러를 보고 카이엔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니니까.”

“죄송, 해요… 잘못했어요…”

“싸운 건 잘못한 게 맞지만 음, 울지 마라. 난 너를 싫어하지 않아.”

에이들러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훌쩍이는 사촌동생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카이엔이 몸을 일으켰다.

“바이스, 여기 있어. 난 호수에 다녀올게.”

“흠? 슬로세이 님에게 가시려는 겁니까?”

“응. 그 녀석도 울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넌 여기있어.”

“괜찮으시겠어요?”

“괜찮겠지.”

호수 밖에서 부른다고 슬로세이가 고개를 내밀어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카이엔은 방에서 입고 있던 외투를 벗고 연결된 장식들까지 다 떼어냈다.

가벼운 차림으로 그가 방에서 나가자 바이스는 말없이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에이들러가 고개를 들자 바이스는 그 아이의 손에서 찻잔을 내려놓게 하고 뜨거운 차를 더 부어주었다.

설탕에 우유까지 더 첨가해준 뒤 바이스가 말했다.

“어린애다운 행동이었습니다만, 조급했나보군요.”

“…….”

“제 입장에선, 두 분 다 굉장히 쓸데없는 걸로 싸운 걸로 보이지만요. 어린애니까 어쩔 수 없지만.”

에이들러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자 바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왕자님은 참 인기가 많으시군요. 이걸 기뻐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그래도 저는 걔가 싫어요.”

“슬로세이 님도 똑같으실 겁니다. 제가 슬로세이 님이 왕자님한테 가까이 달라붙으려고 하면 계속 쳐냈거든요. 흑심 보이는 사람은 족족 쳐낼 생각이니 당신도 주의해주시길.”

“흑심…”

“물론 카이엔 님은 아무 생각 없으시지만요.”

단언하는 목소리에 에이들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무 생각이 없다… 카이엔이라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편 바깥으로 나온 카이엔은 인공 호수 앞에 서서 바닥의 작은 돌을 하나 주워 호수에 던졌다.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슬로세이.”

물 밖에서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아까 던진 것보다 조금 더 큰 돌을 찾아서 던졌다. 이번에는 반응이 돌아왔다.

물 밖으로 튀어나온 돌이 풀밭에 떨어졌다.

물 속에 있구나.

그것을 확인한 카이엔은 신발을 벗고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흐읍-”

크게 숨을 들이쉬고 그는 호수 안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잠수를 하니 바로 슬로세이의 모습이 보였다.

호수 바닥에 웅크린 채 앉아있던 슬로세이는 물의 진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가 카이엔을 보고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뭐, 뭐야! 왕자님이 왜 여기있어?!”

말을 할 수 없기에 카이엔은 손을 휘저었다.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없어서 대화를 하려면 일단 슬로세이를 물 밖으로 끌어내야 했다.

잡으라는 듯 내밀어진 손에 슬로세이는 고개를 돌렸지만 고집부릴 시간은 없었다.

카이엔의 호흡에 한계가 와 부그르르, 하고 공기방울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내자 슬로세이는 화들짝 놀라 그의 손을 잡고 단숨에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푸핫!”

“왕자님, 어쩌려고 여기 들어온 거야!”

“네가 있을 것 같아서.”

지극히 단순하고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푹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착 달라붙어있었다. 슬로세이는 손을 뻗어 눈을 가린 카이엔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 말, 비셰한테도 해줘라.”

“끄응…”

“일단 나와서 이야기하자.”

푹 젖은 카이엔은 끙끙거리면서 호수 위로 올라왔다.

다만, 다리는 호수에 담근 채였다.

그가 물 밖으로 올라와 손짓하자 슬로세이는 우물쭈물거리면서도 호수의 가장자리로 향했다.

첨벙!

물 튀기는 소리를 내며 슬로세이가 물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녀는 카이엔의 옆이 아닌 그의 무릎 위에 올라타 앉았다.

이미 잔뜩 젖은 뒤라 카이엔은 슬로세이가 그에게 달라붙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넌 또 왜 싸웠었냐?”

“…말 안 할래.”

“떼쓰지 말고.”

“말하면, 왕자님은 이해할 수 있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슬로세이가 물었다.

그 물음에 카이엔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글쎄. 모를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카이엔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슬로세이는 앉은 자세를 고쳤다. 양 팔로 카이엔의 목을 끌어안으며 아직 작고 어린 인어공주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난 왕자님 좋아하는데.”

“그래?”

“그 반응은 뭔데?”

“난 잘 모르겠던데.”

“그야 맨날 바이스 씨가 방해하니까 그렇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왕자님은 나한테 관심없는 거지?”

“글쎄.”

미적지근한 반응에 슬로세이는 카이엔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카이엔이 슬로세이의 등을 두드렸다.

“숨 막힌다.”

“알아.”

“하아… 에이들러랑 너무 다투지는 마. 네가 손해다.”

“걔가 인간 왕자라서?”

“그것도 있고. 아직 이종족에 대한 법 같은 게 마련되어 있지 않거든. 네가 인어 공주라고 해도 인간들에겐 그걸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

“알았어. 그치만, 뜬금없이 나타나선 왕자님이랑 친한척 하는 게 싫어.”

“그렇게 따지면 너도 마찬가지… 윽!”

눈치없이 말을 꺼낸 카이엔은 슬로세이가 귀를 잡아당기자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토라진 아이를 달래는 재능같은 건 없기에 카이엔은 한참 동안 슬로세이에게 붙잡혀있었다.

젖은 몸이 마르면서 으슬으슬 떨려왔다. 그 떨림에 슬로세이는 카이엔을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왕자님은 좋아하는 사람 있어?”

“모르겠는데.”

“뭐야 그게.”

“바이스 녀석은 가끔씩 뭐라고 중얼거리던데 난 모르겠더라.”

“갑자기 예뻐보이거나 신경쓰이는 사람 정돈 있었을 수 있잖아.”

카이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답답하다는 듯 슬로세이는 다그치듯이 말했다.

“갑자기 눈에 띈다거나! 가슴이 두근거린 적도 없어?”

“모르겠어.”

“잘 생각해봐! 바이스 씨가 말했을 정도면 있다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열낼 일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카이엔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 사람이 있던가? 알 수가 없었다.

허나 하나하나 조건을 들어가면서 대상을 추려내려고 하니 누군가 한 명, 들어맞는 사람이 있긴했다. 거기에 바이스가 저번에 말했던 단서를 곁들이니 명백해졌다.

“…아.”

그런 거였나.

왜 바이스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유독, 빛나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긴했었다. 허나 그게 연정이었던가?

카이엔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연정이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기에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있어?”

“글쎄다…”

말을 돌리면서 카이엔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슬로세이의 시선을 피했다.

“춥다. 돌아가자.”

“난 괜찮은데.”

“나는 안 괜찮아. 앞으론 에이들러한테 심술부리지 않는 거다?”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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